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예술의 뒷면에 어른거리는 경제의 그림자

예술의 역사-경제적 접근 … 이재희·이미혜 지음 / 경성대 출판부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예술에도 작용한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 등장한 근대소설은 경제적 환경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시장 경제가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역동하는 중간 계급의 생활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들이 유행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의 프랑스에서는 왕정과 귀족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제도가 엄존했기 때문에, 소설가들은 비사실적인 우화와 귀족의 생활을 반영하는 에로티시즘에 탐닉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에는 왕이나 귀족 등 고귀한 신분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지만, 18세기 영국 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전 세계를 무대로 부를 축적했던 당시 중간 계급의 세계관을 대변했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는 28년 동안 금욕적으로 지내면서 쉬지 않고 일을 한다. 크루소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재화를 거두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는 중간 계급의 자유방임주의를 반영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앞서서 자유주의를 예찬한 셈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어떻게 富를 축적했나

18세기에 바로크 미술이 섬세하고 우아한 로코코 미술로 넘어가면서, 화폭에는 궁정의 풍속이 아니라, 귀족들의 사냥과 아유회가 더 많이 등장하게 됐다. 위선적인 궁정 생활에 싫증이 난 귀족들이 그에 대한 반동으로 전원 생활을 이상화했기 때문이다.

궁전 안에 시골집을 지어놓고 양치기 놀이를 즐겼던 귀족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미술에서는 양치기 소년이 자주 등장했고, 그림 속의 양치기는 거친 노동에 시달리는 청소년이 아니라, 깊은 사색에 잠긴 채 양떼를 바라보는 기품있는 인물로 묘사됐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노동문학이 크게 떠올랐다. 후원자를 잃은 작가들이 실업자와 같은 처지로 전락하면서, 당시 증가된 노동자 계급에 심정적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작가들은 왕과 귀족에 이어 사회의 지배 세력으로 자리잡은 부르주아지를 비판하면서 하층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러나 노동 문학은 20세기에 들어와 문학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노동자들은 19세기 후반에 문맹 상태에서 벗어났지만, 노동문학에는 관심이 없었다”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답답하고 비참한 일상 생활을 다룬 소설보다는 귀족과 중간 계급의 생활을 다룬 통속 소설을 읽으며 잠시나마 환상에 젖는 편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생활을 다룬 에밀 졸라의 소설들은 주로 중간 계급에서 널리 읽혔다. 하층민들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를 통해 안락한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중간 계급들 덕분에 졸라의 소설들은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10만부 이상 팔리는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와 불문학자가 공동으로 펴낸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의 예술사를 훑어 가면서 시대별로 예술과 경제의 상호 작용을 확인시켜준다. 난삽한 이론보다는 풍부한 사례들을 대거 동원하면서 서양 예술에 드리워진 경제의 흔적을 명료하게 드러냈다.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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