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절멸의 인류사 -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경덕 옮김 / 부키 / 2020년 6월
평점 :
가장 허약한 종이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나
국내 번역서 중 일본책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많지만 나는 일본번역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문학은 정서에 맞지 않고 역사는 (근대사는 특히 심하지만 근대사를 포함한 세계사 또한) 왜곡이 심한데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 왜곡한 건지 판별할 정도의 전문성이 내게 있지 않으니 그냥 안 읽는다. 일본번역서를 읽지 않아도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좋은 책들이다.(세상엔 정말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책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와 호모사피엔스의 기원을 다룬 책이다. 동서양 구분도 없고 인류가 지금의 인종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석기시대 이전의 인류에 대한 책이다. 고고학 책은 제목이 주주는 옛날같은 느낌과 다르게 최신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과학기술의 빠른 발달로 화석의 연대가 좀더 정확하게 측정되고 유적의 연구가 좀더 세밀하게 관측되기에 고고학은 날로 리즈를 갱신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인류의 최신 연구결과를 담은 이 책은 궁금했고 결과적으로 매우 유익했다.
우리 조상은 약했지만 아니,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신체적으로 불리한 종이 살아남았다.
무기가 없는 쪽이 살아남았다.
보온에 취약한 종이 살아남았다.
책의 앞날개 부분에 적힌 이 내용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다 상식을 뒤엎는 기분이다. 지금의 인류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다. 그리고 우리만 살아남았기에 우리가 가장 우주한 종 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을 저자는 차근차근 증명해내고 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대형 유인원의 공통 조상은 약1500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공통 조상으로부터 먼저 오랑우탄 계통이 갈라져 나왔고, 뒤어어 고릴라 계통이 갈라져 나왔다. 그 이후 침팬지 계통과 사람 계통이 갈라져 나왔는데,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7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침팬지 계통에서는 약200만~100만 년 전에 보노보 계통이 갈라져 나왔다. (p. 20)
사람이 특별한 존재인 이유 두 가지가 이 책의 주제다. 왜 사람이라는 생물의 독특한 특징이 진화했을까? 왜 인류 가운데 사람만이 살아남은 것일까? 이 두 개의 의문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제부터 그 의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p. 23)
진화론을 생각했을때 '뭐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말은 굉장히 잘못 되었다. 원숭이는 일단 고인류에서 조차 우리와 상관없는 먼 계통이다. '뭐 침팬지가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말도 잘못 되었다. 침팬지는 우리 조상이 아니다.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에게서 갈라져 각각 나온 것이지 침팬지가 조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인원의 조상은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쳤다. 진화라는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다양했는지 몰랐다.
인류와 침팬지는 약700만 년 전에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700만 년 동안 인류는 다양한 특징을 진화시켰고 현재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침팬지류와 갈라진 이후 인류 계통에서 가장 먼저 진화한 특징은 무엇일까? 화석 기록을 토대로 보면 최초로 진화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직립 이족 보행과 송곳니 크기의 축소가 그것이다. (p. 27)
얼마전에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라는 책을 읽었었다. 도구, 기원, 예술 3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국내 대표적 고고학박물관장의 책이라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주제에 대한 연구분석서가 아니라 그동안 다른 매체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었기에 제목이 주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진 못했었다. 인류의 도구와 예술표현의 발달을 보며 인류만의 특성을 강조하긴 했는데,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이유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2부 기원 에서 '직립 이족 보행' 의 강조였다고 생각된다. 뇌의 발달 보다 직립이족보행 의 시작이 인류를 다른 계통으로 발달시키는데 가장 큰 이유였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책은 일맥상통한다. 즉, 인류가 똑똑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진화는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설명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직립 이족 보행이 초원에서만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직립 이족 보행은 나무가 있는 환경에서만 진화했다. (p. 38)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네발걸음에서 직립 이족 보행으로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 발로 걷기와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의 중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화석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상한 게 아니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체 수가 적으면 진화가 빨리 일어난다. 개체 수가 적은 경우는 자연 선택보다 유전적 부동이라는 우연의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생활 조건에 유리한 개체를 늘려서 진화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불리한 개체를 제외하고 생물을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즉 진화를 멈추는 경우가 훨씬 많다. 네발걸음에서 직립 이족 보행으로의 진화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이 시기의 인류는 생존 기간이 짧고 숫자도 적다. 따라서 화석이 남기 힘들다. 그 때문에 중간 단계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p. 45, 46)
