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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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찬한 고전 중의 고전

88장의 독보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고대 그리스 원전에서 직접 번역한 358편의 우화 전집

이솝우화가 동화책이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이라는 표지 수식어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원전 완역본' 을 좋아한다.ㅎㅎ

이런 번역된 고전은 번역자가 정말 중요하다. 앞서서 박문재 번역의 원전 완역본을 몇 권 읽었었는데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었다. 고대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과 해제를 꼼꼼하게 달아주고 매끄러운 현대어로 된 문장 읽는 맛도 좋았다. 번역하는 책에 대한 번역자의 이해도가 고전 번역에서는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박문재 번역자의 책은 모두 원전 자체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 느껴져서 앞으로도 믿고 보는 번역자가 될 듯 하다.

이솝우화가 왜 동화책이 아닌가 를 먼저 알고 책을 읽으려면 책날개에 쓰여진 '저자 이솝' 에 대한 설명과 책 뒷부분의 해제를 읽어보면 된다. 이솝(BC 620~564)는 영어식 이름으로 원래 이름은 '아이소포스'로서 고대 그리스에서 독보적인 이야기 작가이자 연설가였다고 한다.

영어로 번역된 이솝 우화들은 많이 각색되고 분칠되어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주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소개되었지만, 원문이 전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야만적이고 거칠며 잔인할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이 처절한 일상 속에서 벼려낸 단단한 지혜를 다루고 있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마지막까지 이솝 우화를 탐독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책 날개 내용 中)

이솝 아니 아이소포스는 당시의 성인들을 일깨우고자 일상에서 겪은 여러 경험과 삶의 지혜를 재치있게 이야기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도 더 옛날옛적의 고대인이 들려주던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므로 소크라테스 시절에 소크라테스처럼 대중들에게 은유와 교훈이 섞인 대화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유용하고도 풍부한 지혜의 샘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들에게 '말'이라는 대화수단이 생겨난 이래로 '이야기'라는 것은 늘 있어왔을 것이다. 고전이라 불리는 것은 모두 다 그런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지... 인간의 삶이란 곧 story 이므로.

아이소포스의 이야기들은 구전되다가 조금씩 수집되었는데 기원전 4세기에 아테네의 정치인이자 대중 연설가였던 데메트리오스가 당시 연설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10권의 책으로 펴냈다. 연설가들이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연설을 하려면 이런 우화들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기술이 아주 유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인기있는 강연이나 강좌들은 본내용 자체보다도 곁들여지는 강사의 이야기들이 아니던가.ㅎㅎ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솝 우화 모음집은 기원후 1세기에 바브리우스가 160편의 우화를 편찬한 판본이고, 이후에 나온 것들은 이 판본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최초로 이솝 우화를 라틴어로 번역해서 책을 펴낸 사람은 기원후 1세기에 살았던 아우구스투스이 해방노예 파에드루스였지만 이후 중세 시대에 나온 거의 모든 라틴어판 이솝 우화들은 10세기에 로물루스라는 우화 작가가 펴낸 책을 대본으로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텍스트로 사용한 것은 1927년에 에밀 샹브리가 간행한 것인데 이 판본에서 샹브리는 358개의 우화에 그리스어 알파벳 순서로 번호를 매긴 뒤 각 우화의 그리스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배열해놓았다고 한다. 이 책은 이솝시대부터 구전을 통해 수집되면서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된 이야기 중에서 그리스어 원전 358편을 완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페이지에 이야기 하나씩 그리고 간혹 독특한 그림들과 어우러지는 우화들은 옛이야기 읽는 재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촌철살인의 깨달음이 전해지기도 한다.

