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연대기
기에르 굴릭센 지음, 정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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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시작과 종말, 스러져가는 사랑에 관한 기록

오직 부부만이 살면서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농염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낸 노르웨이판 '부부의 세계'

 

 

'부부의 세계' 라는 드라마를 보지 못했으므로 자세히는 모르지만 불륜에 관련된 드라마라고 알고 있었기에 이 소설의 홍보문구에서 대충 짐작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딱히 그런 종류의 플롯에 관심을 둔 적은 없었지만 노르웨이 작가의 소설이 어떨지 궁금했다. 스웨덴 작가의 소설을 몇편 읽은 적 있었는데 북유럽 소설의 분위기가 은근 우리정서와 잘 맞는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서 화제작이자 문제작이라는 이 작품은 '부부의 세계'이긴 한데 뒤바뀐 입장에서 느껴지는 독특함이 신선했다.

존과 티미는 아들 형제를 키우면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부부생활을 하는 행복한 부부다.

함께 휴일을 보내고 생일을 축하하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밤이면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고 아침이면 서로를 깨워주면서 그저 버티는 것을 넘어서는 삶을 살려고 애썼다. 서로를 부드럽게 혹은 탐욕스럽게 만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친밀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렇게 하면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끝없이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사실 그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p. 53)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한 부부였었다. 과거형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남편의 기억으로 서술되는 끝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부라는 관계가 끝나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세밀하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마음일기처럼 읽히기도 하는 소설이다.

그때만 해도 그는 그저 부부 사이에 주고받는 농담의 대상,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남자를 더는 별것도 아닌 대상으로 치부하기 어려워지고 나서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p. 59)

나는 그녀에게 장갑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순간 아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내는 그때 그냥 자기가 샀다고 말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괜히 숨겼다고 나중에 후회하듯이 말했다. (p. 61)

"당신 오늘 장갑맨이라 데이트할 거야? 아니면 나랑 재미있게 놀까?" 내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내는 충격과 짜릿한 흥분을 느꼈고 나 역시도 똑같은 걸 느꼈다. 워낙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고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사람들이라서 어떤 것이든 공유할 수 잇었다. 아니, 공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p. 62)

모든 틀어진 관계를 돌이켜보면 다 그렇듯이 처음부터 문제가 됐던 것은 아니었다. 직장에서 알게 됐고 집에서도 거리낌없이 대화속에 등장시킬 수 있었떤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입에 올리기 부담스러워지고 그러다가 숨기고 싶어진다. 그땐 이미 시작된 것이고 그땐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런 단발적이고 공개적인 만남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사랑에 빠질 상대를 마주칠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유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나의 얼굴을 살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평소 내가 동경했던 외모나 태도, 자신감, 장난기가 느껴지는 사람 말이다. 드물지만 실제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미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그 상대 역시 옆에 누군가 있다고 해도 다시 새로운 관계로 옮겨가게 된다. 물론 그런 단발성 만남은 대부분 아무 소득을 올리지 못한 채로 잊히게 마련이다. 사랑할 대상은 어디서든 마주치게 마련이지만 실제 인연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p. 65)

누군가의 외도에 대해 그 아픔과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는 소설이긴 하지만, 사실 이 부부의 시작은 처음부터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었던 상태에서 만났고 급작스럽게 빠져들었다. 어쩌면 시작이 이러했기에 누군가에겐 불안감이 누군가에겐 호기심어린 흥분이 시작부터 내재되어 있던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지금까지 맺었던 관계들이 우리 두 사람을 위한 예행연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랜 예행연습 끝에 그녀와의 특별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p. 72)

누군가에겐 사랑이 누군가에겐 불륜이 될 수 있는 관계, 그것이 멀고먼 나라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결혼이라는 관계를 깨트리는 사랑은 순수하다고 볼수는 없지 않나. 비록 그 두사람에게는 이제야 만난 진정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젊은 부부가 더는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굳이 알고 싶다면 그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이 엄마와 나는 너무 달랐고 또 너무 똑 닮아 있었다. 게다가 너무 가까운 사이인 동시에 충분히 가깝지 못했다. 나 자신과 상대, 서로를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했고 서로에게 지나치게 예민했다. (p. 79)

