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2 -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일본인 이야기 2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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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는 진보의 시대였는가,퇴보의 시대였는가

이 책은 역사책이다. 그리고 시리즈다. 역사시리즈라서 딱히 순서대로 읽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정리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5권 전권이 나오진 않았다.

1권을 읽고 홀딱 반했던 터라 2권을 무척 기다렸더랬다. 1권에서 다룬 16세기를 전후한 일본에 대한 내용들은 그동안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주었고 2권에선 또 어떤 새로운 깨우침을 줄지 무척 기대했다. 2권은 17세기를 전후한 시대 즉, '에도막부'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처음에 <일본인 이야기>시리즈를 다섯 권으로 구상했을 때, 저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다루지 않고, 각 권마다 뚜렷한 포인트를 잡아 일본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제1권의 포인트 혹은 쟁점은 카톨릭과 조선이었습니다. 이번 제2권의 포인트는 농민의 일생, 그리고 그들을 치료해준 의료·의학입니다. (p. 4 '들어가며' 中)

역사는 이름난 몇명을 기록할 뿐이지만 그 역사를 살아낸 대다수의 사람들은 '농민'들이었다. 역사를 읽어나가는 방식을 크게, 굵직한 사건들과 위인들로 역사의 개요를 정리할 수 있는 것과 변한듯 변하지 않은듯 일반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것으로 나눈다면 대부분의 역사는 첫번째 방식으로 읽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 독자인 우리가 역사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방식은 두번째 가 아닐까? 백성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2권을 시작하며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그래서 일본이야기 가 아니라 일본인이야기 라고 정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농민의 삶을 중심에 두었을때 에도시대를 진보로 볼지 퇴보로 볼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결론 스포를 좀 미리 하자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농민들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지금부터 제가 이 책에서 말씀드리려는 내용의 관점은 앞에서 소개한 두 가지 입장과 모두 다릅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이 16세기의 센고쿠시대와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퇴보했다고 생각합니다. (p. 15)

센고쿠 시대에 유럽과 동시대적으로 교류했던 일본은 자기 집안과 지배층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발전을 정지시키기로 한 두쿠가와 이에야스의 결정에 따라 갑자기 유럽과 단절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던 혁신을 유럽인들에게 직접 배우지 못하고, 네덜란드어로 집필하거나 번역한 책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에도 시대 일본의 네덜란드학, 즉 난학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p. 15)

일본의 에도시대는 같은 시기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움직임과 비교했을 때 동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퇴보였습니다. 조선과 대청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만 비교해서 에도시대 일본이 성취를, 특히 난학의 성취를 과대평가하는 관점은 너무 좁은 세계관입니다. 이런 식의 과대평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사회의 지적인 한계가 되었으며, 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서 일본은 서방 선진국과 같은 국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의 퇴보와 진보를 같은 시기 유럽의 상황과 비교하고, 유럽과의 접촉 정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 18, 19)

이 책은 두괄식인건가 ㅎㅎ 초반에 저자의 주장은 대부분 일찌감치 드러난다. 이 책의 부제도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인만큼 주제의식을 미리 분명히 한 것일수도 있는데, 초반부터 진보와 퇴보의 판단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는 꼭 진보해야 하는가? 퇴보가 나쁘기만 한가? 진보냐 퇴보냐 식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면 편리한 디지털 시대에 수고스러운 아날로그적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퇴행한 것인가? 역사에 방향이 있다면 나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퇴보한 것 같은 순간에도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듯 역사도 앞으로 흘러가고 이러튼저러튼 인간들은 그 속에서 배우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더 나은 방향을 늘 꿈꾼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항상 진보가 아닐런지... 인간은 항상 어딘가로 한발짝은 내딛고 있지 않은가. 쇄국은 항상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의 이유가 다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의 필연성을 시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읽는 이유가 아닐런지... 여하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더구나 서방세계와 비교한다면 에도시대 쇄국이후의 일본은 정체이자 퇴보라고 부를 수 있긴 하다.

에도시대에 관해 논할 때 3대 도시의 경제적 융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를 미화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났는데,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에도시대를 미화하는 경향이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농촌 거주 인구가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에도시대, 이 시대에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지배층이 초래한 인재와 지진·냉해 등의 자연재해 사이에 낀 일본의 피지배층은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서는 잘살기 위해 개인으로, 또는 가족 단위로 노력했습니다. 난학의 핵심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난의학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의학, 즉 난의학은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p. 21, 22)

1권에서도 느꼈지만, 2권에서도 저자는 용감하게?! 사견을 많이 피력하고 있었다. 특히나 에도시대와 겹쳐지는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서양중세=암흑기'라는 일반화된 도식처럼 일본도 조선도 암흑기였다며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이 일본인이야기이므로 에도시대 농민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2권의 내용은 대부분 농민들의 힘들었던 삶을 풀어내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일반 백성들이 살기 편했던 시대가 있었는가? 에도시대 이전의 농민들의 삶의 질이 어떠했기에 에도시대 농민들의 삶을 퇴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비교서술을 해주는 것이 좀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에도시대 농민들의 삶이 힘들었고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이 힘들었던것을 알겠다 알겠는데 그 전과 비교해서 무엇이 더 힘들어진 것일까? 그저 내내 힘들었던 게 아닐까? 진보냐 퇴보냐는 결국 역사에 족적을 남긴 몇몇 사건들로 판단되는 것이지 이 책의 핵심이라는 농민들의 삶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한의학과 난의학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절충적인 사고방식은 에도 시대 일본의 학문 전반에서 널리 확인됩니다. 이런 점에서 에도 시대는 절충과 타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화권과 일본, 유럽의 절충, 한의학과 난의학의 절충, 도쿠가와 막부라는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농민과 도시민의 타협, 조선과 명나라, 대청제국과는 달리 과거 제도가 없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지식인의 타협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p. 33)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일본 역사에 대한 무지를 깨뜨려준다는 것이다. 읽을때마다 놀랍지만 일본역사는 중국이나 한국보다는 봉건제 유럽과 닮아 있었다. 천황이 있으나 다스리지 않았고 다스리지 않아도 정신적 중심으로 늘상 있어오다 보니 마치 일신교처럼 일본사회를 묶어주는 역할을 해왔고 종교는 불교 비슷한 절들로 넘쳐났지만 주로 주민센터역할을 했기에 신도라는 일본의 종교는 천황중심이 될 수 밖에 없어보이는 것이 신기했고 신묘한 수 같았다. 통치자들은 바뀌어도 황제가 되려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항상 무력독재이긴 하나 통일국가라기 보다는 소도시들의 연합체로 오랜 세월 지내왔으며 지역공동체와 가문의 이어짐이 한번도 변한적이 없는 것을 보면서 일본사회의 독특함은 신기할 정도였다. 하나로 합쳐진듯 보이면서도 항상 따로따로 소규모로 살아온 그들의 정신과 문화가 우리네와 너무 달라서 앞으로도 서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를 또한번 깨달았달까.

