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2 -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일본인 이야기 2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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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는 진보의 시대였는가,퇴보의 시대였는가

이 책은 역사책이다. 그리고 시리즈다. 역사시리즈라서 딱히 순서대로 읽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순서대로 읽는 것이 정리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5권 전권이 나오진 않았다.

1권을 읽고 홀딱 반했던 터라 2권을 무척 기다렸더랬다. 1권에서 다룬 16세기를 전후한 일본에 대한 내용들은 그동안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주었고 2권에선 또 어떤 새로운 깨우침을 줄지 무척 기대했다. 2권은 17세기를 전후한 시대 즉, '에도막부'시기에 대한 내용이다.

처음에 <일본인 이야기>시리즈를 다섯 권으로 구상했을 때, 저는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단순히 시간 순서대로 다루지 않고, 각 권마다 뚜렷한 포인트를 잡아 일본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제1권의 포인트 혹은 쟁점은 카톨릭과 조선이었습니다. 이번 제2권의 포인트는 농민의 일생, 그리고 그들을 치료해준 의료·의학입니다. (p. 4 '들어가며' 中)

역사는 이름난 몇명을 기록할 뿐이지만 그 역사를 살아낸 대다수의 사람들은 '농민'들이었다. 역사를 읽어나가는 방식을 크게, 굵직한 사건들과 위인들로 역사의 개요를 정리할 수 있는 것과 변한듯 변하지 않은듯 일반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것으로 나눈다면 대부분의 역사는 첫번째 방식으로 읽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반 독자인 우리가 역사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방식은 두번째 가 아닐까? 백성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의 생활을 살펴보는 2권을 시작하며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그래서 일본이야기 가 아니라 일본인이야기 라고 정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농민의 삶을 중심에 두었을때 에도시대를 진보로 볼지 퇴보로 볼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결론 스포를 좀 미리 하자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농민들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지금부터 제가 이 책에서 말씀드리려는 내용의 관점은 앞에서 소개한 두 가지 입장과 모두 다릅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이 16세기의 센고쿠시대와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퇴보했다고 생각합니다. (p. 15)

센고쿠 시대에 유럽과 동시대적으로 교류했던 일본은 자기 집안과 지배층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발전을 정지시키기로 한 두쿠가와 이에야스의 결정에 따라 갑자기 유럽과 단절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던 혁신을 유럽인들에게 직접 배우지 못하고, 네덜란드어로 집필하거나 번역한 책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에도 시대 일본의 네덜란드학, 즉 난학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p. 15)

일본의 에도시대는 같은 시기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움직임과 비교했을 때 동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퇴보였습니다. 조선과 대청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만 비교해서 에도시대 일본이 성취를, 특히 난학의 성취를 과대평가하는 관점은 너무 좁은 세계관입니다. 이런 식의 과대평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사회의 지적인 한계가 되었으며, 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서 일본은 서방 선진국과 같은 국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의 퇴보와 진보를 같은 시기 유럽의 상황과 비교하고, 유럽과의 접촉 정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 18, 19)

이 책은 두괄식인건가 ㅎㅎ 초반에 저자의 주장은 대부분 일찌감치 드러난다. 이 책의 부제도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인만큼 주제의식을 미리 분명히 한 것일수도 있는데, 초반부터 진보와 퇴보의 판단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사는 꼭 진보해야 하는가? 퇴보가 나쁘기만 한가? 진보냐 퇴보냐 식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면 편리한 디지털 시대에 수고스러운 아날로그적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퇴행한 것인가? 역사에 방향이 있다면 나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퇴보한 것 같은 순간에도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듯 역사도 앞으로 흘러가고 이러튼저러튼 인간들은 그 속에서 배우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더 나은 방향을 늘 꿈꾼다.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항상 진보가 아닐런지... 인간은 항상 어딘가로 한발짝은 내딛고 있지 않은가. 쇄국은 항상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의 이유가 다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의 필연성을 시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를 읽는 이유가 아닐런지... 여하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더구나 서방세계와 비교한다면 에도시대 쇄국이후의 일본은 정체이자 퇴보라고 부를 수 있긴 하다.