낯선 젊은 여자와 팔짱을 끼고 딸의 유모차를 밀고 있다가 아내에게 그 모습을 들킨 후 이혼하자는 남편이 하는 말치고는 뻔뻔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전부인도 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난 아직 할 얘기가 남았어. 하지만 그렇게 듣고 싶지 않다면 나도 이쯤에서 포기할게.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이 얘기는 해야겠어. 언젠가 당신도 나처럼 똑같이 버림받기를 기도할게. 나를 무참히 버리고 떠난 것처럼 당신도 똑같이 버림받기를 내 온 마음을 다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할 거야" (p. 80)

첫번째 결혼을 본인이 망가뜨리고 나서 선택한 두번째 결혼생활이 더없이 만족스러울수록 본심은 흔들리고 있었다. 쿨한척 아내의 사회생활을 응원해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이 부부의 생활은 시작 뿐만이 아니라 생활 자체도 일반적이지 않다. 역지사지의 관점이 여러번 왔다갔게 하게 되는 이런 점이 이 소설이 보여주는 독특한 매력이다.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아이들과 나는 항상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돌아오는 집이라는 공간은 예전과는 다르게, 우리 삶의 연장선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아이들과 내가 목을 빼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나였고 아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친 결벽증 때문에 온 집 안을 쓸고 닦고 말끔히 정리해 놓는 것도 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집에서 일하면서, 아내에 대한 나의 집착이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혼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온갖 잡생각이 비집고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내를 붙잡고 온종일 집에서 뭘했는지,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떠들어댔고, 전날 아내나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을 곱씹어보고는 했다. 그렇게 티미는 예전보다 훨씬 더 내 인생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내가 했던 일이나 생각 하나까지 모두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마도 티미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p. 87)

뭔가 입장이 많이 바뀐 것 같지 않은가?

존은 프리랜서 작가로 집에서 일하다 보니 아이들케어와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활발하지 않은 성격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티미는 성취욕이 강한 만큼 직장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었고 본인의 관리도 철저해서 다양한 운동과 취미생활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만큼 인간관계에 개방적인 성격이었다. 그런 이 부부의 생활에 한 남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그저 추문 속 주인공이었고, 한낱 핑크빛 연애 감정에 빠져서 서로의 가족과 아이, 그리고 연인이나 아내를 완전히 망가뜨린 별 볼일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서서히 괜찮은 이야기로 바뀔 것이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면 우리 둘의 사랑이 인생에서 딱 한 번 찾아오는 유일한 사랑으로 보일 날이 올 것이다.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서로에게 완벽한 반쪽,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그럴 것이다. 그 남자나 그 여자가 나의 하나뿐인 반쪽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수십 년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우리는 지금과 또 다른 삶, 또 다른 상대가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풍족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가능성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나만 믿고 서로 함께하기 위해서 어렵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 점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동의했으며, 이전 상대들에게 했던 끔찍한 것을 서로에게는 절대 할 수 없었다. (p. 93)

시간은 약이 될 때도 있지만 독이 될때도 있는 법이다. 초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지하기 힘든 마음이던가? 특히나 사랑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뜨거움이 따듯해지고 따듯함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체온처럼 그냥 늘 있는 그런 온기가 되었을때 어느날 갑자기 불꽃같은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사람을 만날때마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래서 우리 두 사람도 끝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당신이 나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게 된다면 당신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누구랑?"

"나 말고 다른 남자겠지. 당신이 처음 만나는 누군가"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거야?"