과거제도가 없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조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공부할 수가 있었습니다. 에도시대 일본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의 학자들은 주희 선생의 관점을 따르며 관료 시험을 준비한 것이지, 자기 생각을 심화하고 펼치는 진짜 공부를 한 것이 아닙니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자기 앞가림만 할 수 있다면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목적도 역시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공부해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럿 있었습니다. (p. 49, 50)

과거제도가 없었기에 주류 사상과 관료적 신분사회가 아니었던 일본도 공부의 목적은 결국 입신양명이었다. 시험준비만 하면 되는 공부가 차라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판단하기 쉬었다면 그래서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면 자유로이 공부를 선택할 수 있었던 에도시대 일본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학문은 결국 실용적 분야일 수밖에 없었고 학문의 구심점은 생겨나기 힘들었다. 무사계급이 항상 지배를 하다보니 지식인층은 무력하고 무시받는 계층이었지만 그럼에도 쓸모가 있다면 권력층에 눈에 들어 편하게 살 길이 열렸다. 싸우다 다치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던 시대 게다가 한정적일지라도 유럽의 의학이 소개된 일본사회에서 글자 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의학에 쏠리는 관심이 어쩌면 당연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사 집단이 보기에 글자를 다루는 사람은어차피 위협이 되는존재가 아니었고, 사상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묘사화나 대청제국 정부가 지식인을 탄압한 문자옥 같은 사건이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식인 집단이 정치 문제에 참견하고 나설 때는 막부가 즉시 반응했습니다. 요는 글 다루는 사람들은 정치에 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p. 52)

지식인집단이 주요 정치권력을 형성했던 중국과 한국과 달리 일본은 오랜 세월 무사계급이 권력을 잡아왔다. 고대와 근대 사이 내내 그런것 같다. 정치권력에 지식인층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문화가 그토록 오랜 세월 이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나저나 저자는 책에서 내내 대청제국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명나라는 그냥 명나라 라고 하면서 청나라는 왜 대청제국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사학자계에서 쓰는 용어인가;;;

여담이지만, 시민 강의를 하다 보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에도시대 일본의 공부하는 생활인들의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분들이 사이비 역사서인 <환단고기> 같은 책을 읽고 국수주의에 빠지거나, 출토문헌 연구에 근거하지 않은 역학 공부에 빠져서 열정과 재산을 쏟아붓는 경우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분들께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순서를 알려드릴 지식인 집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일본은 에도 시대 이래로 국가가 전국의 학문을 통제하는 전통이 없었고, 메이지 시대의 고등문관시험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보니, 국가의 녹을 받아야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시민을 상대로 글 쓰고 강연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지식인 집단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들 지식인 집단과 시민들이 지속해서 만나면서 일으키는 선순환이 일본 출판계의 번성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p. 53, 54, 55)

어려서는 어려운 집안 형편때문에 못하던 공부를 삶이 안정되고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은 십분 이해가 된다. 옛날부터 시험을 통해 등용되는 문화를 지녀온 한국에서 여전히 시험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체제가 평생공부를 방해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생활공부가 과연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가 비판하는 조선시대에는 배우지 못한 농민도 배운 사람도 때때로 권력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봉기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일본역사는 어떠한가? 일본에선 혁명이 없었다. 실패했건 성공했건 어쨌건간에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선 수시로 있었던)사회변혁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는가? 지식의 대중화는 좋으나 실용성 위주로 하던 공부가 얼마나 심도깊은 지식인층을 만들어냈는가? 일본의 출판문화는 나도 부러운 부분이 많다. 특히 체계적인 고전원서번역이 그렇다. 이런 돈이 되지 않는 책들이 출판될 수 있는 것은 만화책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데 저자는 지식인층이 있기에 출판계의 번성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한국에 중간지점의 지식인집단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학자집단에서 먼저 대중에게 올바른 방향을 이끌어줄 수는 없는 것인가? 바람직한 공부방향을 알려줄 수는 없는 것인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문화가 여전히 어려운 국내현실에서 솔선수범하는 학자층을 나는 발견하고 싶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책에 따라 유럽으로부터 고립되었고, 도쿠가와 가문과 각지의 다이묘들이 영원히 일본을 지배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시스템을 강제한 시대였습니다. 피지배민, 특히 농민들은 과중한 세금을 지배 집단으로부터 요구받으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피지배민들은 능동적·수동적 방법으로 자기 자신과 집안의 생계를 꾀했고, 희미하게 열려 있는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 그들의 분투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p. 59)

'서장 - 백성과 의사' 에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거의 다 설명된다. 1장-백성들의 이야기 와 2장-의사들의 이야기 는 그야말로 세부적 내용들이라 부분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의 반복이 보이기도 한다. 1권과 달이 2권에서는 마무리 글이 없이 본문으로 끝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무리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의 '서장' 내용이 마무리글에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점을 먼저 알려주고 상세히 풀어가는 것과 상세한 내용들을 차근차근 훑어본 후 정리하는 것 중 후자를 선호하다 보니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왠지 개운치가 않았다.

많은 한국인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단일한 성격을 띤 하나의 국가라는 이미지이지만, 에도 시대 일본은 3백여 개의 국가가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지구상의 2백여 개 국가가 국제무역을 하듯이, 이 '에도시대 일본'이라는 하나의 세계에서도 3백여 개의 국가 사이에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국제연합UN보다 강력하기는 했지만, 도쿠가와 막부도 3백여 개의 번 이라는 국가를 일일이 통제하고 중계할 수는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서방 국가들에는 식량이 남아돌아도 제3세계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에도시대 일본에서도 지속해서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번 은 서로 독립적으로 번 내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p. 88)

지금의 세계 국경선이 정해진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전쟁전에 서로의 왕조가 얼키고설켜서 국가라는 개념은 희미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국국민은 런던에 살면 런던인이라 부르고 웨일즈에 살면 웨일즈사람이라 칭한다. 이탈리아 사람은 로마에 살면 로마인이라 부르고 시칠리아에 살면 시칠리아인이라 칭한다. 스스로를 영국인 이탈리아인이라고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중심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유지된 것 같다. 단순한 국기처럼 하나의 일본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은 각각 독립적이고 그렇기에 중앙정부에 대해 무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집권화로 오랜 세월 역사를 쌓아온 우리와는 엄청나게 다른 사고방식일 것이다.

