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광기로 가득한 작품은 치밀한 구성을 통해 가능했다”
생각의 즐거움 | 에드거 앨런 포 에세이 | 송경원 옮김 | 하늘연못 | 286쪽 | 8500원


▲ 이탈리아 카툰 사이트(www.fanofunny.com)에 소개된
미국의 시인·소설가·비평가 에드거 앨런 포(1809~1849).
어둠에 싸인 인간의 내면 세계를 공포와 환상, 광기와 풍자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준 에드거 앨런 포<그림>는 오늘날까지 그 독창성과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다. 근대적 계몽주의가 제공하는 합리적 이성을 거부한 그는 유령과 악마가 출몰하는 광기의 세계와 환멸적인 현실로부터의 탈주 등을 단골 주제로 삼은 시대의 이단자였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포의 에세이집으로, 그의 문학세계의 근거와 시의 창작원리, 예술론에 관한 수려한 산문 다섯 편을 싣고 있다. 상상과 환상으로 가득찬 그의 작품 경향과는 달리 산문들은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이를 통해 세상 만물의 이치는 물론 인간의 심리 상태와 행동 양식 모두를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 분석하고 증명해보이는 문학세계를 보여준다. 심지어 환상과 몽유의 세계조차도!

그의 작품 창작의 원리를 밝히는 일은 팬터지, 추리, 공포문학의 원조로서 현대문학의 마르지 않는 문학적 원천의 한 줄기를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포는 ‘강렬한 독창성’이란 짧은 글에서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미리 결말까지 구상한 뒤 비로소 집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분석 대상은 자신의 시 ‘갈가마귀(The Raven)’로 삼았으며, 시 창작이 ‘우연이나 직관’의 영역이 아니라 ‘수학문제의 정확성과 엄밀한 귀결’ 속에서 결말로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있다.

‘갈가마귀’ 창작 과정에서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은 ‘길이’였다. 시는 한자리에 앉아 읽기에 너무 길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시의 길이는 강렬한 격정과 영혼의 고양을 끌어낼 수 있는 시적 효과의 정도와 수학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 간결함은 시적 효과의 강렬함과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100행 정도가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음은 전달하고자 하는 인상이나 효과. 가장 강렬하고 고양되고 순수한 쾌락은 미(美)를 관조하는 데 있었다. 그 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정조는 ‘애상조’였다. 미는 종류를 막론하고 가장 발전된 상태에서는 섬세한 사람을 눈물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포는 극적인 예술적 효과를 위해 ‘짧은 반복구’ 활용을 구상한다. 이 반복구는 가장 울림이 좋은 모음 ‘o’와 발음이 쉬운 자음 ‘r’이 들어간 단어 ‘다시는 안 돼요(nevermore)’가 선정된다. 각 연 끝에 ‘다시는 안 돼요’라는 말을 단조롭게 반복하는 불길한 ‘갈가마귀’의 등장 단계까지 다다른 시인은 최후의 질문을 던진다.

“인류 보편적으로 가장 애상적인 주제는 무엇일까?” 명백히, 죽음이 그 답이다. “그리고 언제 이 가장 애상적인 주제가 가장 시적인 것이 될까?” 미(美)에 가장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을 때였다. 그렇다면 물을 것도 없이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제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것을 말하는 주체는 상(喪)을 당한 연인이 가장 적합했다. 작품의 장소는 고립된 사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정신적 힘까지 발휘하는 닫힌 공간으로 결정됐다. 실제 작품에서는 여인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침실이 배경이 됐다.

언뜻 보기에 불길한 암시와 환상으로 가득찬 듯이 보이는 시 ‘갈가마귀’의 이면에는 이렇듯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논리가 단단히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 창작노트의 비밀은 ‘겉으론 시인, 속으론 논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천상의 미’를 추구한 탐미주의적 작품은 수학적 정밀함을 곁들인 구성, 운율과 격조에 대한 배려, 비애적 정서의 환기 등의 요소가 빈틈없이 배열된 고차방정식을 통해 가능했다. 그는 “작품의 독창성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충동이나 직관의 문제가 아니다. 독창성은 세심하게 추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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