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유령을 갖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칼라지의 유령을 보고 있었다. 그건 그가 고함을 질러 그 유령을 쫓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P270


처음 100미터 달리기를 했을때 한동안 나는 거기 사로잡혔다. 출발선에서 하늘을 향해 발사되는 강렬한 총소리만큼 이미 내 심장은 내 뼈를 뚫고 나올것처럼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저기 저 곳까지 미친듯이 달려야해! '그게 뭘 의미하는지 그게 과연 내게 무슨 소용인지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끔은 아니, 그보다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그저 발광하는 거라고.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 매일 매 순간,미친듯이 발광하는 거라고. 모두 그러기를 멈추고 그걸 증명하기를 멈춘다면 과연 무슨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



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그는 진정한 남자였다. 나는……….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는 야성적이었지만 나는 길들여지고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강력한 용액에 담가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습관과 미국에 양보한 모든 것을 내 피부에서 벗겨낸다면 내가 아니라 그가 발견될 것이다. 내가 처음 카페 알제에서 용기를 내 그의 테이블로 걸어가 침묵을 깼을 때 그가 내게 불쑥 다가온것처럼, 별안간 푸른 지중해가 펼쳐질 것이다.- P74


이 책을 덮고 한동안 나는 멍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지? 그저 경험하는 것과 경험을 정리하는 것은 꽤나 거리가 있다. 쓰다보면 좀 더 분명해지는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쓰면서 더 멀어지는 경험이 있다. 여행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과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느라 오히려 그 순간을 놓치는 것처럼.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오로지 발화된 감정을 소화시킬 시간이, 그것들이.그  강렬한 감정이 내 몸을 무심코 관통해 지나갈 수 있도록. 



어쩌면 모든 소설은 그저 인간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작가가 찾은 방식을 함께 읽어나가다 보면 거기서 나의 방식이, 내가 만들어갈 공식이 하나씩 추가된다. 막연하던 것들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분명해질 수도, 더 막연해질 수도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갖고 또 틀어지고 때로 부딪히고 사랑하면서 그 공식은 더 늘어난다. 어떤 인간에게는 더 분명해지고 더 단순해 질 수도 있을거다. 


우리 각자가 마치 달처럼 수많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측면을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316



체커 택시를 모는 운전사 '칼라지'와 하버드 대학원생인 '나'의 우정에 관한 이 이야기 속에서 이런저런 공식을 마주한다.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살아가는 영혼과 한 껏 분출하는 영혼에 대해서. 한 사람은 소외된 불안을 칼라슈니코프를 여기저기 발사하듯 독설로 내뿜고 한 사람은 침잠하는 냉소와 타인에 대한 벽쌓기로 잠재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들도 각자의 분투하는 유령을, 방랑자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는 나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잃어버린 원시적인 모습의 나. 나의 그림자, 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다락방에 숨어 사는 미친 형제, 나의 하이드 씨, 나의 아주 아주 거친 초고草稿, 가면을 벗고 속박의 쇠사슬에서도 벗어난, 완성되지 않은 나, 속박받지 않는 나, 누더기를걸친 나, 격분한 나. 책을 들고 있지 않은, 세련된 매너가 없는,영주권이 없는 나. 칼라슈니코프를 들고 있는 나.- P76











더 읽어볼 그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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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25 16: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알리바이 강추😊
프루스트 잃시찾도 함께 읽귀🤗

청아 2022-02-25 16:43   좋아요 4 | URL
저 <알리바이> 있어요!🤭
프루스트도 읽어야하고 애치먼도 더 읽고싶고 큰일입니다ㅎㅎ

레삭매냐 2022-02-25 16: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보면 되게 심심한 내용
의 그런 책인데 또 오묘한 재미
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후반으로 갈수록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습니다.

청아 2022-02-25 17:06   좋아요 6 | URL
뭐랄까 단순한데
단순하지 않은 그런 느낌요.😄

읽으면서 많이 웃고 조금 울었는데 막상 쓰려니
설명하기 힘드네요.
애치먼에 홀딱 반했어요!