쌀을 둘러싸고 지배층인 무사 집단과 피지배민은 첨예한 계급적 갈등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지배층이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종교를 빼앗긴 상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피지배민의 봉기·폭동은 언제나 무사집단이 양보하는 척을 하다가 피지배민 측의 지도급 인사들을 처형하면 흐지부지 소멸하는 패턴을 그렸습니다. (p. 92)

민중은 꾹꾹 참다가 봉기를 일으킬 수 있지만, 지도자가 없는 민중의 봉기는 대체로 좌절되고 더 큰 탄압을 부릅니다. 지도자가 있다 해도 대안이 될 세계관과 이론이 없는 봉기는 뚜렷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백성들의 목숨만 잃게 합니다. 에도 시대는 그런 봉기와 좌절을 되풀이한 시대였습니다. (p. 98)

천황이 마치 종교처럼 상징적 구심점이 된 것은 세계전쟁을 일으키던 군사집단의 계획이었지 그전 시대에 천황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일본의 역사는 내내 무사들로 대표되는 폭력세력이 권력을 잡은채 종교도 사상도 그 어떤 주된 사상도 없이 큰 사회적 변화없이 흘러온 것 같다. 그러니 사회를 바꿀 생각을 할 수 없는 일반백성들은 개인적 판단으로만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크게 뒤바뀌는 것 같을때 갈팡질팡에 빠져 쉽게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근대 일본문학이 그렇게 허무하고 냉소적인 개인주의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안좋아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 갑자기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여러 번 주군을 갈아타며 자신의 운을 시험하던 무사들이나 센고쿠 시대의 이합집산 속에 주군을 잃어버린 무사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규모의 무사가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 초기에 실직하고 살길을 모색한 무사의 전형은 오제 호안입니다. (p. 143) 이념을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도 된다는 주자학자 오제 호안의 입장은 한반도에서 낯설지 않습니다. 의학과 저술·출판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학문을 닦아 당대의 권력자들에게 어필하고 구직하는 오제 호안의 삶은 과거제 없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 지식인이 생계를 꾸리는 초기 모델이었습니다. (p. 145, 146)

에도시대에는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다지만 그렇게 생활속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시대를 끌어가는 지식인층이 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공부하여 지배계급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오제 호안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왜곡도 서슴지 않았음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권력층에 영향을 끼쳤다. 저자가 바람직하게 보는 일본의 중간층 지식인집단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에도 시대에 지배 집단의 압박에 저항할 만한 세계관이나 이론을 지니지 못한 피지배민들은 쉽게 꺾일 하쿠쇼잇키를 일으키거나, 바바 분코 사건에서 보았듯이 문학을 이용해서 지배 체계에 저항했습니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문학으로 사상을 합니다. (p. 154)

문학을 이용해서 지배 체계에 저항했나? 권력층이 저항받았다고 알기는 했을까? 문학으로 사상을 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고?

이렇듯 예속민을 이용한 농업의 한계가 뚜렷하다 보니 조선에서도 '17세기에 노비를 이용한 양반의 직영지가 급속히 감소'하게 됩니다. 물론 그 정도는 일본과 달랐습니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초기에 인구조사에 흔히 나타나던 예속민이 중후기 들어서는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지만, 조선은 독자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다시피 멸망 직전까지 노비제도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p. 179)

일본과 조선은 다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농민은 세금만 되면 되는 자유민과 비슷했지만 조선 노비는 그냥 모든 것이 종속된 노예였다. 예속민이 사라진 시기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구조의 차이였다. 그런데 왜 나는 저자가 '다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틀렸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읽혀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조선을 바람직한 사회였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사회구조의 차이는 많은 것을 달리 이해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의 흑인노예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은 과연 흑인이 백인과 똑같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른 학문보다도 특히나 역사는 '다르다' 와 '틀리다' 를 잘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의학이든 문학이든 사상이든 예술이든 간에 지적 활동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고, 그들은 서로 가족 간이거나 친구이거나 스승·제자, 선배·후배 관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p. 244)

일본에서 정말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은 후지와라 세이카의 길을 택하여 학원 선생이 되거나 의사가 되는 등 스스로 밥벌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p. 248)

일본에서는 의사가 되어 명의로 이름을 날리면 막부나 번에 관료로 채용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막부나 번에 채용된 의사들은 대대로 의사지위를 세습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옛 의학서를 연구할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세습 의사들은 한의학 서적은 물론이고 중화 세계와 일본의 귀중한 책들을 고증학적으로 연구해서 속속 성과를 냈습니다. (p. 263)

이런 일본의 문화는 지금도 여전해 보인다. 이해는 안되지만 정치도 세습되고 있다.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공부하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빴다. 공부할 여건이 되면 개인적 취미처럼 공부했다. 시대의 사상엔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획일적이나마 사회적으로 신분상승의 유일한 도구로 똑같은 것을 공부하던 조신시대에는 편협하건 어쨌건 간에 학자층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그닥 득이 된 것 같진 않지만... 여하튼 지금도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그래서 자식의 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러니 평균은 일단 높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집안대대로' 식의 약간 '끼리끼리' 문화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어느 사회가 더 닫힌 사회인가? 어느 사회에 더 양질의 중간 지식인층이 많을 수 있겠는가? 어느 사회에서 더 시대의 리더가 탄생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유의는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권력에 기대지 않고 자유로운 공부를 하려 한 에도 시대 지식인 집단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시민학계·의료계와 관제학계·의료계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권력층에서 부르면 달려가서 한자리 차지하고 곡학아세하기 바쁜 한국의 몇몇 시민 단체와는 달리, 일본의 시민 단체들이 쉽게 권력에 기대거나 투항하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근원에는 나고야 겐이와 이토 진사이, 고토 곤잔 같은 유의 정신을 지닌 선배들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p. 266~267)

일본 지식인층이 자유로이 공부해서 그래서 무엇을 했는가? 지역공동체를 위해서 뭔가 했다하더라고 나라를 위해서는 시대를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근근이 불편함을 해소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는 것과 나라를 뒤집어 엎는 것중 무엇을 지향하는 지는 각자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규모 지역적 지식인층의 집단이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중간지식인층인 것일까?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그렇게 부끄러운 행태만 보여왔는가?

역사를 연구하면서 특히나 다른 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그 나라에 애정이 생긴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더 애정이 생길 것이다. 반대급부적으로 내가 속한 나라와 비교하면 할수록 내 나라의 문제점이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학자의 중립적 태도는 그 무엇보다 학자의 기본태도가 아닐런지.