인류의 진화를 네발에서 두발로 걷기까지의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박물관이나 책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읽었었다. 인류는 그렇게 차근차근 진화하지 않았고 그렇게 한종류가 꾸준히 진화하지도 않았다. 인류는 다양한 종이 동시대를 살았고 그 각각이 서로 다른 특징과 서로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으며 그렇게 멸종되거나 생존한 것이지 명쾌한 그림 한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학명을 라틴어로 한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언어가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학명은 몇백, 몇천 년이 지나도 계속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언어로 학명을 정하는 게 좋다. 그래서 이제 변화할 일이 없는 죽은 언어, 즉 라틴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p. 49)
동물이나 식물의 학명을 보면 다 라틴어인 것에 대해 나는 그저 서구문명이 먼저 그런 계통이름짓기를 시작해서 그런 것이겠거니.. 유럽을 관통하는 로마문화의 잔재인건가.. 학문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의 영향이겠거니..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어의 특징과 죽은 언어 라는 설명이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과거 죽은 언어들 중에서 라틴어가 선택된 것에는 분명 다른 이유도 더 있었을 것이다.
소림이나 초원처럼 위험이 많은 환경에서는 집단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그리고 집단 생활을 하면서 일부일처의 형태로 짝을 이루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인류 이외에는 없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짝을 만든 것은 인류가 처음이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짝을 만드는 것과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 것 모두 다른 영장류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인류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어쩌면 집단생활 속의 일부일처제와 직립이족보행은 서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론해보면 일부일처의 사회에서는 음식물 운반 가설은 무리 없이 성립되고 직립이족보행이 진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의 송곳니는 작아졌다. 이 사실은 인류가 일부일처제나 그와 유사한 사회를 만들었다는 걸 알려준다.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음식물 운반 가설은 직립이족보행이 진화한 이유 가운데 가장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p. 77)
원래 유인원의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는 없었다. 암컷을 두고 다투는 싸움에서 위협적인 송곳니는 무기였다. 일부다처 혹은 다부다처 사회에서는 누가 내자식인지 모르므로 수컷은 자식에게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직립이족보행을 시작한 고인류는 자유로워진 두손으로 음식을 가져가서 동족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다. 음식을 나눌 정도의 사이라면 내식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믿음은 일부일처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 가족이 기반이 된 공동체에서 송곳니라는 무기는 필요없어졌다. 직립이족보행을 시작한 고인류는 유일하게 발정기가 없어 다산이 가능하고 일부일처로 결속력이 강해지면서 공동체의 몸집을 불리게 된다. 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모여있으면 생명의 위협을 덜 수 있었다.
삼림과 비교하면 초원은 먹을 것도 적고 육식 동물에게 공격당할 위험도 컸다.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아마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삼림의 크기가 감소하고 유인원 가운데 나무타기에 능숙하지 못했던, 혹은 삼림에서의 생활에 능숙하지 못했던 개체가 초원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굳건한 발걸음으로 초원을 걸었고 초원의 음식물을 먹었으며 결과적으로 번영했다. (p. 121)
지금까지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뛰어난 것이 이기고 살아남는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자손을 많이 남긴 쪽이 살아남는다' 뛰어난 것이 이기고 살아남은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뛰어났기 때문에 자손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경우다. (p. 127)
초기 호모속의 분류는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이들 화석에서 커다란 진화의 흐름은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뇌가 커졌기 때문에 석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뇌가 커졌다는 것이다. (p. 137)
다같이 울창한 숲에 살때 유인원들은 대개 과일이나 식물을 먹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삼림이 줄어들면서 숲에서 약체들이 쫓겨났을때 그 약체들 중 잡식성만 살아남았다. 맛있는 과일이 아니어도 초원에서 육식동물이 먹다남긴 사체의 골수를 먹고 뼈에서 고기를 발라 먹는 종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초원의 먹거리를 발견하는데는 두발로 서서 멀리까지 보는것이 유리했다. 뼈에붙은 고기를 긁어내고 뼈를 부숴 골수를 먹으려면 석기사용이 유용했다. 그런 동물성 먹거리는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량을 감당하게 해주었다.
