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계십니까 - 사람이 그리울 때 나는 산으로 간다
권중서 지음, 김시훈 그림 / 지식노마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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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다들 현대 건축에 대해 공부할 때, 나는 우연한 계기로 우리나라 고건축과 전통한옥 그리고 사찰의 매력에 흠뻑 취해있던 시기가 있었다. 주말이나 수업이 없는 날에는 홀로 가방과 카메라를 둘러메고 가까운 사찰을 찾는 것이 좋았다. 처음에는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에 가까운 사찰부터 시작해서 점점 거리를 늘려갔다.
사찰로 향한 길은 평탄하게 잘 들어선 사찰도 있지만, 사찰 대부분이 수행 길처럼 급경사의 힘든 길이다. 웬만한 승용차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에 주차해두고 굽이도는 산길을 걸어 올라갈 때가 많았다. 물론 걸어 올라가는 길은 쉽지 않지만, 푸릇한 주변의 경치로 잠시나마 힘든 것을 잊고 올라갈 수 있다. 걷다 보면 '힐링' 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건축 양식을 공부하기 위해 다녔던 사찰이 지금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인적 드문 산사의 툇마루에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그 시간이 매우 좋다.

 

 

 

 

 

이 책에는 무명의 화류계 여인이 유명한 스님에게 공양을 올려 스님보다 더 유명해진 <길상사>로 시작해서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로 유명한 남원 <만복사>와 벚꽃과 복사꽃이 아름답게 피는 봄에 찾아가기 좋은 <환성사> 그리고 신선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선암사>등 전국 사찰 및 암자 스물다섯 곳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유명하지 않은 사찰도 책에 담고 있다. 작가는 사찰이나 옛 절터의 문화 유적을 기행하는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산사를 느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만의 방식….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사찰이나 주변의 풍경이 담긴 사진을 한 장도 볼 수 없다. 대신 일러스트를 담고 있는데 이 일러스트는 작가가 바라본 그곳의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내가 다녀본 사찰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 그곳에서의 추억을 잠시 떠올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책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사찰이 많았다. 책을 읽다가 가보고 싶은 곳을 메모하고 지도를 꺼내 답사 계획을 세우면 흐뭇해진다. 스물다섯 곳의 사찰 중 두 곳이 눈에 들어온다. 한 곳은 부안의 <내소사>라는 곳이다. 내소사는 빨리 돈을 벌어야 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남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비로소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격하게 공감하며 찾고 싶은 곳이 이곳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소사 범종이 내소사에 있게 된 일화가 흥미롭다. 아마 조만간 나는 내소사를 자박자박 걷고 있을 것 같다.


다른 한 곳은 경산의 <환성사>이다. 환성사 수미단에는 일반 사찰의 수미단과는 완전히 다른 다양한 문양들이 있다고 한다. 부부 혹은 남녀 간의 사랑이 잘 표현(?)되어 있어 야릇한 미소를 짓게 한다고…. 우린~ 아직 젊기에~. 사실 신라 때 원효의 몰부가를 비롯하여 처용가, 고려의 쌍화점 등 옛사람들은 남녀지간의 정을 다양하게 표현해왔으며 사랑은 우리 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의 문화가 사찰에, 그것도 스님에 의해 부처의 발밑 수미단에 조각된 이유는 2천 600년 전에 이미 부처께서 부부지간의 사랑을 삶의 중요한 덕목을 강조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찰 중 내가 직접 다녀온 곳을 하나 추천한다면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보았을 현존 최고(最古) 목조건물 극락전이 있는 안동 <봉정사>이다. 나는 지금까지 열 번 정도 다녀온 것 같다.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돌을 얹어 가지런히 쌓아 올린 돌계단. 작가의 표현대로 밝음에서 어둠으로 그리고 다시 밝음으로 바뀌는 그 찰나. 그리고 눈앞에 마주하는 대웅전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봉정사>를 찾을 일이 있다면 꼭 극적인 장면 전환을 꼭 느껴보길 바란다.


