명품 판타지 - 패션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샤넬에서 유니클로까지
김윤성.류미연 지음 / 레디앙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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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몇년 전, 아는 사람이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 갔다가 잠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미국 유학을 가기 전에도 사치라곤 전혀 모르고, 그냥 수수하게 하고 다녔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를 나는 거진 3년만에 만난 것인데, 미국 물도 마시고 했으니 조금은 세련되지 않았을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하고 만났었다.  아, 근데 왠걸, 더 수수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라. 더 수수한 것을 촌스러움과 동격으로 보는 건 그 분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는 자신의 수수함이 조금은 신경 쓰인 건지, 아니면 이것이 '미국 컨트리 스타일'이라고 이해를 해 달라는 것인지, 대다수의 미국 사람들은 수수하게 하고 다닌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정말 미국 사람도 이 사람 같이 하고 살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긴,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라서, 집에서 잘 입고, 밖에선 오히려 수수하게 입고 다닌다지 않는가?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집에선 후줄근해도, 밖에 나갈 땐 그야말로 '비까번쩍'하게 차려입고 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나만 같아도 집 앞 편의점 조차도 집에서 입던 그대로는 잘 못 나가는 편이다. 하다못해 바지 하나라도 바꿔입고 나간다. 이 말을 꼭 비꼬아 들을 것도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체면치레나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이왕이면 남에게 좋게 보여서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우리나라 보다 잘 사는 미국이 우리와 정반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가하고 산다니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들의 겸손함, 절제미 뭐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들의 삶이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 멋을 부리며, 굳이 사치할 필요도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그건 개인 프라이드에 관한 것이니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우리는 과연 럭셔리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럭셔리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를 꼽으라면 바로 저<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의 오드리 헵번이 블랙 미니 드레스를 입고 햄버거(?)를 들고 쇼윈도의 명품 악세서리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장면은 아닐까? 내 기억엔, 저 때가 아직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은 새벽 시간대라고 생각되는데, 보다시피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물론 멋있으라고 쓴 것일수도 있겠지만, 명품에 대한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드러내주는 폼새는 아니었을까? 더구나 지극히 시민적인 음식을 들고 언감생심 명품을 정면으로 노려보겠는가?  

사실, 럭셔리의 정확한 의미는 '사치재'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에 쓰일 땐 '명품'이란 단어로 전도되어서 쓰인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사치한 물건에 그 단어를 쓰기엔 '명품'이란 단어가 좀 억울하지 않을까? 좀 우아하고, 가치있고, 오래되었으며, 보수적이고, 평판 좋은 물건에 '명품'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까? 물론 샤넬이나, 아르마니, 꾸찌니 하는 패션 브랜드에열거한 말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닌데, 문제는 사치스럽고, 있는 사람만의, 즉 자본주의의 전유물 같아 조금은 편치는 않다. 그것은 아마도 사치가 더덕적이지 못하다는 생각과 맞물려 그것에 대한 내밀한 열등감이 합쳐져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평생 길표 외엔 다른 것들을 써 본적이 없어서 일까? 명품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그것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도 나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란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은 못할 것 같다. 그러므로 명품에 대한 갈증이 없다는 건, 단지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고, 그것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고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분출될지도 모르는 욕망이라는 쪽에 무게 중심이 실린다. 저 <타피니에서의 아침을>에서의 선글라스 낀 오드리 헵번처럼 말이다.  

우리가 럭셔리를 논하고자 할 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름, 샤넬

우리가 패션이나, 명품을 논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건 '샤넬'이다. 이 책에서는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많이 다루고 있어, 과연 이 책이 정말 명품과 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루려고 하는 책인지, 아니면 샤넬을 설명하기 위한 책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샤넬은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여성 억압의 시대에 의상 하나로 여성해방에 기여한 점은 샤넬 당대에는 '파격'이었을지 모르지만, 역사는 그것을 '위대한 것'으로 승격시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녀는 고정관념에 맞섰으며, 남보다 한 발 앞선 안목과 예지가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검정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된 이미지와 신발까지 고전적 패션에 과감히 가위질을 해 '검정 미니드레스'란 패션을 선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검정은 종종 저승사자나 상복에 비유됐다. 하지만 샤넬은, 검은색은 모든 색의 기본이며, 어떤 색을 넣어도 더러워지지 않으며, 다른 색 보다 일정하고, 고르게 염료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모더니즘 시대에 검정색만큼 편리한 색도 없다.(58p)고 확신했다.  확실히 창의적인 사람에게 금기란 없다. 무엇이든지 내가 가는 그곳이 길이 된다란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현대에 금기는 뭘까? 나도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결국 그것에 대한 그녀의 예언은 적중해 보이는 듯하다. 샤넬의 시대 때, 당시 <보그>의 편집장은, '이 옷은 패션의 포드 자동차이며, 이제 대중들이 입는 표준의상이 될 것이다.'(60p)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샤넬 자신의 안목과 예지에서 한 수 배워보고 싶어진다. 그것을 사업으로 이끌어낸 그녀의 수완도 놀랍고. (솔직히 난 작년에 샤넬의 전기 영화를 본적이 있었는데,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너무 그녀에 대한 이해가 없었구나란 생각을,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기도 했다.)이 말은 경구를 남기기 좋아하는 샤넬이 한 말 중의 하나다. 그녀는, 유행은 원래 영원하지 않고 거리에서 나타나 다시 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 사람들의 필요를 만족시킨 '실용적'인 유행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남은 유행은 변화무쌍한 패션 세계에서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는다.(50p)고 했다. 확실히 새겨볼만 하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48p) 

 

모더니즘 또는 샤넬 스타일은 아직도 유효한가? 

