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제가 이 책에서 말씀드리려는 내용의 관점은 앞에서 소개한 두 가지 입장과 모두 다릅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이 16세기의 센고쿠시대와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퇴보했다고 생각합니다. (p. 15)
센고쿠 시대에 유럽과 동시대적으로 교류했던 일본은 자기 집안과 지배층의 정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발전을 정지시키기로 한 두쿠가와 이에야스의 결정에 따라 갑자기 유럽과 단절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던 혁신을 유럽인들에게 직접 배우지 못하고, 네덜란드어로 집필하거나 번역한 책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에도 시대 일본의 네덜란드학, 즉 난학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p. 15)
일본의 에도시대는 같은 시기의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움직임과 비교했을 때 동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퇴보였습니다. 조선과 대청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만 비교해서 에도시대 일본이 성취를, 특히 난학의 성취를 과대평가하는 관점은 너무 좁은 세계관입니다. 이런 식의 과대평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사회의 지적인 한계가 되었으며, 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서 일본은 서방 선진국과 같은 국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에도 시대 일본의 퇴보와 진보를 같은 시기 유럽의 상황과 비교하고, 유럽과의 접촉 정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