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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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라는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됬었다.

아무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 시간을 꼼꼼이 되짚어보고 기록해준 그 작품에 너무나 큰 감명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작가의 본업적 작품?!의 세계를 접했다.

<대소설의 시대 1,2> 를 읽고 더욱 팬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소설인데다, 탄탄한 기초를 가진 역사소설로 작가의 필력에 견줄만한 작가가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탁월했다. 다른 작품들도 모조리 찾아 읽고 싶다는 욕망은 차차 실현해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전에 <거짓말이다> 에 이어 또다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한 인간의 삶을 다룬 <살아야겠다> 를 읽어야 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지금처럼 수습되지 않았다면 뜨겁게 회자되었을 소설 <살아야겠다> 는 메르스사태 때 버림받은 생존자들의 고통을 담은 작품이었다. 픽션이지만 픽션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고 차라리 픽션이었다면 좋았을 논픽션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메르스땐 놓아버린 그 손을 지금의 사회는 놓치지 않고 잘 잡아주고 있는지 오래 생각하게 했다.

사스, 메르스, 우한폐렴(공식명칭이 아니지만 나는 왠지 우한00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의 변종들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연을 함부로 침해한 결과 동물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전염병을 일으키는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자연이 휘두르는 타노스의 장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세시대때 반복되던 흑사병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구는 대체 얼마나 늘어나 있었을까? 싶어서.

하지만 거시적으로만 보는 시각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이 소설을 통해 가슴저릿하게 배웠다.

먹는시간 화장실가는 시간 조차 아까울 정도로, 소설을 읽는 동안 울컥울컥 목구멍이 따가우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모른다고 하면 뻔뻔한 것이고 안다고 하면 죄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가장 나쁜 길임을 다시한번 알 수 있었다.

<거짓말이다> 도 <살아야겠다> 도 널리널리 읽혀져야 하는 작품이다. 그때의 사건들이 끝난것 같아 읽을 필요 없다고? 천만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 알아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검사 요청 거절과 소극적인 대응 탓에 최초 신고로부터 33시간이 지난 뒤 검체를 채취하였고 44시간 만에 판정이 나온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전염병 예방과 확산 방지 시스템에서 33시간은 분명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다. (p. 16)

원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메르스 환자가 입원했었다는 게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 외래 환자와 입원 환자 모두 병원에 발길을 끊을 겁니다. 병원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메르스를 근절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p. 19)

질병관리본부에서 정한 밀접접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는 없었다. 그물은 헐거웠고 바다는 아득했다. 시간을 끌수록 바다는 더 넓어져만 갔다. (p. 20)

 

초동대처는 한없이 미흡했고 결과는 온전히 환자들의 몫이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힘을 가진 자들이 책임을 떠넘기며 사실을 감추는 사이 전염병조차 약한자들을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염병이라도 그들을 먼저 공격했더라면 이후의 사태는 완전 다르게 진행되었을텐데.

태어난 순서대로 죽지 않듯, 응급실에 들어간 순서대로 환자가 나오진 않았다. 어떤 환자는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귀가하기도 했고, 어떤 환자는 입원실로 옮겨 가기도 했고, 어떤 환자는 응급실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김석주와 길동화와 이첫꽃송이는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응급실에 닿았지만, 그 후 닷새 동안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다. (p. 37)

치과의사 김석주, 물류창고 노동자 길동화, 언론 수습기자 이첫꽃송이 세사람의 운명은 한날 한시에 거센 파도에 휩쓸렸지만 헤쳐나오는 시기도 방법도 다 달랐다. 인생사가 똑같은 사람 하나 없이 다 다르듯이.

대기하십시오

언제까지 기다리나요?

메르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집니다

열이 높고 두통이 심한데, 치료부터 받으면 안 돼요?