그래도 저는 센고쿠 시대에서 에도 시대를 거쳐 메이지 시대에 이르는 4백년의 일본을 바라보면서, 단기적으로는 사회가 퇴보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를 극복하고 조금씩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퇴보의 기간 중에 괴로워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퇴보를 회복하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괴로움과 불필요함을 저는 에도 시대에서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에도 시대를 진보가 아닌 퇴보의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사회와 역사를 일본 내부의 흐름으로만 바라보면 이러한 좌절과 극복의 과정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가톨릭, 조선, 한센병 호나자, 천민, 농민... 이런 외부·소수 집단으로부터 일본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일본 사회가 겪은 퇴보와 진보가 확인됩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과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 한국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약 6백 년에 걸친 거대한 좌절과 회복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p. 324~325)

역사의 주체를 일반 백성을 기준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 농민들 말고 조선의 한국의 농민들에 대해서도 저자가 이 책에서 일본농민들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 의학을 전후하여 일본에 소개된 자연과학, 지리학 등을 가리키는 난학이 기존의 중국학이나 일본의 전통적인 지식 체계와는 전혀 다른 학문으로서 일본의 상층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과학 세계관을 소개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사회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p. 376)

유럽에서도 이랬을진대, <해체신서>를 비롯한 몇 권의 유럽 의학서와 자연과학서가 일본어로 번역되었다고 해서 에도 시대 일본이 그로부터 급격하게 근대를 향해 질주했다는 식의 이미지를 갖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p. 377)

조선시대 흥선군의 쇄국정책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건일 것이다. 에도시대 서양세력에게 열렸던 문을 닫은 것또한 쇄국이었지만 네덜란드를 향한 한곳의 문을열어두었으니 쇄국이 아니라고 일본 교과서에서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들 중 쇄국이라는 용어를 지웠다고 한다. 그러니 근대로의 발판이 된 시대라고 표현하기 더욱 좋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도시대 2백여년간은 흥선대원군 시대의 쇄국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농촌과 도시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그리고 평생 사람들에게 부림을 당하다가 쓸모없어지자 도살당할 위기에 처한 소와 말을 구제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구마가이 렌신,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농민들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신분과 법규까지도 뛰어넘은 하가 주토쿠, 이 두 사람은 도쿠가와 막부가 자신들의 일본 지배를 영구히 하기 위해 유럽에 대한 쇄국을 시행함으로써 물질적 혜택, 특히 의료 혜택을 박탈당한 가운데에서도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 에도 시대 일본 피지배민의 고군분투를 상징합니다. 제3권에서는 지배층의 방해를 이겨내고 '더 잘살기 위해' 노력한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1년 뒤에 뵙겠습니다. (p. 398~399)

작년에도 이맘때 1권이 나왔던가... 일년만에 기다리고 기다렸던 2권을 읽었다. 1권에서처럼 많은 깨우침을 얻진 못했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해 새롭고 신선하면서 다양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 2권이었다. 마무리글이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2권에서 농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었고 무사집단은 고여있었고 시대는 정체된 에도 시대를 볼 수 있었다. 3권에서는 아마도 더 적극적으로 일본식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일본의 역사를 읽으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는 이 시리즈는 정말 좋은 시리즈다. 1년을 기다려 3권도 꼭 읽고 싶다. 그렇게 5권까지 꼭 다 읽겠다고 마음먹은 역사 시리즈다. 저자의 노고를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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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미술관 -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
박광혁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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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란 질문에서 의학이 출발한다면,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의 해답을 찾는 것이 인문학이다.

두 학문은 결국 인간의 삶에 관한 문답이다!

의학의 시선으로 미술을 보면 인문학이 읽힌다!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라는 책을 읽고나서 미술계의 사람이 아닌 비전문가의 눈으로 해석하는 미술인문학에 흥미를 느꼈었다. 알고보니 시리즈였고 '미술관에 간 의학자' 라는 책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던 터에 미술관 다니기를 즐겨한다는 그 의사가 새로운 책을 냈다기에 신간으로 저자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의학의 시선으로 미술을 보고 본인의 인문학적 소양을 곁들여 글로쓰는 저자의 활동이 오롯이 담긴 책이었다.

그동안의 미술관련 책에서 봤던 그림도 있고 못봤던 그림도 있었지만 엮어내는 방식이 새로웠다.

고흐의 'Wom Out' 이라는 비탄에 잠긴 한 노인을 연필로 그린 소묘로 시작해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으로 연결된다거나

네덜란드 가정의 일상을 담은 '어머니의 의무' 라는 그림에서 당시 머릿니를 잡아야 하는 행동의 필요성과 진화적 의미로 이어지고

'모나리자'의 도난사건에서 '아폴리네르 증후군' 이라는 병명의 주인공인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생애를 애잔해하다가

고야의 주치의 그림에서 아스클레피오스를 거쳐 '헨리8세와 이발사 외과의사들' 이라는 그림으로 오는 동안 의사들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미하일 브루벨의 데몬 그림 시리즈에서 매독 이라는 균의 치명성에 대해 설명하다가

돈키호테를 그린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당시 돈키호테 라는 소설속 인물이 무엇을 상징한 것이고 거기서 정신의학 코드가 얼마나 나왔는지를 파악하고

드레퓌스 사건때문에 에밀졸라가 겪어야 했던 일화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에 대해 생각해보는 등

그림을 보면서 화가들의 삶과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음악및 문학까지 이어지는 연결점들이 의사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이었으리라 여겨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흥미롭게 읽혔다. 비전문가가 그림을 본다는 것은 이렇게 새로운 생각들이 가능하기에 전문가들의 그림설명책보다 때론 더 재미있게 읽혀질 수가 있는 것 같다.

히포크라테스와 그를 추종해온 의학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집대성한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나오는 의료윤리에 관한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서의 항목을 히포크라테스가 썼는지 밝혀진 바도 없습니다. 원래의 명칭도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아니라 그냥 '선서'였습니다. 1세기경에 편찬된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수록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란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지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태에 맞게 여러 차례 변경·재해석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인종학살에 참여한 일부 의사들의 죄과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1948년의 세계의사협회에서 수정해 만든 제네바 선언이 지금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입니다. (p. 303)

히포크라테스 전집 가운데 '금언집'에는 바로 그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금과옥조 같은 문장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언집은 히포크라테으의 선서와 함께 후대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기록으로 꼽힙니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문장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구는 금언집 첫머리에 등장하는데, 있는 그대로 옮기면 "인생은 짧고, 테크네는 길며, 기회는 순간이고, 경험은 흔들리며, 판단은 어렵다" 라는 긴 문장에서 발췌한 거지요. 여기서 '테크네'라는 단어가 'art'로 바꿔 회자되다가 art를 우리말로 직역했더니 '예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art의 사전적 의미에는 '예술'만 있는 게 아니라 '기술'도 있지요. 히포크라테스는 기술 가운데 '의술'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p. 308, 310)

아무래도 저자가 의사이다 보니 그림에서 보이는 질병적 힌트들로 설명되는 내용이 많았지만 나는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히포크라테스의 방' 이란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겉표지를 벗겨내면 표지에 또다른 그림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이 히포크라테스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엮어지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라는 고대인물이 왜 여전히 현대의학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 '금언집' 이라는 존재는 처음 알았는데 거기서 그 유명한 문장이 잘못 풀이된 것이라는 확인도 의미있었다. 역시 번역이 참 중요하다;;;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 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내용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음번엔 미술관에 간 수학자나 화학자도 읽어볼까 하는 관심이 생긴다. 그림도 인문학도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런 책들은 기분전환에 참 도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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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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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찬한 고전 중의 고전

88장의 독보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고대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358편의 우화 전집

이솝우화가 동화책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이라는 표지 수식어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원전 완역본' 을 좋아한다.ㅎㅎ

이런 번역된 고전은 번역자가 정말 중요하다. 앞서서 박문재 번역의 원전 완역본을 몇 권 읽었었는데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었다. 고대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과 해제를 꼼꼼하게 달아주고 매끄러운 현대어로 된 문장 읽는 맛도 좋았다. 번역하는 책에 대한 번역자의 이해도가 고전 번역에서는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박문재 번역자의 책은 모두 원전 자체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 느껴져서 앞으로도 믿고 보는 번역자가 될 듯 하다.

