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더우드家 "이젠 한국 떠납니다"
연세대·새문안 교회 설립…4代 119년간 현대사에 큰 공

4대(代)에 걸쳐 한국과 인연을 맺어온 언더우드 일가가 입국 119년 만에 한국을 떠난다. 언더우드 일가는 지난 1885년 언더우드 1세인 원두우(元杜尤·미국명 호러스 G 언더우드)씨가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로 입국한 이후 명문 사립 연세대를 설립하는 등 한국의 교육·종교·사회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원두우씨의 증손자인 원한광(元漢光·61) 한·미교육위원회 위원장(연세대 재단이사)은 10일 “4대에 걸쳐 언더우드가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봉사는 다 했다고 생각한다”며 “올 10월쯤 아내와 함께 자녀들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원 위원장은 3년 전부터 환갑이 되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해 왔으며 한국에서 입양한 두 딸 등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원 위원장이 한국을 떠나면 일가 중 연세대와 관련을 맺지 않고 있는 원 위원장의 동생 원한석(49·개인컨설팅회사 근무)씨만 국내에 남는다.

원 위원장은 떠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정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아쉽지만 언더우드 가문의 시대적 소명이 끝난 것이 엄연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며 “이제 우리가 더이상 도움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나라, 도움을 줘야할 나라가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 원두우 박사의 묘를 한국으로 이장한 가족들이 서울 마포구 외국인 묘지공원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뒷줄 오른쪽 두번째가 손자인 원일한 연세대 재단이사, 앞줄 왼쪽이 증손자인 원한광 연세대교수.

언더우드 일가는 한국 현대사의 증인이다. 언더우드 1세는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한 뒤 광혜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쳤으며,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한국 민족이 일본에 주권을 침탈당할 만한 나라는 도저히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문화를 보존하고 나면 언젠간 독립국가로 바로 설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2세 원한경(元漢慶) 박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연희전문학교로 돌아와 교육학을 가르쳤으며, 제3대 교장을 지냈다. 역사상 처음으로 백두산 천지의 깊이를 잰 것도 이들 언더우드 1세와 2세 부자로 알려져 있다. 원한경 박사는 1951년 6·25전쟁의 와중에서 심장병으로 한국에서 사망했고 부인은 1949년 공산당의 테러로 절명, 한국사의 아픔을 함께했다.

3세인 원일한(元一漢) 박사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에 재입대, 한국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대위로 전역했지만 위기에 빠진 한국을 위해서 다시 군에 입대한 것이다. 그는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했으며, UN군 정전협상 수석 통역장교를 맡아 정전(停戰) 협정의 전 과정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한·미협회 부회장, 한국성서공회 이사, 광주기독병원 이사, 한·미우호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올 1월 그가 사망했을 때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 간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가 찾아가 조언을 받던 분”이라며 “한·미 우호를 위해 애쓰시던 모습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의 친근한 벗이었다.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학 시절 모두들 원일한 박사님의 인자한 모습에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천사라고 생각했다”며 “언더우드 일가는 120여년 전 암울했던 시기에 한국에 와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한국사람과 똑같이 생활한 위대한 선구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원일한 박사는 99년 5월 미국 뉴저지주에 안장된 할아버지 원두우 박사(언더우드 1세)의 유골을 한국으로 이장, 서울 마포구 합정동 외국인 묘지공원에 안장했다. 한국에서 숨을 거둔 아버지 원한경 박사(언더우드 2세)가 묻힌 장소였다. 원 박사도 숨을 거둔 뒤 같은 곳에 묻혔다. 작고한 언더우드 1세부터 3세까지 모두 ‘제2의 고향’인 한국에 묻힌 것이다.

한국을 떠나는 4세 원한광 위원장은 “앞으로 여생은 미국에서 살겠지만 숨을 거둔 뒤 묻힐 장소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봉기기자 knight@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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