"아니, 절대로. 하지만 당신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거야"

"말도 안 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대체 무슨 의미겠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당신의 행복을 빌어주는 게 맞는 거잖아.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 때 당신이 더 행복하다고 해도, 나는 예전과 똑같이 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당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의 그 결정을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당신을 지지할거야" (p. 107)

말이 쉽지 그게 가능하겠는가? 사랑이 무슨 의미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겠다고? 아내에게 불꽃튀는 남자가 생겼을때 아내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남자의 마음은 복잡다단하다. 자신이 했던 말도 아내가 보였던 반응도 곱씹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구석까지 밀어붙이고 아내의 마음을 최대한 상상해보면서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부부생활에 대해 이 남자가 느끼는 감정은 이랬다저랬다 혼란스럽다. 읽다보면 자꾸 까먹게 되는데, 이런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 이는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하찮다'라는 단어를 기왕 사용했으니 계속 사용할 작정이었다. 너무나 하찮은 인간으로 완전히 뒷전에 놓인 느낌이 들었다고도 따져 물었다. 그 단어 하나에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온갖 문제들이 모두 집약되어 있었다. (p. 189)

사랑하다의 반대말은 미워하다가 아니라 하찮아지다가 아닐까. 부부 중 한 사람의 외도에 대해 그 문제 자체를 물고뜯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해 다른 한 사람이 하찮은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커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섬세한 감정변화와 농염한 부부생활을 보여주는 이 소설이 '결혼의 연대기' 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은 '사랑' 의 문제를 '결혼'의 관점에서 보게 하려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사랑은 끝났어도 결혼은 끝나지 않을수도 있기에 일단 결혼으로 묶인 두 사람의 연대기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여지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장이 '열기를 잃는 것' 으로 끝난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이 어떤 관계와 어떤 미래를 선택했을지에 대한 생각은 읽는이마다 다를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소설에 대해 이런 설정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면 적어도 아직은?! 괜찮은 관계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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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한 클래식 이야기
김수연 지음 / 가디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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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알고 싶다면 바로 이 책!

세계 클래식 거장들의 열전으로 시작하는 FUN한 클래식 입문서!

 

 

드라마나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시간에 쫓겨 살다보니 챙겨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몇장면 보고나서 마음이 끌려 오랜만에 정주행한 드라마가 있었으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였다. 언제부턴가 드라마도 영화도 빠르고 화려하게 전개되는 것이 트렌드인가 싶었는데 이 드라마는 굉장히 느린 템포로 굉장히 순수하게 전개되는 것이 색달랐다. 어찌보면 답답하달 수도 있을 드라마였지만 묘한 떨림이 전해주는 남다른 몰입감이 참 좋았더랬다. 드라마의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주인공들은 음대생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음악과 청춘과 사랑 이야기인데 클래식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돋보였다. 이 드라마를 보고나니 클래식을 FUN하게 이야기해준다는 이 책에 안 끌릴 수가 없었다. ㅎ

드라마 여주인공이 연주하던 악기가 바이올린 이었는데 저자가 현직 바이올리니스트라서 책내용에 더 관심이 갔다. 클래식 연주자들하면 피아니스트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평소에도 연주곡 하면 피아노곡을 틀어놓곤 했었는데 드라마덕분에 바이올린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이 책은 클래식 전반에 대한 책이지만 저자의 직업상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일화들이 종종 등장해서 반가웠다.

역사를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옛이야기읽듯이 그래서 소설처럼 읽는 것이 아닐까 싶다. 클래식이란 음악에서 고전에 속하므로 음악의 옛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읽게 되는 이 책은 유명한 음악가들의 에피소드들로 내용이 전개된다. 이야기란 역시 주인공이 있어야 더 흥미진진한 법이니 음악가들의 삶의 몇 장면을 살펴보는 이야기들은 음악이야기가 아닌듯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그 음악가의 음악을 궁금해지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음악이야기이기도 했다.

