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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평점 :
이 작품은 작가가 요즘 흔히 하는대로 영화화 될 것을 생각하고 글을 썼을 것이다.
무엇보다 추리였던 만큼 혹시나 놓치고 가면 맥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처음엔 꽤나 신경 써서 꼼꼼히 읽어 나갔다. 무엇도다 북유럽 작가가 쓴만큼 기대는 더욱 증폭히 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고나서의 허망함이란 북유럽의 한기만큼이나 시리다고나 할까? 어떻게 이런 작품을 아가사 크리스티에 견주겠다는 건지 좀 심하다 싶다.(물론 그 수식어라는 거 다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거 진작에 알고 있긴 했지만)
물론 나야 추리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많이 읽지도 못했다. 하지만 추리라고하면 상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하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고, 중간을 지나서는 엄청난 뭔가 엄청난 반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쯤은 추리 매니아가 아닌 나도 알고 있다.
더구나 이 작품은 영화화 될 것을 생각해서 쓴 작품이 여실했던만큼 영화적 문법을 확실히 보여줬어야했다고 본다. 그것은 영상적 이미지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이 책은 480여쪽을 할애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없는 인물 묘사나 상황 묘사로 페이지를 채워 늘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살해된 알렉스가 아니라 경찰관 파트리크와 전기 작가라는(난 이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추리 작가나 범죄 소설가라면 설득력이 있는데 왠 뜬금없는) 에리카의 활약상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역할이라는 게 그다지 볼만한 것이 없다. 너무 정적이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웬 연애질이란 말인가? 뭐 같이 일하다 보면 눈이 맞아 연애도 할 수 있다지만 여기선 그 번지수가 아니다. 그냥 학창시절 못 이룬 사랑을 어찌하다 보니 같은 일을 하게되서 나이들어 이루는 그야말로 독자들은 별로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내용들이다.
거기다 양념 격으로 심심하면 한번씩 나와주는 에리카의 동생 안나와 제부의 갈등 관계. 집에 관한 추억과 현실적인 문제도 나열만 있다 뿐이지 이걸 가지고 재대로 된 요리도 못하면서 페이지 수만 할애하고 있다. 마무리 짓지 못하는 이야기를 왜 그토록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인지...
어디 그뿐인가? 에리카와 알렉스는 친구 관계라고는 하지만 아주 친한 친구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 조금 우정있게 지내다 멀어진 친구 사이다. 작가적 호기심은 있을 수 있겠지만 죽은 친구를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그것도 전기가 아닌 소설로. 그런데 소설 내용은 없고 글 쓰는 건 너무 어렵다고 칭얼대기만 한다.
어디 그뿐인가? 400쪽 정도에 다다르면 죽은 알렉스의 감추어진 비밀이 그녀의 아버지로 인해 진술 되어지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성폭력은 개인에게 있어서 처참한 상처를 입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독자에겐 새롭지가 않다는 것이다. 독자는 같은 성폭력이어도 뭔가 대단한 비밀이 벗겨지는 것을 원하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아버지에 의해 진술될 것을 앞에 그처럼 장황한 나열이 필요했을까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별로 자랑스럽지도 않은 딸을 위해 책을 써 달라고 에리카에게 부탁하고 격려까지 한다. 이게 정상적인 정서를 가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원래 부자는 못된 사람이어서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자신의 가문의 수치스런 역사를 감추려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이긴 하다. 그렇다면 통조림 공장을 하며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며 막대한 부를 거머쥔 로렌트 가문에 대해 파트리크와 에리카는 뭘했는가? 그래야 한 사람은 사건을 파헤치고 한 사람은 글감을 찾아야 한다. 둘 다 진실을 찾되 서로 그 기능은 다른.
알렉스를 10살 때 성폭행했다던 유아성도착자라던 닐스 로렌트는 이름만 거론될 뿐 작품을 통털어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있다. 억울하게 죽은 안데르센(?)과 그의 어머니 베라. 결국 아들 때문에 알렉스를 죽인 것이 되는데 이 설정이 맞는 설정인 것인지? 복수는 로렌트의 노마님에게 해야하는데 왜 애꿎은 자기 아들과 같은 처지인 알렉스를 죽여야 하는 것인지? 그런 모성이라면 닐스를 어떻게든 찾아내 아작을 내주던가 노마님에게 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닐스 로렌트가 끝까지 가리워진 신비의 인물로 나오는데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암시만 줄뿐 마땅히 독자를 납득할만한 어떠한 설득력도 없다. 그리고 베라가 이후 어떻게 됐는지도 나오지도 않은 채 끝은 되게 모호하게 관련없는 진술로 끝나고 있다.
이외에도 문제점은 많아 보이지만 더 거론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이렇게 결함이 많고 되다만 이야기가 영화화 됐다니 그 영화는 어떨까? 궁금할 뿐이다. 한마디로 뭐하나 시원하게 재대로 건드려 주는 게 없다.
나 역시도 아가시크리스티의 부활이니 어쩌니 해서 읽기 시작한 책이긴 하지만 이런 터무니 없는 수식어는 좀 뺐으면 한다. 돌아가신 추리의 여왕님 관속에서 다시 일어나실라.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