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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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진화와 지구 변천사의 황홀한 조화!

인류의 기원에 대한 궁극의 대답!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책 -선데이 타임스- > 라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거대한 지식의 통합 하지만 더 재치있고 더 빠져들게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 라고 써 있는 홍보문구를 보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게 굵직한 감동을 선사했던 인생책들인 [사피엔스] 와 [코스모스] 라는 어마무지한 책을 동시에 인용할 수 있는 이 책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책이란 말인가.

나는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탐구하려고 한다. 우리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문자 그대로 지구로부터 만들어졌다. (p. 12)

이 책에서 우리가 시도할 탐구는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펼펴질 것이다. 인류의 역사 전체는 사실상 정적인 지도(지구를 다룬 영화에서 단 한 프레임에 해당하는) 위에서 펼쳐졌다. (p. 16)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우리의 궁극적인 기원 이야기는 가장 심오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류의 진화를 이끈 지구의 과정들은 무엇이었을까? (p. 18)

내게 [사피엔스] 가 인류의 문명사를 이해하는 선구안을 가르쳐줬다면 [코스모스]는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휴머니즘에 대해 각성시켜준 책이었다. [오리진]은 이 두 책의 간격을 메꿔주고 있는 듯한 책이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지구안에서만 이루어졌고 지구 자체는 태양을 비롯한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행성이다. 저자는 우주 안에 속해있는 '지구'를 중심에 두고 인류문명사를 풀어낸다. 지구가 무엇에 영향을 받아 어떻게 변화해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저자는 지구 태초의 시간부터 현재까지 크게 잡은 주제들 위주로 굵직하게 설명한다.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류가 이동을 하게 된 지구적 원인은 진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류의 문명은 향신료, 암석, 금속 이 바닷길과 실크로드를 통해 오고가며 인류가 주체적으로 이루어낸 업적 같아보이지만 석탄과 석유를 바탕으로 세워진 현대까지도 지구적 영향력은 인간의 근시안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구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인간들의 세상은 지구의 얇디얇은 껍데기에 세워진 것에 불과했다. '판'의 활동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우리가 진화하는 동안 다양하고 역동적인 자연 경관의 특징을 만들어내고 유지한 것은 판과 화산의 활발한 활동이었다. 지구 전체에서 서로 멀어져가는 판들의 활동이 가장 실질적으로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일어나고 있는 이 거대한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우리의 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p. 28)

인류의 진화는 동아프리카에서부터였다. 판게아에서 대륙들이 떨어져 나오고 지금의 형태가 완성된 형태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판의 움직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 중력 같은 것을 살면서 체감하지 못하듯이 대륙의 움직임도 인간이 알아채기에는 어려운 활동영역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이 아프리카 대륙이 두쪽날지도 모른다니, 그것도 인류의 출발지가. 지구의 움직임은 진화에 영향을 끼쳐왔다. 인류의 진화또한 지금이 완성형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기원' 문제의 중요성을 새삼 각성시켜 준다.

인류의 진화에서 두발 보행 능력의 발달은 뇌 용량이 상당히 커지기 전에 먼저 일어난 게 틀림없다. (p. 30) 호모 에렉투스는 약 200만 년 동안 살아남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부학적 현생 인류가 이 세상에 출현해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은 이것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p. 31) 체형과 생활 방식에 일어난 이 발전은 서로를 견인했다. 효율적인 달리기와 정교한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서 도구 사용, 불조절 능력과 결합되자 사냥의 효율성이 높아져 음식물에서 고기의 비중이 커졌고, 이것은 뇌를 더 크게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은 다시 더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과 협력, 문화적 학습과 문제 해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언어의 발달을 낳았다. (p. 34)

인류의 진화에 대해 한 권으로 읽었을 법한 내용이 몇 페이지로 설명된다. 최근 읽은 DNA나 진화 관련 책들에서 봤던 내용들이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서술되는 것을 통해 저자가 최신 정보를 충분히 탐구하고 썼구나 싶어서 초반부터 책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가 높아졌다.