보고하겠습니다. 우선은 편히 앉아 기다리십시오. (p. 103)

 

환자보다 보고가 먼저, 치료보다 보고가 먼저, 다른 그 무엇보다 행정처리가 먼저. 아파죽겠는데 편히 약하나 주지 않고 편히 앉아 기다리라는 말 부터가 그 처리 부터가 이미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인데... 읽는 동안 열통터지는 장면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참고 읽어야 한다. 화내고 짜증낸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분노를 모으고 모아 에너지를 만들어야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

5월20일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는 물론이고 5월30일 F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다시 나온 후에도, 정부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병원 명단 공개 요구를 무시하거나 거절해왔다. 아울러 환자가 발생한 의료 기관과 확진 환자 명단은 진작부터 의료계와 공유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밀접접촉자에 대한 추적 관리는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p. 140)

국민들은 19일이나 병원 명단을 감춘 정부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알파벳으로만 밝힌 병원 실명을 여러 경로로 추적하여 알아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정부와 병원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깨진 자리에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유행했다. 각자도생. (p. 141)

정보 부족과 관리 미숙에 따른 허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상황이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와 병원과 보건소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많은 이들이 자가격리와 관련하여 낯설고 불편한 국면에 맞닥뜨렸다. 보건 당국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적도 지침을 받은 적도 없었고, 어디에 문의해도 마땅한 답을 얻지 못했다. 국민들은 보건 행정의 사각지대에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p. 144)

 

국가적 재난을 개인이 해결할 수 없음에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을때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국가를 움직여야 한다. 국가가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분노를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잠복기일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증상이 없으니, 그냥 병원에 있어도 된다? 또 그냥 지하철을 타든 버스를 타든 상관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가도 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는 건가요?

해석은 자유겠죠. 제게 확인하진 마십시오. 전공의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지, 병원으로부터 받은 지침이 없단 뜻입니다. (p. 163)

AP가운 이잖아, 이건?

에이피가운은 일회용 위생 비닐 가운으로 간호사들 사이에선 '앞치마'로 통했다. 가운이 가슴과 배는 가려 주지만 목과 등은 노출되었다.

보호복이 부족하다고? 이렇게 큰 종합 병원에서? 너무했다. 전염병이라며? 그런데 위생 비닐 가운을 보호자들에게 입힌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p. 166)

이 병원 감염내과엔 국제적 명성을 지닌 의사들이 가득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면회를 시켜도 될 만하니까 허락했겠지.

국제적 명성? 웃기지 말라그래. 연구는 잘하는지 몰라도 격리의 에이비씨도 못 갖췄잖아. 방심해선 안 돼. 그딴 걸 걸쳤다고 감염을 막을 수 있겠어? 목과 등이 훤히 드러나 있잖아? 감염내과 과장 아니 병원장까지 모두 미친거 아냐? 어떻게 저딴 걸 입혀서 격리병실에 들여보낼 수가 있지? (p. 170)

 

사스가 비껴갔던 행운이 메르스때도 있으리라 생각했던 걸까? 사스때 잘했다는 자화자찬으로 메르스도 별거 아니네 하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걸까? 초동대처의 부실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보건소 직원은 석주가 6월7일로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격리병실로 이동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또한 석주의 아들 우람 역시 자가격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며, 격리 시작 시점도 김석주가 병원에 입원하러 집을 떠난 6월1일로 잡아야 했다. 보건소 직원이 연락한 대로, 자가격리 대상자는 김석주와 남영아였고, 6월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김석주의 밀접접촉자이기 때문에 자가격리를 실시하란 통지서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p. 187)

아이 아빠가 메르스 환자로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이상 우람을 순순히 받아줄 어린이집은 서울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p. 191)

 

이미 확진자로 격리병실에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자가격리통지서를 보내는 보건당국이나, 자가격리를 마친 무감염자인 확진자의 가족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나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지금은 내 일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를 일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주의'에서 '경계'나 '심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는 종합 병원에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도 않았고,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높이지도 않았다.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p. 221)

꼭 일이 터져야 아는 거냐고, 이딴 식으로 대충 하면 의료진이나 보호자들에게 감염 위험이 있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충분히 막을 수 있었어. 불편하겠지만 병실까지 들어올 때 차단문을 더 만들고, 보호 장구를 완벽하게 갖췄다면, 그랬더라면... (p. 236)

 

이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정부의 무능을 정말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

정부는 하는게 없는데 정부의 지침 없이 마음대로 의료진이 뭘 할수도 없는 현실은 정말 너무 암담했다. 지침을 빨리 현실적으로 주던가 아니면 뭘 제대로 하게 내버려 두기나 하던가.... 자기들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의료진도 하지 말라고만 하니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전염됐어야 했는데... 탁상공론 그들이.

혼자 남겨지는 날!

이런 날이 혹시 올까 걱정했는데, 오고야 말았다.