페넬로페 2022-02-25 17: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캬!
˝소설은 인간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찿아가는 과정˝~~
억만배 동감입니다.
소설을 읽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책을 덮고 그저 먹먹한 기분~^
미미님 글에서 딱 그 기분을 느꼈어요^^

근데 같은 경험이라도 느낌은 다 다른것 같아요
저는 100m달리기 출발선에서 언제나 막막했어요^^

내가 가진 나만의 유령은 뭐지?
계속 생각해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2-02-25 17:28   좋아요 6 | URL
도서관에서 문자왔어요
책 도착했다고~~
조만간 같은 기분 느껴볼께요^^

청아 2022-02-25 17:41   좋아요 6 | URL
읽을땐 즐겁게, 온통 만끽하며 받아들였어요.
어느순간 다 읽었는데
글로 쓰려니 어제는 안되더라구요.ㅎㅎ어찌어찌 오늘은 적어냈지만 여운은 더 오래 갈듯합니다😁

페넬로페님은 어떤 유령을 만나실지 너무 궁금해요~^^♡

새파랑 2022-02-25 18: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소라 김동률 콜라보인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완전 완전 좋아합니다 ㅋ 이 책은 우정 이야기군요~! 제가 읽고 있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 이야기 입니다 ㅎㅎ 저는 소설을 읽는 이유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삶과 생각을 간접체험하고 싶어서인데 미미님도 비슷한거 겉아요 ^^ 저도 극찬하는 이 책 곧 읽어볼께요~!!

청아 2022-02-25 19:10   좋아요 3 | URL
오~콜라보였군요?! 어쩐지 느낌이ㅋㅋㅋ 새파랑님 댓글보고 찾아봤는데 김동률 버젼도 있네요ㅠㅠ👍
그 책도 너무 궁금해요. 책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세계를 마음껏 경험할 수 있어서 자유로운것 같아요.
저도 그책 곧 읽어보렵니다😄

서니데이 2022-02-25 2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노란색을 보고 스쿨버스를 생각했는데, 택시였나보군요. 요즘엔 우리 나라에는 노란색 택시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미미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청아 2022-02-25 21:02   좋아요 3 | URL
그렇죠! 이 소설에 등장인물 중 한사람이 아주 매력넘치는 택시기사예요. 요즘 택시는 평범해져서 쉽게 구분이 안되는것 같아요. 서니데이님도 웃음가득한 주말 보내세요!😆

초란공 2022-02-25 21: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택시 사진은 혹시 로버트 드니로 인가요? ㅋㅋ

청아 2022-02-25 21:59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ㅋㅋㅋ<택시 드라이버>가 마침 떠오르더라구요. 성격은 책 속 캐릭터와 다르지만 옷차림과 분위기는 비슷할것 같았어요🤭

초란공 2022-02-25 22:03   좋아요 3 | URL
저도 저런 선글래스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조금 피곤하면 눈썹이 너무 쳐진 얼굴이 되서 ㅋ 정말 꽃미남 시절의 드니로였군요!!!

청아 2022-02-25 22:09   좋아요 3 | URL
봄 가을에는 필수인것 같아요. 저도 귀찮아서 안쓰다가 햇빛에 자꾸 찡그리게 되어 챙기고 있어요ㅋㅋ 이 영화 안보셨음 강추합니다. 옛날 영화치고 화질도 잘나오는편이고요. 리즈 시절의 드니로 연기도 스토리도 일품이예요👍

초란공 2022-02-25 22:11   좋아요 3 | URL
오 감사합니다! <택시 드라이버>로 찾아야겠군요. 📽

키라키라 2022-02-25 23: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이 느끼시는 소설에 대한 생각..정말 그런 것 같아요!! 본질적인 질문을 캐내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물찾기처럼 느껴져 더 애착이 갑니다 ^^ 저도 이 책 살포시 찜요~ㅎ

청아 2022-02-25 23:18   좋아요 4 | URL
보물찾기 맞네요!ㅎㅎ
웃으면서 즐겁게 읽었는데 덮고나니 작가로부터 묵직한 질문을 건네받은 기분이예요.키라키라님도 은은한 감동을 경험하셨음 좋겠어요😉

독서괭 2022-02-26 1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책이랑 찰떡궁합인 사진을 찾으셨네요!!
<알리바이>은 찾아보니 에세이군요. 흠. <콜미바이유어네임> 미미님 감상이 궁금해요.

청아 2022-02-26 11:21   좋아요 5 | URL
네ㅎㅎ 안그래도 다음 애치먼의 책은 그걸로 정했습니다.
괭님 읽어보셨나봐요😄
이 책과는 분위기가 다를듯한데 이미 믿음이 굳건해졌어요!

mini74 2022-02-26 15: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줄거리는 간단한데 참 깊은 책이란 느낌 받았어요. 로버트 드니로 ㅎㅎ 그러고보면 조커 영화 보면서 드니로 이 영화 생각나더라고요. 딱 맞는 사진입니다. *^^*

청아 2022-02-26 15:10   좋아요 2 | URL
칼라지가 입으로 분노의 총알을 쏟아냈다면 드니로는 포주를 향해 진짜 총을!ㅎㅎㅎ
거창한 줄거리 없이도 힘이 느껴지는 영화와 소설들도 너무 좋아요~♡
미니님 따라 서둘러 읽기를 잘했습니다. 소장각,재독각입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