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은영쌤이 나오는 프로를 봤다. 원래 찾아보지는 않는데 채널을 돌리다 엄마가 자기 물건을 만졌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왜 저렇게 된 것인지 궁금해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아이는 자기 물건,몸에 엄마가 손을 대는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빠,친할머니,친구와는 문제가없었는데 감정적 결벽증의 대상은 오로지 엄마였다.
방송에 출연신청을 한 사람은 친할머니라고 했다. '엄마가 내 가방에 손을 대 학교에 못간다'고 비명지르던 아이는 그 할머니에게 전화해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자기가 표현이 서툰편이지만 두 번의 유산후 얻은 딸이라 더욱 애틋하다고,사랑한다고..그래서 이 상황에 너무나 괴로워했다. 친구는 오열했다.
아이 아빠는 놀랍게도 엄마를 비난했다. 곧이어 등장한 시어머니는 모두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역시 아이 엄마에게 책임을 돌렸다. 오은영쌤은 아이가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한것처럼 보이는 아빠와 할머니 편이 되기 위해 엄마를 밀어낸것이라고 했다. 치료는 이런 식이었다. 아빠가 아이와 대화하며 엄마의 장점찾기ㅡ.ㅡ
(아빠가 첫번째로 꼽은 장점은 엄마 몸매가 좋다는 거였다.)......
육아는 온전히 아내의 몫이된다. 그 대가는 바랄수도 없는데도 잘못되면 쉽게 아내의 탓이 되곤한다. 며칠전 아이를 학대해 죽게한 엄마에 대한 재판의 항소심에서 엄마는 30년을 받고 아빠는 5년을 받았다. 나는 이 형량이 상당히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고.이런 것들이 사회적 편견과 어머니에게 쏠린 육아책임과 그로인한 부담들,계속되는 학대사건,출산율저하라는 사회적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이 판결만 봐도 육아 책임 비율은 엄마가 아빠의 6배다. 과연 아이가 장기간 학대로 사망에 이르렀는데 아빠의 잘못이 고작 5년일까?
물론 이건 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자세한 내막이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내용이 더 있더라도 드러난 결과는 많은 의문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계속되는 끔찍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 아빠의 모습은 너무도 흐릿하고 엄마의 모습만 강조되는 이 분위기가 참 아이러니하다. 혈통은 아버지를 통해 이어지는데도 "느그 어무이 뭐하시노?'는 없고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인 세상 인데도 엄마의 책임만이 강조된다. 싱글대디인 아빠는 아이출생신고도 할 수 없다. 엄마들도 마찬가지지만 아빠들은 더더욱 이름뿐인 육아휴직 신청에 눈치를 봐야만한다. 결국 엄마만의 독박육아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사회는 얼마나 많은 아이가 죽고 얼마나 적은 아이만이 남아야 제대로 된 정책으로 육아에 관심을 갖게될지 궁금하다.
*여성의 권리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하나 이런 고질적인 문제들을 마주하면 투표권이 생겼다는게,여성들의 사회적 참여의 길이 열렸다는게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리가레는 근본적인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스템을 만든이들은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과연 이것은 누구를 위한 시스템인가? 누가 만든 시스템인가?
여성 경찰이 잘못하면 여성 경찰을 모두 없애라는 비난이 난무하는 실태는 이 지구에 아직도 성은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본주의 부의 기본적 형태인 상품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그러므로 소위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 위상에 대한 한 가지 해석처럼 이해될 수 있다. 가부장적 사회의 조직과 이 조직의 기초가되는 상징 작용 ㅡ그 도구와 대표자는 아버지 · 신이라는 고유 명사이다 ㅡ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체제의 특징들로 규정하는 발전들을 처음부터 포함한다. 즉 자연을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로 만는 인간의 노동에 이 자연을 굴복시킨다는 것, 생산자와 여자들- 상품들을 자기들끼리 교환하는 사유 재산가 사이의 노동 분화, 또 생산자와 사회 질서를 이용하는 자, 혹은 사회 질서로부터 착취당하는 자들 사이의 노동 분화, 그들의 동등함을 결정하는 고유명사에 여자들을 맞추는 것, 가장 고유한 이름을 가진 대표자들 -우두머리들 ㅡ이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여자들을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는 것 같은 부를 축적하려는 경향, 상징의 사회적 작용이 점점 더 광범위한 추상화 쪽으로 나아간다는 것 등이 그 특징들이다 - P226
분명 생산 수단은 발전했고, 기술도 발달했지만, 내 생각에 아버지가 생산자로서의 자기 권력에 확신을 갖고 자기 생산물에 자기이름을 표시한 이래 ㅡ 사유 재산제와 가부장제 가족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ㅡ 사회적 착취는 일어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역사‘ 에 나타난 모든 사회 체제들은 생산 ‘계급‘에 대한 착취, 즉 여성의 착취를 기반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아이들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능력에 대한 사용 가치와 이들의 교환 가치 구축은 상징적 질서를 보장한다. 이 ‘노동‘을 제공하고도 여자들은 이 유통에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이것은 남성들ㅡ아버지들에 의한고유 명사 독점(또 소유권으로서 이 독점화가 의미하는 것)의 분산인 교환의 이중 체계를 함축할 것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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