에도시대에 관해 논할 때 3대 도시의 경제적 융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를 미화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났는데,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에도시대를 미화하는 경향이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농촌 거주 인구가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에도시대, 이 시대에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지배층이 초래한 인재와 지진·냉해 등의 자연재해 사이에 낀 일본의 피지배층은 살아남기 위해, 나아가서는 잘살기 위해 개인으로, 또는 가족 단위로 노력했습니다. 난학의 핵심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난의학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의학, 즉 난의학은 한계가 뚜렷했습니다. (p. 21, 22)

1권에서도 느꼈지만, 2권에서도 저자는 용감하게?! 사견을 많이 피력하고 있었다. 특히나 에도시대와 겹쳐지는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서양중세=암흑기'라는 일반화된 도식처럼 일본도 조선도 암흑기였다며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이 일본인이야기이므로 에도시대 농민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2권의 내용은 대부분 농민들의 힘들었던 삶을 풀어내고 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일반 백성들이 살기 편했던 시대가 있었는가? 에도시대 이전의 농민들의 삶의 질이 어떠했기에 에도시대 농민들의 삶을 퇴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지 비교서술을 해주는 것이 좀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에도시대 농민들의 삶이 힘들었고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이 힘들었던것을 알겠다 알겠는데 그 전과 비교해서 무엇이 더 힘들어진 것일까? 그저 내내 힘들었던 게 아닐까? 진보냐 퇴보냐는 결국 역사에 족적을 남긴 몇몇 사건들로 판단되는 것이지 이 책의 핵심이라는 농민들의 삶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한의학과 난의학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나아가 이와 같은 절충적인 사고방식은 에도 시대 일본의 학문 전반에서 널리 확인됩니다. 이런 점에서 에도 시대는 절충과 타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화권과 일본, 유럽의 절충, 한의학과 난의학의 절충, 도쿠가와 막부라는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농민과 도시민의 타협, 조선과 명나라, 대청제국과는 달리 과거 제도가 없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지식인의 타협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p. 33)

이 시리즈의 최대 강점은 일본 역사에 대한 무지를 깨뜨려준다는 것이다. 읽을때마다 놀랍지만 일본역사는 중국이나 한국보다는 봉건제 유럽과 닮아 있었다. 천황이 있으나 다스리지 않았고 다스리지 않아도 정신적 중심으로 늘상 있어오다 보니 마치 일신교처럼 일본사회를 묶어주는 역할을 해왔고 종교는 불교 비슷한 절들로 넘쳐났지만 주로 주민센터역할을 했기에 신도라는 일본의 종교는 천황중심이 될 수 밖에 없어보이는 것이 신기했고 신묘한 수 같았다. 통치자들은 바뀌어도 황제가 되려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항상 무력독재이긴 하나 통일국가라기 보다는 소도시들의 연합체로 오랜 세월 지내왔으며 지역공동체와 가문의 이어짐이 한번도 변한적이 없는 것을 보면서 일본사회의 독특함은 신기할 정도였다. 하나로 합쳐진듯 보이면서도 항상 따로따로 소규모로 살아온 그들의 정신과 문화가 우리네와 너무 달라서 앞으로도 서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를 또한번 깨달았달까.

과거제도가 없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조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공부할 수가 있었습니다. 에도시대 일본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의 학자들은 주희 선생의 관점을 따르며 관료 시험을 준비한 것이지, 자기 생각을 심화하고 펼치는 진짜 공부를 한 것이 아닙니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자기 앞가림만 할 수 있다면 공부하겠다고 마음먹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의 목적도 역시 사회적으로 성공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공부해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럿 있었습니다. (p. 49, 50)