이솝우화가 왜 동화책이 아닌가 를 먼저 알고 책을 읽으려면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 이솝' 에 대한 설명과 책 뒷부분의 해제를 읽어보면 된다. 이솝(BC 620~564)는 영어식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아이소포스'로서 고대 그리스에서 독보적인 이야기 작가이자 연설가였다고 한다.

영어로 번역된 이솝 우화들은 많이 각색되고 분칠되어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주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소개되었지만, 원문이 전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야만적이고 거칠며 잔인할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이 처절한 일상 속에서 벼려낸 단단한 지혜를 다루고 있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마지막까지 이솝 우화를 탐독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책 날개 내용 中)

이솝 아니 아이소포스는 당시의 성인들을 일깨우고자 일상에서 겪은 여러 경험과 삶의 지혜를 재치있게 이야기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도 더 옛날옛적의 고대인이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므로 소크라테스 시절에 소크라테스처럼 대중들에게 은유와 교훈이 섞인 대화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유용하고도 풍부한 지혜의 샘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에게 '말'이라는 대화수단이 생겨난 이래로 '이야기'라는 것은 늘 있어왔을 것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것은 모두 다 그런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지... 인간의 삶이란 곧 story 이므로.

아이소포스의 이야기들은 구전되다가 조금씩 수집되었는데 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의 정치인이자 대중 연설가였던 데메트리오스가 당시 연설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10권의 책으로 펴냈다. 연설가들이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연설을 하려면 이런 우화들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기술이 아주 유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인기있는 강연이나 강좌들은 본내용 자체보다도 곁들여지는 강사의 이야기들이 아니던가.ㅎㅎ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솝 우화 모음집은 기원후 1세기에 바브리우스가 160편의 우화를 편찬한 판본이고, 이후에 나온 것들은 이 판본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최초로 이솝 우화를 라틴어로 번역해서 책을 펴낸 사람은 기원후 1세기에 살았던 아우구스투스이 해방노예 파에드루스였지만 이후 중세 시대에 나온 거의 모든 라틴어판 이솝 우화들은 10세기에 로물루스라는 우화 작가가 펴낸 책을 대본으로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텍스트로 사용한 것은 1927년에 에밀 샹브리가 간행한 것인데 이 판본에서 샹브리는 358개의 우화에 그리스어 알파벳 순서로 번호를 매긴 뒤 각 우화의 그리스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배열해놓았다고 한다. 이 책은 이솝시대부터 구전을 통해 수집되면서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된 이야기 중에서 그리스어 원전 358편을 완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페이지에 이야기 하나씩 그리고 간혹 독특한 그림들과 어우러지는 우화들은 옛이야기 읽는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촌철살인의 깨달음이 전해지기도 한다.

아이소포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독수리와 쇠똥구리' 라는 우화를 읽으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해보게 되고, '협잡꾼' 이라는 우화에선 신전에서 말해지는 신탁이 사기라는 것을 넌즈시 알려주고 싶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 우화를 읽을 때면 '이야기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들에게 기원만 하는 사람을 깨우치는 '난파당한 사람' 이나 '제우스와 좋은 것들이 담긴 단지' , '신들을 놓고 언쟁을 벌인 두 사람' , '말과 소와 개와 사람' , 법을 지키지 않는 위정자들을 빗대는 '늑대와 당나귀' , 전쟁의 원인에 대한 '전쟁과 오만' 등은 정말 팍팍 꽂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하나만 옮겨보자면,

강물을 때리는 어부

한 어부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어부는 강둑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쳤다. 그런 후에 밧줄 끝에 돌을 묶어서, 그 밧줄로 강물을 때렸다. 물고기들이 깜짝 놀라 도망가다가 엉겁결에 자신이 쳐놓은 그물망에 걸려들게 할 속셈이었다. 그 근방에 사는 사람 한 명이 그렇게 하는 어부를 보고, 그가 그렇게 강물을 흐려놓아 그 물을 마실 수 없다고 말하며 그를 꾸짖었다. 어부는 대답했다. "하지만 강물이 이렇게 탁해지지 않으면, 나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소"

교훈 - 선동정치가는 나라가 여러 편으로 갈라져 격렬하게 싸울때 가장 큰 이득을 본다. (p. 50)

동화책으로 보던 우화가 원전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여우와 포도송이' 라는 우화는 동화에선 '신 포도들'이라고 번역되어져 왔지만 그리스어 원전은 '덜 익은 포도들' 이라는 것과

'개미와 베짱이' 가 아니라 '매미와 개미들' 이었다는 것이 신선했고

'배와 발' 이라는 우화는 '머리와 발' 로 바뀌곤 하지 않았나 싶었는데고 무엇보다

'금도끼 은도끼' 가 우리나라 전래동화 뿐만 아니라 이솝우화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기서는 산신령이 아니라 '헤르메스'가 도끼를 들고 나타난다. ㅎ

수메르 신화나 플라톤 철학 등의 고대 사상들이 성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솝우화까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읽으니 신선하기도 했고,

주석 - 교훈에서 '주님'으로 번역한 '퀴리오스'는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신들을 칭송하는 글에서 사용되었지만,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도 썼다. 그리고 이 교훈의 내용은 성경의 야고보서4장6절과 같다. (p. 42)

그리스어를 알았다면 더 재미있었을 말장난 이 섞인 우화들은 주석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그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주석 - 이것은 그리스어로 '심장'을 뜻하는 '카르디아'에 '생강, 사고' 라는 뜻도 있음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두 번이나 속은 어리석은 사슴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이 없을 테니 '심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p. 245)

무엇보다 동화책으로가 아니라 원전 그대로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과 삶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역사로만 접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더 가깝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달까, 역사에서 느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좀더 친숙해졌달까 ㅎㅎ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솝 우화 같은 형태의 우화는 일찍이 기원전 3천년경부터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발전된 고대 우화로는 그리스 우화 이에도 아프리카 우화와 인도 우화가 유명하다. (p. 426) 고대 그리스의 경우, 최고의 서사 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에는 우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직후 몇몇 그리스 시에서 우화가 등장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한, 고대 그리스인 중에서 우화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소아시아에 살던 그리스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아시아는 우화에 자주 등장하듯 사자가 출몰하는 지역이었고, 전승에 따르면 우화 작가인 이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p. 427)

아이소포스가 쓴 우화는 무척 유명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사실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이르자 아이소포스는 그리스에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었고, 헤시오도스 나 헤로도토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사상가들도 곧잘 우화를 인용하곤 한 것을 보면, 이야기는 대를 잇는 지혜의 전승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을 끌면서 재치있게 교훈을 전달하는 방법이었기에 나이를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올 수 있었을 '우화' 라는 이야기의 힘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 옛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을 대표적 우화전집으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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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도 그랬으니까 - 이근후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서툴지만 내 인생을 사는 법
이근후 지음, 조은소리.조강현 그림 / 가디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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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후 정신과 전문의가 알려주는

서툴지만 내 인생을 사는 법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라는 책을 정말 기분좋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썼을 당시 저자의 나이가 이미 팔순을 넘긴 어르신 이었다. 그런데 에세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가 폭 빠져 읽을 정도로 멋진 어르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인상깊게 읽었었다.