지구대를 만들어내는 판들의 장기적 활동 추세와 지구의 기후 변동과 우리의 진화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 서식지의 급격한 요동 사이의 핵심 연결 고리를 제공한 요인은 바로 이 증폭기 호수들이다. (p. 39)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환경의 산물이다. 우리는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후 변화와 판들의 활동이 낳은 유인원 종이다. (p. 44) 판들의 경계를 나타낸 지도 위에 주요 고대 문명 장소들을 겹쳐보면, 놀랍도록 밀접한 관계가 나타난다. (p. 44)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인류의 진화와 이동에 기후변화는 분명 중요한 변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 중에 판들의 활동이 있었다. 아니 판들의 활동이 먼저였다. 4대문명지가 다 강하류 농업이 유리한 곳이다 라는 식상한 문장을 뒤집어 생각해보게 하는 '판들의 경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양문명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그리스문명, 에트루리아문명, 로마문명 도 이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오늘날의 대도시의 위치 또한 이 지질학적 유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빙기는 평균적으로 8만년 동안 계속되고, 빙기들 사이의 간빙기는 그보다 훨씬 짧은 1만 5000년 정도만 지속딘다. 1만1700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처럼 각각의 간빙기는 기후가 다시 빙기로 돌아가기 전의 짧은 휴식기에 지나지 않는다. (p. 53) 13만~11만5000년 전에 일어난 바로 앞의 간빙기는 현재의 간빙기보다 일반적으로 더 따뜻했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유럽에서 돌아다녔다. (p. 55) 지구의 궤도 이심률, 자전축의 기울기와 그 흔들리은 모두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기적으로 변한다. 이 주기적 변화들을 앞장에서 짧게 언급한 밀란코비치 주기 라고 부른다. (p. 59)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약 100만 년 전부터 더 느리지만 더 극단적인 주기로 건너갔는데, 바로 약 10만년 에 이르는 지구의 궤도 이심률 주기로 옮겨간 것이다. (p. 61) 현재 지구는 전체 생애 중 약간 기묘한 시기에 있다. 지구가 지금까지 존재한 전체 시간 중 80~90%는 지금보다 상당히 따뜻했다. (p. 62)

지구는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류가 존재하건말건 무관하게 자신의 활동을 할 뿐이다. 수억년의 지구 생에 중에서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미미하다. 지구의 활동을 안다는 것은 인류에게 시급한 문제다. 환경파괴를 이야기할 때 지구를 살리자는 표현이 마치 인류가 지구를 도와주는 것처럼 여기게 하는데 인간의 오만이다. 인류가 살기 위해 지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가 지구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은 지구의 생존문제가 아니라 인류 생존의 문제다. 지구는 앞으로도 그저 자신의 활동을 해나갈 뿐이다. 인류가 존재하건 말건.

전 세계 사람들의 유전자 조사에서 나온 가장 놀라운 결과는 사람이라는 종이 놀랍도록 균일하다는 사실이다. 머리카락 색과 피부색 또는 머리뼈 모양의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75억 명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은 놀랍도록 낮다. 사실, 지구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두 인간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보다 중앙아프리카의 어느 강 양쪽에 살고 있는 두 침팬지 집단 사이의 유전적 다양성이 더 크다. 하지만 사람의 유전적 다양성은 아프리카 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 (p. 71) 오늘날 아프리카인이 아닌 사람들의 유전 암호 중 약 2%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유래했다. (p. 72) 아프리카에 남은 원주민 중에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DNA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p. 73)

세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것 같지만 거기서 거기란다. 그러니 질병 하나가 세계를 유행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프리카는 가난한 대륙이라는 이미지로만 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곳이다. 인류의 기원을 알려주는 곳이자, 앞으로도 (작지만 그럼에도 존재하긴 하는) 인류의 '다양성' 연구에 중요할 곳이다.

마치 우리 조상들이 불굴의 의지가 이글거리는, 눈살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아프리카의 고향에 결연히 등을 돌리고 지평선을 향해 과감하게 걸어가 대륙들 가장자리에 위치한 온 구석구석을 체계적으로 채워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렵 채집인 집단들이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상태에서 온 사방을 배회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p. 79)

신대륙과 구대륙간의 이동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낙타와 말은 사실 북아메리카에서 진화한 뒤, 베링 육교를 건너 유라시아로 넘어왔는데, 고향에 남아 있던 낙타와 말은 모두 죽고 말았다고 한다. 신대륙이라고 이름붙여지기 전에 이미 고대인류가 걸어서 건너간 땅이 아메리카 였다. 인류를 중심에 둔 미화는 삼가해야 한다. 문명의 발달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연 국경에 의해 구분된 것이다. 그곳에 살던 인류가 우수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면 자연과 환경과 지구의 영향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우리의 생활방식을 되돌릴 수 없게 바꾼 발명은 갑작스런 기후 변화의 역경 속에서 태어났다. (p. 93) 주요 곡물은 모두 초본 식물, 즉 풀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목초지에서 방목하는 소나 양, 염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인류도 풀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p. 100) 이 진화적 혁신 덕분에 식물은 습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p. 115)