과거제도가 없었기에 주류 사상과 관료적 신분사회가 아니었던 일본도 공부의 목적은 결국 입신양명이었다. 시험준비만 하면 되는 공부가 차라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판단하기 쉬었다면 그래서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면 자유로이 공부를 선택할 수 있었던 에도시대 일본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학문은 결국 실용적 분야일 수밖에 없었고 학문의 구심점은 생겨나기 힘들었다. 무사계급이 항상 지배를 하다보니 지식인층은 무력하고 무시받는 계층이었지만 그럼에도 쓸모가 있다면 권력층에 눈에 들어 편하게 살 길이 열렸다. 싸우다 다치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던 시대 게다가 한정적일지라도 유럽의 의학이 소개된 일본사회에서 글자 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의학에 쏠리는 관심이 어쩌면 당연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사 집단이 보기에 글자를 다루는 사람은어차피 위협이 되는존재가 아니었고, 사상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기묘사화나 대청제국 정부가 지식인을 탄압한 문자옥 같은 사건이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식인 집단이 정치 문제에 참견하고 나설 때는 막부가 즉시 반응했습니다. 요는 글 다루는 사람들은 정치에 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p. 52)

지식인집단이 주요 정치권력을 형성했던 중국과 한국과 달리 일본은 오랜 세월 무사계급이 권력을 잡아왔다. 고대와 근대 사이 내내 그런것 같다. 정치권력에 지식인층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문화가 그토록 오랜 세월 이어졌다는 것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나저나 저자는 책에서 내내 대청제국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명나라는 그냥 명나라 라고 하면서 청나라는 왜 대청제국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사학자계에서 쓰는 용어인가;;;

여담이지만, 시민 강의를 하다 보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에도시대 일본의 공부하는 생활인들의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이런 분들이 사이비 역사서인 <환단고기> 같은 책을 읽고 국수주의에 빠지거나, 출토문헌 연구에 근거하지 않은 역학 공부에 빠져서 열정과 재산을 쏟아붓는 경우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분들께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순서를 알려드릴 지식인 집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일본은 에도 시대 이래로 국가가 전국의 학문을 통제하는 전통이 없었고, 메이지 시대의 고등문관시험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보니, 국가의 녹을 받아야만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시민을 상대로 글 쓰고 강연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지식인 집단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들 지식인 집단과 시민들이 지속해서 만나면서 일으키는 선순환이 일본 출판계의 번성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p. 53, 54, 55)

어려서는 어려운 집안 형편때문에 못하던 공부를 삶이 안정되고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은 십분 이해가 된다. 옛날부터 시험을 통해 등용되는 문화를 지녀온 한국에서 여전히 시험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체제가 평생공부를 방해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생활공부가 과연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가 비판하는 조선시대에는 배우지 못한 농민도 배운 사람도 때때로 권력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봉기를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일본역사는 어떠한가? 일본에선 혁명이 없었다. 실패했건 성공했건 어쨌건간에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선 수시로 있었던)사회변혁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는가? 지식의 대중화는 좋으나 실용성 위주로 하던 공부가 얼마나 심도깊은 지식인층을 만들어냈는가? 일본의 출판문화는 나도 부러운 부분이 많다. 특히 체계적인 고전원서번역이 그렇다. 이런 돈이 되지 않는 책들이 출판될 수 있는 것은 만화책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데 저자는 지식인층이 있기에 출판계의 번성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한국에 중간지점의 지식인집단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학자집단에서 먼저 대중에게 올바른 방향을 이끌어줄 수는 없는 것인가? 바람직한 공부방향을 알려줄 수는 없는 것인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문화가 여전히 어려운 국내현실에서 솔선수범하는 학자층을 나는 발견하고 싶다.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막부의 정책에 따라 유럽으로부터 고립되었고, 도쿠가와 가문과 각지의 다이묘들이 영원히 일본을 지배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변화를 거부하는 시스템을 강제한 시대였습니다. 피지배민, 특히 농민들은 과중한 세금을 지배 집단으로부터 요구받으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피지배민들은 능동적·수동적 방법으로 자기 자신과 집안의 생계를 꾀했고, 희미하게 열려 있는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 그들의 분투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드리겠습니다. (p. 59)

'서장 - 백성과 의사' 에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거의 다 설명된다. 1장-백성들의 이야기 와 2장-의사들의 이야기 는 그야말로 세부적 내용들이라 부분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의 반복이 보이기도 한다. 1권과 달이 2권에서는 마무리 글이 없이 본문으로 끝난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무리글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책의 '서장' 내용이 마무리글에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점을 먼저 알려주고 상세히 풀어가는 것과 상세한 내용들을 차근차근 훑어본 후 정리하는 것 중 후자를 선호하다 보니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왠지 개운치가 않았다.