원래 럭셔리는 신에게 바치는 재물을 담는 그릇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겠는가. 그런 것이, 왜 그런 물건은 신들만이 써야 하는가? 우리도 한번 써 보자. 그래서 부자들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르네상스나 인본주의 이념과 그 괘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쓰기 좋게 변형되고 발전하면서 지금의 럭셔리가 되었다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이 역시 샤넬이었다.  

그녀가 처음 제안한 디자인과 옷 입는 법을 흔히 '샤넬 스타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샤넬에게 있어 '샤넬스타일'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곧 스타일'이라며, 스타일이란 말을 만든 사람 자체가 자신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24p) 그렇다면 럭셔리도 별것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인간의 편의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럭셔리 곧 '명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그러한 세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인간 편의를 위한 물건들. 실용성과 디자인을 무기로 인간을 유혹하며, 우리의 것으로 당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라고 유혹을 너머 강요하고 있다. 과연 명품은 진화하는 것이다.  

명품은 왜 비싼가? 

사실, 그렇게 신의 재기로나 쓸 수 있었던 물건들이 인간도 쓸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면 환골탈퇴를 해도 여러 번 했을 것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니 겸손해져도 많이 겸손해진 셈이다. 하지만 명품은 확실히 비싸다. 왜 그런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물건은 가격이 오르면 덜 팔리고 가격이 내려가면 더 팔린다. 이것을 '수요의 법칙'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치하기 위해서 쓰는 물건들은 가격을 올릴수록 오히려 점점 더 잘 팔린다. 들인 비용과 가격과 상관없이 '얼마면 사람들이 사고 싶을까'로 가격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가격을 올리면 올릴수록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그 물건을 사간다.(268p) 이것을 좀 더 잘 설명한 사람이 경제학자 베블런이다. 그는 <유한계급론>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은 유명해지기 위해 돈을 쓰고, 쓸데없는 데 쓸수록 더 유명해진다."고 했다.  결국 명품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중은 화려한 삶을 욕하면서도 부러워하고 궁금해 한다. 대중심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화려한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좋은 집에서 사는지를 두고 목숨 걸듯 경쟁한다.(270p) 그러니 아까 말한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 선글라스 뒤에 감추어진 오드리 헵번의 눈빛이 어떨지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라. 그리고 나 역시 평범하지만 그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명품을 쓴다고, 명품 사회가 될까? 

너도 나도 명품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이미 명품이 아닐 것이고, 베블런이 말했던 대로 유한 계급은 반발이 거셀 것이며, 그들은 더 낳은 차별화된 물건을 사거나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사실 실재로 그렇게 해서 일반인에게도 흔하게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생각해 보면 많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짝퉁도 많이 생겼고.  당장 컴퓨터나 핸드폰만해도 그렇다. 불과 한 세대 전만해도 그 물건은 부자들이나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선택의 폭도 다양해졌다. 아직도 이 물건에 대한 정체를 모르거나, 알아도 여건상 흔하게 쓸 수 없는 나라가 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우리나라는 확실히 명품 사회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명품하면, 과거 정치인들의 옷로비 사건과 맞물려 그다지 좋은 이미지만도 아니다. 특히나 자본주의의 전위물이고, 중산층이 점점 사라지고 빈부의 격차로 인한 괴리감 때문에 명품은 그다지 환영 받을 물건은 못되지 싶다.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오블리주 노블리제가 중요시 되면서, (이게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도 안에서 입는 옷이나 밖에서 입는 옷이나 별 차이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말해두자.  그래도, 솔직히 명품을 쓰게 됐다고 명품 사회가 됐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돈이 가치중립적인 것처럼, 명품을 가지고 도덕성을 우논할 수는 없는 것 같고, 그냥 있는 사람끼리의 하나의 문화 현상이고, 유희는 아닐까 싶다. 그러니 그것을 못 쓰게 됐다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그것을 쓰는 사람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아니할 말로, 그들이 쓰는데 우리가 도와준적이 없지 않은가?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들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대신 샤넬이 말했던 대로 자기 삶에 있어서 '자기만의 스타일' 을 만든다면, 명품을 쓰는 것도 하나의 스타일이겠지만, 역설적으로 명품을 안 쓰는 것도 자기만의 스타일이란 말도 될 것이다. 요컨대, 중요한 건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기만의 스타일이고, 그것이 곧 명품이란 소리도 된다는 말이다.  '내가 곧 명품 인간'이란 자부심은 어디나 통할 수 있다. 자기 삶에 자부심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명품 사회가 그리도 부럽거든 그것이 있는 사람에 의해서만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나름의 스타일. 곧 우리가 명품 문화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절대 기죽지 않기를!

음...

솔직히 이 책을 읽을 때는 나름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덥고나자 새삼, 내가 왜 이 책을 읽었을까? 그 의미를 찾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명품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 책을 읽었다고 앞으로 명품을 살 것도 아니다.  게다가  다른 다룰만한 명품도 많을텐데 (주로) 패션에(그것도 특히 샤넬에) 치중해서 다소는 산만하게 주제를 풀어나간 점은 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작가가 재치있게 공들여 쓴 것은 인정해 줄만하다. 사이 사이 끼어있는 삽화도 볼만하고.   

물론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볼만한 것은 있었다. 그것은, '명품, 나만의 스타일은 가능한 것인가?' 였고, 결론은 전혀 불가능하지만도 않겠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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