역시 시작은 바이올린연주곡의 작곡가였다. 바로 '사계' 의 비발디. 베네치아의 빨간머리 신부님이었던 비발디부터 이탈리아의 독립을 열망하던 시대분위기를 대변해준듯한 합창곡으로 유명한 베르디, 바이올린 전공자라면 반드시 연주해야 하는 작품을 남긴 파가니니, 영화로 인해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실제로는 명성과 인품 모두 훌륭했던 살리에리, 클래식같은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성공한 음악가였으나 취미였던 요리를 위해 작곡가의 삶을 그만 둔 로시니등의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들과

독일국가의 멜로디를 작곡했으나 사후 두개골이 유럽을 떠돌게 됐던 하이든, 현대까지 가문대대로 음악가의 명문가로 이어지고 있지만 사후 80여년이 지난 후 멘델스존에 의해서야 재조명을 받았던 바흐, 여성으로 음악의 길을 걷기 힘들때 태어났지만 뚜렷한 음악적 족적을 남긴 힐데가르트, 남동생 못지않은 음악적 재능을 가졌던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 음악못지 않게 사랑으로 유명한 일화를 남긴 슈만, 커피의 완벽함을 추구했던 베토벤등의 독일 출신 작곡가 들을 보면서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나라들에서 음악또한 큰 발전이 있었구나 싶어서 묘한 공통점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최초의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는 모차르트와 평생 베토벤을 롤모델로 삼았고 사망후 베토벤의 묘지옆에 나란히 묻힌 슈베르트가 오스트리아를 대표한다면 그밖의 유럽 여러 나라출신의 작곡가들도 두루 알수 있었는데,

당시 '천재 음악가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만 태어나는 줄 알았는데, 우리 폴란드에도 천재가 태어났다' 라며 전국민적 자랑이 된 폴란드의 쇼팽,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의 작곡가가 된 헨델,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신앙을 음악에 담아낸 체코의 비버, 이름은 생소하지만 작품은 유명한 프랑스의 비제, 죽을때까지 결국 결혼허락을 받지 못한 헝가리의 리스트, 노르웨이의 민족음악가 그리그, 스페인의 파야, 영국의 본 윌리엄스, 기차에 열광했다는 체코의 드보르작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음악과 관계없이 재미있게 읽혔다.

책의 뒤편에서는 '클래식 바로 알기' 라는 장을 통해 클래식의 다양한 상식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중세시대의 수도자인 귀도 다레초가 만들어낸 계이름, 마틴 루터가 만들어낸 찬송가, 메디치 가문이 탄생시킨 오페라, 최초로 지휘봉을 사용했던 멘델스존의 이야기들로 알게 되는 클래식의 역사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유익했던 것은 '악보에 표기된 용어'를 설명해준 부분이었다. 빠르기, 셈여림, 나타냄말의 의미들과 악곡이름이 왜 그렇게 긴 지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나타냄말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옮겨놓아본다.

아마빌레- 사랑스럽게, 돌체- 부드럽게, 칸타빌레- 노래하듯이, 브릴란테- 화려하게, 에스프레시보- 표정있게, 에너지코- 힘차게, 트란퀼로- 차분하게, 고요하게, 콘푸오코- 열정적으로

각 에피소드의 첫 페이지에 쓰여진 요약과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클래식곡명 및 QR코드로 연결되는 저자의 유투브 채널영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 했다.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었는데,

"Well, if must be so." 직역하면 "뭐, 이래야 한다면"이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살면서 뜻하고 원하는 것을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불편하고 하기 싫고 어려운 일들도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잘 대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그가 남긴 유언을 빌려서 "뭐 한번 해보자고요!" 쿨하게 (p. 158)

클래식이 고급지다거나 어려울것 같아서 꺼려졌다면 그리그의 유언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다. 클래식은 ~해야 한다 혹은 ~일것 같다 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가볍고 재미있게 그야말로 Fun하게 다가가 보자. 뭐 어때 내가 듣기 좋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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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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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닌 개소리를 믿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다!"

팩트체크조차 할 수 없는 가짜뉴스가

어떻게 사람을 유혹하는지 밝혀낸 문제작

 

세계를 뒤덮은 정치와 언론의 개소리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

"당신이 오늘 보고 들은 것은 진실입니까?"

 

 

TRUTH 진실과 LIE 거짓으로 구분되던 시대는 지났다. 명확하게 구분할수 없게된 지금은 POST-TRUTH 탈진실의 시대다.