예를들어, 자식과 위아래층에 살면서도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하지 않고 방문전에 꼭 연락을 하며 충분히 자식의 생활을 존중해 주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더랬다. 거기다 자식의 차로 함께 가기로 했던 곳을 자식에게 일이 생겨 혼자 택시를 타고 가야했을 때에도 불쾌하다거나 원망하는 마음없이 정말 쿨하게 '그럴 수 있지' 하는 태도에 '와 이런 분이 계시나' 싶었더랬다. 더구나 많다면 많을 수 있는 나이에도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해주겠지' 하며 바라지 않고 '나' 라는 사람이 할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 여전히 활발하게 하신다는 것이 대단하시구나 하며 감탄을 연발하곤 했었다. 그러니 그런 어르신의 또다른 에세이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번 책은 쓰시면서 '서투름' 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었다고 한다. 크게 4부로 나누어져 있는 얅고 작은 에세이인 이 책은 순서관계없이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간단하지만 분명한 조언을 찾을 수 있다. 그중 몇 가지만 골라보자면,

어떻게 살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든 우리의 목표는 일생을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p. 57)

중요한 것은 '나' 자신 이라는 것, 변치 않는 교훈이다. 물론, 이거이 '나만' 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 아닌 타인에 휘둘리지 않는,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주체적 '나' 를 생각해보라는 말일 것이다.

성공은 마디가 짧은 나무이고, 자기 성장은 마디 없이 나의 노력만큼 늘어나는 나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성공에 집착해 자기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성공은 한때의 즐거움이지만, 자기 성장은 끝없는 즐거움이다. (p. 63)

성공과 성장의 차이는 분명 크게 다가온다. 성공은 끝이 있다면 성장은 끝이 없어서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 과 실패로 양분되는 과정보다는 대박을 터뜨리진 못해도 꾸준한 과정 끝에 찾아오는 의미가 분명 가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젊은 독자분들께 돌다리를 두들기지 말아보기를 권한다. 돌다리는 건너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튼튼하든 부실하든 물 위를 건너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강을 건너려면 무조건 돌다리를 밟아야 한다. 돌다리가 튼튼한지 안 튼튼한지, 이것저것 걱정하다 보면 건너지 못할 수도 있다. 건너야 할 이유가 뚜렷하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건너야 한다. (p. 79) 정 두들기고 싶다면 일단 건너고 나서 한 번쯤 두들겨 보자. (p. 80)

이젠 팔순도 훌쩍 넘어 몇년 후엔 아흔이 되실 분이 이런 발랄함을 전해주실 수 있다니, 여전히 매력있으시다. ㅎㅎ

여유는 시야를 넓혀 주고 더 많은 행복과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다.

이제는 느림의 미학을 느끼는 삶을 지향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p. 214)

칠십이 넘은 나이때 사이버대학 강좌를 수강하시는 등 식지 않은 학구열을 유지하시고, 매년 에세이 한권정도 쓰시며 글솜씨가 없다하시면서도 꾸준히 글을 쓰시고, 이제 한쪽 눈은 실명에 다른 한쪽 눈마저 잘 안보이신다는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여전히 당신이 할수 있는 영역을 찾아 기껍고 즐겁게 활동하고 계신 듯 하다. 앞서 읽었던 책이 전해주는 재기발랄함은 부족한 듯한 이번책은 성기고 해묵은 조언들이랄까 어른들이 할법한 그런 말씀들이랄까 하여튼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라때식 표현도 이분처럼 하시면 들을법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연세에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살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스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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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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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진화와 지구 변천사의 황홀한 조화!

인류의 기원에 대한 궁극의 대답!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책 -선데이 타임스- > 라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거대한 지식의 통합 하지만 더 재치있고 더 빠져들게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 라고 써 있는 홍보문구를 보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게 굵직한 감동을 선사했던 인생책들인 [사피엔스] 와 [코스모스] 라는 어마무지한 책을 동시에 인용할 수 있는 이 책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책이란 말인가.

나는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탐구하려고 한다. 우리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문자 그대로 지구로부터 만들어졌다. (p. 12)

이 책에서 우리가 시도할 탐구는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펼펴질 것이다. 인류의 역사 전체는 사실상 정적인 지도(지구를 다룬 영화에서 단 한 프레임에 해당하는) 위에서 펼쳐졌다. (p. 16)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우리의 궁극적인 기원 이야기는 가장 심오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류의 진화를 이끈 지구의 과정들은 무엇이었을까? (p. 18)

내게 [사피엔스] 가 인류의 문명사를 이해하는 선구안을 가르쳐줬다면 [코스모스]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휴머니즘에 대해 각성시켜준 책이었다. [오리진]은 이 두 책의 간격을 메꿔주고 있는 듯한 책이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지구안에서만 이루어졌고 지구 자체는 태양을 비롯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행성이다. 저자는 우주 안에 속해있는 '지구'를 중심에 두고 인류문명사를 풀어낸다. 지구가 무엇에 영향을 받아 어떻게 변화해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저자는 지구 태초의 시간부터 현재까지 크게 잡은 주제들 위주로 굵직하게 설명한다.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류가 이동을 하게 된 지구적 원인은 진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류의 문명은 향신료, 암석, 금속 이 바닷길과 실크로드를 통해 오고가며 인류가 주체적으로 이루어낸 업적 같아보이지만 석탄과 석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현대까지도 지구적 영향력은 인간의 근시안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구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인간들의 세상은 지구의 얇디얇은 껍데기에 세워진 것에 불과했다. '판'의 활동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우리가 진화하는 동안 다양하고 역동적인 자연 경관의 특징을 만들어내고 유지한 것은 판과 화산의 활발한 활동이었다. 지구 전체에서 서로 멀어져가는 판들의 활동이 가장 실질적으로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일어나고 있는 이 거대한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우리의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p. 28)

인류의 진화는 동아프리카에서부터였다. 판게아에서 대륙들이 떨어져 나오고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 형태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판의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중력 같은 것을 살면서 체감하지 못하듯이 대륙의 움직임도 인간이 알아채기에는 어려운 활동영역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이 아프리카 대륙이 두쪽날지도 모른다니, 그것도 인류의 출발지가. 지구의 움직임은 진화에 영향을 끼쳐왔다. 인류의 진화또한 지금이 완성형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기원' 문제의 중요성을 새삼 각성시켜 준다.

