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생각이 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던 날을. 그 일이 있기 전날까지만해도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박 대통령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얼떨떨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아니 우리나라엔 대통령은 오직 한 사람 밖에 없는 줄 알았다. 바로 그 분이 돌아가셨는데 아무 일도 없이 학교를 가야한다는 게 좀 이상했다.   

 

 날씨가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몹시도 흐리고 을씨년스러웠다고 생각한다. 교실은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반 아이들 거의 대부분은 훌쩍거리거나 침통한 표정이었다. 난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기분이 몹시 침울했다. 그러던 중 나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같은 반 아이 하나가 밑도 끝도 없이 "너도 안 우네."하는 것이다. 침통했던 건 사실이지만 울어야 하는 것인지 의아스럽긴 했지만 얼떨결에 쏘듯이, "안 울긴 왜 안 울어?" 했다. 그리곤 내 자리에 가 앉았는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 좀 미안하긴 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쏠 필요는 없었던 건데 다시 돌아가 사과할 수도 없고. 때가 때인만큼  그 친구도 이해할 거라고 믿고 넘어갔다.

 

그때 울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울어야 한다면 그건 박통이기 때문이라기 보단 사춘기 소녀적 감성이거나 그 보다 4년 전 영부인을 잃어 본 연장선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국민은 참 박복도 하지. 어떻게 대통령 부부가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나 병사가 아닌 비명황사를 봐야만 한단 말인가. 이건 정말 누구의 책임을 논하기 전에 한 나라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죽기 1년 전인가, 2년 전에 대통령 대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민지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인 나는 박통이 무난히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이런 끔찍한 일을 보다니. 그 직후 계엄령이 내려지고 한동안 밤 10시 이후 통행금지가 내려졌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물론 그때 무슨 일이 왜, 어떻게 있었는지는 단편적으로는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전체를 조망하는 것을 보기는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닌가 한다. 또 이 영화는 김충식의 <남산의 부장들>에 힘 입은 바 클 것이다. 워낙에 원작이 탄탄해서일까 영화 역시 탄탄한 구성과 사실적 연출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책의 내용을 다 다루지는 못한 듯 하다. 그저 박통이 왜 암살 당했는가에 대한 전후 사정에만 집중했다. 그에 비해 책은 훨씬 광범위하게 다뤘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지만 영화의 등장인물은 실명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게끔 각 등장인물의 싱크로율이 꽤 높다. 김규평(실제론 김재규겠지만) 역의 이병헌의 연기도 인상 깊지만 나는 웬지 박통을 연기한 이성민 배우의 연기가 더 인상적이다.

 

 

 

그의 연기에서 정말 살아있는 고뇌에 찬 박정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외모는 물론이고, 특히 당나귀 귀처럼 일부러 쫑긋 세운 귀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그뿐인가, 말투와 걸음걸이 역시도 박통을 빼닮았다. 그런 것을 보면 이성민이란 배우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정말 연구를 많이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저렇게 조그맣고 단단한 체구였나 새삼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나는 아직 다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다 나보다 컸다. 그러니 당연히 그도 컸을 거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더구나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아닌가. 키 작은 최고 지도자는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40여년만에 영화속에 송환되어 나온 박통은 정말로 작고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권력에 찌들었다. 대통령을 세번을 연임했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그쯤하면 자신도 언제까지나 대통령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몇해 전엔 아내가 비명횡사를 했다. 권력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아내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존재다. 물론 그 총탄은 애초에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게 빚나가면서 자신은 살 수 있었지만 대신 아내가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다는 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권력과 먼 선량한 아내도 비명에 간 마당에 권력의 피를 한껏 빨아 먹고 그 자리를 차지한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을 넘어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죽으면 그만인 걸 뭐 그리 권력에 눈이 멀어 한 세상을 살아왔을까 후회스럽기도 했겠지. 그것은 그의 십팔번이었던 당대 유명한 노래 <황성 옛터>에 고이 실어 불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쉽게 놓지도 못한다. 그건 당연하다. 그는 권력의 피를 마시며 자란 한마리 외로운 늑대다. 그런 그가 권력 외에 무엇을 더 추구할 수 있겠는가. 원래 드라마고 영화고 흡연 장면은 생략하거나 간접적으로만 나오도록 되어있는데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직접 표현되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은 오래도록 털지 않은 담뱃대의 재도 계산에 넣은 듯 하다. 그것은 곧 박통의 오랜 고뇌와 신음을 표현해 주는 것만 같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것은 권력자의 생리 그대로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임자하고 싶은대로 해. 임자에겐 내가 있잖아." 말 자체로야 얼마나 신뢰를 주는 말인가.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또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최고의 남편이고, 아버지일 것이다. 하지만 권력 관계에서 그 말은 제법 살벌한 말임에 틀림없다. '네 뜻대로 해 봐. 그것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의 또 다른 말 아닌가.