오늘, 기다렸다는 듯이, 국무총리가 사실상 메르스 종식을 선언했다. (p. 293)

응급실에서 한날 한시에 감염됐던 세 사람 중 김석주 환자만 남았다. 그는 혈액암이 재발된 상태였다. 메르스는 혈액암의 치료를 후순위로 미루게 했다.

살아야겠다, 그 마음뿐이에요.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렇게 죽긴 너무 아까워요. (p. 298)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의사이기에 누구보다 의료진의 입장을 이해했다. 간호사였던 아내 영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 한명의 환자만 남았을 때 세상은 완치의 축배를 성급하게 들이켰다.

모르긴 해도, 그 한 사람의 공포가 가장 클 겁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큰 배 안에 오직 혼자만 병에 걸려 누워 있는 기분일 테니까요. 그런데 정부는 벌써 메르스란 단어 자체를 지우고 있습니다. 세월호란 단어 자체를 지우려 들듯이. (p. 308)

메르스에 감염되었느냐 감염시켰느냐만 놓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입니다.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고 또 감염시킬 수밖에 없었던 병원의 관습과 운영 체계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전염을 몇 명이나 시켰든, 메르스 환자는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슈퍼전파자 나 가해자 란 단어도 피해자인 환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잘못된 시선입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메르스 환자는 없습니다. 전염을 시켰다 하더라도, 환자는 피해자이면서 피해자인 메르스 환자입니다. (p. 318)

 

메르스의 전파는 병원에서 일어났다. 최초 감염자에 대한 조사가 늦었다. 전염병 메르스에 대한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었다. 지금과는 거의 모든 것이 달랐다. 적어도 메르스 감염자들에 대해서는 감염을 시킨 전파자 라는 시선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이러십니까? 메르스 사망자의 유가족과 완치된 환자에게 거액의 보상금이 지불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몇 억 된다면서요? 정확히 얼마인가요? 저한테만 살짝 알려 주세요.

헛소문이야. 어떤 놈이 그딴 허황된 소릴 지껄여?

아무 잘못도 없이 전염병에 걸려 그 고생을 했는데, 그럼 전혀 보상금이 안 나온단 겁니까? 혹시 연락을 못 받으신 건 아닙니까?

보상금 이야긴 전혀 없었다. (p. 329)

 

어쩜 이렇게 세월호 때와 똑같을까... 유족에게 보상금이 엄청 지급될거란 헛소문... 법적 책임을 물으려고 소송준비를 하는 동안 걸려오는 욕지거리 전화... 그런 헛소문과 욕지거리 전화를 하는 단체를 당시 정부는 유용하게 이용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비슷한 소문 비슷한 방해... 에혀...

그렇지... 어린 학생들의 죽음은 정말 너무 안타깝고 안타깝다...

진상 규명이 반드시 되었으면 한다.

난 그런 생각이 들 때 마음이 조금, 무랄까.

죄스러운 서러움? 같은 게 있다.

남편의 이 기나긴 외로운 싸움을 세상 사람들은 알까?

격리된 우리 가족을 알기나 할까?

세상과 완전히, 마음까지도 격리된 우리를. (p. 360)

제가 특별 케이스란 걸 일반인들은 모르겠죠?

전혀! 저희 셋과 담담 교수님들 그리고 병원장님을 비롯한 극소수만 알죠. (p. 370)

 

그 바다에도 사람이 있었고, 이 마지막 격리 병실에도 사람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살고 싶은 사람이.

하지만 생존자와 극소수의 의료진은 정부지침의 벽을 넘을 수 없었고,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확률이 필요했을 뿐, 단한명의 생존자는 관심없었다.

전쟁이든 참사든 전염병이든,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의 기록일수록 어떤 그룹의 서사인지가 명확해야 해. 이대로 간다면 메르스 피해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숫자로만 남을 거야. 통계 자료로만 호출될 거고, 피해자 각자가 어떤 개성을 지녔고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상처를 입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사람 됨됨이를 기록해야 해. 그리고 피해자들의 서사는 지구 전체로 확산해야 해. (p. 376)

그들은 이미 그녀가 메르스를 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그녀는 출판물 물류 창고에 대한 미련을 접고, 전단지나 명함 제작을 주로 하는 작은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어떻게 알아내는 것인지 벌써 세 번이나 발각되었고 왜 숨겼느냐는 힐난조의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p. 396)

저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틀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없으면 이 격리병실이 제 무덤이 될 겁니다. (p. 467)

 

혼자 격리병실에 감금되어 있는 마지막 환자의 사투도 문제였지만, 완치된 사람들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생업에서 쫓겨났고 차가운 시선에 몸을 숨겨야 했다. 거기에 몇달간 혼자 격리되어 있던 투병생활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살아도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여하튼 그래도 완치된 사람들은 나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혼자 남은 환자는 메르스 환자가 아님에도 새로운 지침이 없어서 격리병실에 다시 갇혀야 했고 때문에 항암치료도 검사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려도 없었다. 그저 잊혀지고 있었다. 죽더라도 사람답게 죽고 싶다고 했는데...

