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미경 옮김

세종서적

1만8000원

그림은 보는 것일까 읽는 것일까? 당연히 보고 읽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보는 것을 물리적인 지각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들어오자마자 우리의 뇌에 의해 해석된다. 해석은 읽기이다. 읽되 우리의 경험과 지식, 기억에 입각해 읽는 것이다. 그림 감상에 있어 보는 것과 읽는 것은 결코 칼로 두부를 자르듯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독서할 때 우리는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일까? 읽기를 통해 우리는 본다. 저자의 생각과 의도, 글이 지향하는 바를 꿰뚫어보게 된다. 비록 물리적인 시각 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런 경험처럼 ‘읽기=해석’에 의해 파악된 세계의 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보는 것은 분별과 관계가 있고, 읽는 것은 이해와 관계가 있다. 분별함으로써 이해하게 되고 이해함으로써 분별하게 되는 것은 대상이 무엇이든 모든 인식의 기초이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독서의 역사’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나의 그림 읽기’는 흔히 보는 행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그림을 읽는 행위의 대상으로 보았을 때, 그러니까 전자 못지않게 후자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때,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그것이 또 얼마나 우리의 지식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지 면밀히 살펴본 책이다. 읽는 행위로서 미술감상이란 그 정답이나 한계가 존재할 수 없는 행위라는 점에서 끝 모를 사유의 강물에 스스로를 던지는 행위와 같다. 미술작품의 이미지는 자연의 사물과 달리 즉물적으로 스스로를 천명하지도 않고, 글과 달리 일관된 체계로서 의미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망구엘은 화가의 의도와 개인사, 도상학적 이해, 작품의 시대적 배경,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비평과 해석, 작품을 대하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 등을 두루 아우르며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려(찾는 것이 아니라) 노력한다. 비록 정답은 없지만, 아니 정답이 없기에 현재의 시점에서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길은 나름의 논리적 정합성을 지니고 공감을 자아내는 의미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의미망은 다른 이에 의해, 혹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환경과 지식의 토대 위에 형성된 의미망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그때마다 깊은 감동을 덤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망구엘은 책을 모두 12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반 고흐의 ‘생트마리 해변의 고기잡이배’와 로베르 캉팽의 ‘화열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 가트너의 ‘서 있는 네 사람’, 피카소의 ‘통곡하는 여인’, 카라바조의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 등 각 장마다 대표 작품을 선정하고 이를 ‘이야기와 이미지’, ‘수수께끼의 이미지’, ‘악몽의 이미지’, ‘폭력의 이미지’, ‘극장의 이미지’ 등 이미지에 대한 깊고 넓은 해석으로 풀어낸다. 그의 박학다식과 그 위를 종횡으로 내달리는 글쓰기는 작품 분석이 해석자의 역량에 얼마나 큰 빚을 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트너의 ‘서 있는 네 사람’을 통해 “존재는 이유가 없다”고 한 철학자 우나무노의 명제를 확인하고, 피카소의 ‘통곡하는 여인’을 통해 그의 미술의 남성적 폭력성을 추출하는 대목 같은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비록 12개의 작품에 한정해 분석을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미술과 이미지 전반, 나아가 존재와 인식의 문제에 관한 복합적인 성찰로 이어진다. 그 미시적이고도 거시적인 시선이 뒤섞여 하나의 책으로 융합돼 나온 것이 감탄스러운데, 그것은 미술 감상이라는 포용성과 융통성이 매우 뛰어난 통찰의 바인더가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하겠다. 이주헌·학고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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