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가, 그 공간 -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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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문사 문학부 기자들이 책을 내는 일은 드물지 않게 됐다. 또 그들이 내는 책들은 글쓰기나 독서 에세이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들의 건조한 문체를 좋아한다. 저자 역시 문학부 기자인데 모르긴 해도 기자들 중 가장 많은 책을 내고 주로 문학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작가를 많이 다룬다. 그는 작가를 찾아 나선다. 작가에 관한 책들이나 기존의 문서들, 한 간에 떠도는 잡설 등을 짜깁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의 글은 팔딱팔딱 살아있다.


관건은 취재력 일 것이다. 그러려면 사전 준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가 어디 서울 한복판에만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찾아가는 길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처음엔 기사를 위해 그렇게 하고 기념 삼아 한두 권의 책으로 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꽤 오랫동안 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번역서도 있다. 나는 언젠가 앙드레 버나드의 <악평>이란 책을 산 적이 있는데 최근 그 책의 번역자가 저자인 줄 알고 좀 놀랐다. 상당히 부지런하고 어찌 보면 기자보단 문학인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지난 2013년도에 나온 책으로 특별히 작가의 작업실이나 집 즉 공간에 주목한다. 그건 실제로 사무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어떤 공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저자와 작가가 나눈 이야기가 제법 진지하고 인간적이다. 모르는 사람은 작가에게 작업실이 뭐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인데 종이와 펜을 가지고 어디든 자리만 깔고 앉아 있으면 거기가 작업실 아니냐며.


하지만 작가를 마냥 한량으로 보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치열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어떤 작가는 작업실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감옥이 필요하다고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진짜 감옥을 들어갈 수는 없고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자신을 잡아 가둘 공간이 필요하긴 하다. 그에 가장 가까운 공간을 사용했던 사람은 소설가 김태용은 아닐까 싶다. 그곳은 다름 아닌 고시원이었다. 그것도 창문도 없는. 얘기만 들어도 폐소공포증에 걸릴 것만 같다. 실제로 김태용 작가는 처음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집안에 방 하나를 서재로 꾸며 놓는 것이 아닐까. 전에 얘기를 들으니 어떤 작가는 집이라도 공간을 분리해서 쓴다고 한다. 즉 글쓰기 작업을 할 때 아예 옷까지 사무복으로 갈아있고 회사원처럼 정시에 서재로 출근해서 똑같이 퇴근 시간에 맞춰 나온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은 뭘 그렇게까지 할지 모르지만 그 마음 알 것 같다.


요즘엔 카페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흔해졌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카페를 차 마시며 수다 떠는 공간으로만 인식하는데 최근엔 그 풍경도 많이 바뀌긴 했다. 요즘엔 노트북 하나면 어디서든지 업무가 가능하니 카페를 사무실 삼아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니 글이라고 못 쓰겠는가. 문학촌이나 레지던스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게 글 쓰는 작가들에겐 최고의 공간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국의 어떤 작가는 평생(?) 호텔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지 않은가. 얼마나 돈이 많으면 호텔에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삼시 세끼 밥 차려 먹을 신경 안 쓰고 글만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비록 호텔은 아니지만 그것을 일반 작가도 문학촌에서 누릴 수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


이도 저도 할 수 없으면 자기 쓰는 책상이나 하다못해 식탁을 자기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알지 않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바를 운영했고 매일 문을 닫으면 거기서 글을 썼고, <해리 포터>의 작가 롤링도 매일 밤 아이를 재워 놓고 식탁에서 몇 시간씩 글을 썼다고. 그러고 보면 이 공간 확보에 대한 인간의 노력은 치열하면서도 진화적이란 생각도 든다.


하긴 우리도 어렸을 때 혼자만의 공간을 얼마나 원하며 자라왔던가. 책상 밑이나 장롱은 기본이고 누구는 세탁기 통에도 들어갔다던데 그맘땐 왜 그렇게 구석진 곳을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공간은 핑계다. 저자는 작가가 머무는 공간보단 역시 본 업무인 문학 얘기를 더 많이 한다. 이를 통해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꽤 오래전에 구입하고 한 번 읽기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요 근래야 비로소 완독했다. 또 그러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온 작가들 두 세명을 제외하고 다들 한 번씩은 책을 읽거나 귀동냥으로 들어 알게 되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르고 읽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조금이라도 알고 읽으니 읽는 맛이 난다.


또한 그동안 저자가 다룬 작가 중 유명을 달리한 작가들 있다는 걸 볼 때 만감이 교차했다. 김윤식 교수는 그렇다고 해도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이외수 작가가 고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도 문학촌을 운영하고 TV에 나와 싱거운 농담에 서투른 살림 솜씨를 보여주곤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중 김윤식 교수의 대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저자가 취재했을 때만 해도 신인 작가였던 백수린 작가를 많이 칭찬했고, (우리나라 소설은) 장편보단 단편을 더 많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에겐 둘 다 뜬금없긴 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가는 성석제나 김영하 정도까지만이다. 나에게 백수린 작가는 아직도 젊은 작가인 줄만 안다. 그런데 돌아간 김윤식 교수가 입에 올렸다면 그도 더 이상 신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동안 내가 참 무심하고 맹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편보단 단편이라니. 내내 들어왔던 건 우리나라 작가들은 단편만 쓰려고 하지 장편은 잘 안 쓰려고 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작가의 안일함과 게으름을 꼬집고 나아가서는 인문정신이 없음을 비판했다. 장편도 뭔가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단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점점 소설을 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세상에서 정말 장편이 의미가 있는 건가 회의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알지 않은가. 단편이 장편 보다 쓰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김윤식 교수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도 없다. 앞으로 소설은 어디로 갈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이 책의 백미는 맨 마지막 챕터인 저자 자신의 공간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 나는 저자 후기가 왜 이렇게 길지 했다. 그런데 자신의 사무 공간을 조근조근 설명하는데 빠져들었다. 기대하지 않은 관음증을 만족시켜 준다. 내가 애초에 이런 책을 좋아하는 것도 작품 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돌려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관음증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때부턴가 아주 훌륭한 인테리어 감각을 자랑할 목적이 아니면 자신의 공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은 이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으로까지 찍어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저자가 더 친근하고 뭔가 초대받은 느낌이다.


기자가 작가 얘기하면 폼 나 보이긴 한다. 이 책을 펴낼 때만 해도 저자의 자제가 군 복무 중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고, 저자도 은퇴를 했거나 준비 중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본격 작가로의 저자의 활약상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이런 기자가 있어 한국문학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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