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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커리드웬 도비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은 왜 권력 앞에 굴복하는가를 요리사, 이발사, 화가 그리고 이발사의 형의 약혼녀 ,요리사의 딸, 화가의 아내가 각각 1인칭 화자로 등장해서 고백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왜 권력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권력을 갖고자 원한다면 먼저 그 권력을 가진자의 눈에 띄어야 하고 그에게 봉사해야 한다. 대통령의 요리사, 이발사, 화가라. 언뜻보면 그다지 권력을 탐하는 자처럼 보이지도 않아 보인다. 그들은 직속 참모라기보단 오히려 대통령에게 봉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래도 그들도 사람인 것을. 권력을 탐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DNA구조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권력을 탐하는 인간 그 이면 또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추악하기 보단 인간의 또 다른 약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대통령의 아내와 하룻밤을 보내고, 이발사는 대통령이 자신의 형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를 면도해 주면서도 면도칼로 그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잠재워야만 했다. 또한 요리사는 자신의 외모를 이용하며 여자들과 하룻밤을 쉽게 보내는 쾌락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새로 만난 두목의 아내를 탐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권력에 머리를 조아린 자의 전형이 아닌가? 권력은 가진 자 치고 의로운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주는 물을 마시고 사는데 어찌 그 물이 시원하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현했다기 보단 그 권력을 가진 자에게 굴복하는 피권력자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등장인물 하나 하나가 자조하는 듯한 어조다. 자신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진술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인간은 그렇게 쉽게 권력자 앞에 무너지고 자신의 영혼을 그처럼 쉽게 파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자기보호 본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권력 앞에 그렇게 쉽게 머리를 조아린다고 그 권력이 자신을 지켜주는가? 이 책은 그것을 묻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뇌리를 맴돈다. "양심의 가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자리에서는, 후회란 좀처럼 오래가지 않는다." 상당히 통찰적이면서도 자조적이다.
이 책은 생각보다 좀 어렵다. 그래도 문장은 제법 묵직하다. 만만히 볼 작품은 아닌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