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전설 - The Legend of 1900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일단 영화의 분위기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을 연상케 만든다. 이야기가 우화적이라는 것도 비슷하고.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벤자민...>은 완전 허구지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일생 동한 한 번도 배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어보지 않은 남자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이 말하는 금치산자다. 본적도 주소지도 없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전설'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딱 한 번 땅에 발을 딛어 보려고 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그러나 그는 배(여객선)와 땅을 이어주는 승강기 계단에서 주춤하다 이내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자기 안에 뭔가를 깨지 못하고 자폐적 삶을 산다. 무엇이 이 남자로 하여금 그토록이나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피아노 역시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에 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 영화는 불친절 하다. 또한 이 사람의 이름은 어떠한가? 1900년에 태어났다고 해서 나인틴 헌드레드다. 옛날에 우리나라 사람들 제 자식 이름 아무렇게나 지어주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고아로 태어나서 어느 인정 많은 흑인 손에서 자란다. 물론 그것도 잠깐 동안.  

그래도 이 남자 그다지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피아노를 잘 친다는 덕분에 여객선 악단 맴버가 되고, 땅에 발을 안 딛었다뿐이지 세상 어디든 다 돌아 다니지 않는가? 배 안에선 온갖 산해진미는 다 맛보고 살 것이고.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재즈를 처음 발명했다던 흑인 피아니스트와 배틀을 하게 된다. 이 흑인의 삶도 만만치 않다. 매음굴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때까지 자신의 피아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견주어 보지 않았던 그는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흑인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보면서 겁을 먹는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연주 실력이 앞선다는 것을 알고 으쓱해 진다. 역시 영화에서의 압권은 단연 이 둘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주인공의 환상적인 장면과 결합해서 더욱 빛을 바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감동스럽지는 않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사람이 태어나면서 부여 받았다던 탈란트 또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주인공에게도 그렇고 배틀을 했던 흑인 피아니스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것이 결국 삶의 힘이되고 자신을 지켜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재주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산다는데 왜 그 재주를 발휘하며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극소수일까? 생각해 보면 안타깝다. 

 
이 남자 땅에 발을 내딛을 자신도 없으니 사랑하는 여자도 차지하지 못하고 평생 고자처럼 살았지. 그러고 보면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 해도 매력이 없는 건 그가 사랑을 해 보지 않고 은둔자를 자처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영화는 한 인물을 다뤘다고 해도 매력이 없고 밋밋할 뿐이다. 알아 줄만한 감독에(이 감독은 '시네마 천국'을 만들기도 했다) 거장이라 불릴만한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았다고 해도 말이다.   

이 영화는 화자가 자신의 낡은 트럼펫을 어느 악기점에 팔다가 그 집 주인에게 자신의 오랜 친구에 관해 고백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화자는 나인틴 헌드레드가 몸담고 있던 여객선 악단에서 트럼펫 주자이기도 하다.   

친구의 의미가 희박해진 요즘 언제나 그 만남을 함께하지 못하고 추억함이 아쉽다. 그래서 친구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또 어떤 친구가 기억해 줄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뭐든지 한때 영화롭고 한때 좋을 뿐이다. 주인공이 몸담았던 여객선도 세월이 흐르면서 큰 고철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추억을 다하고 찾아간 고철 속에서 옛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 그 속에 나이틴 헌드레드가 아직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죽어서야 배에서 내려오게 될 것이다. 죽어서야 땅에 내려온다던 새 아비정전처럼 말이다. 인생 별거 있어? 그러면서 내려오겠지. 그나마 그가 그렇게 죽었더라면 그 밋밋함이 조금은 상쇄되지 않았을까? 다시 만나도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엔딩은 또 어쩌면 그리도 싱겁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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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09-10-2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 앞부분만 봤었는데
가끔 생각 나더라구요.. 배의 밑바닥에서 파도만 바라보고 심심하게 살아오던 소년이
처음으로 음악을 들은게 어땠을까..
이상하게 꼬마녀석이 밖을 보고 있던 장면이 가끔 생각나더라구요

stella.K 2009-10-22 13:46   좋아요 0 | URL
그 꼬마 넘 귀엽지 않아요?
근데 이 남자 좀 아쉬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영화로는 나름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