인류의 진화에서 두발 보행 능력의 발달은 뇌 용량이 상당히 커지기 전에 먼저 일어난 게 틀림없다. (p. 30) 호모 에렉투스는 약 200만 년 동안 살아남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부학적 현생 인류가 이 세상에 출현해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은 이것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p. 31) 체형과 생활 방식에 일어난 이 발전은 서로를 견인했다. 효율적인 달리기와 정교한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서 도구 사용, 불조절 능력과 결합되자 사냥의 효율성이 높아져 음식물에서 고기의 비중이 커졌고, 이것은 뇌를 더 크게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은 다시 더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과 협력, 문화적 학습과 문제 해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언어의 발달을 낳았다. (p. 34)

인류의 진화에 대해 한 권으로 읽었을 법한 내용이 몇 페이지로 설명된다. 최근 읽은 DNA나 진화 관련 책들에서 봤던 내용들이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서술되는 것을 통해 저자가 최신 정보를 충분히 탐구하고 썼구나 싶어서 초반부터 책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높아졌다.

지구대를 만들어내는 판들의 장기적 활동 추세와 지구의 기후 변동과 우리의 진화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 서식지의 급격한 요동 사이의 핵심 연결 고리를 제공한 요인은 바로 이 증폭기 호수들이다. (p. 39)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환경의 산물이다. 우리는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후 변화와 판들의 활동이 낳은 유인원 종이다. (p. 44) 판들의 경계를 나타낸 지도 위에 주요 고대 문명 장소들을 겹쳐보면, 놀랍도록 밀접한 관계가 나타난다. (p. 44)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인류의 진화와 이동에 기후변화는 분명 중요한 변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 중에 판들의 활동이 있었다. 아니 판들의 활동이 먼저였다. 4대문명지가 다 강하류 농업이 유리한 곳이다 라는 식상한 문장을 뒤집어 생각해보게 하는 '판들의 경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양문명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그리스문명, 에트루리아문명, 로마문명 도 이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오늘날의 대도시의 위치 또한 이 지질학적 유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빙기는 평균적으로 8만년 동안 계속되고, 빙기들 사이의 간빙기는 그보다 훨씬 짧은 1만 5000년 정도만 지속딘다. 1만1700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처럼 각각의 간빙기는 기후가 다시 빙기로 돌아가기 전의 짧은 휴식기에 지나지 않는다. (p. 53) 13만~11만5000년 전에 일어난 바로 앞의 간빙기는 현재의 간빙기보다 일반적으로 더 따뜻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유럽에서 돌아다녔다. (p. 55) 지구의 궤도 이심률, 자전축의 기울기와 그 흔들리은 모두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기적으로 변한다. 이 주기적 변화들을 앞장에서 짧게 언급한 밀란코비치 주기 라고 부른다. (p. 59)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약 100만 년 전부터 더 느리지만 더 극단적인 주기로 건너갔는데, 바로 약 10만년 에 이르는 지구의 궤도 이심률 주기로 옮겨간 것이다. (p. 61) 현재 지구는 전체 생애 중 약간 기묘한 시기에 있다. 지구가 지금까지 존재한 전체 시간 중 80~90%는 지금보다 상당히 따뜻했다. (p. 62)

지구는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류가 존재하건말건 무관하게 자신의 활동을 할 뿐이다. 수억년의 지구 생에 중에서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미미하다. 지구의 활동을 안다는 것은 인류에게 시급한 문제다. 환경파괴를 이야기할 때 지구를 살리자는 표현이 마치 인류가 지구를 도와주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데 인간의 오만이다. 인류가 살기 위해 지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은 지구의 생존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다. 지구는 앞으로도 그저 자신의 활동을 해나갈 뿐이다. 인류가 존재하건 말건.

전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 조사에서 나온 가장 놀라운 결과는 사람이라는 종이 놀랍도록 균일하다는 사실이다. 머리카락 색과 피부색 또는 머리뼈 모양의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75억 명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은 놀랍도록 낮다. 사실, 지구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두 인간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보다 중앙아프리카의 어느 강 양쪽에 살고 있는 두 침팬지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이 더 크다. 하지만 사람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p. 71) 오늘날 아프리카인이 아닌 사람들의 유전 암호 중 약 2%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했다. (p. 72) 아프리카에 남은 원주민 중에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DNA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p. 73)

세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 같지만 거기서 거기란다. 그러니 질병 하나가 세계를 유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프리카는 가난한 대륙이라는 이미지로만 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곳이다. 인류의 기원을 알려주는 곳이자, 앞으로도 (작지만 그럼에도 존재하긴 하는) 인류의 '다양성' 연구에 중요할 곳이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불굴의 의지가 이글거리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아프리카의 고향에 결연히 등을 돌리고 지평선을 향해 과감하게 걸어가 대륙들 가장자리에 위치한 온 구석구석을 체계적으로 채워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렵 채집인 집단들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온 사방을 배회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p. 79)

신대륙과 구대륙간의 이동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낙타와 말은 사실 북아메리카에서 진화한 뒤, 베링 육교를 건너 유라시아로 넘어왔는데, 고향에 남아 있던 낙타와 말은 모두 죽고 말았다고 한다. 신대륙이라고 이름붙여지기 전에 이미 고대인류가 걸어서 건너간 땅이 아메리카 였다. 인류를 중심에 둔 미화는 삼가해야 한다. 문명의 발달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연 국경에 의해 구분된 것이다. 그곳에 살던 인류가 우수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면 자연과 환경과 지구의 영향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우리의 생활방식을 되돌릴 수 없게 바꾼 발명은 갑작스런 기후 변화의 역경 속에서 태어났다. (p. 93) 주요 곡물은 모두 초본 식물, 즉 풀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목초지에서 방목하는 소나 양, 염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인류도 풀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p. 100) 이 진화적 혁신 덕분에 식물은 습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p. 115)

인간이 농업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은 풀 덕택이었다. 식물이 포자번식에서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의 변천과정이 인류의 진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읽으며 경이로웠다. 전지구적 환경은 생태계와 밀접하게 상호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는 티베트 고원이 공급하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자원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물 이다. (p. 130)

중국관련 책을 읽었을때 티벳고원을 강제적으로라도 중국영토내에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가 정치군사적 이유라고만 생각했었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티베트 고원은 대륙이 급수탑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고인류의 이동에서 호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듯이 지각판들의 경계가 만들어낸 환경에서 물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사막에만 오아시스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꼭대기에도 벌판한가운데도 있었다. 지구는 그런 호수를 만들었다 없앴다 하곤 했다.

