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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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의 모든 디자인은 칼 라르손에서 시작된다'

스웨덴 국민 화가의 일상 속 작은 행복

'휘게, 라곰, 피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미술을 잘 모르고 화가도 몇명 몰라서 미술을 쉽게 말해주는 책을 좋아한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라는 책을 읽고 저자인 이소영의 글에 반했다. 작가가 보여주는 그림들도 좋았다. 그림을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고매한 무엇이 아닌 일상과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무엇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았다.

제목과 표지와 표지에 써있는 이런저런 문구들을 보고 행복을 전해주는 책이구나 싶었다. 칼 라르손 이라는 한명의 그림을 모아놓은 이렇게 화가 한명의 그림에 대한 책도 처음이었지만 그 화가가 일생을 자신의 가족과 집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해졌다는 것도 신기했다. 누군가를 혹은 어딘가를 그렇게 밖을 그리는 그림들이 아닌 내 가족을 내 집을 계속 그렸고 그런 작품들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궁금해졌다.

칼 라르손 1853~1919 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는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공예 운동가이며, 부인 카린 베르구 와 함께 8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스웨덴 팔룬에 있는 집 '릴라 히트나스'를 손수 가꾸는 행복한 삶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공공연하게 칼 라르손과 그의 아내 카린이 꾸민 집의 인테리어 스타일이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라고 언급합니다. 칼 라르손의 작품과 생애는 스칸디나비안 포크 아트에 기반을 둔 스웨덴의 디자인과 가구 문화를 발전시켰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스칸디나비아식 스타일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그의 작품과 삶을 해매며 그와 가족이 살던 집을 여행하고 온 저의 여정입니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위의 내용으로 시작한 이 책은 위 글 뒤에 여러 페이지에 걸쳐 칼 라르손의 그림들이 나온다. 그가 일상을 보낸 장소들과 그 장소들 속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그린 그림... 뭔가 특별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것 같은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왜 칼 라르손을 궁금해했는지 이유를 밝힌다.

나는 집필하는 3년간 매일 밤마다 서재에 앉아 칼 라르손의 그림들을 봤다. 하지만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대부분 행복을 박제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꾸민 정지된 화면 속에서 한참을 해맸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행복보다 불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행복은 멀리서 응원을 보내는 것에 그쳤지만, 유독 타인의 불행은 내 불행처럼 끌어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행복한 그림' 보다 '삶의 어두운 모습을 표현한 그림'에 더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행복한 장면만 그리는 작가인 칼 라르손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시간은 동굴 속에 떨어진 반지를 찾는 과정 같았다. 결국 이 책은 나 스스로를 바르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칼이 일부러 행복한 장면만 찾아 그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칼 라르손의 그림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것일까?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깨달았다. 사람들이 칼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대신 행복해주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칼의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혼자 힘겨워한 후 다시 그의 작품을 보며 깨달았다. 특별한 행복의 비밀 따위는 없었다. 그는 그냥 별일 없는 하루를 잘 기록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별일 없는 하루하루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다시 힘을 내어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칼 라르손의 삶과 작품에 대해 썼다. 행복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별일도 별일 없는 듯 기록한 화가의 삶 속에 있는 행복을 감상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와 함께 희극의 긴 탄생과정을 파헤쳐보고 싶은 분은 합류하기를 바란다. (프롤로그 p34~37 中)

기꺼이 합류하고 싶어졌다. 저자가 앞에 있었다면 저요저요 하고 손들뻔 했다.

나도 행복해 보이는 그림을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선망하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이나 그저 풍경 그림이 보기 좋을 때가 많았다. 인물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복잡해지곤 하는 마음을 뭐라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칼 라르손의 행복한 그림들 보다도 저자가 품었던 질문을 나또한 공감할 수 있었기에 보고 싶어졌다. 칼 라르손의 그림이. 더욱 읽고 싶어졌다. 저자의 글이.

그리고 책을 다 보고 나서 느낄 수 있었다. 일상과 행복의 관계에 대하여...

한국의 많은 사람이 사랑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개인전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작가. 이케아의 정신적 모토라고 하나 아무리 이케아 홈페이지를 뒤져도 흔적이 많지 않은 작가. 수체화로 그려진 수많은 그림이 하나같이 너무 따뜻해서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 작가, 칼 라르손은 누구일까. (p. 45)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힘들게 성장한 칼 라르손.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 덕에 미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칼 라르손. 미술을 통해 직업을 얻고 기반을 잡기 시작했을 때 병을 얻은 몸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부양했던 칼 라르손. 책 에서 그의 자화상이 종종 나오는데 60p 에서의 자화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된 정장을 갖춰 입고 당당하게 선 자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40대의 자신을 담은 그 그림에서 '더 이상의 가난과 우울함이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괜히 뿌듯해진다' 라는 저자의 말이 깊이 공감갔다. 고난을 겪고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감동을 주기 마련아닌가... 칼 라르손이 특별하다면 그의 성공은 그가 원하는 가족과 가정을 이루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그의 이런 성공은 그의 부인 카린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칼 라르손이 청혼했던 장소에 드레스를 입고 서있는 카린을 그린 그림은... 아름다웠다! 신부가 아름답긴 했지만 꼭 신부때문에라기 보다도 뭐랄까 그 분위기가... 그림의 제목을 왜 '다리'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소중했던 시간을 그림에 (마치 사진처럼) 담기 시작했던 것은 카린에서 시작되었다.

화가대 화가로서 유학시절 프랑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누군가는 가정을 전담해야 했고 그 시절로서는 당연하게도 (어쩌면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인 카린이 가정을 맡았다. 8명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카린이 아플때를 그리며 칼 라르손의 마음은 어땠을까...

연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을 그린 그림들이 있곤 한데, 카린과 아이를 그린 일상의 그림과 똑같은 인물을 살짝 변형해서 봄의 공주로 표현한 그림을 나란히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인상깊었다. 다홍색 이라는 색명이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긴한데, 여하튼 봄의 공주에서의 망토 색깔을 나는 다홍색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 다홍색이 칼 라르손의 그림에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원래 붉은 색은 생명력을 상징하곤 하지 않나? 칼 라르손의 다홍색이 그에게 행복의 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 라르손은 아이들이 책을 읽는 장면을 많이 그렸다. 이는 부모였던 칼과 카린 모두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판단할 때 책을 읽을 여유가 있었나, 없었나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과정에 책이라는 멋진 물건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꽤 괜찮아진다. (p. 121)

자녀들의 책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여러점 있었지만, 나는 책을 펼쳐놓고 딴 생각을 하거나 숙제를 해야 하는데 졸고 있는 모습을 (그 순간을 목격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거울속 아버지까지) 그린 그림이 보기 좋았다. 자녀들의 꾸러기 다운 모습을 그린 그림도 많았는데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혼자 식탁에서 늦은 식사를 하는 아이의 그림이 정말 어찌나 일상스럽던지 저절로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칼 라르손의 그림이 행복을 담고 있긴 한가 보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그 누구보다 정교하고, 정확하며, 아름답게 그려나갔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일상만으로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보다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둘러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느낀다. (p. 143)

칼 라르손은 전원생활을 꿈꿨고 실현했다. 자연에 위치한 그의 집과 환경은 지금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한 로망이다.

 

 

다복한 가정, 야생화 가득한 정원, 몇 걸음 가면 있는 자작나무 숲, 호수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했던 피크닉, 야외에서의 식사

그리고 그림을 보다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그의 아이들

여러 북유럽 국가들을 다녀온 후 내가 느낀 공통점은 그들은 그 무엇보다 가정 환경과 자신이 속한 공간의 인테리어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겨울이 길고 날씨가 추워 집에 오래 있어야 하는 환경적 특성이 조명과 가구, 인테리어의 발전으로 나타났고 내적으로는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집안에서 보내는 문화인 '휘게(덴마크 사람들의 아늑하고 소소하고 여유로운 시간)' 나 '피카(스웨덴 사람들의 커피 마시는 시간)' 로 나타난 것이다. (p. 196)

칼과 카린은 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에 작은 용광로라는 뜻을 지닌 '릴라 히트나스' 라는 이름을 붙인다. (p. 201)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평범한 날과 특별한 날이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의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전체가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내는 일은 아주 소소한 것일지라도 거대하게 다가온다. (p. 270)

북유럽은 햇빛이 귀하다. 그들에게 여름은 잠깐 스쳐가는 시간이므로 햇빛은 보석 같은 존재다. (p. 281)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을 가진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만큼 칼 라르손의 그림은 대부분 여름을 담고 있었다. 신록이 우거진 계절, 야외에서 신나게 활동하는 아이들, 꽃들이 만발한 집... 집안에서 휘게와 피카의 시간을 길게 가지는 동안 매년 오는 여름이지만 겨울에 생각하는 여름은 특별한 만큼 그가 여름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며 보석같은 그들의 시간을 스스로 추억했을까?

