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들어요. 가난과 학대를 결합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쫓아다닐 거예요. ‘학대‘라니, 정말 바보 같은 단어 아닌가요. 아주 상투적이고 바보 같은 단어예요. 사람들은 학대 없는 가난도 있다고 말할 거예요. 그래도 당신은 절대 아무 반응도 하지 말아요. 자기 글을 절대 방어하지 말아요.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 그건 당신도알 거예요. 이건 자신이 전쟁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건 그의 곁을 지켰던 한 아내의 이야기예요. 그 세대에 속한 아내들은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그녀가 딸의 병실에 찾아와 모두의 결혼이 좋지않은 결말을 맺었다는 이야기들을 강박적으로 하는 거예요.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해요.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걸 그녀 자신도 몰라요. 이건 딸을 사랑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예요. 불완전한 사랑이긴 하지만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랑을 하니까요. - P124
'오! 윌리엄'이 드디어 번역되었다고 해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에 관심이 있던 나는 우선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전반적으로 서정적인 분위기에 화자의 억눌린 슬픔과 사랑을 곳곳에서 느꼈다. 맹장 수술때문에 입원해 있던 루시 바턴은 결혼을 했고 두 딸아이의 엄마다. 병원을 유달리 싫어하는 남편의 부탁으로 몇년간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엄마가 찾아왔다. 엄마는 침대 발치에 앉아 있었다. 모녀간의 마음의 거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낮지만 서두르는 듯한 말투로 엄마는 딸이 기억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그들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다. 정작 딸에 관한 이야기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시 바턴은 그저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숨가쁘게 풀어내는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는 엄마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 숨김없이 드러낸다. 정확히 이 가족에게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독자도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몇 가지 그녀가 언급하는 사건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전쟁후 외상후 스트레스를 안고 돌아온 아버지의 고통과 극심한 가난.ㅡ가난은 종종 미화되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실상이 어떤지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ㅡ 아이들조차 그 차이를 귀신같이 포착한다. 물질적 가치는 쉴틈없이 외부로부터 주입되기 때문이다. 가족 중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루시 바턴은 결국 숨막히는 고향을 벗어나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 남은 엄마의, 남은 형제들의 삶의 무게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부모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들킨다. 그들은 그 중 극히 일부를 짐작하고 대부분을 외면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흔적들로 자식들은 이 세계의 오류들을 더듬더듬 짐작한다. 그래서 그나마 자신은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역시 불완전하지만 부모 세대가 남긴 발자취를 거울삼아 걷고 또 걸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나는 애써 울음을 참느라 한동안 간호사실 쪽에 있는 의자에앉아 있어야 했다. 치통이 옆에서 나를 감싸안아주었고, 그렇게 해준 그녀를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 가끔 나는 테네시 윌리엄스가 블랑시 뒤부아의 이런 대사를 썼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낮선 사람들의 친절을 통해 여러 번 구원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그것도 범퍼스티커처럼 진부해진다. 나는 그 사실이 슬프다. 아름답고 진실한 표현도 너무 자주 쓰면 범퍼스티커처럼 피상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 - P98
부모는 우리 기질의 뿌리가 아닐까...
우리 각자가 가진 실존적인 임무는 기질을 감옥에서 풀어 줄 수 있도록 자기만의 진리를 밝히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거짓된(피상적인) 자기표현 이면에 억눌려 있는 핵심을 해방하는 것이다. P.33 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나는 오직 크로그 씨네 집에 있을 때만 정말로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어머니를 자극하지 않고 또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자주 그를 찾아간다. 나는 어머니에게는 위르사네 집에 가는 거라고 말하고, 어머니는 위르사와 내가 왜 갑자기 친해졌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간 나는 늘 그 애가 싫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P.35 토베 디틀레우센, 청춘
읽어보고 싶은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