많은 한국인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굉장히 단일한 성격을 띤 하나의 국가라는 이미지이지만, 에도 시대 일본은 3백여 개의 국가가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마치 오늘날 지구상의 2백여 개 국가가 국제무역을 하듯이, 이 '에도시대 일본'이라는 하나의 세계에서도 3백여 개의 국가 사이에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국제연합UN보다 강력하기는 했지만, 도쿠가와 막부도 3백여 개의 번 이라는 국가를 일일이 통제하고 중계할 수는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서방 국가들에는 식량이 남아돌아도 제3세계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에도시대 일본에서도 지속해서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번 은 서로 독립적으로 번 내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p. 88)

지금의 세계 국경선이 정해진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전쟁전에 서로의 왕조가 얼키고설켜서 국가라는 개념은 희미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국국민은 런던에 살면 런던인이라 부르고 웨일즈에 살면 웨일즈사람이라 칭한다. 이탈리아 사람은 로마에 살면 로마인이라 부르고 시칠리아에 살면 시칠리아인이라 칭한다. 스스로를 영국인 이탈리아인이라고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중심의 이러한 사고방식이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유지된 것 같다. 단순한 국기처럼 하나의 일본인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은 각각 독립적이고 그렇기에 중앙정부에 대해 무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집권화로 오랜 세월 역사를 쌓아온 우리와는 엄청나게 다른 사고방식일 것이다.

쌀을 둘러싸고 지배층인 무사 집단과 피지배민은 첨예한 계급적 갈등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지배층이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종교를 빼앗긴 상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피지배민의 봉기·폭동은 언제나 무사집단이 양보하는 척을 하다가 피지배민 측의 지도급 인사들을 처형하면 흐지부지 소멸하는 패턴을 그렸습니다. (p. 92)

민중은 꾹꾹 참다가 봉기를 일으킬 수 있지만, 지도자가 없는 민중의 봉기는 대체로 좌절되고 더 큰 탄압을 부릅니다. 지도자가 있다 해도 대안이 될 세계관과 이론이 없는 봉기는 뚜렷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백성들의 목숨만 잃게 합니다. 에도 시대는 그런 봉기와 좌절을 되풀이한 시대였습니다. (p. 98)

천황이 마치 종교처럼 상징적 구심점이 된 것은 세계전쟁을 일으키던 군사집단의 계획이었지 그전 시대에 천황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일본의 역사는 내내 무사들로 대표되는 폭력세력이 권력을 잡은채 종교도 사상도 그 어떤 주된 사상도 없이 큰 사회적 변화없이 흘러온 것 같다. 그러니 사회를 바꿀 생각을 할 수 없는 일반백성들은 개인적 판단으로만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크게 뒤바뀌는 것 같을때 갈팡질팡에 빠져 쉽게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근대 일본문학이 그렇게 허무하고 냉소적인 개인주의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안좋아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 갑자기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여러 번 주군을 갈아타며 자신의 운을 시험하던 무사들이나 센고쿠 시대의 이합집산 속에 주군을 잃어버린 무사들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규모의 무사가 실직하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 초기에 실직하고 살길을 모색한 무사의 전형은 오제 호안입니다. (p. 143) 이념을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도 된다는 주자학자 오제 호안의 입장은 한반도에서 낯설지 않습니다. 의학과 저술·출판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학문을 닦아 당대의 권력자들에게 어필하고 구직하는 오제 호안의 삶은 과거제 없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 지식인이 생계를 꾸리는 초기 모델이었습니다. (p. 145, 146)