 

하지만 특이하게도(?) 독재자에겐 대신 짖어주고, 아부하는 개가 항상 있다. 독재자는 그 개에 의해 눈이 점점 멀어간다. 영화에선 곽상천이 바로 그 개다. (실제론 차지철 아니었나?). 박통은 그렇게 자신을 대신하여 충실히 짖어주고 아부하는 개가 좋지 김규평 같이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그건 어느 독재자든 그의 말로를 보여주는 첫번째 징조이기도 하다. 측근 부하의 충언은 독재자에겐 그 자체로 들리기 보단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반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게 지쳐있다가도 김규평이 무슨 말을 하면 금방 표정이 바뀌고 독기를 드러낸다. 그런 것을 통해 그는 자신은 죽지 않았음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박통은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설 줄만 알았지 어떻게 내려와야 하는지는 조금도 알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박통을 살해한 김규평은 어떤 사람일까. 실제로 그때 난 박정희 대통령을 죽게 만든 김재규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김일성만큼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원수를 죽이지 않았는가. 그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영화에서 그는 제법 똑똑하고 명민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미 박통의 신망을 잃은 관계로 그는 매번 그의 의견은 묵살 당하곤 한다. 신망을 잃은 자의식이 강한 인물의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독재자가 그리 강하게 나온다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조용히 독재자의 시야에서 사라지던가 아니면 하극상을 보이던가.

 

박통은 김규평을 무시하고 냉정히 대하는 중에도 그를 품으므로 자신이 그의 상관임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술자리에 초대하기도 했는데 그건 확실히 박통의 늦은 제스처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 자리는 김규평이 박통에게 하극상을 보이기 좋은 자리였다. 그러고 보면 박통은 때로 자신의 심복에게 관대함을 보이는데 있어 인색하거나 타이밍을 못 맞추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김규평의 입장에선 친구이기도 한 박용각을 박통이 죽도록 내버려뒀다는 것도 화가났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 부산 시민이 들끓고 일어나자 곽상천이 탱크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란 말에 아무런 제지도 안함으로 그 생각에 동조한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언제나 그 방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그런 것을 보면 지금도 정치 윗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을 놓고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바로 그런 점에서 시민을 개 돼지로 표현했던 어느 정치인의 말이 전혀 틀린 말도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권력자들은 하나 같이 나라란 거대한 판을 놓고 도박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치는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있는 거지 도박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 권력을 얻으면 왜 하나같이 도박꾼으로 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김제규는 똑똑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박통을 더 이상 살려뒀다간 이 나라가 어찌될지 모르니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글쎄, 만일 그때 박통이 암살 당하지 않고 조용히 하야하거나 독재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임기를 채우고 권좌에서 내려왔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김규평은 좀 미스터리한 인물이긴 하다. 그런 거사를 그의 부하들과 함께 공모하면서 그 다음엔 어떻게 할까요란 질문에 이렇다할 대답을 못했으니. 자신은 그렇다고 쳐도 그 공모에 끌어 들였던 부하들은 살 길은 열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양심은 살아있었을까 박통을 죽이고 그를 실은 차가 남산을 향해 가려던 것을 돌려 육군본부로 돌린다. 육본으로 간다는 건 자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형을 언도 받은지 47일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역시 우린 참 박복한 국민이란 생각이 든다. 이왕 그렇게 돼버린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독재의 그림자를 거둬내지 못하고 도탄에 빠져 허우적 대야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반대머리에 제복을 입은 전두혁이 빈 대통령 집무실의 책상을 곁눈질 하는 장면은 짧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지 않는가.

 

또 우리나라는 그 험한 세월을 지나쳐왔다지만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의 군사 구데타를 보면서 남의 일 갖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언제까지 이것을 지켜만 봐야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지도자를 잘 세우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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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7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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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8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