유럽의 수공예 운동을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가 이끌었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수공예 운동의 중심에는 칼과 카린이 있었다.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만든 가구는 많은 북유럽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실용적이고 밝은 인텔어 스타일은 오날날에도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을 대표한다. (p. 227)

서양에서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두고 '초록 엄지'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탁월한 가드너였다. (p. 277)

칼은 그림을 그리는 사이사이 목공 작업도 좋아해서 가구를 만들곤 했다. 아이들이 늘어가면서 집은 계속 확장공사를 했고 그렇게 확장한 공간을 카린과 함께 꾸며나갔다. 카린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보다도 직조 공예가로서의 능력이 출중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으로 나오는 상품들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롭게 불어온 수공예의 바람은 카린의 인테리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인테리어 감각은 칼의 그림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다.

게다가 카린은 식물을 키우는데도 탁월했다. 그녀의 정원과 집안 창가 그리고 식탁에는 늘 감각적으로 배치된 꽃들이 있었다.

릴라 히트나스의 풍경을 담은 수채화 화집은 1899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알버트 보니에 출판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책이 되었다. 칼과 카린이 핸드메이드로 만든 가구와 인테리어는 책을 통해 스웨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릴라 히트나스는 순식간에 유명해진다. 이 책에는 24점의 수채화 작품이 실렸는데 모두 릴라 히트나스의 여러 방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p. 309)

사진과 똑같은 그림을 보면 경이롭고는 하지만 그림은 역시 사진과 달리 똑같지 않음으로써 풍기는 분위기가 멋을 더해줄 때가 많은 것 같다. 칼의 그림을 통해 카린의 인테리어가 책에 담겼을 때 그 책은 스웨덴 사람들의 로망을 담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카린은 가족과 가정을 위해 그림을 포기했고 가족과 가정을 위해 테피스트리 작업과 디자인을 시작했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혔고 직접 디자인한 직조물과 자수로 집안을 꾸몄다. 미술을 전공했던 덕에 독창적인 디자인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탄생했다.

칼에게 작업실이 있었다면 카린에게는 재봉실이 있었다. 카린은 이 공간에서 릴라 히트나스를 꾸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p. 326)

카린이 수공예로 생활용품을 디자인하고 창작하는 일은 칼 라르손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였따. 둘은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성을 펼쳤고, 카린은 어머니, 예술가, 뮤즈일 뿐만 아니라 트렌드세터, 생활계의 거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신의 예술성을 집안 곳곳에 표출했다. (p. 329)

공간이 주는 힘은 크다. 칼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듯이 카린에게는 인테리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다. 거실 한모퉁이 부엌 한켠에서 수를 놓고 테피스트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공간에서 그녀스타일데로 작업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러한 자신만의 공간이 있었기에 카린의 인테리어적 감각이 성장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둘은 8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부부애가 좋았지만 침실이 따로 있었다. 문이 없는 옆방이긴 해도 이 부부의 독립된 침실은 그들의 독립된 자아를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함께 할 것은 함께 하고 따로 할 것은 따로 할 수 있는 문화를 공유했던 그 공간 그 집은 여러 면에서 다시한번 많은 이들이 꿈꾸는 공간이 실현된 곳이었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천국'이라는 제목을 붙인 화가가 또 있었을까? 저 멀리 자신의 보금자리인 릴라 히트나스를 배경에 두고 평화로운 숲에서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자화상을 그린 그에게 그 순간이 아마도 천국 이었나 보다. 천국을 살면서 경험하다니... 부러울 수 밖에 없다. ㅎ

 

 

"마음속에 파티를 매일 여는 자는 삶 전체가 파티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인 297 페이지의 그림엔 카린과 7명의 자녀가(한명은 아기때 죽었다 ㅠ) 한꺼번에 나온 유일한 그림이었다. 그들의 삶이 매일매일 파티처럼 보여서인지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인 칼을 제외한 모두가 나와서인지 인상적이었는데, 좀더 보다 보니 생각났다. 아차차 이 그림은 앞에 나왔던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 페이지에서는 양 쪽 사이에 끼어 가려진 그림부분이 앞 그림에서는 한 페이지에 오롯이 담긴 덕에 나와있었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한 남자. 아마도 칼 라르손은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가족들이 매일 즐거운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것일까, 그가 꿈꾸었고 유지하고자 했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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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 서가명강 시리즈 11
남성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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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

 

'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이른바 서가명강 시리즈 11권인 이 책은 책으로도 (유투브나 팟캐스트를 통해) 강연으로도 들을 수 있는책이라고 한다. 책 뒷날개를 보니 그동안의 시리즈들에도 관심이 간다. 심도깊은 내용을 대중들이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라고 한다. 지구환경 중에서도 해양학을 전공한 저자는 해양관측 중심의 자연과학 연구와 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는 학자답게 인류 공존의 지혜를 바다에서 찾고 있는 해양과학자 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그 해결점이 바다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지구의 위기에도 희망은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결국 희망은 '바다'에 있다. (들어가는 글 中)

저자는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리고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용어정리를 깔끔하게 해준다. 학문의 분류에서 '지구과학' 에 대하여 그리고 재해, 재난, 재앙 과 방재 & 방제 의 구분 그리고 기후변화와 기상현상의 변화를 구분짓는 등의 설명을 항상 앞에서 먼저 명확이 알려줘서 좋았다.

원래 자연현상은 인류를 해하려는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다. 자연재해는 지구 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따라 발생하고 있는 자연현상을 인간이 잘 이해하지 못해 생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결과 발생한다. 따라서 자연재해는 세계 인구의 증가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에 취약한 곳에 예전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재해도 더 빈번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9)

인간의 행동에는 대부분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목적을 갖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현상은 자연이 이렇게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흐름이고 순환이다. 지구는 안에서부터 뜨겁게 활성화되어 있는, 어쩌면 살아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활동성을 갖고 있다. 그러한 지구를 자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재해는 재난이 되고 재난은 재앙이 되어 인류를 덮칠 것이다.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힘의 근원에는 크게 지질 순환, 구조 순환, 암석 순환, 수문 순환, 생지화학 순환 다섯 가지가 있다. (p. 23)

지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순환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러한 순환을 통해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질순환은 대륙지각과 해양지각의 움직임, 구조순환은 지구 내부의 맨틀의 대류에 의한 움직힘, 암석순환은 화성암-퇴적암-변성암의 순환, 수문 순환은 물의 순환(구름, 수증기, 비, 강이나 바다 그리고 다시 구름), 생지화학순환은 탄소, 질소, 인 등의 화학원소들이 대기권, 암석권, 수권, 생물권을 통해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해해는 자연현상과 구분해야 한다. 모든 자연현상이 재해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오히려 자연현상의 순환을 인간이 방해해서 흐름이 깨어진 나머지 재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재해의 피해가 사회적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관점으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포괄한 융복합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p. 39)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인명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이 피해를 입고 그것을 복구하는데 있어 정치경제적 방법이 필요하다. 자연재해를 해결하는데 이렇게 다방면의 협력이 필요하듯 자연재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도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서로 연결된 접근이 필요하다. 미래는 정말 융합의 시대인가 보다.