'직립 이족 보행을 시작하면서 사람의 손은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손으로 석기 등을 제작했고 뇌가 커졌다'라는 말도 있으나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니다. 인류는 직립 이족 보행을 시작한 후 약 450만 년 동안 석기를 만들지 않았고 뇌도 커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생긴 걸까?
뇌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인간의 경우 뇌는 체중의 약2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몸 전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약20~25퍼센트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뇌는 연비가 나쁜 기관이다. 이정도로 연비가 나쁜 기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계속 먹어야 한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은 고기이다. 따라서 계속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뇌가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석기가 필요하다. 석기를 만들게 되면서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뇌가 커진 것이다. (p. 139)
저자는 여기서 재미있는 의문을 제기한다. 고기와 뇌의 관계를 봤을 때, 그렇다면 왜 사자의 뇌는 인류보다 크지 않을까? 사자는 고기를 엄청 먹는데! 저자가 스마트폰 앱을 예를 들어 하는 설명이 재미있다.
스마트폰에는 여러 유료 앱이 있다. 매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료 앱은 충분히 사용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큰 뇌는 내려받은 유료 앱과 같다. 뇌가 크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즉, 배가 계속해서 고파진다. 뇌의 크기가 제각기 다른 사자의 무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불행하게도 먹이를 전혀 잡지 못한 경우 뇌가 큰 사자부터 죽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뇌를 키우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 사용하지 않을 유료 앱은 내려받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제대로 앱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내려받는 것이 좋다. 초기 호모속의 경우 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도의 뇌를 키우는 것은 이익이 나는 일일 것이다. 호모속은 조금씩 앱을 내려받아서 그때마다 매번 앱을 잘 구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자는 그렇지 않았다. 사자는 엄니를 날카롭게 만들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뇌가 조금 커져도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자는 고기를 먹기 위해 엄니를 크게 만들었고 사람은 고기를 먹기 위해 뇌를 키운 것이다. (p. 140~141)
두 발로 서서 걷다가 걸어야 할 거리가 넓어지면 두 발로 뛰어야 했을 것이다. 많이 움직인 만큼 많은 먹거리를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갔던만큼 다시 돌아오기위해서라도 뛰어야 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달린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 였을 거라고 한다. 두발로 움직이는 것이 원활해지고 소화가 쉬운 고기를 먹으면서 장의 길이도 짧아지고 장이 짧아져 허리가 가늘고 길어지면 달리는 데 유리해지고... 진화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나 소화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면 한가한 시간이 생긴다. 따라서 사자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아주 많다. 인류에게 생긴 이런 한가한 시간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적 활동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석기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석기에 필요한 돌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영어 스쿨(학교)의 어원은 라틴어 스콜레(한가함)이라고 한다. 한가로울 때 학습과 같은 지적 활동이 일어난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였을 것이다. (p. 149)
라틴어의 매력은 어원의 의미에 있는 것 같다. 고대인들의 생각은 참 멋질때가 많았다.
현대의 삶은 참 바쁘다. 바쁜 와중에 필요와 욕망에 의해 발달하는 문명이 한가함 속에 발달한 문명과 얼마나 어떻게 차이가 날까 문득 궁금해진다.