나는 그동안 오로지 건축 양식을 공부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사찰을 다녔기에 그곳에 숨겨진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듣게 되는 일은 있었지만, 방문한 목적이 그게 아니었기에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하지만 <스님, 계십니까>를 읽어보니 사찰마다 숨겨진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내가 그동안 다녀온 사찰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덮는 순간 사찰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스님,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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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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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알베르 카뮈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인 <최초의 인간>을 읽게 되었다. <최초의 인간>은 카뮈가 <이방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 이후 3년 후 1960년 1월 4일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집필했던 작품으로 이 책이 완성작이었다면 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되었을 거라고 평가되고 있다. 죽은 카뮈의 가방 속에서 집필 중인 소설 초고가 발견되었는데,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간 듯한 144쪽의 노트에는 놀랍게도 자서전적인 내용이 쓰여있었다고 한다. 카뮈의 아내는 카뮈의 친구인 시인 네르 샤르와 소설가 로제 그르니에에게 출판 여부를 묻지만 쓰다가 만 초고인 데다가 휘갈겨 쓴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출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해서 출판이 되지 못했다. 카뮈의 아내가 죽은 뒤 1994년, 문학 교사 출신인 카뮈의 딸에 의해 <최초의 인간>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처음 책을 집고 읽을 때에는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어 익숙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미완성의 작품답게 이전에 서술된 내용과 조금씩 어긋나는 내용이 있어서 읽는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분명 <최초의 인간>은 미완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못한 부분은 해설처리가 잘 되어있어서 카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차츰차츰 머리에 들어왔다.
한 단어 한 단어, 어떤 단어를 선택할까 고심하는 카뮈의 흔적이 보이고, 그가 글을 쓰는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완벽하지 않았기에 카뮈를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이 책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마른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가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다. 잃어버린 아버지가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참고로 카뮈의 아버지도 마른 전투에서 전사했다. 카뮈가 태어난 지 1년 후에. 자크는 아버지와 인연이 닿았던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그의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알아내 해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그가 아버지의 무덤을 마주한 바로 그 순간 그는 묘석 아래 묻힌 아버지가 지금의 그 자신보다 더 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 남자라면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리워지는 나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아버지가 계속 생각이 났다.
내 아버지도 자크처럼 아주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다. 워낙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누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혈혈단신으로 당신의 삶을 개척한 아버지. 가끔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일 때, 내 나이에 아버지는 무엇이 하고 싶으셨어요? 하고 물어보곤 하지만 그저 웃음으로 넘기시는 아버지가 생각나 울컥했다. 물려받은 넉넉한 가난에서 혼자 자신의 길을 개척한 자크가, 내 아버지가 그리고 카뮈가 바로 <최초의 인간>이 아니었을까…. 끝맺지 못한 작품이었지만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을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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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시~작!
마츠모토 게이스케 지음, 복창교 옮김 / 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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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언제 할까? 마음을 잡고, 시험공부 하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갑자기 어질러진 주변이 눈에 거슬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데 청소하기 시작한다. 정리 정돈만 하다가 결국 힘을 빠져서 시험공부는 다음으로 미루었던 경험.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쯤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리 정돈을 잘 해두면 필요한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있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현실의 내 방은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빨리 씻고 쉬고 싶은 마음에 옷가지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읽다가 만 책은 이곳저곳에 쌓여있다. 정리 정돈을 해두면 보기에도 좋고,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내일 하면 되겠지 하며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청소 시작!>은 나를 포함해 정리 정돈을 내일로 미루는 습관을 지닌 사람을 위해 스님의 청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나는 3일에 한 번씩 청소한다. 이런 생활은 거의 규칙적이다. 하지만 청소 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내 방에서 깔끔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옷을 여기저기 벗어두고, 취침 전까지 읽었던 책을 손이 닿는 곳에 툭 던져두는 습관 때문이다. 안 좋은 습관이라 고쳐야지 하면서도 그게 쉽지가 않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청소 방법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바로 물건의 자리를 찾아 주는 일. 그리고 청소는 단순히 더러운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닦는 수행이라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기본이며 핵심이다.
일본 절에서는 일 년을 놓고 봤을 때 한 번도 청소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 스님에게는 청소가 바로 수행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에 가면 경내가 늘 깨끗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다고 한다. 불자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절을 자주 찾는 나는, 가끔 절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말을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이렇게 절에서 지내보면서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심지어 툇마루까지 지저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반짝반짝 윤이 난다.
스님의 방은 최소한의 물건만 있기 때문에 항상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어질러지는 일이 없다고 한다.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놓는 것. 단순한 일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는 물건을 내 몸처럼 소중하게 여겨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물건을 소중히 하고 사용한 물건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 것이 청소의 기본이라 말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청소라고 하면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스님의 청소 이야기를 읽어 보니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청소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한, 스님이 절에서 청소하며 쌓은 청소 비법과 필요한 청소 도구를 친절히 설명하고 있어서 청소 요령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꽤 도움이 된다. 분량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이지만, 남는 것은 절대 가볍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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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아이브 -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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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폰, Mac 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면 대부분 단 한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바로 청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검은색 목폴라 티를 교복처럼 입고 다니던 스티브 잡스. 지금의 애플이 있기까지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현재 아이폰과 맥북 그리고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다. 애플 제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 중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디자인 때문이다. 다른 회사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 차별화를 위해 될 수 있으면 부가 기능을 추가하려 애쓰지만, 애플은 축소와 단순성을 신조로 절대적으로 본질적인 부분이 아닌 것은 제거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줄여나가는 게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군더더기를 다 빼버린 단순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단순한 디자인의 편리함은 사용하면서 몸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simple is the best 라는 말을 믿는다.