인간이 농업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은 풀 덕택이었다. 식물이 포자번식에서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의 변천과정이 인류의 진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을 읽으며 경이로웠다. 전지구적 환경은 생태계와 밀접하게 상호교류가 이루어져 왔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는 티베트 고원이 공급하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자원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물 이다. (p. 130)

중국관련 책을 읽었을때 티벳고원을 강제적으로라도 중국영토내에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가 정치군사적 이유라고만 생각했었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티베트 고원은 대륙이 급수탑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고인류의 이동에서 호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듯이 지각판들의 경계가 만들어낸 환경에서 물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다. 사막에만 오아시스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산꼭대기에도 벌판한가운데도 있었다. 지구는 그런 호수를 만들었다 없앴다 하곤 했다.

이렇게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둘러싸임으로써 미국은 사실상 섬나라가 되었는데,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유럽과 반대쪽으로는 아시아와 해상 교역을 쉽게 할 수 있는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 미국이 경제적 성공과 함께 자유의 이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지리적 환경이 제공한 조건 덕분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혼잡한 대륙에서 계속 서로 부대끼며 옥신각신 살아갔지만, 미국은 영토 보전의 안전성 때문에 거의 200년 동안 대외 정책에서 고립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p. 169~170)

고대그리스의 역사에서나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지리적 환경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미국의 지리적 분석은 신선했다. 무엇보다 '블랙벨트' 지도를 보면서 오늘날의 정치가 먼 옛날 지질학적 구조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니 무척 흥미로웠다.

런던 지하철이 불편할 정도로 더운 이유는 런던 점토 때문이다. 지하 동굴은 보통은 상쾌할 정도로 서늘하기 때문에 이 점은 의아해 보일 수도 있다. 사실, 터널을 처음 팠을 때, 점토의 온도는 약14℃였고, 초기에는 런던 지하철이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라고 선전했다. (p. 215)

지하에서 런던 지하철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위를 감수해야 하는 일임은 경험한 바 있다. 이또한 사소할지라도 지구의 역습이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흔적을 남긴 지구의 역습도 있었다. 미노아문명은 지중해 교역으로 일찍이 큰 부를 쌓은 성공한 문명이었으나 지각판의 결실을 누린만큼 끔찍한 대가를 치룬 곳이기도 했다.

지구상의 모든 철은 별 내부의 핵융합 반응에서 만들어졌다. 철은 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소이다. 큰 별의 중심부에서 수소 핵융합 반응을 통해 헬륨 '재'가 충분히 많이 쌓이면, 이번에는 헬륨 핵융합이 일어나 탄소와 산소가 만들어지고, 계속해서 더 무거운 원소들의 핵융합이 일어나 황과 규소를 비롯해 점점 더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지다가 결국에는 니켈과 철이 만들어진다. (p. 233) 역사적으로 우리가 귀하게 여겨온 금 은 지구가 철핵과 규산염 맨틀로 분리된 뒤에 지표면에 충돌한 소행성에서 온 것이다. (p. 234) 지구에 복잡한 생명체가 존재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뜨거운 철핵 덕분이다. (p. 235) 호상철광층은 대부분 지구에서 최초의 대륙들이 막 생겨나던 무렵인 22억~26억 년 전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전 세계 각지에 퇴적되었다. (p. 236)

인류가 순식간에 써 없애고 있는 광물들은 사실 지구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온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지구는 녹슬어갔다(p.241)' 라고 한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구는 다시 녹슬어 갈 수 없게 되었다.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동물들만이 아니었다.