진실이라고도 할수없고 거짓이라고도 할수없는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속에 살면서 우리가 하루종일 보고 들은 정보들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그 정보들중에서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개소리를 얼마나 구분할 수 있는가?

친구가 전송한 글을 보고 곧바로 관련 기사나 논문을 검색하거나 현장에 직접 찾아가기에는 우리가 너무 바쁩니다. (p. 5) 개소리는 적절한 순간에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분노할 만한 타이밍에,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이벤트가 다가올 때입니다. 선거철이 대표적입니다. 타격 지점을 정확하게 공략한 정교한 허위 정보의 사례입니다. (p. 9) 저자는 기성 언론의 관행과 한계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p. 18)

추천사를 쓴 <팩트체크>의 이가혁기자는 이 책을 '칼을 들고 총에 맞선 이들을 위한 책' 이라고 표현한다. 칼vs총 이라니 맞붙는다면 한쪽이 즉시 사망이리라는 것이 99%로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의 가능성을 버릴 순 없다.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이 '희망'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엘리트를 향한 분노와 무너진 미디어 신뢰도, 결과가 뻔한 투표라는 전문가들 사이에 만연한 (그리고 잘못된) 믿음, 그리고 앞으로 이 책에서 개소리bullshit라고 부를,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가짜뉴스로 대표되는 2016년의 두 가지 투표는 세계를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재편했다. (p. 25) 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이야기를 놓고 해석에의 의견차를 보였다면, 지금은 상대 진영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보고, 그들의 이야기가 편향됐으며 사실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여긴다. 또 서로가 유난히 가짜뉴스에 휩쓸린다고 본다. (p. 32)

나는 개소리가 포퓰리즘적 분위기와 동시에 발흥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둘은 서로를 부채질한다. 진실에 무심한 태도는 서로 상충하는 담론을 검증할 합의된 방법을 없앤다. 결국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악의적이고 부패했으며 거짓말재잉라고 부를 뿐이다. (p. 37)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주장의 출처와 증거를 찾으려고 애썼다. 이와 관련해 할 말이 있는 독자는 트위터로 연락하길 바란다. 나의 트위터 계정은 @jamesbuk 이다. (p. 39)

2016년의 두 가지 투표,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당선을 말한다. 저자는 영국의 언론인으로 이 두 선거를 예로 들어 거침없이 개소리들을 공격한다. 그 거침없음에 읽으면서 어안이 벙벙해지곤 했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이사람 괜찮은걸까;;;

먼나라 이야기로만 넘길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와도 너무나 닮아있던 사례들이었기에 저절로 비교되면서 저자의 패기넘치는 표현들 덕분에 읽는 사람으로서는 후련해지는 부분들도 많았다. 저자는 개소리를 이용해 누가 어떻게 우리를 조종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개소리가 어떻게 진실을 압도하고 있는지 보여주며 우리가 왜 개소리의 유혹에 넘어가는지 파악해봄으로써 진실을 수호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을 모색해보고 있다.

가장 의아한 점은 대선 막바지에 넘쳐난, 트럼프에게 호의적인 가짜뉴스 상당수가 발칸반도에 있는 마케도니아의 작은 도시 벨레스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p. 45) 벨레스 주민의 태도는, 범죄자와 자금 세탁자를 비롯해 전세계 초갑부와 회사들이 조세회피지로 이용하는 나라의 현지인이 보이는 태도와 놀랍도록 닮았다. (p. 47)

정치인과 국가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는 사실을 논할 때,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국가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따로 있다. 다들 알면서도 함구하는 문제의 주인공은 바로 러시아다. (p. 54)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주체들을 분석해보면 크게 두 가지의 동기가 있다. 돈 이거나 권력이다. 클릭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무시할 수 없고, 일단 퍼뜨리고 보는 소문들은 권력에 치명타를 가하곤 한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모두다 복합적으로 작용된다는 점이다. 정보의 생태계는 서로 물고물리는 관계로 파고들면들수록 복잡해서 사람들은 이렇게 퍼지는 허위정보들보다 주류매체의 부정확한 보도에 더 불만을 표시하곤 한다. 페이스북과 유투브의 생활화는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어 보인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악의를 제거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냥 농담이었다는 변명은 정치판에서처럼 미디에서도 어느 정도는 통한다. (p. 106)

