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바로 지금 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 P114
속된말로 '찢었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소설이다. 이런 작품이 왜 절판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오늘 부스터샷 예약날이라 주사를 맞고와 졸음이 쏟아졌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었을만큼 흡입력이 있었다. 단 하루만에 일어난 일임에도 한 인간의 온 생애가 담겨 있는 듯 착각하며 읽었다. 전반적으로 이 작품은 우울하고 비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숙성된 요리에 풍미를 더해주는 레몬향이 베듯, 블랙유머가 가득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의 고통을 웃으면서 읽어낼 수 있었다. 역시 소설의 비극은 독자의 희극이다.
주인공 윌헬름은 아내와 별거중인 남자로 호텔에서 기거한다. 허우대와 얼굴은 한 때 배우생활을 할 정도로 ㅡ비록 성공하지도 못하고 엑스트라에 불과했을지라도ㅡ나름 반반하지만 잘못된 선택들로 인한 불행과 아버지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고독으로 늘 자신감이 없고 불안하다. 더 안타까운건 온몸으로 그걸 티낸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춥지도 않은데 뭔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함인 듯 쓸데없이 옷깃을 세운다거나 좋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팔이 옷속으로 움츠려드는것 같은 모습, 흔들리는 초점과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는 발'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턱의 군살도 지금보다 적었고, 눈도 훨씬 크고 맑았다. 다리는 그때도 못생겼었지만, 그래도 그는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막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려 하고 있었다.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할 때면, 그는 지금도 무기가 될 만한 것이면 아무거나 집어 들어 자신에게 한 방을 날리고 싶었다. - P33
같은 호텔14층에는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은퇴한 의사로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많이 신경쓰는 허영 가득한 노인이다. 주인공 윌헬름이 별거한 아내와 아이둘로 인해 금전적으로 힘들어함에도 모른척한다. 윌헬름은 아버지로부터 갈구했던 관심과 애정을 자신에게 쏟아준 탬킨 박사에게 홀려 가뜩이나 곤궁한 처지에 남은 자산을 몽땅 주식에 투자해 버렸다. 오늘 주식시장이 열리면 그는 큰 돈을 벌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탬킨박사는 이 작품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인데 스스로 의사라고 하지만 정확히 어디서 일을하는지 종잡을 수 없고 그의 경험들은 너무나 극적이라 윌헬름은 경이롭게 감탄하면서도 점차 그를 의심하고 있다. 하나 힌트를 들자면 주식에 대해서 윌헬름이 계속 불안해 하자 박사는 이런말을 한다.
내 말을 믿게. 나는 가격이 오르내리는 배후에 작용하는 죄의식과 공격성의 순환 작용을 연구해 왔거든. 그러니 내가 거기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P110
주인공은 지금 아버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고 호텔 숙박비도 밀린 상태이기에 이 주식의 향방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주식은 과연 어찌될까? 참고로 주식의 1도 몰라도 전혀 상관없이 읽을 수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소설을 읽어보시기를.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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