온실효과는 지구온난화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이지만 오늘늘 토지 이용도가 변하고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나 메탄 등의 농도가 증가한 결과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빙하를 녹이고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해양을 산성화시키는 등 지구환경 변화를 연쇄적으로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린다. (p. 83)

그야말로 위기의 지구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하면 미세먼지를 비롯한 공기의 오염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생지화학 순환을 통해 대기 중 증가한 이산화탄소 농도가 해양 산성화로 이어져 해양생태계를 파괴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지구온난화로 증가하는 열의 상당 부분을 대부분 해양에서 흡수하므로 해류의 변화가 생기고 이러한 변화는 다시 대기의 변화를 일으켜 결국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것은 땅의 나무보다 바다의 플랑크톤 역할이 훨씬 더 큰데, 바다가 산성화되면 플랑크톤은 줄어들고 만다. 바다의 플랑크톤은 단순히 물고기들의 먹이역할만 하는게 아니었다. 지구는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바다의 플랑크톤이 육지의 나무보다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서는 지구의 위기를 전 세계에 경고하기 위해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을 계산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사용하는 물, 공기, 토양 등 지구의 자원 사용량과 폐기물 등을 계산해 각종 환경오염량이 지구의 생산 및 자정 능력을 초과하는 시점을 말한다. 이를 계산한 결과 1970년에만 하더라도 자원을 그해에 주어진 것 내에서만 사용했으나, 그 추세가 점점 짧아져 2019년에는 한 해 중 8월이면 주어진 자원을 모두 소진하고 다음 세대가 사용할 자원까지 끌어와 사용하는 상황이다. 오늘날에는 지구 하나로 부족해 적어도 1.7개의 지구가 있어야만 인류에게 필요한 생태 자원을 모두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p. 151)

오늘날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인간이 중심에 있는 소위 '인간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발전은 지구환경 악화라는 대가 위에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편리한 생활을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대기 중의 산소를 소모하고 온실가스를 증가시켜 지구온난화를 유발했다. 그리고 이는 지구의 탄생 45억 년 동안 충전된 배터리를 400년도 안 되어 모두 소모해버리는 상황을 가져오고 있다. (p. 155)

인류는 지금 후대가 써야할 지구의 에너지를 당겨서 쓰고 있다. 지구는 하나인데 하나가 더 필요할 지경이라니... 각 나라별로 인구 대비 몇 개의 지구가 더 필요한지 계산한 결과를 저자가 알려주는데, 우리나라는 스위스, 러시아와 함께 3.3개의 지구를 필요로 하며, 미국이 4.8개, 호주가 5.4개 라고 한다. 이것을 나라별로 자원이 소진되는 날짜를 계산할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4월10일이면 그해에 주어진 모든 자원을 사용하므로 그 이후로는 후대의 자원을 당겨쓰는 것이다 보니 3.3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인 것이라고...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렇게 지구를 과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식이라면 자원고갈은 시간문제다. 정말 각성이 필요한 때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무분별하게 자원을 소비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지구를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능력과 자격도 없다. 대안 없는 선택 앞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행동을 바꾸는 것뿐이다. 미래 세대에 빚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p. 189)

육지의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고 해양의 자원을 욕심내는 쪽으로 가서는 안된다. 바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육지만큼 직접적으로 피해가 눈에 보이지 않을뿐 넓은 바다 곳곳에 쓰레기섬이 만들어지고 수온이 올라가는등 바다도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을 인지하고 지구의 올바른 순환을 고려함에 있어 바다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아내려면 바다를 연구해야 한다.

유엔에서 설정한 지속 가능 개발 목표 17개의 항목 중 하나가 해양생태계일 정도로 해양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인류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더해 향후 10년은 해양과학을 통해 지구환경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규명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유엔에서 2021년부터 2030년까지를 해양과학 10년으로 선언할 만큼 지구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바다의 중요성과 재원 투입의 필요성은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해양과학 10년의 목표는 총 여섯 개다.

깨끗한 바다, 건강하고 회복력이 강한 생태계로서의 바다, 예측 가능한 바다, 안전한 바다, 지속 가능한 생산적인 바다, 투명하고 접근 가능한 바다. (p. 255)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예로 들어 데이터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다에 관한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분쟁지역도 있고 나라별 입장도 달라서 해양조사가 쉽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한다. 심층까지 조사하는 기술도 아직 미비하다. 데이터를 조사하는 방법도 축적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직면한 지구환경 문제들을 과학으로 풀어내려면 그 시작점은 해양관측 데이터 축적임을 저자는 강조 또 강조한다. AI의 딥 러닝도 수많은 데이터들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살만한 지구를 후대에 물려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데이터라도 잘 챙겨주어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융복합 해결책을 찾는 일에 소모적인 경쟁이나 불필요한 논란 등은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외롭고 삭막한 '각자도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존'의 지혜 속에 있다. (나가는 글 中)

물은 늘 생명의 어머니 역할을 맡곤 했다. 바다는 지구의 어머니 라는 말을 어릴 때 과학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의 어머니를 너무 홀대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 지구가 인류를 품어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계속 이용만 했던 지구를 이제는 인류가 좀 돌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지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를 중심에 두고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 해양학자들의 어깨가 무거울 듯 한다. 그 무거움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응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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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인류사 -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경덕 옮김 / 부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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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허약한 종이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나

 

국내 번역서 중 일본책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많지만 나는 일본번역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문학은 정서에 맞지 않고 역사는 (근대사는 특히 심하지만 근대사를 포함한 세계사 또한) 왜곡이 심한데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 왜곡한 건지 판별할 정도의 전문성이 내게 있지 않으니 그냥 안 읽는다. 일본번역서를 읽지 않아도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좋은 책들이다.(세상엔 정말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책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와 호모사피엔스의 기원을 다룬 책이다. 동서양 구분도 없고 인류가 지금의 인종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석기시대 이전의 인류에 대한 책이다. 고고학 책은 제목이 주주는 옛날같은 느낌과 다르게 최신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과학기술의 빠른 발달로 화석의 연대가 좀더 정확하게 측정되고 유적의 연구가 좀더 세밀하게 관측되기에 고고학은 날로 리즈를 갱신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인류의 최신 연구결과를 담은 이 책은 궁금했고 결과적으로 매우 유익했다.

우리 조상은 약했지만 아니,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신체적으로 불리한 종이 살아남았다.

무기가 없는 쪽이 살아남았다.

보온에 취약한 종이 살아남았다.

책의 앞날개 부분에 적힌 이 내용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다 상식을 뒤엎는 기분이다. 지금의 인류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다. 그리고 우리만 살아남았기에 우리가 가장 우주한 종 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을 저자는 차근차근 증명해내고 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대형 유인원의 공통 조상은 약1500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공통 조상으로부터 먼저 오랑우탄 계통이 갈라져 나왔고, 뒤어어 고릴라 계통이 갈라져 나왔다. 그 이후 침팬지 계통과 사람 계통이 갈라져 나왔는데,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7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침팬지 계통에서는 약200만~100만 년 전에 보노보 계통이 갈라져 나왔다. (p. 20)

사람이 특별한 존재인 이유 두 가지가 이 책의 주제다. 왜 사람이라는 생물의 독특한 특징이 진화했을까? 왜 인류 가운데 사람만이 살아남은 것일까? 이 두 개의 의문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제부터 그 의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p. 23)

진화론을 생각했을때 '뭐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말은 굉장히 잘못 되었다. 원숭이는 일단 고인류에서 조차 우리와 상관없는 먼 계통이다. '뭐 침팬지가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말도 잘못 되었다. 침팬지는 우리 조상이 아니다.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에게서 갈라져 각각 나온 것이지 침팬지가 조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인원의 조상은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쳤다. 진화라는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다양했는지 몰랐다.