호모 에렉투스는 먼 거리를 걷거나 달렸을 것이고, 따라서 체온을 떨어뜨리는 일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땀을 흘리는 것은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인류는 땀을 흘리기 위해 체모를 없앴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력한 증거가 없어서 확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p. 151)
사람의 체모는 잘 보이지 않지만 털 하나하나가 가늘고 짧아서 그렇게 보일뿐 침팬지의 체모 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더운 아프리카 땅에서 먼 거리를 초원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체온조절이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모의 변화는 화석에서 알아낼 수가 없다.
약30만 년 전이 되면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지닌 형태의 화석이 출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12만 5천년 전의 온난한 간빙기에 접어들자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은 급증한다. 그러나 약4만8천년 전의 한랭화로 네안데르탈인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약4만 7천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들어가면서 다시 인구가 회복되지 못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에 멸종했다. (p. 193)
고인류 중에서 진화를 거쳐 (호모사피엔스 한 종만 남기 이전에) 최종적으로 번성했던 두 집단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였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일찍 추운지방에 정착했기에 한랭화 기후에도 강했다. 하지만 멸종했다. 왜일까?
네안데르탈인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아니 오히려 사람보다 석기를 더 잘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새로운 석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 사람이 더 뛰어났을 것이다. (p. 218)
사람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서 상징화 행동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하면 언어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추상적인 것, 예를 들면 '평화'를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떠올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사전에는 '나' 혹은 '고기'는 있어도 '평화'는 없었을 것이다. (p. 227)
문화가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필요하다. 누군가 멋진 발명을 해도 다른 사람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발명은 퍼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발명은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그런 부분에서 사회적 기초가 약했던 게 아닐까? (p. 237)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 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했다. 도구와 불도 사용했고 언어도 사용했다. 뇌용량도 네안데르탈인이 더 컸다. 하지만 뇌가 크면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므로 더 많이 먹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수가 늘어나면서 생존지역이 겹쳐졌을 때 먹거리는 두 집단이 공유할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의 문명발달 속도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적응속도가 더 빨랐다. 먹거리의 유무는 멸종과 생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 중 아프리카인과는 DNA의 변이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반면 중국인이나 프랑스인과는 DNA의 변이를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난 후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했음을 의미한다. 교잡이 일어난 장소는 아마 중동일 것이다.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호모 사피엔스 DNA의 약2퍼센트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온 것이다. (p. 256)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난 이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세계로 퍼져나갔다. 단기간에 다양한 환경에 적응한 것에는 문화적 힘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으로부터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얻는 것 또한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 진출에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p. 259)
호모 사피엔스가 의식적으로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는데 있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유용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란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동족을 공격하고 살해하는 것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직접적으로 호모사피엔스가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생물의 생존과 멸종은 자손의 규모에 달려 있다. 따라서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네안데르탈인의 아이들 수보다 우리 아이들의 수가 많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 명의 여성이 많은 아이를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서든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점이다. 추워도 더워도 우리는 태연하게 살 수 있다. 의복과 같은 문화적인 궁리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는 넓지만, 그 크기는 유한하다. 유한한 지구에서 계속 인구를 늘려가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에서 견디며 살 수 있어야 했다. (p. 265)
많은 생물들이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겨 멸종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수가 늘면 그만큼 유한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의 양이 줄어든다. 아무리 다정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p. 266)
호모 사피엔스 한 종만 살아남았다고 해서 진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를 짧게 살다가는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진화가 멈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자연은 늘 변하고 있고 인류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진화는 수만년 수백만년 수천만년 에 걸쳐 이루어져 왔고 인간의 역사는 고작 몇만년 혹은 몇천년 정도일 뿐이다. 미래에는 AI가 대신 생각해주는 동안 인간의 뇌가 작아질 수도 있고 첨단 기계들이 대신 움직여주는 동안 인간의 몸에서 사용되지 않는 부분들이 퇴화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존이다. 고인류 중에서 현생 인류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지구생명체 중에서 인류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한한 지구에 살면서 인류만 생각하다가는 인류도 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절멸의 인류사> 를 읽으며 고인류의 진화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앞으로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역사는 늘 현재의 삶에 가르침을 준다고 하는데, 역사 이전의 진화또한 큰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인류의 진화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