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린든 - Barry Lynd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는 한 인간의 흥망성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런 영화인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스토리면에선 크게 감동이 없다. 단지 이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이라면 18세기 영국을 충실하게 재현해 냈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면 이 영화만큼 한 인간을 그리는데 충실한 영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영화가 없지는 않다. 20세기를 통털어 손가락 안에 드는 저 유명한 오손 웰즈 <시민 케인>이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가히 18세기 <시민 케인>을 연상케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기도 하다.  또한 이 영화는 '남자의 원형'을 충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는, 가난한 레이몬드가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며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되는가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을 위기에서 자신의 연적과 결투에서 승리는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할 수 없으며, 오히려 도망자의 신세라는 점에서 그는 처량하다. 하지만 당시는 전쟁중이었고 자원 입대를 하면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군에 입대를 한다. 하지만 그는 적당한 때를 보아 군대를 이탈하고 적군에 편입해서는 거기서 첩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살기위해 적군과 아군에 동시에 첩자 노릇을 해 목숨을 부지한다. 주인공의 이런 모습은 살기 위에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여지없이 들어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 후 그는 군에서 공적을 인정 받고 하사금도 받지만 역시 그의 인생은 레이디 린든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그 정점에 달한다. 하지만 레이디 린든은 이미 결혼한 몸. 명망있는 린든 경의 부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에게 따뜻한 행운의 햇볕을 쪼이도록 허락한다. 다행히도 린든 경은 허약한 몸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만 죽는다면 레이디 린든과 결혼해서 그녀의 막대한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영화속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인다. 레이몬드는 가난하지만 잘 생겼고, 린든 부인은 젊고 아름답지만 남편은 이제 곧 죽을 것임으로 생의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때 둘은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사랑을 불타오르게 만들 수가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나래이션이 레이몬드가 린든 부인을 사랑하는데는 불과 6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하긴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면 그 말은 상당히 믿을만한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 6 시간도 너무 긴 시간인지도 모른다. 순간을 영원에 빗댄다면 말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인간의 마음의 순차적 변화다. 가난할 땐 사랑이 전부일 것 같다. 그래서 결투도 불사하지 않는가? 잘 생겼지만 가난하고 하지만 사랑에 목숨걸 줄 안다. 여성으로서 어찌 이런 남자한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모성본능이 꿈틀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변한다. 아니 이럴 땐 진화한다는 말로 그 변화를 정당화 하기도 한다. 누군들 돈 많고 아름다운(또는 잘 생긴) 사람을 배우자로 원하지 않을까? 이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한결 같은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이 이루어지고나면 거기서 해피 엔딩을 맞으려고 하지 않는다.  


동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이 영화는 한 인간의 흥망성쇄를 다룬 드라마라고. 인간은 한 가지가 이루어지고 나면 그 다음의 것을 추구하게끔 되어있는 존재다.  

레이몬드는 결혼과 동시에 국왕에게 그의 이름을 자신의 부인의 성과 같게 해 달라고 청원을 하고 그의 이름은 그때부터 배리 린든이 된다. 그것은 동시에 그의 새로운 신분을 의미하기도 했다. 일종의 평민에서 상류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상류사회가 가져다 주는 안락과 나태함과 방탕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꼭 완전한 행복을 누렸던 것은 아니다. 그에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안한 미래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내의 전 남편에게서 낳은 아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의붓 아들은 훗날 배리 린든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는 배리 린든을 이해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다. 그를 안타깝게 보는 건 그 다음이다. 

한 인간이 성공을 향해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이 비정상적일 때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동정하거나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성공을 이룬 한 남자가 이루어야 할 마지막 단계는 뭐가 있을까? 배리 린든의 경우는 기사 작위 즉 명예인 것이다. 이 명예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는 평민 출신이었다. 그만한 부를 누렸다면 그만한 부에 어울리는 명예도 있어야 할 터인데 그는 여전히 평민의 수준을 못 벗어나는 신세였다. 이 '경'이란 작위를 얻기 위해 그는 돈을 물 쓰듯이 쓴다. 결국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고 그것은 결국 정상에 선 그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그에게 늘 위협이 되었던 의붓 아들이 결투를 청하게 되고 배리 린든은 그 결투에서 다리를 절단하는 큰 부상을 입고 만다. 그리고 그의 말로는 초라하게 끝을 맺는다.  

나는 여기서 인간의 또 다른 이름은 욕망이란 생각을 해 본다. 때론 이 욕망을 제어하길 원해 수도원에도 들어가고 극단적인 금욕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만한 것이기에 이런 반대적인 행위를 하기도 한단 말인가?  그것 또한 또 다른 면에서의 욕망은 아닐까? 어찌보면 배리 린든은 지극히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감히 그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수가 없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시시각각 끊어 오르는 욕망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배리 린든은 그렇게 쓸쓸하고 불쌍한 말로를 맞지만 그는 한 인간으로 나고 자라서 인간으로서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으니 아쉬움도 후회도 없을 듯하다. 물론 그의 노년이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고 죽기까지는 어느 만큼의 용기와 운도 따라줘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나래이션의 효과를 보고 있다. 누군지는 모르나 나래이션이 처음부터 끝까지 배리 린든을 주관적인 인물이 아닌 객관적인 인물로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게다가 무슨 연극처럼 3막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정말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도 받는다. 무엇보다 18세기 영국을 충실히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사극을 좋아라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말고 봐야할 작품이 아닌가 한다.  

연출이나 의상, 음악등 기술적인 면도 탁월하고 기교 또한 빼어난 수작이다. 더구나 주인공 배리 린든 역에 영화 <러브 스토리>의 타이틀롤인 라이언 오닐이다. 영화 매니아라면 빼놓지 말고 봐 줘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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