인류와 침팬지는 약700만 년 전에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700만 년 동안 인류는 다양한 특징을 진화시켰고 현재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침팬지류와 갈라진 이후 인류 계통에서 가장 먼저 진화한 특징은 무엇일까? 화석 기록을 토대로 보면 최초로 진화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직립 이족 보행과 송곳니 크기의 축소가 그것이다. (p. 27)

얼마전에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라는 책을 읽었었다. 도구, 기원, 예술 3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국내 대표적 고고학박물관장의 책이라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주제에 대한 연구분석서가 아니라 그동안 다른 매체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었기에 제목이 주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진 못했었다. 인류의 도구와 예술표현의 발달을 보며 인류만의 특성을 강조하긴 했는데,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이유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2부 기원 에서 '직립 이족 보행' 의 강조였다고 생각된다. 뇌의 발달 보다 직립이족보행 의 시작이 인류를 다른 계통으로 발달시키는데 가장 큰 이유였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책은 일맥상통한다. 즉, 인류가 똑똑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진화는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설명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직립 이족 보행이 초원에서만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직립 이족 보행은 나무가 있는 환경에서만 진화했다. (p. 38)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네발걸음에서 직립 이족 보행으로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 발로 걷기와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의 중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화석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상한 게 아니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체 수가 적으면 진화가 빨리 일어난다. 개체 수가 적은 경우는 자연 선택보다 유전적 부동이라는 우연의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생활 조건에 유리한 개체를 늘려서 진화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불리한 개체를 제외하고 생물을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즉 진화를 멈추는 경우가 훨씬 많다. 네발걸음에서 직립 이족 보행으로의 진화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이 시기의 인류는 생존 기간이 짧고 숫자도 적다. 따라서 화석이 남기 힘들다. 그 때문에 중간 단계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p. 45, 46)

인류의 진화를 네발에서 두발로 걷기까지의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박물관이나 책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읽었었다. 인류는 그렇게 차근차근 진화하지 않았고 그렇게 한종류가 꾸준히 진화하지도 않았다. 인류는 다양한 종이 동시대를 살았고 그 각각이 서로 다른 특징과 서로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으며 그렇게 멸종되거나 생존한 것이지 명쾌한 그림 한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학명을 라틴어로 한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언어가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학명은 몇백, 몇천 년이 지나도 계속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언어로 학명을 정하는 게 좋다. 그래서 이제 변화할 일이 없는 죽은 언어, 즉 라틴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p. 49)

동물이나 식물의 학명을 보면 다 라틴어인 것에 대해 나는 그저 서구문명이 먼저 그런 계통이름짓기를 시작해서 그런 것이겠거니.. 유럽을 관통하는 로마문화의 잔재인건가.. 학문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의 영향이겠거니..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어의 특징과 죽은 언어 라는 설명이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과거 죽은 언어들 중에서 라틴어가 선택된 것에는 분명 다른 이유도 더 있었을 것이다.

소림이나 초원처럼 위험이 많은 환경에서는 집단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그리고 집단 생활을 하면서 일부일처의 형태로 짝을 이루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인류 이외에는 없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짝을 만든 것은 인류가 처음이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짝을 만드는 것과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 것 모두 다른 영장류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인류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어쩌면 집단생활 속의 일부일처제와 직립이족보행은 서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론해보면 일부일처의 사회에서는 음식물 운반 가설은 무리 없이 성립되고 직립이족보행이 진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의 송곳니는 작아졌다. 이 사실은 인류가 일부일처제나 그와 유사한 사회를 만들었다는 걸 알려준다.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음식물 운반 가설은 직립이족보행이 진화한 이유 가운데 가장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p. 77)

원래 유인원의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는 없었다. 암컷을 두고 다투는 싸움에서 위협적인 송곳니는 무기였다. 일부다처 혹은 다부다처 사회에서는 누가 내자식인지 모르므로 수컷은 자식에게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직립이족보행을 시작한 고인류는 자유로워진 두손으로 음식을 가져가서 동족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다. 음식을 나눌 정도의 사이라면 내식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믿음은 일부일처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 가족이 기반이 된 공동체에서 송곳니라는 무기는 필요없어졌다. 직립이족보행을 시작한 고인류는 유일하게 발정기가 없어 다산이 가능하고 일부일처로 결속력이 강해지면서 공동체의 몸집을 불리게 된다. 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모여있으면 생명의 위협을 덜 수 있었다.

삼림과 비교하면 초원은 먹을 것도 적고 육식 동물에게 공격당할 위험도 컸다.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아마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삼림의 크기가 감소하고 유인원 가운데 나무타기에 능숙하지 못했던, 혹은 삼림에서의 생활에 능숙하지 못했던 개체가 초원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굳건한 발걸음으로 초원을 걸었고 초원의 음식물을 먹었으며 결과적으로 번영했다. (p. 121)

지금까지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뛰어난 것이 이기고 살아남는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자손을 많이 남긴 쪽이 살아남는다' 뛰어난 것이 이기고 살아남은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뛰어났기 때문에 자손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경우다. (p. 127)

초기 호모속의 분류는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이들 화석에서 커다란 진화의 흐름은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뇌가 커졌기 때문에 석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뇌가 커졌다는 것이다. (p. 137)

다같이 울창한 숲에 살때 유인원들은 대개 과일이나 식물을 먹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삼림이 줄어들면서 숲에서 약체들이 쫓겨났을때 그 약체들 중 잡식성만 살아남았다. 맛있는 과일이 아니어도 초원에서 육식동물이 먹다남긴 사체의 골수를 먹고 뼈에서 고기를 발라 먹는 종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초원의 먹거리를 발견하는데는 두발로 서서 멀리까지 보는것이 유리했다. 뼈에붙은 고기를 긁어내고 뼈를 부숴 골수를 먹으려면 석기사용이 유용했다. 그런 동물성 먹거리는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량을 감당하게 해주었다.

'직립 이족 보행을 시작하면서 사람의 손은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손으로 석기 등을 제작했고 뇌가 커졌다'라는 말도 있으나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니다. 인류는 직립 이족 보행을 시작한 후 약 450만 년 동안 석기를 만들지 않았고 뇌도 커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생긴 걸까?

뇌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인간의 경우 뇌는 체중의 약2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몸 전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약20~25퍼센트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뇌는 연비가 나쁜 기관이다. 이정도로 연비가 나쁜 기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계속 먹어야 한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은 고기이다. 따라서 계속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뇌가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석기가 필요하다. 석기를 만들게 되면서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뇌가 커진 것이다. (p. 139)

저자는 여기서 재미있는 의문을 제기한다. 고기와 뇌의 관계를 봤을 때, 그렇다면 왜 사자의 뇌는 인류보다 크지 않을까? 사자는 고기를 엄청 먹는데! 저자가 스마트폰 앱을 예를 들어 하는 설명이 재미있다.

스마트폰에는 여러 유료 앱이 있다. 매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료 앱은 충분히 사용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큰 뇌는 내려받은 유료 앱과 같다. 뇌가 크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즉, 배가 계속해서 고파진다. 뇌의 크기가 제각기 다른 사자의 무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불행하게도 먹이를 전혀 잡지 못한 경우 뇌가 큰 사자부터 죽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뇌를 키우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 사용하지 않을 유료 앱은 내려받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제대로 앱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내려받는 것이 좋다. 초기 호모속의 경우 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도의 뇌를 키우는 것은 이익이 나는 일일 것이다. 호모속은 조금씩 앱을 내려받아서 그때마다 매번 앱을 잘 구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자는 그렇지 않았다. 사자는 엄니를 날카롭게 만들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뇌가 조금 커져도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자는 고기를 먹기 위해 엄니를 크게 만들었고 사람은 고기를 먹기 위해 뇌를 키운 것이다. (p. 140~141)

두 발로 서서 걷다가 걸어야 할 거리가 넓어지면 두 발로 뛰어야 했을 것이다. 많이 움직인 만큼 많은 먹거리를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갔던만큼 다시 돌아오기위해서라도 뛰어야 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달린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 였을 거라고 한다. 두발로 움직이는 것이 원활해지고 소화가 쉬운 고기를 먹으면서 장의 길이도 짧아지고 장이 짧아져 허리가 가늘고 길어지면 달리는 데 유리해지고... 진화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나 소화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면 한가한 시간이 생긴다. 따라서 사자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아주 많다. 인류에게 생긴 이런 한가한 시간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적 활동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석기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석기에 필요한 돌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영어 스쿨(학교)의 어원은 라틴어 스콜레(한가함)이라고 한다. 한가로울 때 학습과 같은 지적 활동이 일어난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였을 것이다. (p. 149)

라틴어의 매력은 어원의 의미에 있는 것 같다. 고대인들의 생각은 참 멋질때가 많았다.

