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산책] 주도가 있듯 와인에도 매너가…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한예슬이 입에 달고 다니는 “꼬라지 하고는”이란 말이 유행이다. 그런데 이 말이 딱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바로 비즈니스를 위한 식사 자리다. 그 자리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와인 마시기의 천태만상이 벌어진다.

‘와인 잔 도미노’가 대표적. 테이블 위 여러 개 놓여있는 와인 잔들 중, 본래는 오른쪽에 있는 잔들이 자기 잔이지만 만일 이런 사실을 모르는 한 사람이 용감하게 왼쪽 잔을 드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줄줄이 왼쪽 잔을 들게 되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만일 이 중 한 사람이라도 어느 잔이 자기 것인지를 알고 있다면 잔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기억하라! ‘좌빵우수’·좌측엔 빵, 우측에는 물·와인)

더 난감한 것은 우리 식 주도(酒道)와 서구의 와인매너가 서로 잘 맞지 않는 상황. 대표적인 것이 상대방이 와인을 따라줄 때의 대처법이다.

어떤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두 손으로 와인 잔을 감싸 쥐는 ‘엉거주춤 자세’로 굽실거리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마치 ‘어이구 형님!’ 하는 것처럼) 이 포즈는 우스움을 줄지 모르지만 비즈니스에는 울음바다가 될 소지가 높다. 정통 와인매너는 그저 잔을 테이블에 놓고 채워지길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같은 한국 사람끼리라면? 만약 더 높거나 나이 많은 사람이라면? 자칫 건방진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다 따른 후 적당히 감사의 말을 덧붙이거나 가벼운 목례나 눈인사를 해주며 감사함을 표하면 된다.

와인을 따를 때 어떤 이는 마치 전투에 나가는 장수처럼 비장하게 굳은 얼굴로, 마치 임꺽정처럼 무기를 쥐듯 씩씩하게 병을 잡고 따르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그 비즈니스 자리가 긴장되고 또 심지어는 상대방이 적처럼 느껴진다 해도 이런 태도로는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부드러운 얼굴과 미소가 카리스마를 아우른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또 갑자기 불쑥 따라주는 것보다는 “와인 하시겠어요?”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묻거나 “와인 어떠세요?”라고 하며 따르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그림이다.

영 기분 나쁜 경우도 있다. 첨잔을 하지 않는 게 우리 주도다. 반대로 와인은 상대방 잔이 비워질 때마다 적절히 채워줘야 한다.

만일 상대방의 매너가 영 꽝이라 내 빈 잔을 채워주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빈 잔을 놓고 앉아있기도 그렇고, “거 좀 따라주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때는 먼저 상대방 잔을 채워주고 자신의 잔을 채우는 ‘스리쿠션’ 전략으로 품격도 내 잔도 모두 챙길 수 있다. 비즈니스 테이블에서의 기본적인 매너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꼬라지’와 ‘품격’만큼의 차이가 난다.

세브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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