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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은 일단 참 능청스럽게 잘 만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 책을 살 때 습관적으로 보는 것이 차례다. 이 책의 내용이 뭘 차려 보여주지 알아야 사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책 차례를 보면 그 소제목들이 재밌고 엉뚱한 게 많다. 예를들어 '엄마를 부탁해, 짜라시를 부탁해' '별꼴이 반쪽이어도 좋아' '뻥이 뻔 보다 낫다' 또는 '이 '것'들아, 하고 있지 마!' '그 마사지, 선을 넘었잖아'이런 것들인데 재미도 있으면서 능청스럽다. 그전까지 편집에 관해 딱딱 해설서만 읽었다면 이런 책 한 둰쯤 사서 책상 책꽂이에 꽂아두r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글쓰기나 편집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이 '능청스럽다'는 게 뭘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 타고난 천성 또는 성격을 반영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일에서 노련함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것도 같다. 또한 그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1, 2년 해 가지고는 나오는 것이겠는가? 저자는 편집 일만 햇수로 13년이다. 그쯤되면 이런 책도 능청스럽게 잘 쓸 수 있는 것이겠구나 싶다.
그런데 솔직히 읽으면서 편집 일은 좀 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편집 일 자체가 결코 만만치 않거니와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 보라. 저자는 한겨례 편집 기자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기자의 꽃은 취재 기자가 아닐까? 누가 편집 기자를 생각하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집필자의 기고문을 다듬는 건 편집자의 몫이다. 하지만 독자가 읽는 것은 집필자의 글이라고 생각하지 편집자의 편집된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 글이 독자의 공감을 사고 박수를 받는다면 그것은 집필자를 위해 박수를 치는 거지 편집자를 생각하고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편집자는 빛도 없고 이름도 없다. 그러니 누가 편집일을 하고 싶을까?
게다가 집필자의 십중팔구는 편집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짐을 받기도 한다지. "내 글을 터치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글을 써 주겠소."하는 단서. 편집자로선 속 터지고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기 글 예쁘게 다듬어 주겠다는데 그것을 마다 하다니.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럴 바엔 내가 직접 쓰겠다는 생각 편집자라면 한번쯤 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거면 또 차라리 낫다. 같은 편집 기자들끼리도 싸운다. 인간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싸움을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 진짜 살인까지 갈 뻔하기도 했단다. 물론 이건 저자의 말이 아니고 저자가 인용한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편집자는 유혹한단다. 이렇게 빛도 없는 일이 유혹한다니? 물귀신 같다.
하지만 그게 또 사실 맞는 얘기다. 글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편집에 관심없는 사람이 있을까? 글이란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쓰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 하다못해 일기도 그렇다. 나를 위해서 쓰는 것 같아도 먼 훗날 누군가 읽어주게 되길 바라고 쓰기도 한다. 글이란 씌여지는 순간 누군가 읽혀지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음식도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품격이 다른 것처럼 글도 그런 것 같다. 어떤 기획에 의해서 어떻게 보기좋게 다듬느냐에 따라 그 글의 품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편집자란 결코 홀로 빛날 수 없으며 필자를 빛나게 해 줄 때라야 빛이 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나름 보람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말이 쉬워 편집자지 그 일도 쉽지는 결코 않아 보인다. 말의 홍수. 온갖 비어와 속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독자들에게 각인될만한 내용의 글을 선별해서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저자는 그리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도 내용은 깐깐하다. 어찌보면 풀어놓는 말의 솜씨가 깐깐하고 꼬장꼬장한 시아버지 수준이다. 읽으면서 내가 지금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뜨끔할 정도다. 특히 문장부호들의 난무. 우리가 너무나 쉽게 아무렇게나 쓰는 것들도 저자 앞에서는 그냥 넘어 가지 못한다. 그러면서 나 역시도 아무 생각없이 썼던 문장부호들이 거머리 같이 느껴졌다. 내가 저렇게 많이 사용했단 말야?
여기까지 쓰고나니 저자가 내 글을 본다면 이 속에서 잘못된 문장을 얼마나 찾아낼까 오금이 저릴 정도다. 특히 물음표. 왜 이렇게 많이 쓴 거지? 어, 또 쓰고 있네(긁적긁적). 그만큼 깐깐하게 쓰고 있어 나 같이 엉성한 사람은 편집자는 못되겠구나 싶다. 그래도 정신 차리게 해 주는대는 또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특히신경숙의 베스트셀러<엄마를 부탁해>의 내용으로 '찌라시를 부탁해'란 소제목을 달고 글을 줄여 나가는 실제적 예를 보여주는 내용은 참 신선했다. 그것은 저자가 말하는 편집자의 세 가지 구호에 부합한 내용이기도 하다. 1. 짧게, 좀 더 짧게 2. 구체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3. 새롭게, 좀 더 새롭게. 말이 쉽지 그러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고경태 기자 알고보면 일을 참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하고 인간적으로 쓰는 사람 같다. 그는 자신의 어린 자녀들한테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오죽하면 주위에서 아이들 좀 그만 울거먹으로고 핀잔을 들을 정도란다. 물론 직업 의식이겠지만 그게 또 읽는 독자의 입장에선 참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장처럼 느껴진다.
또한 자신의 카피를 뽑을 때 잘 된 카피와 잘못된 카피를 솔직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들면 <한겨례21> 226호, 1998년 9월24일자를 보면 제목이 "클린턴 포르노 미국의 두 얼굴!"도 되있다. 그리고 그의 알몸 사진에 모니카 르윈스키의 사진이 조그맣게 그의 음부 위치에 밖았다. 내가 봐도 좀 거시기하긴 하다. 그는 그 밑에 진한 글씨로 "정말로 대중들의 구미를 당기는 건 홀딱 벗은 게 아니라 살짝 보여주는 거다. 다 벗으면 허탈할지니..."라고 썼다.(178p) 또한 보수의 오르가슴!(631호) 에선 자극적인 단어로 대충 얼버무리려 하지 마라.(183p)고도 썼다. 이것은 표지 광고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인데 어찌보면 자신의 실례를 들으면서 자기 반성문을 쓰는 것 같다.
그에 비해 같은 쳅터 다른 방향으로는 잘 쓴 카피와 광고도 밝히고 있다. 그 부분에서는 잘난 척하기 보단 현명한 조언을 듣고 있는 것 같아 유익하다. 하지만 모든 유익된 말중에 '자기 글을 끊임없이 의심하라'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일 것이다.
블로그가 생기고부터 소통은 전보다 자유로워졌다. 이 정도면 1인 잡지가 가능해졌다. 하지지 그에 비해 아무 생각없이 의심없이 올리는 글도 많아졌다. 그런 거 생각하면 난 블로거들한테 미안하고 우리나라 글에 미안해진다. 남이 볼 것을 생각하면 나도 몇번씩 고쳐써야 하는데 귀찮은 생각에 무책임하게 올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난 또 의심없이 이 한 편의 글을 올려야하니 아, 이를 어쩔고...
사실 이 책은 편집자(또는 편집자가 될 사람)만 읽어야 할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글에 책임지고, 조금이라도 의심하며 좀 더 나은 소통을 위해서라면 한 번쯤 읽어두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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