현대의 삶은 참 바쁘다. 바쁜 와중에 필요와 욕망에 의해 발달하는 문명이 한가함 속에 발달한 문명과 얼마나 어떻게 차이가 날까 문득 궁금해진다.

호모 에렉투스는 먼 거리를 걷거나 달렸을 것이고, 따라서 체온을 떨어뜨리는 일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땀을 흘리는 것은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인류는 땀을 흘리기 위해 체모를 없앴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력한 증거가 없어서 확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p. 151)

사람의 체모는 잘 보이지 않지만 털 하나하나가 가늘고 짧아서 그렇게 보일뿐 침팬지의 체모 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더운 아프리카 땅에서 먼 거리를 초원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체온조절이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모의 변화는 화석에서 알아낼 수가 없다.

약30만 년 전이 되면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지닌 형태의 화석이 출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12만 5천년 전의 온난한 간빙기에 접어들자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은 급증한다. 그러나 약4만8천년 전의 한랭화로 네안데르탈인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약4만 7천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들어가면서 다시 인구가 회복되지 못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에 멸종했다. (p. 193)

고인류 중에서 진화를 거쳐 (호모사피엔스 한 종만 남기 이전에) 최종적으로 번성했던 두 집단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였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일찍 추운지방에 정착했기에 한랭화 기후에도 강했다. 하지만 멸종했다. 왜일까?

네안데르탈인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아니 오히려 사람보다 석기를 더 잘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새로운 석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 사람이 더 뛰어났을 것이다. (p. 218)

사람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서 상징화 행동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하면 언어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추상적인 것, 예를 들면 '평화'를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떠올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사전에는 '나' 혹은 '고기'는 있어도 '평화'는 없었을 것이다. (p. 227)

문화가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필요하다. 누군가 멋진 발명을 해도 다른 사람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발명은 퍼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발명은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그런 부분에서 사회적 기초가 약했던 게 아닐까? (p. 237)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 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했다. 도구와 불도 사용했고 언어도 사용했다. 뇌용량도 네안데르탈인이 더 컸다. 하지만 뇌가 크면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므로 더 많이 먹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수가 늘어나면서 생존지역이 겹쳐졌을 때 먹거리는 두 집단이 공유할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의 문명발달 속도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적응속도가 더 빨랐다. 먹거리의 유무는 멸종과 생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 중 아프리카인과는 DNA의 변이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반면 중국인이나 프랑스인과는 DNA의 변이를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난 후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했음을 의미한다. 교잡이 일어난 장소는 아마 중동일 것이다.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호모 사피엔스 DNA의 약2퍼센트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온 것이다. (p. 256)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난 이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세계로 퍼져나갔다. 단기간에 다양한 환경에 적응한 것에는 문화적 힘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으로부터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얻는 것 또한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 진출에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p. 259)

호모 사피엔스가 의식적으로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는데 있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유용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란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동족을 공격하고 살해하는 것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직접적으로 호모사피엔스가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생물의 생존과 멸종은 자손의 규모에 달려 있다. 따라서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네안데르탈인의 아이들 수보다 우리 아이들의 수가 많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 명의 여성이 많은 아이를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서든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점이다. 추워도 더워도 우리는 태연하게 살 수 있다. 의복과 같은 문화적인 궁리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는 넓지만, 그 크기는 유한하다. 유한한 지구에서 계속 인구를 늘려가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에서 견디며 살 수 있어야 했다. (p. 265)

많은 생물들이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겨 멸종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수가 늘면 그만큼 유한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의 양이 줄어든다. 아무리 다정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p. 266)

호모 사피엔스 한 종만 살아남았다고 해서 진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를 짧게 살다가는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진화가 멈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자연은 늘 변하고 있고 인류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진화는 수만년 수백만년 수천만년 에 걸쳐 이루어져 왔고 인간의 역사는 고작 몇만년 혹은 몇천년 정도일 뿐이다. 미래에는 AI가 대신 생각해주는 동안 인간의 뇌가 작아질 수도 있고 첨단 기계들이 대신 움직여주는 동안 인간의 몸에서 사용되지 않는 부분들이 퇴화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존이다. 고인류 중에서 현생 인류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지구생명체 중에서 인류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한한 지구에 살면서 인류만 생각하다가는 인류도 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절멸의 인류사> 를 읽으며 고인류의 진화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앞으로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역사는 늘 현재의 삶에 가르침을 준다고 하는데, 역사 이전의 진화또한 큰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인류의 진화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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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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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f is the Thing with Feathers 슬픔은 날개 달린 것

슬픔... Grief ?? (특히 누구의 죽음으로 인한) 비탄

제목부터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 그리고 까마귀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전부;

까마귀는                                            까마귀에

그것은 충분해, 실린 짐의 무게는 바큇자국이 말해주겠지 - 에밀리 디킨슨 -

                            까마귀의       까마귀가

'에밀리 디킨슨' 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며 부분부분 원래의 글자들 대신 '까마귀'를 써놓은 페이지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테드 휴스' 라는 시인이 첫번째 부인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 후 긴 침묵 속에서 완성했다는 '까마귀'라는 시집을 종종 등장시키는 것으로 에밀리 디킨슨 과 테드 휴스 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동시에 그들의 시적 슬픔을 내재시키고 있었다.

시인을 사랑하는 작가라서 그런지 그의 첫 소설이라는 '슬픔은 날개 달린 것' 이라는 이 작품은 시집크기의 얇고 작은 소설로 시적 리듬과 상징이 잔뜩 들어있는 소설이었다. 시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롱 웨이 다운' 이라는 소설이 생각나기도 했고, 일관된 상징들이 읽힌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의 '흰' 이라는 책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한강 작가는 '이상한 온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책' 이라며 추천했다고 한다. 상징과 시적미학이 혼재된 소설이라는 점에서보면 한강 작가의 소설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도 싶다.

테드 휴스의 '까마귀' 라는 시집을 오마주하는듯 슬픔을 까마귀로 은유하는 이 소설속 배경은 비슷하다. 아내와 사별한 슬픔.

나는 줄줄이 찾아오는 애도객들을 대처하는 데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다보면, 기이하게도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인류학적 지각을 얻게 된다. 슬픔에 압도된 사람들, 애도를 가장하는 사람들, 지금껏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사람들, 너무 오래 머무는 사람들, 아내가, 내가, 그리고 아이들이 새로 사귄 친한 친구들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대체 누구였는지 알아처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지구가 두꺼운 띠를 이룬 우주 쓰레기에 둘러싸인 그 놀라운 사진, 바로 그 사진 속 지구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p. 15)

아빠, 아이들, 그리고 까마귀 로 화자가 번갈아가며 바뀌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돌고 돌지만 같은 위치가 아닌 그 경사를 빙 둘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다다른 꼭대기, 그 지점을 향해 소설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내를 잃은 남자는 애도와 상실에 대한 분노를 오가던 중 까마귀를 만난다. 말하는 까마귀.

네가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떠나지 않을 거야.

날 내려줘, 나는 말했다.

안녕이라고 말해주기 전까진 안 돼. (p. 18)

 

남자에겐 어린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은 어리지만 알고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어쩌면 아빠보다 먼저 적응하고 있었다. 그 변화에.

아빠가 우리를 우리 방으로 데려가서는 침대에 앉아 자기 양옆으로 앉아보라고 말하기 전부터 뭔가가 변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이제 아빠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고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용감한 아이들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짐작했고 이해했다. (p. 26)

아이들은... 이해했다! 하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신경이 쓰여. 인간들이란 슬픔에 빠져 있을 때를 빼면 별 재미가 없거든. 건강, 재난, 기근, 악행, 찬란한 것들 또는 정상적인 것들은 별로 내 흥미를 끌지 못하지만 엄마없는 아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엄마 없는 아이들은 순수한 까마귀야. 나처럼 감상적인 새에게 그것은 숙성되고 진하고 그윽해서, 마치 새 둥지처럼 약탈하기에 아주 그만이야. (p. 29)

까마귀는 아빠와 아이들 곁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녀는 죽느라 바쁘지 않았고, 간병의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사느라 바빴고, 그러고는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p. 36)

소설속에서 가장 인상깊은 문장이었다. 가족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여전히 삶의 현실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떠난 이의 죽음의 흔적보다는 삶의 흔적이 많다는 것이 이토록 절절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러니 까마귀와 함께 살수밖에 없었던건지도...

