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크게 두 가지에서 온다. 먹고사는 것과 믿고 사는 것. 다시 말해 경제와 종교이다. 결국 인간은 가장 눈에 보이는 문제와 가장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로 싸우는 셈이다.-손석희
오바마 대통령이 내한 했을 때 그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는데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보다못한 중국인 기자가 대신 능숙하게 질문했던 망신스러운 사건이 있었다.(그렇다 이건 사건이다.) 설마 영어가 안되어 벙어리가 된 것은 아닐테고(요즘은 기자들도 스팩이 중요하다고 하니)아마도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특성과 미국과의 관계라던지 국제적인 안목에서 바닥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겠나 싶다. 오바마에게 국내정치를 질문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혹은 받아적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튼 공허한 스팩은 이래서 무섭다.
수습을 거치고 나면 '저 사람이 나보다 선배인데, 이렇게 묻고 따지는 건 실례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돼요. 상명하복 시스템에 길드느라 나이조차 거슬러요. 몇살 연상의 후배가 있었는데 제가 존댓말을 썼어요. 지시를 할 때도요. 그런데 선배들이 혼내더라고요. 왜 존댓말을 쓰느냐고요. 그런 식의 강압적인 문화가 가장 심각한 것 같고, 또 하나 문제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에요. 어깨너머로 배우다보니까 이게 맞는 건지 기준점이 없어요. p.215 <권력과 언론>
카네기 인간관계론에는 좋은 관계를 위해서 종교문제나 민감한 사회적 이슈는 피하는 것이 낫다는 대목이 나온다. 좋은 관계라는 것이 과연 서로에게 오로지 기분 좋은 것만을 주고 받는 것이라면 도대체 사회적 문제에 관해 언제 누구와 대화하고 관심을 끌어모을 것인가. 요즘은 중. 고등학교에서도 토론학습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주입식 교육의 산물인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선생님의 이야기에 조용히 경청하는 게 학생의 도리였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며 한참동안 앞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 벌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질문을 하라고 하면 대부분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튀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문화는 검은 옷을 즐겨입는 한국인들의 특징을 봐도 알 수 있다. 페인트 가게에는 놀랍게도 모든 색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 튀지 않는 한정된 색깔들만 찾는 탓에 조금 색다른 색은 선택지에서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언론이 끈질기게 쿠르드족의 비극을 보도하자,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마지못해 쿠르드족을 구하기로 결정했어. 마침내 1992년 4월 16일, 부시 대통령은 특별 성명을 발표하고 인도적인 목적으로 미군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직접 투입해서 이라크군의 접근을 막고 난민촌을 만들어 쿠르드족을 돕겠다고 발표했지.p.150
튀지않는 것. 나서지 않는 것과 토론하지 않는 문화는 민감한 문제에 관한 무관심과도 묘하게 버무려져 오바마 기자회견이라는 참극을 완성한 것은 아닐까. 나도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니 내세울 건 없다. 최근까지 중동이나 아랍국가에 대해 무지했으니까. 아랍국가라면 일단 911부터 떠올라 테러리즘을 연상시켰고 이런 막연한 두려움은 아랍인들에 대한 역시 막연한 공포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정보가 막연해서 더 두려운 것은 아닐까? 등산가들은 낯선 상대를 만나면 서슴없이 인사를 건내기도 한다. 낯섦과 익명은 두려움이니까. 서로간의 서먹함을 없애려 더 위쪽은 오르기가 어찌하다는 둥 정보를 주기도 하고 힘내시라고 응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국제이슈에서도 무관심은 독이되고 관심은 때로 기적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전쟁 체제는 우리의 삶을 파고들어,인간관계에서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다수는 이 체제를 기꺼이 지지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지는 근본적 신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면,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이때 두려움은 가능한 한 특정 엘리트가 통제하는 사회 단위 바깥에서 다가올 때 효과적이다. P.42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난민을 두려워하는 난민공포도 같은 맥락이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고 무지하기 때문에 더욱 차별하는 것이다. 차도르로 온 몸을 가린 여인의 모습을 보는 우리와 나시에 반바지를 입은 우리를 보는 그들은 서로간의 정보가 없기에 더 낯설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는지,정보부족이었는지 깨달았고 보이는 것과 달리 그들도 그저 우리처럼 살아가기 위해 매일 투쟁하고 분투하고 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까.
국제사회가 진작에 러시아와 체첸 전쟁을 중재했다면 시리아 내전에 체첸 전사들이 괴물처럼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분노와 원망으로 망가졌고 세계는 그들을 내버려 둔 거지. 이렇게 한 지역의 분쟁은 전염병처럼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간단다.그래서 지구 어느 편이든 전쟁이 나면 다른 나라들도 관심을 가져야 해. 언제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야. p.124
20년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등 분쟁 국가들을 취재하며 이들 나라의 아픔과 비극을 다큐멘터리로, 기사로 실어나른 김영미PD는 이런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실천한 언론인이다.
표지부터 가슴이 저릿한 이 책은 폐허가 되어 앙상하게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계단을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란히 올라가는 모습으로 그 취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터가 된 땅에서도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논다. 아이들이니까. 이런 아이들의 손에 총을 쥐어주는 것은 그들이 싸우고 있는 상대들만이 아닌 이웃나라들의 무관심이다. 무거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가독성 높은 글과 정보로 다 읽은 후에는' 테러'를 연상하게 했던 이들 국가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테러리스트'를 명명하는 것이 누구인지, 그 이면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얽키고 설켜 있는지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전.후관계를 알 수 있다. 올 해 읽은 논픽션 중 최고! 네 번은 울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