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나는 신카이 마코토 특별전에 다녀 왔었고, 그에 대한 취재 겸 감상을 격월간지인 'Views'에 실었다. 그 전문을 여기에 옮겨 본다.
나에겐 애니메이션이 낮선만큼 감독도 낯설었다.
신카이 마코토. 1973년 생. 나가노 현 출신. 국문학 전공. 1인 제작시스템으로 혼자 모든 작업을 해내며 만드는 작품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놀라게 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감독. 중편 <별의 목소리>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일본단편영화관 최다 관객을 세웠으며, 신세기도쿄애니메이션페어 21 공모 부문 우수상, 제8회 AMD AWARD 베스트디렉터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이하생략)
과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단 말인가? 실제로 그의 영화는 처음의 낯섦이 가시자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천재 감독이란 수식어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가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두터운 매니아 층을 가지고 있는게 당연했다. 특히 놀라웠던 건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실사에 가까운 영상을 구사한다는 점이었다. 상영 도중 나는 시시때때로 실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사실 좀 우습지 않은가? 보통 영화 영상에서는 만화적 상상력을 표현하고 싶어하는데 반대로 만화영상에서 실사를 느끼는 것이 말이다. 그건 신카이 마코토 영상의 특징 중 하나가 빛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빛 속에서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난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것은 청각적 효과였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잇으면 청각이 예민해진다.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만약 귀를 막고 빛을 통해 그 사물을 보고 있다면 저 사물은 어떤 소리를 낼까 궁금해질 것 같다. 이렇게 빛이 청각을 자극하는 것, 그것을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극대화하고 있었다. 새삼 애니메이션에서 효과음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소리없는 영상은 없다. 더구나 애니메이션은 현실보다 공상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소리가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흔히 애니매이션은 시각적 볼거리만 풍성하면 된다는 생각을 할 뿐 청각적 효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의 영상은 그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기좀의 애니메이션은 기계음, 다시 말하면 만들어낸 소리를 많이 쓰는데 반해 신카이 마코토는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진짜 자연의 소리인지 또는 컴퓨터 작업에 의한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추출해 낸 것인지는 잘 알 길은 없지만 그처럼 자연의 소리와 닮게 만들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빛과 소리에 관한 집요한 추구
신카이 마코토의 영상은 해맑고 순수하다. 이런 만화 영화가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그를 가리켜 '애니메이션의 렘브란트'란 수식어를 붙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렘브란트가 빛의 화가였던 만큼 신카이 마코토 역시 자신의 애니메이션에서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일 것이다.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빛과 소리에 관한 감독의 집요한 추구와 독특함에 이끌려 그의 다른 작품들을 굴비 엮듯이 주르륵 섭렵하게 되었다.
<초속 5센티미터>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는 <초속5센티미터> 3부작과 버려진 고양이와 이를 데려다 키우는 '그녀'와의 공생관계를 고양이의 싯점에서 그려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그리고 인간의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별의 목소리>까지 하나하나 그 특유의 섬세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별의 목소리>
일련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공통점은 사랑과 SF를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여타의 SF애니메이션이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주로 그렸다면 그는 자신만의 로맨틱한 독특함으로 만화적 상상력을 펼쳐 나갔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의 고독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나 <초속5센티미터>에서처럼 사춘가 청소년의 풋풋하고, 쉽게 엇갈려 버리는 사랑 표현을 통해 애틋하게 형상화 된다. 어쩌면 그는 인생의 근원적인 외로움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절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에 더 천착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감독의 나이가 그가 지닌 젊은 감각 덕분이 아닐까도 한다.
사랑과 SF의 접목을 시적 영상으로 승화
뛰어난 영상에 비해 스토리는 난해하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모호하기도 하다. 원래 천재들의 언어가 어려워서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1인제작 시스템'을 표방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말이 좋아 1인 제작시스템이지 결코 쉽지는 않은 작업일 것이다. 감독 한 사람만의 세계 안에서 영화가 만들어지다 보니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빈자리가 생기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상영 후 있었던 특별 대담 시간에 신카이 마코토와 친분이 있다는 장형윤 애니메이션 감독이 나와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장형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보통 감독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철저하게 혼자 작업하는 감독과 여러 사람과 어울려 작업하는 사람. 확실히 신카이 마코토는 전자에 해당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별의 목소리>가 대박이 나고부터는 후자로 선회했단다. 그리고 그는 하루 중 꼭 티타임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원래 신카이 마코토가 소통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아닌 듯.
장 감독은 그의 작품들이 영화<4월 이야기>를 만든 이와이슈운지 감독과 맞닿아 있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시적인 영상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다. 한 사람은 영화에서 한 사람은 에니메이션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언젠가 한 일간지 가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는 시골에서 고교시절을 보냈는데 하교 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며 노을 진 하늘을 봤을 때 눈물이 날 뻔한 기억이 있다. 자연과 우주의 일체감을 느낀 듯한 경험이었는데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아름다움은 지나가면 금방 잊어버리지만 그 순간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떨림이 있다. 그 순간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작품들이 재해석되면서 좀 더 친근감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신카이 마코토는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과 인간이 만나는 순간을 잘 포착해 내는데 능숙한 감독이다. 확실히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