이렇게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임으로써 미국은 사실상 섬나라가 되었는데,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유럽과 반대쪽으로는 아시아와 해상 교역을 쉽게 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이 경제적 성공과 함께 자유의 이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지리적 환경이 제공한 조건 덕분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혼잡한 대륙에서 계속 서로 부대끼며 옥신각신 살아갔지만, 미국은 영토 보전의 안전성 때문에 거의 200년 동안 대외 정책에서 고립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p. 169~170)

고대그리스의 역사에서나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지리적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미국의 지리적 분석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블랙벨트' 지도를 보면서 오늘날의 정치가 먼 옛날 지질학적 구조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니 무척 흥미로웠다.

런던 지하철이 불편할 정도로 더운 이유는 런던 점토 때문이다. 지하 동굴은 보통은 상쾌할 정도로 서늘하기 때문에 이 점은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사실, 터널을 처음 팠을 때, 점토의 온도는 약14℃였고, 초기에는 런던 지하철이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라고 선전했다. (p. 215)

지하에서 런던 지하철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위를 감수해야 하는 일임은 경험한 바 있다. 이또한 사소할지라도 지구의 역습이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흔적을 남긴 지구의 역습도 있었다. 미노아문명은 지중해 교역으로 일찍이 큰 부를 쌓은 성공한 문명이었으나 지각판의 결실을 누린만큼 끔찍한 대가를 치룬 곳이기도 했다.

지구상의 모든 철은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에서 만들어졌다. 철은 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소이다. 큰 별의 중심부에서 수소 핵융합 반응을 통해 헬륨 '재'가 충분히 많이 쌓이면, 이번에는 헬륨 핵융합이 일어나 탄소와 산소가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더 무거운 원소들의 핵융합이 일어나 황과 규소를 비롯해 점점 더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지다가 결국에는 니켈과 철이 만들어진다. (p. 233) 역사적으로 우리가 귀하게 여겨온 금 은 지구가 철핵과 규산염 맨틀로 분리된 뒤에 지표면에 충돌한 소행성에서 온 것이다. (p. 234) 지구에 복잡한 생명체가 존재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뜨거운 철핵 덕분이다. (p. 235) 호상철광층은 대부분 지구에서 최초의 대륙들이 막 생겨나던 무렵인 22억~26억 년 전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전 세계 각지에 퇴적되었다. (p. 236)

인류가 순식간에 써 없애고 있는 광물들은 사실 지구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지구는 녹슬어갔다(p.241)' 라고 한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구는 다시 녹슬어 갈 수 없게 되었다.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동물들만이 아니었다.

2세기 초에 로마 제국과 한 제국은 공통점이 많았다. (p. 260)

전차의 발명은 기원전 2000년경에 일어났다. 전차는 전쟁의 전술에 혁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5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800년경에 <일리아드>를 쓸 무렵에는 청동기 시대의 이 군사기술은 이미 낡은 것으로 변한지 오래되었다. 전차는 명성과 권력의 상징으로만 명맥을 유지했다. (p. 277)

기마 유목민들은 때로는 공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농촌과 마을을 공격해 약탈했으며, 가져갈 수 있는 것을 다 약탈한 뒤에는 그냥 넓은 초원 지대로 돌아가 버렸다. (p. 279)

헝가리 평원은 생태학적으로 스텝과 농경 지대 사이의 중간에 위치했고, 스텝 초원 지대에서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p. 283)

페르시아의 이 성벽은 중국의 만리장성 다음으로 세상에서 두 번째로 긴 방어용 성벽이며, 만리장성과 똑같은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즉, 정착 문명과 야만 문명 사이의 경계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p. 286)

유라시아의 이슬람 핵심 지역을 파괴한 반면 유럽을 고스란히 남겨둔 덕분에 몽골족은 이 지역에서 권력의 균형추를 유럽으로 기울게 했고, 유럽은 이슬람 세계를 추월해 더 빨리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 (p. 292)

역사를 좋아해서 그런지 역사만 나오면 확 빨려들어갔다. 개인적으로 헝가리스텝지역의 발견은 서유럽 역사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류의 문명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지구의 영향력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어떤 위대한 제국도 결국 자연의 경계를 넘어서진 못했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그리스정교회 라는 기독교의 3가지 신앙도 살펴보면 자연적 경계를 바탕으로 형성됐고, 아메리카 문명이 빈곤해진 이유도 지형적 이유가 컸으며, 스텝지역에서 활동한 유목민족도 환경에 적응한 결과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중세의 교양있는 사람들 중에서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p. 311)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사람들은 독실한 신자들이었기에 천동설을 지지했으나 속으로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그것이 과연 교양이랄 수 있는 것인지... 아니 그렇기 표리부동했기에 정말 교양인것이었는지도.

석탄기의 세계는 지금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판들의 활동 때문에 지표면 위를 늘 돌아다니던 대륙들의 배열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석탄기 내내 주요 대륙들은 서로 들러붙으면서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로 합쳐지고 있었다. (p. 357)

에너지원이 되는 자원에 대해서는 실생활에서도 밀접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의 탄전들의 분포가 영국의 정치 지도에 영향을 미친 지도를 보고 있자니 수억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자원을 파내쓴 인간이 한 일이 결국 무엇인가 싶어진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화석 연료를 태우는 것은 병에 갇힌 진(아라비아 신화에 나오는 악마)를 꺼내는 것과 같다. 그것은 17세기에 거의 무한한 에너지를 원하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었지만, 나중에 우리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심술을 부렸다. (p.381)>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한 바퀴를 빙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p. 382)

저자는 '핵융합' 에너지라는(원자력이 아니다) 친환경적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면 더이상 지구의 자원을 소모시키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밀란코비치 주기에 의하면 약 5만년 뒤에는 지구의 기후가 빙기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인류가 대기로 쏟아낸 온실가스 때문에 예정된 다음번 빙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데, 이것이 인류의 희망시대가 될지 절망시대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지구는 끊임없이 역동적인 장소이며, 그 표면의 특징들과 행성 차원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은 인류의 이야기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 종은 독특한 판 구조론과 기후 조건을 지닌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출현했는데, 우리를 원인猿人에서 우주인으로 진화하게 해준 다재다능함과 지능은 우주의 주기에 따라 일어난 환경 요동의 산물이다. (p. 389) 문명의 전체 역사는 현재의 간빙기에서 잠깐 동안 반짝이는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는 잠깐 동안 기후가 안정된 시기에 살고 있다. (p. 390) 지구는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마련했고, 그 자연 지형과 자원은 계속해서 인류 문명을 나아갈 방향을 이끌고 있다. (p. 391)

[사피엔스]가 인류문명의 헛점을 짚어주고 [코스모스]가 우주속 먼지크기인 인류를 깨닫게 해줬다면 [오리진]은 인류가 결국은 지구에 속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다. 비록 앞선 두 책만큼의 인문학적 깨우침을 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인류와 우주 사이에 지구라는 연결점을 분명하게 자리매김해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잊지 말아야 겠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 (p.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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