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쟝님이 자신의 모순과 분열이 글을 쓰게 한다고 말했는데 나도 비슷하다(그 결과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ㅋ) 어릴때 난 이 세계가 거대하게 느껴졌고 자그마한 내가 얼마만큼 이 아득함을 이해하게 될지 궁금했다. 질문들로 가득했지만 충분히 내뱉지 못했고 차곡차곡 내 안에 쌓인 그것들은 고민없이 짐짝처럼 한 곳으로 밀려났다. 그닥 생각하고 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것처럼 사는대로 살았다. 그러다 내 앞을 가로막는 이런 저런 삶의 문제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것도 잠시 잠깐일뿐 어떤 각성에 이르게 하진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쓰지 않아' 그랬던거라 짐작된다. 마음맞는 친구와 몇시간이고 마주앉아 말해봤자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래도 진심을 쏟다보면 상대에 따라 내면을 얼마만큼 주고받을 수는 있다. 그건 결코 작지 않은 기쁨이고 고단한 삶의 영양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스스로 밑바닥까지 자신을 들여다봐야 뭐라도 실마리가 나온다는걸 알게됐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이치에 다가가지 않았을까? 어떻게 풀어나갈지 어떻게 해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지 머릴 쥐어뜯는건 그런 의미에서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다만 진작에 그런것들을 더 많이 쓰고 정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요즘 가득하다. 정희진 언니의 글을 보면 쓰는 것의 필요를 실감한다. (쟝쟝이란 천재도 거저 나온 것은 아닐터) 정희진의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지 않으면 안돼는 고뇌의 결정체들이 그 증거다. 이건 이 사람의 글을 읽어본 이들은 다 알겠지. 종종 아무말이나 끄적이는 내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Because Joanna has a job now, most of their conversations take place over the phone, even though they‘re both living inDublin. Marianne‘s only home for the weekend, but that‘sJoanna‘s only time off work. On the phone Joanna frequently describes her office, the various characters who work there, the dramas that erupt between them, and it‘s as if she‘s a citizen of a country Marianne has never visited, the country of paid employment. Marianne replaces the yoghurt pot in the freezer now and asks Joanna if she finds it strange, to be paid for her hours at work - to exchange, in other words, blocks of herextremely limited time on this earth for the human invention known as money. - P108
둘다 더블린에 살고 있어도, 조앤나가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화는 전화로 이뤄진다. 메리앤은 주말에는 집에만 있는데, 조앤나는 유일하게 주말에만 일을 쉰다. 조앤나는 전화로 빈번하게 자신의 사무실, 그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인물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들을 묘사한다. 마치 그녀가 메리앤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그러니까 보수를 받는 직장이라는 나라의시민이라는 듯 말이다. 메리앤은 요구르트 병을 냉장고에 다시 넣어놓고, 조앤나에게 근무 시간에 대해 보수를 받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이 지구상에서 극히 유한한 시간이라는 단위를 돈이라고 알려진 인간의 고안물과 맞바꾸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묻는다.
It‘s time you‘ll never get back, Marianne adds. I mean, the time is real.
The money is also real.
Well, but the time is more real. Time consists of physics,
money is just a social construct.
Yes, but I‘m still alive at work, says Joanna. It‘s still me, I‘m still having experiences. You‘re not working, okay, but the time is passing for you too. You‘ll never get it back either.
But I can decide what I do with it.
To that I would venture that your decision-making is also asocial construct. - P108
네가 다시는 되찾지 못할 시간이야. 메리앤이 덧붙인다. 내 말은,
시간은 진짜라는 거야.
돈도 진짜야.
음, 하지만 시간이 더 진짜야. 시간을 구성하는 건 물리적인 과정이지만, 돈은 그저 사회적인 산물일 뿐이야.
그래,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어. 나는 여전히 나고, 여전히 경험을 하고 있다고. 너는 일을 안 하지만 시간이 계속흘러가기는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그 시간을 절대 되찾지 못해.
하지만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는 결정할 수 있어.
감히 거기에 덧붙이자면, 네 의사 결정 역시 사회적 산물이라고 - P138
서로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조앤나와 메리앤조차 이렇게 갈린다. 현실에서도 이런 미묘한 입장과 차이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오해를 주고받기도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런 문제들은 이 세계를 더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누군가는 거기서 멈추고 누군가는 이런 지점들을 파고든다. 그리고 쓴다. 정희진은 말한다.
소통 불가능한 구조의 핵심은 말하는 사람마다 젠더, 계급, 인종 등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가 매일 겪는 일이다. 저마다 자기 입장이 있다. 지배자의 입장을 내면화하는 통념과 상식을 자기 생각이라고 믿든, 모든 개인은 입장이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상황에서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무섭다. 이것은 생각하지 않는 상태, 폭력이다. 소통은 가능하지도 않고, 어떤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 P153 .정희진
다른 상황에서 같은 말을 한다는건 다른 조건과 상황에 대한 무지를 전제로 한다. 동일한 말을 한다는건(주장,주입)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언니가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에서 수없이 강조한 융합에 대해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읽는 동안에는 어렴풋이 보이다가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혼란스럽기를 반복한다. 그래도 추측하자면 대충 이런게 아닐까싶다. 요 며칠전에 본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살인혐의를 둘러싼 유.무죄의 판단을 앞에두고 배심원들은 첨예하게 갈등했었다. 처음에 격렬하게 반대하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꿨다.일상에서 이런 변화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수용,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변화무쌍한 현실세계에서 고정된 사고에만 머문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게 가능하려면 힘이 있어야하고 그러다보면 강압적일수 밖에 없고 힘이 없는데 고집을 부린다면 그는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테니까. 12인중 끝까지 고집을 부린 사람이 그랬다. 하지만 초반의 상황과 다른점은 다수의 변화된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직접 영화를 봐야 알 수 있는데 설명하기 쉽지 않다.)
거대 이론이 원칙으로 강요될 때,지식은 생산되지 않는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나 국가 보안법이 그 사례다. 지식이 생산되지 않을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이들은 기득권층이고 고통받는 이들은 새로운 현실에 대처할 수 없는 약자들이다. P. 180 , 정희진
정희진은 소통이 본래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그저 무시하거나 비난한다. 당연히 나도 그랬다. 지금도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에 완전한 사람을 아마 없을테고. 글이나 말로 어떤 주장을 하다보면 용납하기 힘든 지점들이 누구나 있게 마련이다. 그런것들에 마음을 열고 내가 틀릴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것. 그것이 융합의 기본조건이다. 융합은 새로운 앎을 추구하는거고. 앞에 놓여진 문제에 대안을 만드는것 그게 언니가 말하는 융합인것 같다. 대략 정리하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다. 하고 싶은말도 다 하지 못했다. 그래도 쌓아두지 않고 미루지 않고 생각한 것을 썼다는데 의의를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