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다 읽고나면 드는 생각은 이렇다. 결혼은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하는 것일까? 

사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에 기대하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만족할만한 해피 엔딩, 영웅의 탄생, 새로운 또는 재해석된 신화 이야기. 이런 것들에 이 작품은 한참 뒤쳐진 이야기란 말이다.  하다못해 주인공이 많은 적대자들을 물리치고 사랑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마지막장을 덮고도 나름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라. 우리가 그런 이야기에 얼마나 많이 길들여져 왔는지? 뭔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결말을 보지 있지 않으면 재미없다고 투덜대고 화내고 욕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네 인생 자체를 얘기하고 있다. 한치도 다를바 없는 인생을. 그러니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을 보면서 동감을 표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너무도 지루하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루한 것엔 또 두 가지로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인생이 아직 이해가 안 가서 동화되지 못한 것과 또 하나는 너무 동화된 나머지 너무 잔잔하여 한숨짓게 만드는 지루함. 

그래도 난 이 작품이 좋았다. 같은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한 없이 지루하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성실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마지막엔 묵직한 울림까지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네 인생이 별 것 있겠는가? 그렇고 그런 거지. 그런데 그렇고 그렇게 끝내버리면 소설이 될 수가 없다. 그 별 것 아닌 것에 뭔가의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능력있는 작가냐 아니냐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묻게 되는 것은 말했던대로 사랑없는 결혼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작가는 처음에 그것이 가능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 쿵린은 의사다. 소위 말하는 인텔리다. 그러나 그는 부모의 권유와 집안 사정을 뿌리칠 수가 없어 자그맣고 못 생겼으며 게다가 전족까지 한 쉬위를 아내로 맞는다. 애정 없는 결혼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사랑하는 여인 우만나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하려한다.  

하지만 그 이혼은 쉽지 않다. 여러가지 제도적인 벽과 인습에 부딪혀 번번히 좌절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오랜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드디어 결혼 18년이 되면 배우자의 동의 없이도 이혼이 성립되는 그것으로 이혼에 성공하게 된다.  

18년. 그 긴 세월이면 애인에게서 느껴지는 짜릿하고 불 같은 감정도 쇠하여질대로 쇠하여진 세월이다. 결국 관계는 정이고 관성이다. 항상 짜릿함만 가지고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이제는 그 오랜 관계 때문에도 쿵린은 우만나를 버릴수가 없다. 하지만 그 사랑에도 문제는 있었다. 그의 답답한 성격 때문에 우만나와도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눴을 뿐 육체적인 욕망을 불태우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것은 우만나가 강간을 당하고, 더 이상 불태울 욕망이 사라졌을 때야 비로소 허락됐을 뿐이다. 또한 조강지처를 버리고 애인을 사랑한 것 때문에 주위로부터 얼마나 많은 수치와 모멸을 감수해야 했나? 그것은 우만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사랑은 이들에게 있어서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뭐든 게 시기에 맞게 필요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아면 얼마나 좋겠는가? 항상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문처럼 늘 삐거덕거리는 것이다. 읽다보면 인간 생태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사실적으로 와 닿는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은 옛날 우리나라 6,70년와 흡사하며 성의식 또한 닮은 꼴이다. 즉 이를테면 육체적으로 깨끗하면 모든 것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 무식하고 힘없고 형님같은 조강지처기 때문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참기만 하는 것 등등.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옛날 중국사회인 만큼 인간의 내밀한 것까지 사화적 간섭과 제제가 심하다는 것 정도. 

그러나 시간은 그렇게 말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는 것 같아도 사람을 한순간 바꿔놓는 위력을 가졌다. 시간은 인간의 생노병사의 법칙을 조금도 비껴가지 않는다. 인간은 나이먹고 늙어짐에 따라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하다못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 앞에서 조차 바뀌는 것이다. 그때기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 아내에 존재를 재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책 말미에서 쿵린이 자조하듯 되까리는 사랑에 대한 재인식에 공감이 간다. 또한 더불어 누가 못 생기고 전족을 했으며 배우지도 못하고 이혼 당한 사람이 인생에서도 패배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자는 병들과 외로워 봐야 조강지처의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쿵린은 아직 병들지는 않았지만 외로워졌을 때야 비로소 전처를 새롭게 보는 것이다. 이것이 비록 쿵린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다고 해서 그 결혼이 평생 불행할건지 아닌지는 살아봐야 한다. 이 작품은 시간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쿵린의 기다림에서 수위의 기다림의 승리를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인생은 허무하다. 하지만 허무한 것 같아도 그 안에 조그만 희망이 있다. 이 작품은 그것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란 많은 미사여구와 현란한 이야기적 장치를 보여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힘없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그것에 값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그것까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진. 그는 참 좋은 필력을 가진 작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