이름도 모르는 전염병이 다시 이 나라에 도착하면, 그땐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메르스를 겪었으니 이번보단 낫지 않을까요?

천만에! 메르스는 훨씬 더 악화될 수도 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헌신과 또 뜻밖의 행운 속에서 겨우 막았어. 한데 보건 당국의 관료들이나 여야 국회의원들은 이걸 자신들 실력으로 벌써 우겨 대기 시작했어. 방역망에 구멍이 훨씬 많이 뚫린 셈이지. 그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어. 잘못된 제도와 복지부동하는 관료와 무책임한 정치가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최대한 널리 알려야 해. 전염병이 김석주 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아냐. 메르스란 병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세월호란 배에 타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안일하고 허약한 자기합리화가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죽이지. 그렇게 비겁한 다행에 안주하면 결국 언젠가 우리도 외롭게 불행을 만나게 돼. 무리해서라도 지금 김석주씨를 끌어안아야 해. (p. 521)

 

유언비어의 난무 속에서도 영향력 있는 언론의 기자 몇명 만으로도 진실이 조금은 빛을 볼 수 있었다. 언론이 중요함을 새삼 또 느꼈다.

메르스때의 정부가 지금의 코로나를 만났다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음압 병실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온갖 병균을 모아들이죠. 항암 치료를 하면 면역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제 남편은 곧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고요. 이식병동에 혹시 가 보신적 있으세요? 이식 병동의 병실들은 양압 병실입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이식 환자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병실에 있는 병균이나 바이러스를 병실 밖으로 내보내는 양압 병실이라고요. 그리고 제 남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병실입니다. 음압 병실에 계속 머물면 감염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고요. 메르스가 완치되고 림프종 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에게 그 병실은 최악입니다. (p. 552)

하지만 암환자로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메르스 마지막 환자는 메르스 치료를 하지 않음에도 음압 병실에 혼자 격리되어야 했고 항암에 필요한 검사를 받을 수 없었기에 적절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메르스 환자가 아님에도 보호장비를 풀로 갖춘 의료진에게 수없이 바늘을 찔려야 했다.

내가 지하철을 못 탄다는 걸 국무총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은, 질병관리본부장은 알까요?

몰라서 이런 거라면 무능한 거고, 알고도 이러는 거라면 사악한 거죠

우리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왜 아무도 사과를 안 할까요?

사과를 받아 내야죠. 그래서 소송을 하겠다는 거고요

그런 날이 올까요? (p. 597)

 

나도 정말 궁금하다. 그런 날이 올까?

메르스 피해자의 서사를 쓰고자 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말하기 전에, 기억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작업이었다. '번호'가 아닌 '사람'을 되찾아야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무너진 시절이었다.

삶과 죽음을 재수나 운에 맡겨선 안 된다. 그 전염병에 안 걸렸기 때문에, 그 배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행운'은 얼마나 허약하고 어리석은가. 게다가 도탄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배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 <마션>의 감동은 공동체가 그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경제적 손실이나 성공 가능성 따위로 바꿔치기 하지 않는 원칙으로부터 온다.

문학은 가난한 자 약한 자 아픈 자의 편이라고, 22년 전 장편을 처음 출간할 때부터 믿어 왔다. 문학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또 그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이 사람다운 삶을 시작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싶다. (-작가의 말 中-)

 

김탁환 작가님이 정말 너무 고마웠다. 역사는 기록이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누구도 하지 않은 그 기록을 열심히 모아 이런 소설로나마 역사를 만들어 주신 것이 정말정말 존경스러웠다.

역사는 가르침을 주려고 의도하지 않은 채 흘러간 시간일테지만 역사는 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깨우침을 준다. 그런 역사를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 제대로 된 미래가 올리는 없다. 과거-현재-미래 는 항상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고, 그 연결을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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