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페이퍼'라고 물에 젖지 않는 미네랄 페이퍼로 만들었다는 워터 프루프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다. 조지 엘리엇의 '벗겨진 베일'. 처음에 이 책 소개에서 책이 담긴 투명 파우치를 보고 당연히 저 파우치가 방수가 되니 워터 프루프라고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웃님이 워터프루프 책 어떠냐고 물어봐주셔서 소개글을 자세히 찾아 읽어보니 대충 하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 진짜루 종이 재질이 물에 젖지 않는다. 희망도서로 도서관에 신청한 책이었는데 파우치는 기본, 예쁜 북마크도 준다고. (북마크 누가 가져갔니...신청자 줘야하는 거 아님?!!)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한 나는 거의 다 마신 보리차에 새끼손가락을 살짝 담궜다가 이 워터프루프 책 종이에 한방울 톡 떨어뜨려봤다. 와우....신기했다. 수영을 할 줄 안다면 나는 분명 가까운 곳에 있는(15분 거리에 내겐 그림의 떡같은 수영장이 있다.용돈 벌려고 한 달 알바도 다녔었음) 수영장에 다닐것이고 이 책을 들고가 물 속에서 읽어볼텐데ㅎㅎ 이런 생각만해도 즐겁다. 더구나 저탄소 제품이라고? 그래서 다음 주문때 이디스 워튼의 '밤의 승리'를 구매해볼까 고민중이다. 박쥐모양의 북마크가 좀 많이 귀엽다.(항상 부족한 북마크. 북마크에 약한 나...) 이 시리즈 중 메리 셀리의 '보이지 않는 소녀'는 이미 품절이다. 후기가 올라온건 한 번도 못 봤는데 메리 셀리의 유명세보다는 유령 모양의 북마크때문이라고 나는 감히 짐작하고 있다. 그래도 '벗겨진 베일'을 읽고보니 다른 작품들도 웬만큼 재밌을것 같다.
벗겨진 베일 줄거리: 주인공 래티머는 스스로 일컫기로 '저주받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고 예지력도 있는것. 언뜻 생각하기에 이런 재능이 있으면 흥미진진한 삶을 살 수 있을것 같고 잘만 활용하면 여러모로 이득일 듯 하지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까지 들리니 그에게는 소음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와중에 그에게 형의 약혼녀 버사가 나타난다. 유일하게 그가 읽어낼 수 없는 그녀의 생각, 즉 베일에 가려진 비밀이 벗어날 수 없는 매력으로 그를 사로잡고. 예지력으로 인해 그녀와의 결말이 안 좋을 거라 짐작하게된다. 그러나 그런 불안함 속에서도 애써 이를 무시한채 형을 질투하며 혼자서 사랑을 키워나간다. 래티머와 버사의 결말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길! 전반적으로 스스로의 재능을 비탄속에 경험하는 래티머의 시각이 어둡게 읽히지만 때때로 명민한 통찰력을 담은 생각들이 읽기에 좋았다. 마치 철학책을 읽은 것처럼.
버사는 예지력이라는 끔찍한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신비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나는 내가 겪는 질병에 대해서다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딱 한 번만 제외하고는함부로 말이나 행동을 앞서 나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느 날인가, 앨프리드에게(형) 살짝 화가 난 상태에서, 그가 머릿속으로 고민한 끝에 젠체하며 논평하려던 말을 나도 모르게 먼저 입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앨프리드는 종종 말을 하기 전에 잠깐 휴지를 두는 경향이 있었는데, 다음 말을 이어 나가기 전 잠시 할 말을 고르는 동안, 내가 조급함과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형이 하려던 말을 마치 기계적으로, 함께 연습이라도 한것처럼 말해 버렸다. 형은 깜짝 놀라 얼굴을 붉혔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 P35
흔히 인간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계약을 할 때 자신의피로써 서명을 한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 계약의 효과가 나중에야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간 곁에는 언제나 어두운그림자가 존재하므로 야만성을 이기지 못하고 영혼의 갈증을해소하기 위해서 충동적으로 악마의 잔을 들이켜고 만다. 현명함을 얻는 데에는 지름길도, 전용 선로도 없다. 그래서 그오랜 세월 내내같은실수를반복했음에도 결국 인간의 영혼은 가시로 가득한 황야를 피와 도움을 간청하는 눈물로 물들이며 걸어가야 한다 - P40
사람들은 직접적인 대화와 눈빛, 표정. 그리고 무의식적 몸짓에서 나오는 의미들을 종합해 상대방을 이해하곤한다. 하지만 그러한 의사전달조차 완벽하지 않아 때때로 오해하고 반목하는 등 갈등이 빚어진다. 그뿐인가?
'말하고 쓰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말의 의미가 달라지고 이것이 곧 권력과 지식의 문제로 이어지는 일상적 사례' P.57, 정희진,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들이 있다. 그런 면에서 경험치가 쌓여야 그나마 제대로 된 이해에 더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이해, 진의 읽기, 판단은 때로 생존과 직결되기도 한다.
이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인물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인물 읽기를 실행하여 그 방면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얻지 않고는 단 한 해도 무사히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결혼과 우정이 거기 달려 있고, 우리 사업도 대폭 그에 의거해 있으며, 나날이 일어나는 문제들도 그 도움이 있어야만 해결됩니다. P.66 ,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해력,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타인의 진심을 늘 정확히 읽을 수는 없지 않을까. 많은 사람의 생각은 늘 변화무쌍해 스스로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래티머는 이런 과정들,노력들 없이도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재능때문에 사람들에게 환멸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을 멀리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래티머의 상황을 읽으며 소통이 부재한 통찰력이란 어쩌면 무용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거기다 자신의 죽음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 영혼은 인생의 호흡과도 같은 의구심과 희망, 노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 감추어지고 불확실한 것을 반드시 요구하기 마련이다. 만약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미래가 완전히 벌거벗겨져 드러나게 된다면 인류의 관심사는 오늘과 미래 사이에 펼쳐진 시간에 오롯이 집중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아침과 오후의 불확실성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될테고, 마지막으로 남은 투기, 성공, 실망의 가능성을 좇아 온갖 거래소로 죽어라 달려갈 것이다. 스물네 시간 이내에 위기가 닥칠지 닥치지 않을지를 두고 무수한 정치적 예언이 터져나오리라. 여름날이 저물 무렵에야 모든 것이 자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 하나만을 제외하고 그사이에 갖가지 주제나 가설, 논쟁들이 명백해진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 해가지면 그 즐거움 또한 끝나리라는 것을 알기에 벌들이 꿀로 가득한 꽃으로 모여들듯 예술과 철학, 문학과 과학으로 다들 몰려들게 될 터다. 이제 인간의 충동과 정신 활동은 허망한 미래와 심장 박동, 근육의 과민함에 더는 자신을 맞추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