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칠일 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강연록
발행일 : 2004-02-28 D7 [Books]    기자/기고자 : 김광일
 
송병선 옮김

현대문학

1만2000원

‘스티븐슨이 말했듯이 ‘매혹’이란 작가가 가져야만 하는 근본적인 자질 중의 하나입니다. 매혹이 없으면, 나머지는 모두 소용없는 것입니다. ’(16쪽)

이 책은 보르헤스<사진>가 칠일 밤에 걸쳐 강연한 일곱 가지 문학 얘기를 주제별로 묶은 것이다. 1977년 여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리세오 극장에서 행했던 강연 초록을 여러 차례 수정한 끝에 1980년에 발간했고, 이번에 한국어로 초역됐다. 그가 선택한 주제들은 ‘신곡’ ‘악몽’ ‘천하룻밤의 이야기’ ‘불교’ ‘시’ ‘카발라’ ‘실명’ 등이다. 죽는 날까지 마치 유언장처럼 그를 뜨겁게 달군 주제들이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수많은 고전과 현대물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일종의 독서 에세이로 보일 것이다.

“천국은 도서관과 같은 곳”이라고 비유한 보르헤스는 1955년 아람부루 정부에 의해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됐다. (231쪽) 아르헨티나 출신의 그(1899~1986)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수많은 수식어 중에서 ‘도서관장’이란 직함을 가장 영예롭게 생각했다. 밀튼이나 제임스 조이스가 말년에 시력을 잃었듯이 그는 도서관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에 함빡 빠졌다가 작가로서는 치명적인 실명에 이르게 된다.

‘20세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 현대 환상문학의 거장, 소설을 죽음에서 구해낸 작가’로 불리는 보르헤스는 이 책에서 그가 어떤 작품과 사상들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준다. 문학 속의 보르헤스와 더불어 현실의 보르헤스를 보여주고, 인간적인 보르헤스도 알게 해준다. 이 책을 한마디로 줄이면 보르헤스의 문학적 운명을 밝히는 책이다.

‘항상 나는 내 운명이 무엇보다도 문학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게는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모든 것, 특히 나쁜 일들이 장기적으로는 글로 변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246쪽)

한 가지. 보르헤스의 어머니인 레오노르 아세베도는 99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아들의 책 한 권을 침대 머리맡에 놓아 두었다. 그러나 그 책을 제외하고는 보르헤스의 집에 그의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보르헤스는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책들과 ‘중요하지 않은’ 자기 책들을 뒤섞어 놓는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허영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267쪽) 김광일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