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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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만화책 치고는 좀 비싸지 않나 했다. 그런데 받고 보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 이건 내가 아는 기존의 만화책과는 판형도 다르고, 디자인도 다르다. 한마디로 고급스럽단 생각이 든다. 하긴 만화책이라고 고급스럽지 말라는 법 없다.  그림의 질감도 기존의 그것과 달라서 수채화톤이다.  또한, 그래서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이런 작업을 하는데 있어 약간의 부담감을 작업노트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나 개인으론 이런 책은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다.  

옛날의 만화책은 어떠한가? 누런 갱지에 그려 나왔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보단 사정이 조금 나아져 종이의 질이 좋아진 것 같긴 하지만,  아직도 왠지 함부로 굴려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것처럼 취급해도 될 것만 같다.  물론 나의 이런 말도 어느 만화 매니아가 들으면 발끈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만화를 두고 제 9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 대우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아 나도 아쉬운 마음에 괜히 한마디 해 본 것 뿐이다. 

이 작품은 수채화톤이라고는 하나 그렇다면 밝은 느낌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가 아무래도 밝지마는 않아서일까? 아니면 작가의 작풍이 원래 그래서인가? 약간 후줄근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후줄근함에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매력과 장점을 잘 살린 듯도 하다.  

하지만 스토리상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원래 생각했던 것 보다 작품의 길이가 길어졌다고 했다. 작가는 아무래도 쳅터를 나누면서 쳅터 하나 하나에 나름의 완결미를 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내용은 짧지만 간결한 인상을 주는 그 무엇으로. 물론 그것에 다가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엔 또 웬지 해결되지 않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원빈의 캐릭터가 좋긴 하지만, 그 존재감은 작품속에 그리 살아있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직 다 피지 못한 꽃봉오리인 양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 것 같아 아쉽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그림과 스토리를 함께 한 것에 대한 취약함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적절한 예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영화에 있어서 각본 감독을 따로두지 않고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사람은 그만한 실력이 되니까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은 각본과 감독을 따로 둘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을 겸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봐야한다. 물론 요즘 실력있는 감독들은 각본도 하면서 그 밑에 어시스트를 두고 있기도 하는가 본데, (그래서 크레딧이 함께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만화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림 따로, 이야기 담당 따로. 이 둘을 함께 하려고 하다보니 조금은 애매하고 버거운 작업이 된듯도 하다. 

하지만, 난 솔직히 이 강원빈의 역할이 알려진 것에 비하면 크지 않아서 그렇지 결코 적지않은 매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작가의 의도이기도 하겠지만, 왜 우린 예쁘고, 멋있는 인물에만 촛점을 맞추려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래야 그 작품의 주가가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엔 잘나고 예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옛날에 비하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다수는 평범하거나 그 아래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것의 기준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쩝!) 그렇다면 이 평범함에서 인물을 만들어내면 안되는 것인가? 나는 항상 영화를 봐도, 드라마를 봐도 그게 늘 불만이었다. 물론 이것이 현실화 되면 나 같이 반가워할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반기를 들 것이다. 예쁜 사람 씨 말랐냐? 평범은 질린다. 예쁜 사람 복귀시켜라! 각 방송국과 영화 제작사에 피켓들고 난리칠 것이다. 그건 또 얼마나 국가적 낭비랴? 그러니 못 생긴 사람은 이래 저래 주목 받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인물에 애정을 가지고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가들이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런 작가 정신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그처럼 작품은 작가가 말했던대로 찌질한 인생, 불가촉 루저들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 것 같다. 그래서 안정감이 느껴지고, 내가 모르는 미술학원의 이야기를 알게돼서 좋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작가는 상당한 비판정신의 소유자인 듯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비판하려고 했다. 특히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교육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이라고 썩소를 날리는 만화 한 컷은, 정말 통쾌하면서도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신랄하게 반영하는 좋은 장면 같다. 언제 한 번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정말 교육을 위한 기관인 적이 있었나?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을 취직하게 만들가를 위한 기관 아니닌가? 나는 대학교는 고용을 위한 곳인 줄 알았지, 학문의 전당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감히 비판할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나 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미술학원은 원생끼리 묘한 유대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난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것은 서로 좋고, 서로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 하나 손해보지 않고 누구 한 사람만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묘한 이기주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좀 더 많은 대학입학생을 내야하는 학원으로선 가능성이 있는 한 사람을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켜야 하는 부조리에 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 날 청소년의 문제가 기성세대와 잘못된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원을 계속 다니고 생활을 위해 꽃다운 청소년들이 시급 7천원을 받기 위해 술집을 나가야 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고 , 한창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그런 곳에 가는 것은 그들을 원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천박한 자본주의가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을 돈이 아니면 그 어떠한 잣대로도 잴 수 없게 만드는 이 천민자본주의가 있는한 우리의 아이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찌질하다고는 하지만 이들도 다른 잣대로 재면 얼마든지 주목받고 행복한 인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꼭 돈이어야 하고 자본주의의 잣대로만 세상을 봐야하는가? 그러니 그들을 향하여 '찌질한'과 '불가촉 루저'란 딱지를 그 어디가서도 뗄 수가 없다.  

