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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와 정치기술

고려대  심재우교수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안팎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켜나감으로서, 정치적 공동체의 확고부동한 토대, 즉 국가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치기술" 또는 "통치술"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악명높은 마키아벨리즘의 유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는 정치를 기독교 윤리의 틀 속에서만 고려하던 중세적 한계를 벗어나, 군주의 세속적 행위기준을 제시하고 독립적 주권을 옹호함으로써 독립국가를 보존하고자 했다. 이제 군주는 더 이상 신법이나 자연법과 같은 상위법의 제약 없이 오지 국가의 보존과 유지만을 지상목표로 삼으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군주는 종교와 도덕이 명령하는 당위성에 따르기보다는 항상 본심을 감추고 운명과 상황변화에 따라 적절히 처신해야 한다.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군주는, 특히 신생군주는 좋다고 생각되는 방법으로 처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종종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으로 행동하고 종교의 계율을 무시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운명의 풍향과 변모하는 상황이 그를 제약함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거기에 맞추어 자유자재로 바꿀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급적이면 올바른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말고 필요하다면 비행을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은 마키아벨리가 정치현상을 도덕과 종교와는 분리되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상정했음을 잘 나타내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이 마키아벨리를 "근대정치사상의 시조"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다음에 계속되는 항목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1) 이익지향과 폭력의 문제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은 먼저 철저하게 이익지향적이다. 이익의 개념은 두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데, 한편으로 마키아벨리 이전의 시대에 만연되어 있던 도덕적인 원리나 규범으로부터 정치행위의 독립성을 선언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 그 원리들은 군주에게 명료하고 건전한 지침을 제시하는 동시에 정념이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의지를 표상하는 것이었다.32)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특정한 이익(민족국가의 건설)을 추구하는 정치야말로 현실주의적 정치사상의 핵심이었다.

이는 폭력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는 식의 견해는 전통적인 도덕원리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폭력도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오히려 이로울 것이라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폭력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함과 동시에 계속해서 감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차이는 잔인한 조치들이 잘 사용되었는가 또는 잘못 사용되었는가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믿는다. 그러한 조치들이 단번에 저질러졌다면 ... 잘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치은 권력을 확립하는데 필수적이며, 연후에는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신민들에게 가능한 유익한 조치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 저질러진 조치들이란 처음에는 빈도가 적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기보다는 증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군주론, 65쪽)

2) 외양과 상징, 가장과 위선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핵심을 "외양"과 "상징"으로 파악했다. 다시 말해, 정치는 본질의 영역이 아니라 외양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행위자로서 통치자는 능란한 위선자요 가장자여야 하며 성실함, 자비, 인간애 및 종교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본다. 마키아벨리는 기만과 폭력이 횡행하는 정치상황에서 정치적 행위자는 정치적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으로서 능숙한 가장과 위선을 필요한 한다는 의미에서 외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만약 정치적 행위자가 한결같이 기존의 도덕률을 채택하게 되면, 그의 행위는 적에게 쉽게 노출되고 간파되어 정치적으로 파멸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내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절한 기만과 위장을 통해 외양을 조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볼 수 있는 반면에 당신의 진면모에 대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 인간의 모든 행동에 관해서 특히 직접 설명을 요구할 수 없는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 특히 직접 설명을 요구할 수 없는 군주의 행동에 관해서 인간은 결과에만 주목한다. .... 왜냐하면 보통사람들은 외양과 결과에 감명받기 때문이다. (군주론, 124쪽)

3) 목적과 수단의 문제

그리고 이렇게 외양과 상징, 가장과 위선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의 위선"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었던 것이다.33)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목적과 수단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키아벨리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논증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마키아벨리는 일단 목적은 근본적으로 (가치판단을 해볼 때) 선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수단은 언제나 목적에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라고 보는 것이다.34)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생명과 자유를 구하기 위해서는 수단의 선악여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군주론, 123쪽) 정리하면, 수단은 목적에 종속되는 것이며,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단이 되도록 통산의 도덕(선)에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 또한 마키아벨리의 주문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결과주의적인 사고와도 관련이 깊다. 물론, 비상상황에서만 그러하다는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군주는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국가의 존립에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즉, 군주의 행위의 결과)가 그 과정보다 훨씬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외양과 상징 같은 기만술이 정당화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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