2세기 초에 로마 제국과 한 제국은 공통점이 많았다. (p. 260)

전차의 발명은 기원전 2000년경에 일어났다. 전차는 전쟁의 전술에 혁명을 가져왔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5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800년경에 <일리아드>를 쓸 무렵에는 청동기 시대의 이 군사기술은 이미 낡은 것으로 변한지 오래되었다. 전차는 명성과 권력의 상징으로만 명맥을 유지했다. (p. 277)

기마 유목민들은 때로는 공물을 요구했고, 때로는 농촌과 마을을 공격해 약탈했으며, 가져갈 수 있는 것을 다 약탈한 뒤에는 그냥 넓은 초원 지대로 돌아가 버렸다. (p. 279)

헝가리 평원은 생태학적으로 스텝과 농경 지대 사이의 중간에 위치했고, 스텝 초원 지대에서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p. 283)

페르시아의 이 성벽은 중국의 만리장성 다음으로 세상에서 두 번째로 긴 방어용 성벽이며, 만리장성과 똑같은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즉, 정착 문명과 야만 문명 사이의 경계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p. 286)

유라시아의 이슬람 핵심 지역을 파괴한 반면 유럽을 고스란히 남겨둔 덕분에 몽골족은 이 지역에서 권력의 균형추를 유럽으로 기울게 했고, 유럽은 이슬람 세계를 추월해 더 빨리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 (p. 292)

역사를 좋아해서 그런지 역사만 나오면 확 빨려들어갔다. 개인적으로 헝가리스텝지역의 발견은 서유럽 역사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인류의 문명은 점점 더 화려해지고 지구의 영향력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어떤 위대한 제국도 결국 자연의 경계를 넘어서진 못했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그리스정교회 라는 기독교의 3가지 신앙도 살펴보면 자연적 경계를 바탕으로 형성됐고, 아메리카 문명이 빈곤해진 이유도 지형적 이유가 컸으며, 스텝지역에서 활동한 유목민족도 환경에 적응한 결과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중세의 교양있는 사람들 중에서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p. 311)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사람들은 독실한 신자들이었기에 천동설을 지지했으나 속으로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그것이 과연 교양이랄 수 있는 것인지... 아니 그렇기 표리부동했기에 정말 교양인것이었는지도.

석탄기의 세계는 지금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판들의 활동 때문에 지표면 위를 늘 돌아다니던 대륙들의 배열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석탄기 내내 주요 대륙들은 서로 들러붙으면서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로 합쳐지고 있었다. (p. 357)

에너지원이 되는 자원에 대해서는 실생활에서도 밀접한 연관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의 탄전들의 분포가 영국의 정치 지도에 영향을 미친 지도를 보고 있자니 수억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자원을 파내쓴 인간이 한 일이 결국 무엇인가 싶어진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화석 연료를 태우는 것은 병에 갇힌 진(아라비아 신화에 나오는 악마)를 꺼내는 것과 같다. 그것은 17세기에 거의 무한한 에너지를 원하던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었지만, 나중에 우리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심술을 부렸다. (p.381)>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한 바퀴를 빙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p. 382)

저자는 '핵융합' 에너지라는(원자력이 아니다) 친환경적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면 더이상 지구의 자원을 소모시키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밀란코비치 주기에 의하면 약 5만년 뒤에는 지구의 기후가 빙기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인류가 대기로 쏟아낸 온실가스 때문에 예정된 다음번 빙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데, 이것이 인류의 희망시대가 될지 절망시대가 될지는 모를 일이다.

지구는 끊임없이 역동적인 장소이며, 그 표면의 특징들과 행성 차원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은 인류의 이야기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 종은 독특한 판 구조론과 기후 조건을 지닌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출현했는데, 우리를 원인猿人에서 우주인으로 진화하게 해준 다재다능함과 지능은 우주의 주기에 따라 일어난 환경 요동의 산물이다. (p. 389) 문명의 전체 역사는 현재의 간빙기에서 잠깐 동안 반짝이는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는 잠깐 동안 기후가 안정된 시기에 살고 있다. (p. 390) 지구는 인간의 이야기가 펼쳐질 무대를 마련했고, 그 자연 지형과 자원은 계속해서 인류 문명을 나아갈 방향을 이끌고 있다. (p. 391)

[사피엔스]가 인류문명의 헛점을 짚어주고 [코스모스]가 우주속 먼지크기인 인류를 깨닫게 해줬다면 [오리진]은 인류가 결국은 지구에 속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 같다. 비록 앞선 두 책만큼의 인문학적 깨우침을 주는 책은 아니었지만, 인류와 우주 사이에 지구라는 연결점을 분명하게 자리매김해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잊지 말아야 겠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 (p.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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