에도시대에는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다지만 그렇게 생활속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시대를 끌어가는 지식인층이 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공부하여 지배계급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오제 호안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왜곡도 서슴지 않았음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권력층에 영향을 끼쳤다. 저자가 바람직하게 보는 일본의 중간층 지식인집단이 어떤 성격이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에도 시대에 지배 집단의 압박에 저항할 만한 세계관이나 이론을 지니지 못한 피지배민들은 쉽게 꺾일 하쿠쇼잇키를 일으키거나, 바바 분코 사건에서 보았듯이 문학을 이용해서 지배 체계에 저항했습니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문학으로 사상을 합니다. (p. 154)

문학을 이용해서 지배 체계에 저항했나? 권력층이 저항받았다고 알기는 했을까? 문학으로 사상을 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니고?

이렇듯 예속민을 이용한 농업의 한계가 뚜렷하다 보니 조선에서도 '17세기에 노비를 이용한 양반의 직영지가 급속히 감소'하게 됩니다. 물론 그 정도는 일본과 달랐습니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초기에 인구조사에 흔히 나타나던 예속민이 중후기 들어서는 거의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지만, 조선은 독자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다시피 멸망 직전까지 노비제도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p. 179)

일본과 조선은 다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농민은 세금만 되면 되는 자유민과 비슷했지만 조선 노비는 그냥 모든 것이 종속된 노예였다. 예속민이 사라진 시기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구조의 차이였다. 그런데 왜 나는 저자가 '다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 틀렸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읽혀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조선을 바람직한 사회였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사회구조의 차이는 많은 것을 달리 이해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의 흑인노예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은 과연 흑인이 백인과 똑같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른 학문보다도 특히나 역사는 '다르다' 와 '틀리다' 를 잘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의학이든 문학이든 사상이든 예술이든 간에 지적 활동을 하는 사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고, 그들은 서로 가족 간이거나 친구이거나 스승·제자, 선배·후배 관계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p. 244)

일본에서 정말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은 후지와라 세이카의 길을 택하여 학원 선생이 되거나 의사가 되는 등 스스로 밥벌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p. 248)

일본에서는 의사가 되어 명의로 이름을 날리면 막부나 번에 관료로 채용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막부나 번에 채용된 의사들은 대대로 의사지위를 세습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옛 의학서를 연구할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 세습 의사들은 한의학 서적은 물론이고 중화 세계와 일본의 귀중한 책들을 고증학적으로 연구해서 속속 성과를 냈습니다. (p. 263)

이런 일본의 문화는 지금도 여전해 보인다. 이해는 안되지만 정치도 세습되고 있다. 누구나 공부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공부하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빴다. 공부할 여건이 되면 개인적 취미처럼 공부했다. 시대의 사상엔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획일적이나마 사회적으로 신분상승의 유일한 도구로 똑같은 것을 공부하던 조신시대에는 편협하건 어쨌건 간에 학자층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그닥 득이 된 것 같진 않지만... 여하튼 지금도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그래서 자식의 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러니 평균은 일단 높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집안대대로' 식의 약간 '끼리끼리' 문화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어느 사회가 더 닫힌 사회인가? 어느 사회에 더 양질의 중간 지식인층이 많을 수 있겠는가? 어느 사회에서 더 시대의 리더가 탄생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유의는 자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권력에 기대지 않고 자유로운 공부를 하려 한 에도 시대 지식인 집단의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시민학계·의료계와 관제학계·의료계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권력층에서 부르면 달려가서 한자리 차지하고 곡학아세하기 바쁜 한국의 몇몇 시민 단체와는 달리, 일본의 시민 단체들이 쉽게 권력에 기대거나 투항하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근원에는 나고야 겐이와 이토 진사이, 고토 곤잔 같은 유의 정신을 지닌 선배들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p. 266~267)

일본 지식인층이 자유로이 공부해서 그래서 무엇을 했는가? 지역공동체를 위해서 뭔가 했다하더라고 나라를 위해서는 시대를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근근이 불편함을 해소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는 것과 나라를 뒤집어 엎는 것중 무엇을 지향하는 지는 각자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규모 지역적 지식인층의 집단이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중간지식인층인 것일까?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그렇게 부끄러운 행태만 보여왔는가?