 

이렇게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애플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누구의 손에 의해 디자인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민음사에서 출간된 <조너선 아이브>를 읽고 깐깐하고 괴짜인 스티브 잡스의 생각과 신념을 디자인으로 옮긴 사람이 그라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조너선 아이브의 학창 시절부터 애플의 운영에 핵심 인물이 되기까지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은세공 전문가인 아버지와 심리치료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아이브의 어린 시절 내내 디자인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꾸준히 조성해 주었다. 그래서일까 열여섯 살 때에는 런던 최고의 디자인 회사 로버츠 위버 그룹(RWG)의 전무 이사였던 필립 그레이의 추천을 받기도 한다. 애플 입사 후 잡스를 만나면서 잡스의 아이디어와 영감을 디자인으로 탄생시켰다. 이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는데 그중 한 가지는 아이브가 나중에 애플에서 그랬던 것처럼 잡스 역시 제품의 디테일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이다. 아마 이것은 애플 홈페이지만 가봐도 애플이 얼마나 디테일을 강조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료의 말에 따르면 아이브는 팀의 리더로서도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 디자인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항상 자기 탓으로 돌리곤 했으며, 스티브에게 '제 생각엔 이걸 바꿔야 해요.'라는 식으로 소신을 당당히 밝히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윗선의 누군가가 자신이나 팀원에게 시비를 걸거나 추궁이라도 하면 중역들을 제쳐 놓고 과감히 스티브를 찾아가는 인물이라고….

 

잡스가 그들의 공동 작업물을 대중 앞에 선보일 때면 늘 옆에 비켜서 있는 것으로 만족했던 아이브는 애플의 산업 디자인 담당 수석 부사장이자 오늘날 정보 기반 사회의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되었다. 최근 애플에 더 이상의 디자인 혁신은 없다고들 하지만 끊임없이 애플 제품의 느낌을 빌려 만든 디자인이 출시되고 있다. 디자인은 겉모습이나 느낌에 불과한 게 아니라 제품의 총체적 기능 및 경험을 담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탄생한 아이브만의 새로운 디자인을 기대해본다. 애플과 디자인 그리고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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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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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던 시절, 내 허름한 자취방의 룸메이트이자 고등학교 친구인 녀석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라는 책에 푹 빠져 읽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처음 접했던 건…. 평소 책에는 관심도 없었고, 시험 기간조차 밤을 새우면서 공부한 적 없던 내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풍부한 이야기는 며칠 밤을 지새우며 그의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그때는 젊어서 하루 이틀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밤을 새운 다음 날에는 맥을 못 춘다. 아 옛날이여…. 아무튼 그 후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서 찾아 빌려 읽었던 것 같은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의 책을 전부 읽어보지 못했다. 최근 출간된 <제3 인류>를 포함해서 그의 책은 반드시 다 읽을 생각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4살 때부터 그의 영감을 따로 적어놓은 비밀 노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발상의 관점을 뒤집는 사건들 그리고 다양한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를 그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기록해 놓은 비밀 노트. 그의 책을 읽으면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감탄했던 나는, 그의 비밀 노트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그의 비밀 노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란 책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은 사전이라는 이름을 괜히 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 굉장히 두꺼웠다. 이 책에는 383개의 이야기를 629페이지 안에 담고 있다. 처음에는 두께의 압박에 긴장했지만, 한 장 한 장 읽어나 보니 꽤 흥미로운 이야기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 술술 넘어갔다. 물론 한 호흡에 읽는 건 불가능했다. 소설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연결된 것이 아니므로 곁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어나가다 부처님의 탁월한 위치선정(종교적 뜻은 없음)으로 황금연휴에 마지막 장까지 읽을 수 있었다. 페이지 수에 큰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이 책에는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과학, 심리학, 인류학, 신화, 연금술, 게임 등 온갖 분야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서른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도 몰랐던 지식과 왜곡된 정보의 진실을 배우게 되고, 사건이나 물건을 남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교미가 끝난 후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암컷 사마귀의 통설은 그릇된 해석이라는 사실. <글레디에이터>나 <300>이라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로마 시대 검투사의 몸은 근육이 발달했다기보다 뚱뚱한 편이라는 사실. 심지어 초콜릿 케이크 만드는 레시피까지. 그의 비밀 노트의 범위는 말 그대로 백과사전이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도 선정되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즐겨 읽는다면 그의 글에 원천이 되는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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