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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다. 처음엔 시작부터 원작과 너무 달라 '그래, 형만한 아우없다고 원작에 버금가는 영화가 흔한게 아니지.'하며 내심 혀를 끌끌 찼다고나 할까? 더구나 시나리오 쓰는 사람에게 있어 가급적 피해가야 할 것이 '플래시백'이라는 것인데 이를테면 현재에 과거 얘기를 하는 것으로 교차방식을 의미한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이걸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이쯤되면 아는게 병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편견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부터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서 봤더란 말인가? 고작 운이 좋아 이번에 처음? 또는 아주 아주 오랜만에 같이 본 걸 가지고 어느새 뻐기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난 앞으로 될 수 있는대로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스토리텔링의 세계에선 원작과 영화는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니까. 이 작품만 해도 원작이 먼저 나오고 영화가 나왔다. 모르긴 해도 출판계에서는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상륙할 것이라는 정보를 어디선가 입수하고 판형을 달리해서 재출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난 영화를 생각할 때 원작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닐테지만)그럴 경우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편이니까.
영화는 생각 보다 길었다. 거의 3시간 가까이 했으니까. 오히려 영화를 보고나면 원작은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밋밋하게 또는 총론격으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약간의 스포일러도 있긴 하지만, 원작에선 벤자민 버튼의 부모가 모든 운명을 감수하고 벤자민을 키우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영화에선 엄마가 벤자민을 낳다 죽고 아버지는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자 어느 흑인의 집에 버린다는 설정이다. 어찌보면 그 설정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런데 왜 감독은 아기를 흑인의 집에 버리는 것으로 설정했을까? 백인이며 있는 사람이 아프고 괴상한 것 견뎌낼 것 같지 않으니까 오래도록 착취 당하고 고통 당했던 흑인이 모든 운명을 감수하기가 더 그럴 듯해 보인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오마바를 의식한 걸까?ㅎ
아무튼 영화는 적당히 몽환적이기도 하고 또 그럴 듯하게 현실감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관객을 설득하기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이다. 꼬마노인 역에서 대역을 썼는지 어땠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점점 젊어지는 쪽으로의 연기는 가히 탁월해 보인다. 그에 못지않게 상대역인 데이지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소녀에서 노인역도 볼만했다.
영화는 영화답게 이들의 사랑에 무게를 싣는다. 영화에서 사랑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겠는가? 그래서 영화와 소설이 다르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작은 사랑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평범하게 지나가는데 비해 영화에서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은 그야말로 물결친다.
영화는, 40이 넘은 나이에 벤자민과 데이지가 아기를 낳게 된다. 하지만 벤자민은 젊음의 정점에서 자신이 점점 아이로 변할 것을 생각한다. 자신과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자기는 겉으론 점점 어려지지만 속은 점점 노쇄해질 것이고, 딸은 어머니의 손을 필요로 할 것이다. 게다가 특수한 아버지의 존재를 딸이 받아 들이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 부분이 어찌나 짠하던지. 나중에 갓난 아기가 돼서 늙은 연인의 품안에서 죽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묘한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벤자민처럼 사람이 젊을 때 더 많은 지혜와 인생을 관조하는 혜안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젊을 때 한때의 방황과 실패도 훨씬 덜할텐데... 우린 누구나 젊을 때 많은 실수와 방황을 하고 늙어서 젊은 날을 그리고하고 후회한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우리에게 늙을 수 있다는 게? 늙지도 않으면서 과거는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저주받은 인생은 아닐런지.
솔직히 난 처음에 주인공을 부러워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는 이대로 천천히 늙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괜시리 이 영화의 원작자인 피츠제럴드씨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이런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준 것에 대해. 또한 영화가 끝나는 것을 보면서 원작의 의도를 헤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영화가 영화다울 수 있도록 수작을 만든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