한마디로 개소리는 주요 미디어 없이는 뜨기 어렵다. 매체는 개소리를 막으려고 애쓰면서도 이를 전파한다. (p. 108)

우리 모두는 상대방을 설명하는 최악의 사실만 믿으려 한다. 바로 이런 토양에서 대충 쓴 기사들이 무성하게 자란다. (p. 118)

기자에 대한 신뢰도가 부동산 중개인이나 은행업자에 대한 신뢰도보다 낮고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보다도 훨씬 낮다. 그렇지만 뉴스 아나운서에 대한 신뢰도는 높다. (p. 123)

좋건나쁘건 화제성을 일으킨 사람은 일단 무엇으로든 일단 대중에게 통하게 된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언론은 그 객관성을 유지하느라 개소리들을 그대로 싣게 되고 그렇게 전파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자극적인 기사일수록 조회수는 올라가고 모든 정보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상황에서 언론사의 수익구조는 진실을 파헤칠 여건을 주지 못하게 된다. '기레기'들이 넘쳐나는 상황은 영미나 한국이나 비슷한가 보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보다 낮다'는 표현에서 그야말로 웃픈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미지에 대한 신뢰도는 아직 남아있어서 미디어에 대한 신뢰도는 좀 괜찮다는데 과연 믿을만할까?

냉소주의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투표율이 낮아지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떨어진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치인은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과 부동층에게 호소하기보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쪽으로 선거 유세를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험자보다는 아웃사이더가, 과거의 업적보다는 미래의 공약이 더 유리하다. 그 결과 예상 밖의 후보가 갑자기 부상한다. (p. 134)

그렇게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이런식의 결과를 얻은 투표가 과거 우리사회에 얼마나 만연했던가... 한두번의 짧은 개혁으로 그 깊은 폐해를 고치기는 얼마나 힘든지 지금 우리사회의 혼란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트럼프가 리조트 회원권과 트럼프타워 아파트를 파는 방식은 일반적인 판매 전술과 많이 다르다. 이는 그냥 사기다. (p. 136) 트럼프의 호전성과 개소리, 미디어 폭격은 흔히 미디어가 곧장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으로, 대처법을 알아두어야 할 매우 새로운 현상으로 언급된다. 24시간 뉴스채널과 소셜 미디어, 극당파적 사이트의 확산 등 일부 현상은 분명 새로운 난제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이용하는 방식 중 상당수는 그가 1990년대 뉴욕에서 썼던 전술이며 1950년대에 매카시가 펼친 전술과도 겹친다. 정치적 극단론자의 흔한 전술을 단지 중앙 무대로 끌고 온 측면도 있다. (p. 143)

찰스왕세자가 트럼프타워 아파트를 구매할 예정이라고 트럼프가 말했을때 기자는 버킹엄궁에 전화해서 확인을 요청하고 버킹엄궁은 드릴말씀이없다고 했다는 답변이 기사화되면 소문이 진실로 둔갑하면서 아파트값은 치솟는다. 하지만 찰스왕세자는 트럼프타워아파트가 뭔지도 몰랐고 트럼프는 갑부가 되었다. 예정은 바뀔 수 있는 계획이므로 트럼프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니다. 트럼프의 방식은 굉장히 교묘하고 이런 방법은 과거에도 있었다. 트럼프는 역사에서 배운 것인가;;;

지금부터 더 길고 인상적인 이력을 살펴보면 존슨이 신념없고 무당파적인 개소리꾼의 전형임을 알게 될 것이다. 발언의 무게에 신경쓰지 않고, 개인의 출세에 집착하며, 사실보다 듣기 좋은 이야기를 더 중시하는 사람임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p. 144)

보리스 존슨을 비롯한 영국의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저자는 거침이 없다.