이 작품은 페이소스가 짙은 작품이다. 작품 곳곳에 베어있는 개그적 대사가 정말 웃기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쓸쓸하고 우울하다. 그래서 하나 같이 다가가 안아주고 싶고, 등을 토닥거리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그들에게도 살다 보면 그런 날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잘난 사람은 계속 잘되고, 못난 사람은 끝까지 안 되야하는 것인가? 이 운명에 춤추지 말고, 탓하지도 말고 각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도 울기가 애매하거든 차라리 웃어라. 세상을 향해 썩소든, 미소든 한방 날려주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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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04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이 충만한 멋진 리뷰네요~~~~~
고용정책이라는 한마디, 수능 답지에 표시하는 기계들~ 충분히 공감되지요.ㅜㅜ

stella.K 2010-09-04 18:25   좋아요 0 | URL
언니, 저 이번에 저자와의 대화 떨어졌어요. 슬퍼요.
분명 그날 못 가는 사람 있어서 징징대면 가게 해 줄 것도 같은데
그냥 포기할래요. 사실 그날 저녁에 강의 듣는 게 있걸랑요.
거기 가라는 뜻으로 알고 마음 접었답니다.ㅜㅜ

순오기 2010-09-04 20:1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발표 보니까 없더라고요.ㅜㅜ
그런데 떨어졌어도 무조건 찾아가면 입장시켜 준대요.^^
하지만 강의 듣는 거 있으면 결석하지 말아야지요.
최규석 만남은 언제 기회가 또 오겠죠~ 분명히!!

다이조부 2010-09-0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보고싶어요~

작년에 우연히 시청에서 최규석씨를 본 적이 있어요~

옆에 친구분인 영화기자 허지웅씨랑 같이 있더군요~

그 분들은 저를 모르지만, 제가 팬이라서 아는 척을 하니까

최규석씨가 씩 웃으면서 아이처럼 난 유명인 하면서 함박웃음 짓던게 생각나요 ㅎㅎ

stella.K 2010-09-04 18:27   좋아요 0 | URL
아, 허지웅이랑 친구였군요.
허지웅 책 읽어봤는데 재밌던데.
이 책 참 잘 만들었어요. 함 꼭 보세요.^^

순오기 2010-09-04 20:21   좋아요 0 | URL
허지웅이랑 최규석이랑 색깔이 좀 비슷하지 않나요?
허지웅 대한민국 표류기를 보니까 그렇게 느껴지던데...^^

stella.K 2010-09-05 11:19   좋아요 0 | URL
허지웅이 독특하긴 하죠.
최규석의 산문은 아직 읽어 본적이 없는지라...
그런데 뭐랄까? 최규석은 나름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져
저 개인적으론 더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