아내는 나에게 좀 이른 생일 선물을 주겠노라고 말했다. 그것은 플라스틱 까마귀였다. 우리는 사랑을 나눴고, 나는 그녀의 견갑골에 키스하면서 부모님이 내게 아이들은 날개가 자란다고 거짓말했었다는 이야기를 다시금 들려주었다. 아내는 "내 몸은 새가 아니야" 하고 말했다.

           다시.

                 날개.

                        사랑.

                               내 몸은 새.

다시. 제발 모든 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p. 57)

 

회상과 현재와 우화와 실재가 혼재하는 이 소설은 판타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삶이 때론 판타지처럼 여겨질 때가 있을 뿐이다.

아빠와 까마귀가 거실에서 싸우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끄아악 끄르르 까악, 끄아악 끄르르 하고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빠는 그만해, 그만해, 까악, 까아악 하고 말하며 헛기침을 하고, 헛구역질을 하고, 침을 뱉고, 욕을 하고, 쉰 목소리로 꺽꺽거리고, 컹컹 짖고, 흑흑 흐느꼈는데, 그것은 단속적으로 들려오는 아빠의 소리와 쿵 했다 꽥 했다 찌릿찌릿한 파열음을 내는 난폭한 새소리가 펼치는 괴상한 가믈란 즉흥연주 같았다.

까마귀는 털이 헝클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녀석은 조용히 문을 닫고 우리가 앉아 있는 부엌 식탁에 함께 앉았다. (p. 63)

 

번역자는 작품의 말미에 덧붙인 말에서 원작에 쓰여진 의성어들이나 비유적 표현들을 번역하는데 고심했다고 한다. 영어의 운율과 한글의 운율도 다를 뿐더러 비유라는 것이 은유라는 것이 읽혀지는 사회의 문화를 포함하는 것이기에 아마도 엄청 고민이 됐을 것 같긴 하다.

여하튼, 아빠가 슬픔과 싸우고 있는 동안 아이들 곁에도 어쩌면 당연히 슬픔은 늘 함께 하고 있었다. 아빠가 슬퍼하는 모습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친구가 말했다. 매사에 아내를 끼워넣고 생각하는 습관을 좀 버려. 슬픔과 터무니없는 집착은 다른 거야. (p. 79)

하지만 애도라는 것이 원래 지금 여기 없는 사람을 끊임없이 생각하다 조금씩 덜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아니던가... 어쩌면 슬픔은 집착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녀는 감기에 걸렸었다. 아내가 아픈 건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밖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아내는 우리가 집안에서 날뛰는 꼴을 참아줄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공원으로 썰매를 타러 갔다. 아내가 없으니 우리 꼴은 한심했다. 아이들은 자기들 모자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아이들은 끈으로 연결된 손모아장갑 양쪽을 패딩 소매 안으로 집어넣을 수 없었고, 다른 덩치 큰 아이들이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있는 꼴을 보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내가 장화도 신기지 않은 채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길을 채 다 내려가기도 전에 아이들의 작은 발가락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둘 다 징징댔고, 우리는 셋 다 엄마 없이는 제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실감했다. 아이들은 나를 동정했다. 나는 아버지로서의 내 탁월함이 전적으로 아내에게 의존한 덕분이었음이 드러나자 심한 당혹감을 느꼈다. 만일 그날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의 최종 리허설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나는 '자 다들 힘을 좀 내봐 요 똥덩어리들아, 혹은 날 도와줘' 하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날 데려가, 대신 날 데려가줘 제발, 하고. (p. 134)

아빠, 아이들, 까마귀가 번걸아가며 현실 혹은 판타지를 이야기하다 보니 각각 다른 에피소드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런 짧은 글들이 모여 전체 소설의 흐름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이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한페이지를 몽땅 옮겨 적었다. 적으면서 또다시 읽어도 여전히 가장 슬픈 장면이다.

나는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괜찮아졌다. 하지만 나는 조용한 성격이며 감상적이지 않다. 나의 형제는 까아아악 하고 외치고 그들에게 말을 건다. 내 인생에서 끔찍했던 그 몇 년은 얼룩진 까마귀였다. 그리고 털어놓을 작은 비밀이 하나 있다. 나는 심지어 그 책을 읽어본 적도 없다. 나는 휴스가 싫고 시가 싫다. (p. 142)

그래 아냐, 나는 말했다. 아빠도 동의해. 우리는 잘해나가고 있어.

방에서 나올 때 까마귀가 내게 따라붙더니 문을 닫고는, 내게 친밀한 헤드록을 걸었다.

넌 혼자가 아니야. 꼬맹아. (p. 146)

나는 우리 가족의 친구인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내는 내가 상상의 존재인 까마귀와 함께했던 가족 휴가를 좋은 기억으로 떠올리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고,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그건 까마귀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어도 좋았고, 일이 이런 식으로 풀릴 수도 있었고 저런 식으로 풀릴 수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다소 이로운 존재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엄마가 그립다. 우리는 아빠를 사랑한다. 우리는 까마귀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건 그렇게 기이한 일이 아니다. (p. 147)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자란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일까. 다 자란 어른은 오히려 변하기가 쉽지 않다. 늘 같은 모습으로 제자리에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늘 다른 자리에서 갑자기 등장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까마귀는 늘 다른 이야기를 하고 남자에게 까마귀는 늘 같은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까마귀가 아빠에게 뭔가 가르쳐준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속된 표현을 쓰자면 : 신념.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미안하다고 외치는 말, 다시 말해서 '네, 그래요' 다시 말해서 '고마워요' 다시 말해서 '계속 전진' (p. 154)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 내 임무는 끝났어. (p. 158)

엄마를 그리워하는 일에 관한 한, 그들은 전문가였어. 나에게는 더없는 기쁨이었지. (p. 159)

우리는 아내가 사랑했던 장소로 갔다. 나는 차를 타고 가던 도중에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은 후로 내가 줄곧 유별난 아빠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내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까마귀와 관련된 온갖 터무니없는 일들은 이제 끝났으며, 앞으로 강사 자리를 좀더 알아볼 계획이고 테드 휴스에 대한 생각은 그만할 거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내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했다. (p. 163)

 

일상이 일상이 아닌 것처럼 살때 까마귀는 그들 옆에 존재했지만, 일상이 일상으로 느껴졌을 때 까마귀는 날아가고 없었다.

애도란 그런 것인가 보다. 일상이 아닌 시간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

파도처럼 일어나는 웃음소리 그리고 고함소리와 함께, 아이들은 내 두다리를 껴안았고, 발을 헛디디다 서로를 움켜잡았고, 뛰고, 돌고, 휘청이고, 으르렁거리고, 새된 소리를 지르더니, 이윽고 목청껏 외쳤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리고 아아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들 어머니의 삶과 노래였다.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아름답다. 이 모든 것이. (p. 165)

 

차마 하지 못했던 더이상 할 수 없었던 사랑한다는 말을 다시 목청껏 소리지를 수 있을 때 그 소리에 웃음기가 묻어 나올때 어두웠던 세상은 다시 밝아져 있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이라 제멋데로 날아왔다가 제멋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슬픔이 다녀갔기에 일상은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기이하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나는 해피엔딩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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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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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라는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됬었다.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 시간을 꼼꼼이 되짚어보고 기록해준 그 작품에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작가의 본업적 작품?!의 세계를 접했다.