아이소포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독수리와 쇠똥구리' 라는 우화를 읽으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해보게 되고, '협잡꾼' 이라는 우화에선 신전에서 말해지는 신탁이 사기라는 것을 넌즈시 알려주고 싶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현실에도 딱 들어맞는 우화를 읽을 때면 '이야기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들에게 기원만 하는 사람을 깨우치는 '난파당한 사람' 이나 '제우스와 좋은 것들이 담긴 단지' , '신들을 놓고 언쟁을 벌인 두 사람' , '말과 소와 개와 사람' , 법을 지키지 않는 위정자들을 빗대는 '늑대와 당나귀' , 전쟁의 원인에 대한 '전쟁과 오만' 등은 정말 팍팍 꽂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하나만 옮겨보자면,

강물을 때리는 어부

한 어부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어부는 강둑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쳤다. 그런 후에 밧줄 끝에 돌을 묶어서, 그 밧줄로 강물을 때렸다. 물고기들이 깜짝 놀라 도망가다가 엉겁결에 자신이 쳐놓은 그물망에 걸려들게 할 속셈이었다. 그 근방에 사는 사람 한 명이 그렇게 하는 어부를 보고, 그가 그렇게 강물을 흐려놓아 그 물을 마실 수 없다고 말하며 그를 꾸짖었다. 어부는 대답했다. "하지만 강물이 이렇게 탁해지지 않으면, 나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소"

교훈 - 선동정치가는 나라가 여러 편으로 갈라져 격렬하게 싸울때 가장 큰 이득을 본다. (p. 50)

동화책으로 보던 우화가 원전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여우와 포도송이' 라는 우화는 동화에선 '신 포도들'이라고 번역되어져 왔지만 그리스어 원전은 '덜 익은 포도들' 이라는 것과

'개미와 베짱이' 가 아니라 '매미와 개미들' 이었다는 것이 신선했고

'배와 발' 이라는 우화는 '머리와 발' 로 바뀌곤 하지 않았나 싶었는데고 무엇보다

'금도끼 은도끼' 가 우리나라 전래동화 뿐만 아니라 이솝우화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기서는 산신령이 아니라 '헤르메스'가 도끼를 들고 나타난다. ㅎ

수메르 신화나 플라톤 철학 등의 고대 사상들이 성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솝우화까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읽으니 신선하기도 했고,

주석 - 교훈에서 '주님'으로 번역한 '퀴리오스'는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신들을 칭송하는 글에서 사용되었지만,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도 썼다. 그리고 이 교훈의 내용은 성경의 야고보서4장6절과 같다. (p. 42)

그리스어를 알았다면 더 재미있었을 말장난 이 섞인 우화들은 주석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그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주석 - 이것은 그리스어로 '심장'을 뜻하는 '카르디아'에 '생강, 사고' 라는 뜻도 있음을 이용한 말장난이다. 두 번이나 속은 어리석은 사슴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이 없을 테니 '심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p. 245)

무엇보다 동화책으로가 아니라 원전 그대로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과 삶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역사로만 접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더 가깝게 다가오는 기분이었달까, 역사에서 느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좀더 친숙해졌달까 ㅎㅎ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솝 우화 같은 형태의 우화는 일찍이 기원전 3천년경부터 수메르어와 아카드어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발전된 고대 우화로는 그리스 우화 이에도 아프리카 우화와 인도 우화가 유명하다. (p. 426) 고대 그리스의 경우, 최고의 서사 시인이었던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에는 우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직후 몇몇 그리스 시에서 우화가 등장한다. 현재 우리가 아는 한, 고대 그리스인 중에서 우화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은 소아시아에 살던 그리스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아시아는 우화에 자주 등장하듯 사자가 출몰하는 지역이었고, 전승에 따르면 우화 작가인 이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p. 427)

아이소포스가 쓴 우화는 무척 유명하지만, 그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사실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이르자 아이소포스는 그리스에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되었고, 헤시오도스 나 헤로도토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사상가들도 곧잘 우화를 인용하곤 한 것을 보면, 이야기는 대를 잇는 지혜의 전승수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을 끌면서 재치있게 교훈을 전달하는 방법이었기에 나이를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올 수 있었을 '우화' 라는 이야기의 힘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그런 옛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을 대표적 우화전집으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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