뉴욕의 억만장자이면서도 기성 체제에 반기를 든 인물인 양 행세한 트럼프처럼 영국의 핵심 특권층 출신인 존슨도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해놓고는 농담이었다며 넘어갔다. (p. 149) 두 사람 모두 헤드라인을 장악하고, 얄팍한 자료에 기대 담론을 부추기며, 논란이 생기면 '웃자고 한 이야기'라며 빠져나간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주변부를 맴돌다가 마침내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들 모두 미디어든 정계든 독자적으로 활동하지 못함을, 정치인과 성향이 다른 매체라도 그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p. 153)

세계에 영향력이 큰 두 나라, 영국과 미국의 근래 몇년은 세계정치의 위기를 보여주었다. 지금도 그 여파는 여전하다. 세계의 흐름이 우리와 무관할 리 없다. 저자의 쓴소리는 개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개소리 퍼즐의 마지막 중요한 역할을 맡은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바로 당신이다. (p. 154)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뉴스 미디어와 허위 사이트 둘 다 소비하는 대중이 있으니 그런 정보를 만든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반응한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게 해줄 뿐이다.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소비자이자 유료 독자이자 유권자로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도 전통적인 매체와 거의 대등하게 정보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진다. (p. 156)

잘못된 인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고 정치와 미디어 담론의 영향으로 굳어지며 다시 그런 담론을 부채질한다. (p. 159) 제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서, 개소리를 막기 위한 노력 중 하나는 우리의 현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p. 172)

민주주의는 정말이지 쉽지 않다. 엄청난 피로감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약간의 독재를 편해하기도 한다. 저자가 알려주는 리서치 결과에서도 '미디어를 지탱하는 쪽보다는 나라를 구해줄 강력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쪽에 더 관심이 많다' 고 나왔다. 하지만 그런 피곤에 지친 선택이 브렉시트와 트럼프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전에 넘쳐나던 정보들은 검증할 새도 없이 뜬소문처럼 되어 버리고 결과는 유권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사람들은 왜 그런 정보를 믿었던 것일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인다. 확증편향 (p. 241)

생각을 바꾸는 것에 대한 반발심. 역화 효과 (p. 244)

집단에 동조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 (p. 250)

아무리 우리가 교육을 받았고, 양질의 정보와 저질 정보를 분간할 수 있다고 자부해도 여러 심리적 이유로 개소리에 넘어간다. 또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하고 나의 사회적 규범에 맞으며 신호 보내기나 집단 정체성 강화에 쓰고 싶은 정보들을 많이 접한다. 우리가 꼭 개소리를 믿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쉽다. 개소리의 영향력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우리가 개소리에 사로잡히는 기제를 아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개소리가 왜 효과적인 전략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264)

남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도 어렵지만 스스로 갖고 있는 자신만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그와중에 주변사람들과 의견이 다르기라도하면 나혼자 NO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소리에 넘어가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결국은 우리 스스로를 위해 알아야 한다. 무엇이 개소리인지.

사실 검증은 허위 정보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한 여러 해결책 중 극히 일부라는 점이다. (p. 313) 트럼프의 주장이나 그에 관한 주장을 읽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사실 검증 블로그를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엄연한 사실이 있어도 공유되지 않는 것이다. (p. 316) 정보 하나하나에 담긴 개소리에 대처하는 것은 정보 전쟁에서 참호전을 벌이는 것과 같다. 참호전이라는 수렁에 빠지면 이 싸움은 승산이 없다. 또 사실 검증을 했더라도 훨씬 적은 대중에게 퍼지기 때문에 거짓 주장의 확산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애초에 주류 언론이 노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p. 320) 인터넷의 허위 정보와 싸우는 일은, 하나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여러개의 과녁에 총을 겨누는 것과 같다. (p. 329)