역사를 연구하면서 특히나 다른 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그 나라에 애정이 생긴다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더 애정이 생길 것이다. 반대급부적으로 내가 속한 나라와 비교하면 할수록 내 나라의 문제점이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학자의 중립적 태도는 그 무엇보다 학자의 기본태도가 아닐런지.

그래도 저는 센고쿠 시대에서 에도 시대를 거쳐 메이지 시대에 이르는 4백년의 일본을 바라보면서, 단기적으로는 사회가 퇴보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를 극복하고 조금씩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퇴보의 기간 중에 괴로워하고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퇴보를 회복하기 위한 불필요한 노력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괴로움과 불필요함을 저는 에도 시대에서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에도 시대를 진보가 아닌 퇴보의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사회와 역사를 일본 내부의 흐름으로만 바라보면 이러한 좌절과 극복의 과정이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가톨릭, 조선, 한센병 호나자, 천민, 농민... 이런 외부·소수 집단으로부터 일본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일본 사회가 겪은 퇴보와 진보가 확인됩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과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 한국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약 6백 년에 걸친 거대한 좌절과 회복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p. 324~325)

역사의 주체를 일반 백성을 기준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 농민들 말고 조선의 한국의 농민들에 대해서도 저자가 이 책에서 일본농민들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 의학을 전후하여 일본에 소개된 자연과학, 지리학 등을 가리키는 난학이 기존의 중국학이나 일본의 전통적인 지식 체계와는 전혀 다른 학문으로서 일본의 상층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과학 세계관을 소개한다고 해서 순식간에 사회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p. 376)

유럽에서도 이랬을진대, <해체신서>를 비롯한 몇 권의 유럽 의학서와 자연과학서가 일본어로 번역되었다고 해서 에도 시대 일본이 그로부터 급격하게 근대를 향해 질주했다는 식의 이미지를 갖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p. 377)

조선시대 흥선군의 쇄국정책은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건일 것이다. 에도시대 서양세력에게 열렸던 문을 닫은 것또한 쇄국이었지만 네덜란드를 향한 한곳의 문을열어두었으니 쇄국이 아니라고 일본 교과서에서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들 중 쇄국이라는 용어를 지웠다고 한다. 그러니 근대로의 발판이 된 시대라고 표현하기 더욱 좋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도시대 2백여년간은 흥선대원군 시대의 쇄국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농촌과 도시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그리고 평생 사람들에게 부림을 당하다가 쓸모없어지자 도살당할 위기에 처한 소와 말을 구제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구마가이 렌신,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하는 농민들의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신분과 법규까지도 뛰어넘은 하가 주토쿠, 이 두 사람은 도쿠가와 막부가 자신들의 일본 지배를 영구히 하기 위해 유럽에 대한 쇄국을 시행함으로써 물질적 혜택, 특히 의료 혜택을 박탈당한 가운데에서도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 에도 시대 일본 피지배민의 고군분투를 상징합니다. 제3권에서는 지배층의 방해를 이겨내고 '더 잘살기 위해' 노력한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1년 뒤에 뵙겠습니다. (p. 398~399)

작년에도 이맘때 1권이 나왔던가... 일년만에 기다리고 기다렸던 2권을 읽었다. 1권에서처럼 많은 깨우침을 얻진 못했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해 새롭고 신선하면서 다양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 2권이었다. 마무리글이 없어서 아쉽긴 했지만, 2권에서 농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었고 무사집단은 고여있었고 시대는 정체된 에도 시대를 볼 수 있었다. 3권에서는 아마도 더 적극적으로 일본식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일본의 역사를 읽으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주는 이 시리즈는 정말 좋은 시리즈다. 1년을 기다려 3권도 꼭 읽고 싶다. 그렇게 5권까지 꼭 다 읽겠다고 마음먹은 역사 시리즈다. 저자의 노고를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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