<대소설의 시대 1,2> 를 읽고 더욱 팬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소설인데다, 탄탄한 기초를 가진 역사소설로 작가의 필력에 견줄만한 작가가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탁월했다.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찾아 읽고 싶다는 욕망은 차차 실현해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 <거짓말이다> 에 이어 또다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한 인간의 삶을 다룬 <살아야겠다> 를 읽어야 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지금처럼 수습되지 않았다면 뜨겁게 회자되었을 소설 <살아야겠다> 는 메르스사태 때 버림받은 생존자들의 고통을 담은 작품이었다. 픽션이지만 픽션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고 차라리 픽션이었다면 좋았을 논픽션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메르스땐 놓아버린 그 손을 지금의 사회는 놓치지 않고 잘 잡아주고 있는지 오래 생각하게 했다.

사스, 메르스, 우한폐렴(공식명칭이 아니지만 나는 왠지 우한00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의 변종들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연을 함부로 침해한 결과 동물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전염병을 일으키는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자연이 휘두르는 타노스의 장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세시대때 반복되던 흑사병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구는 대체 얼마나 늘어나 있었을까? 싶어서.

하지만 거시적으로만 보는 시각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이 소설을 통해 가슴저릿하게 배웠다.

먹는시간 화장실가는 시간 조차 아까울 정도로, 소설을 읽는 동안 울컥울컥 목구멍이 따가우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모른다고 하면 뻔뻔한 것이고 안다고 하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가장 나쁜 길임을 다시한번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다> 도 <살아야겠다> 도 널리널리 읽혀져야 하는 작품이다. 그때의 사건들이 끝난것 같아 읽을 필요 없다고? 천만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알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검사 요청 거절과 소극적인 대응 탓에 최초 신고로부터 33시간이 지난 뒤 검체를 채취하였고 44시간 만에 판정이 나온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전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 시스템에서 33시간은 분명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다. (p. 16)

원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메르스 환자가 입원했었다는 게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 외래 환자와 입원 환자 모두 병원에 발길을 끊을 겁니다. 병원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메르스를 근절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p. 19)

질병관리본부에서 정한 밀접접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는 없었다. 그물은 헐거웠고 바다는 아득했다. 시간을 끌수록 바다는 더 넓어져만 갔다. (p. 20)

 

초동대처는 한없이 미흡했고 결과는 온전히 환자들의 몫이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힘을 가진 자들이 책임을 떠넘기며 사실을 감추는 사이 전염병조차 약한자들을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염병이라도 그들을 먼저 공격했더라면 이후의 사태는 완전 다르게 진행되었을텐데.

태어난 순서대로 죽지 않듯, 응급실에 들어간 순서대로 환자가 나오진 않았다. 어떤 환자는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귀가하기도 했고, 어떤 환자는 입원실로 옮겨 가기도 했고, 어떤 환자는 응급실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김석주와 길동화와 이첫꽃송이는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응급실에 닿았지만, 그 후 닷새 동안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다. (p. 37)

치과의사 김석주, 물류창고 노동자 길동화, 언론 수습기자 이첫꽃송이 세사람의 운명은 한날 한시에 거센 파도에 휩쓸렸지만 헤쳐나오는 시기도 방법도 다 달랐다. 인생사가 똑같은 사람 하나 없이 다 다르듯이.

대기하십시오

언제까지 기다리나요?

메르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집니다

열이 높고 두통이 심한데, 치료부터 받으면 안 돼요?

보고하겠습니다. 우선은 편히 앉아 기다리십시오. (p. 103)

 

환자보다 보고가 먼저, 치료보다 보고가 먼저, 다른 그 무엇보다 행정처리가 먼저. 아파죽겠는데 편히 약하나 주지 않고 편히 앉아 기다리라는 말 부터가 그 처리 부터가 이미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인데... 읽는 동안 열통터지는 장면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참고 읽어야 한다. 화내고 짜증낸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분노를 모으고 모아 에너지를 만들어야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

5월20일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는 물론이고 5월30일 F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다시 나온 후에도, 정부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병원 명단 공개 요구를 무시하거나 거절해왔다. 아울러 환자가 발생한 의료 기관과 확진 환자 명단은 진작부터 의료계와 공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밀접접촉자에 대한 추적 관리는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p. 140)

국민들은 19일이나 병원 명단을 감춘 정부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알파벳으로만 밝힌 병원 실명을 여러 경로로 추적하여 알아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정부와 병원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깨진 자리에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유행했다. 각자도생. (p. 141)

정보 부족과 관리 미숙에 따른 허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상황이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와 병원과 보건소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많은 이들이 자가격리와 관련하여 낯설고 불편한 국면에 맞닥뜨렸다. 보건 당국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적도 지침을 받은 적도 없었고, 어디에 문의해도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 국민들은 보건 행정의 사각지대에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p. 144)

 

국가적 재난을 개인이 해결할 수 없음에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을때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국가를 움직여야 한다. 국가가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분노를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잠복기일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증상이 없으니, 그냥 병원에 있어도 된다? 또 그냥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상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가도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는 건가요?

해석은 자유겠죠. 제게 확인하진 마십시오. 전공의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지, 병원으로부터 받은 지침이 없단 뜻입니다. (p. 163)

AP가운 이잖아, 이건?

에이피가운은 일회용 위생 비닐 가운으로 간호사들 사이에선 '앞치마'로 통했다. 가운이 가슴과 배는 가려 주지만 목과 등은 노출되었다.

보호복이 부족하다고? 이렇게 큰 종합 병원에서? 너무했다. 전염병이라며? 그런데 위생 비닐 가운을 보호자들에게 입힌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p. 166)

이 병원 감염내과엔 국제적 명성을 지닌 의사들이 가득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면회를 시켜도 될 만하니까 허락했겠지.

국제적 명성? 웃기지 말라그래. 연구는 잘하는지 몰라도 격리의 에이비씨도 못 갖췄잖아. 방심해선 안 돼. 그딴 걸 걸쳤다고 감염을 막을 수 있겠어? 목과 등이 훤히 드러나 있잖아? 감염내과 과장 아니 병원장까지 모두 미친거 아냐? 어떻게 저딴 걸 입혀서 격리병실에 들여보낼 수가 있지? (p. 170)

 

사스가 비껴갔던 행운이 메르스때도 있으리라 생각했던 걸까? 사스때 잘했다는 자화자찬으로 메르스도 별거 아니네 하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걸까? 초동대처의 부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보건소 직원은 석주가 6월7일로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격리병실로 이동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또한 석주의 아들 우람 역시 자가격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며, 격리 시작 시점도 김석주가 병원에 입원하러 집을 떠난 6월1일로 잡아야 했다. 보건소 직원이 연락한 대로, 자가격리 대상자는 김석주와 남영아였고, 6월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김석주의 밀접접촉자이기 때문에 자가격리를 실시하란 통지서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p. 187)

아이 아빠가 메르스 환자로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이상 우람을 순순히 받아줄 어린이집은 서울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p. 191)

 

이미 확진자로 격리병실에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자가격리통지서를 보내는 보건당국이나, 자가격리를 마친 무감염자인 확진자의 가족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나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지금은 내 일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를 일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나 '심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는 종합 병원에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도 않았고,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높이지도 않았다.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p. 221)

꼭 일이 터져야 아는 거냐고, 이딴 식으로 대충 하면 의료진이나 보호자들에게 감염 위험이 있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 불편하겠지만 병실까지 들어올 때 차단문을 더 만들고, 보호 장구를 완벽하게 갖췄다면, 그랬더라면... (p. 236)

 

이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의 무능을 정말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

정부는 하는게 없는데 정부의 지침 없이 마음대로 의료진이 뭘 할수도 없는 현실은 정말 너무 암담했다. 지침을 빨리 현실적으로 주던가 아니면 뭘 제대로 하게 내버려 두기나 하던가.... 자기들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의료진도 하지 말라고만 하니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전염됐어야 했는데... 탁상공론 그들이.

혼자 남겨지는 날!

이런 날이 혹시 올까 걱정했는데, 오고야 말았다.

오늘, 기다렸다는 듯이, 국무총리가 사실상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p. 293)

응급실에서 한날 한시에 감염됐던 세 사람 중 김석주 환자만 남았다. 그는 혈액암이 재발된 상태였다. 메르스는 혈액암의 치료를 후순위로 미루게 했다.

