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말에는 전제가 있다. ‘8시간 노동제‘는 가정에서 누군가가 가사 노동과 육아에 종사할 때만 가능한 사회 시스템이다. 한국이 ‘동아시아‘인 건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삼아 지명을 붙였던 근대의 역사적 산물이지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이처럼 정치적 과정에 관한 이해 없는 지식은 페이크뉴스(fake news)에 불과하다. - P39, 정희진
얼마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장님이 연설 도중 '자유'를 무려 33번 외친일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왜 그는 33번이나 '자유'를 강조했을까? 언뜻 광복절과 '자유'는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지만 1945년의 '자유'와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고 했던 이장님이 말하는 2022년의 '자유'는 같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지지율이 곤두박질 친 상황에서 그가 놓칠 수 없는 '자유'의 전제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누구의 자유인가
젊은 여성이 젠더에서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는 생각은, 개인이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생애사건에 총체적 책임을 진다는 현대 사회의 망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포스트페미니즘적 감수성'은 신자유주의와 같이 간다.(중략) 여성은 어떤 선택의 금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을 통해 규제되며, 이 때문에 권력과 불평등이 작동하는 바는 잘 보이지 않고 분석되기 어렵다. 로절린드 길이 지적하듯 "힘을 행사하는 것은 외부 억압이 아니라 정신에 깃든 규율과 규제이며 이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낸다." p.35,에리카 밀러,임신중지
8월 다락방님과 함께하는 여성주의 책 함께읽기는 '임신중지'다. 이 책은 소제목에 드러난 것처럼 임신중지라는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를 다룬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경합의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는 감정적 규제가 어떤 식으로 작동되어 왔을까? 아직 서문을 읽었을 뿐이지만 사회구조적 억압의 메커니즘과 임신중지를 둘러싼 논란이 괘를 같이 한다고 느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눈을 가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럴듯한 말로 저의를 숨기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 더구나 감정은 누구나 자신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짓기 때문에 침해 여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지식은 특정상황과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융합에서위치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지식의 본질적 성격인 부분성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지식은 인식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이것이 이른바 ‘모순‘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지식은 없다. - P57. 정희진,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어느 한 여성이라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설사 그녀에게 채워진 족쇄가 내 것과는 아주 다르다 해도 말이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