살아야겠다, 그 마음뿐이에요.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렇게 죽긴 너무 아까워요. (p. 298)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의사이기에 누구보다 의료진의 입장을 이해했다. 간호사였던 아내 영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한명의 환자만 남았을 때 세상은 완치의 축배를 성급하게 들이켰다.

모르긴 해도, 그 한 사람의 공포가 가장 클 겁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큰 배 안에 오직 혼자만 병에 걸려 누워 있는 기분일 테니까요. 그런데 정부는 벌써 메르스란 단어 자체를 지우고 있습니다. 세월호란 단어 자체를 지우려 들듯이. (p. 308)

메르스에 감염되었느냐 감염시켰느냐만 놓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입니다.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고 또 감염시킬 수밖에 없었던 병원의 관습과 운영 체계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전염을 몇 명이나 시켰든, 메르스 환자는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슈퍼전파자 나 가해자 란 단어도 피해자인 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시선입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메르스 환자는 없습니다. 전염을 시켰다 하더라도, 환자는 피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메르스 환자입니다. (p. 318)

 

메르스의 전파는 병원에서 일어났다. 최초 감염자에 대한 조사가 늦었다. 전염병 메르스에 대한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지금과는 거의 모든 것이 달랐다. 적어도 메르스 감염자들에 대해서는 감염을 시킨 전파자 라는 시선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이러십니까? 메르스 사망자의 유가족과 완치된 환자에게 거액의 보상금이 지불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몇 억 된다면서요? 정확히 얼마인가요? 저한테만 살짝 알려 주세요.

헛소문이야. 어떤 놈이 그딴 허황된 소릴 지껄여?

아무 잘못도 없이 전염병에 걸려 그 고생을 했는데, 그럼 전혀 보상금이 안 나온단 겁니까? 혹시 연락을 못 받으신 건 아닙니까?

보상금 이야긴 전혀 없었다. (p. 329)

 

어쩜 이렇게 세월호 때와 똑같을까... 유족에게 보상금이 엄청 지급될거란 헛소문... 법적 책임을 물으려고 소송준비를 하는 동안 걸려오는 욕지거리 전화... 그런 헛소문과 욕지거리 전화를 하는 단체를 당시 정부는 유용하게 이용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비슷한 소문 비슷한 방해... 에혀...

그렇지...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정말 너무 안타깝고 안타깝다...

진상 규명이 반드시 되었으면 한다.

난 그런 생각이 들 때 마음이 조금, 무랄까.

죄스러운 서러움? 같은 게 있다.

남편의 이 기나긴 외로운 싸움을 세상 사람들은 알까?

격리된 우리 가족을 알기나 할까?

세상과 완전히, 마음까지도 격리된 우리를. (p. 360)

제가 특별 케이스란 걸 일반인들은 모르겠죠?

전혀! 저희 셋과 담담 교수님들 그리고 병원장님을 비롯한 극소수만 알죠. (p. 370)

 

그 바다에도 사람이 있었고, 이 마지막 격리 병실에도 사람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살고 싶은 사람이.

하지만 생존자와 극소수의 의료진은 정부지침의 벽을 넘을 수 없었고,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확률이 필요했을 뿐, 단한명의 생존자는 관심없었다.

전쟁이든 참사든 전염병이든,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의 기록일수록 어떤 그룹의 서사인지가 명확해야 해. 이대로 간다면 메르스 피해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숫자로만 남을 거야. 통계 자료로만 호출될 거고, 피해자 각자가 어떤 개성을 지녔고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상처를 입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사람 됨됨이를 기록해야 해. 그리고 피해자들의 서사는 지구 전체로 확산해야 해. (p. 376)

그들은 이미 그녀가 메르스를 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그녀는 출판물 물류 창고에 대한 미련을 접고, 전단지나 명함 제작을 주로 하는 작은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어떻게 알아내는 것인지 벌써 세 번이나 발각되었고 왜 숨겼느냐는 힐난조의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p. 396)

저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틀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없으면 이 격리병실이 제 무덤이 될 겁니다. (p. 467)

 

혼자 격리병실에 감금되어 있는 마지막 환자의 사투도 문제였지만, 완치된 사람들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생업에서 쫓겨났고 차가운 시선에 몸을 숨겨야 했다. 거기에 몇달간 혼자 격리되어 있던 투병생활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살아도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여하튼 그래도 완치된 사람들은 나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혼자 남은 환자는 메르스 환자가 아님에도 새로운 지침이 없어서 격리병실에 다시 갇혀야 했고 때문에 항암치료도 검사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려도 없었다. 그저 잊혀지고 있었다. 죽더라도 사람답게 죽고 싶다고 했는데...

이름도 모르는 전염병이 다시 이 나라에 도착하면, 그땐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메르스를 겪었으니 이번보단 낫지 않을까요?

천만에! 메르스는 훨씬 더 악화될 수도 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헌신과 또 뜻밖의 행운 속에서 겨우 막았어. 한데 보건 당국의 관료들이나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걸 자신들 실력으로 벌써 우겨 대기 시작했어. 방역망에 구멍이 훨씬 많이 뚫린 셈이지. 그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어. 잘못된 제도와 복지부동하는 관료와 무책임한 정치가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최대한 널리 알려야 해. 전염병이 김석주 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냐. 메르스란 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세월호란 배에 타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안일하고 허약한 자기합리화가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죽이지. 그렇게 비겁한 다행에 안주하면 결국 언젠가 우리도 외롭게 불행을 만나게 돼. 무리해서라도 지금 김석주씨를 끌어안아야 해. (p. 521)

 

유언비어의 난무 속에서도 영향력 있는 언론의 기자 몇명 만으로도 진실이 조금은 빛을 볼 수 있었다. 언론이 중요함을 새삼 또 느꼈다.

메르스때의 정부가 지금의 코로나를 만났다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음압 병실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온갖 병균을 모아들이죠. 항암 치료를 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제 남편은 곧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고요. 이식병동에 혹시 가 보신적 있으세요? 이식 병동의 병실들은 양압 병실입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이식 환자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병실에 있는 병균이나 바이러스를 병실 밖으로 내보내는 양압 병실이라고요. 그리고 제 남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병실입니다. 음압 병실에 계속 머물면 감염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고요. 메르스가 완치되고 림프종 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에게 그 병실은 최악입니다. (p. 552)

하지만 암환자로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메르스 마지막 환자는 메르스 치료를 하지 않음에도 음압 병실에 혼자 격리되어야 했고 항암에 필요한 검사를 받을 수 없었기에 적절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메르스 환자가 아님에도 보호장비를 풀로 갖춘 의료진에게 수없이 바늘을 찔려야 했다.

내가 지하철을 못 탄다는 걸 국무총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질병관리본부장은 알까요?

몰라서 이런 거라면 무능한 거고, 알고도 이러는 거라면 사악한 거죠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왜 아무도 사과를 안 할까요?

사과를 받아 내야죠. 그래서 소송을 하겠다는 거고요

그런 날이 올까요? (p. 597)

 

나도 정말 궁금하다. 그런 날이 올까?

메르스 피해자의 서사를 쓰고자 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기억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이었다. '번호'가 아닌 '사람'을 되찾아야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무너진 시절이었다.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 게다가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 <마션>의 감동은 공동체가 그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따위로 바꿔치기 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온다.

문학은 가난한 자 약한 자 아픈 자의 편이라고, 22년 전 장편을 처음 출간할 때부터 믿어 왔다. 문학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또 그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이 사람다운 삶을 시작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싶다. (-작가의 말 中-)

 

김탁환 작가님이 정말 너무 고마웠다. 역사는 기록이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누구도 하지 않은 그 기록을 열심히 모아 이런 소설로나마 역사를 만들어 주신 것이 정말정말 존경스러웠다.

역사는 가르침을 주려고 의도하지 않은 채 흘러간 시간일테지만 역사는 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깨우침을 준다. 그런 역사를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 제대로 된 미래가 올리는 없다. 과거-현재-미래 는 항상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고, 그 연결을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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