팩트체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일반인이 기사마다마다 이것이 개소리인지 아닌지 출처확인과 허위여부를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신력 있는 단체나 언론에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더라도 꾸준히 검증을 해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누군가 해주겠거니 하고 기다리고 있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사실 검증 하나로는 가짜뉴스와 개소리로부터 우리를 지키지 못하며, 개소리 생태계를 교정할 뾰족한 대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효과적인 대처 방안없이 문제만 제시하는 것은 그냥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게 없고, 지금까지의 논의를 허무하게 만든다. 이제부터는 그런 암담함을 좀 덜어주는 이야기를 해보겠다. 마지막 장에는 정치인과 정책 담당자, 언론 매체와 기자, 시민이자 뉴스 소비자인 우리를 위한 조언을 담아봤다. 독창적인 생각도 아니고, 일관성도 없다. 앞서 논의한 모든 내용에서 도출한 생각과 결론을 모아놓은 것으로 다양한 압력에 다양한 방법으로 맞서자는 조언이다. (p. 337)

저자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다양한 대처법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저자가 말했다시피 뾰족한 대책도 아니고 독창적이거나 일관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앉은채 당하지만은 말자는 얘기다.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봐야 좀더 효과적인 방법도 찾게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소한 내가 할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 그런 문제의식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는 개소리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실 감각을 유지하고 음모론에 맞서면서 서로 기본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은 건전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진실이 무의미해진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p.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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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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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보존에는 과학이 숨어 있다!

창작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보존과학

 

미술을 잘 모르지만 그림 보는 걸 좋아한다. 때로는 한줄의 문장보다 한장의 그림이 훨씬 많은 것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명화들에 대해서는 특히나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그림속에서 찾아내는 역사가 재밌을때가 많다. 그런데... 그 옛날의 그림이 어떻게 지금도 이렇게 멀쩡해 보일 수 있을까? 다 보존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보여지는 모든 멋진것들 뒤에는 숨어있는 노고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가끔 뉴스에서 예술작품들의 보존관련 소식을 볼때마다 그 속이야기가 궁금하곤 했다. 그림을 어떻게 깨끗이 닦아낼 수 있는걸까? 조각을 어떻게 티안나게 붙일 수 있는걸까? 작품의 진위는 어떻게 판별하는 것일까? 등의 평범한 질문들에 대해 저자는 과학적 답변을 명료하게 해주고 있다. 나아가 예술품에 있어 보존의 의미와 보존가의 마음가짐에 대해서까지 질문을 던져보는 진지함을 배울 수 있기도 했다.

과학고와 카이스트에서 과학을 공부한 저자의 이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들이 많았고, 정통 이과생이 어떻게 미술품 복원의 매력에 빠져들었는지 그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이 책을 읽어가며 얻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보존과학의 위치가 그러하듯 이 책의 분야도 예술과 과학 그 사이 어디에선가 읽히고 있었다.

보존에는 크게 세가지로 그 활동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예방보존, 치료보조, 복원 이다.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던 것은 복원 이었는데, 보존이 곧 복원인것처럼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나의 무지를 보존 이라는 커다란 프레임으로 확장시켜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저자의 진정성이었다. 저자는 조심스럽고도 애정어린 마음으로 보존과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그 허와실을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이야기해준다.

작품의 복원에 앞서 세 가지 측면에서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 복원해야 하는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가가 바로 그 질문이다. (p. 20) 미래에 더 좋은 재료와 기술이 개발되면 다시 처리할 수 있도록 지금의 처리가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한 일은 사진과 문서로 꼭 기록을 남겨서 작품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늘 기록해야 한다. 보존가들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최신 기술과 과학적 연구 결과에 늘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또한 부단한 자기계발의 노력은 물론이고 다른 영역과의 소통에도 게을러서는 안 된다. 보존가들이 더 이상 음지에서 숨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양지로 나와야 하는 이유이다. (p. 21)

이미 알고 있는 예술품들에 대한 뒷이야기가 나올때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히곤 했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 이라는 그림이 최소 25회 정도나 복원됐었다는 것,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밝아진 색이 불러일으킨 논란, 제2차세계대전당시 폭격이 퍼부어졌던 런던의 예술품들이 어떻게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는지 등에서 이야기 자체로도 재미있었지만 과학이 어떻게 예술과 접목되는지 보존과학의 흐름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보존과 복원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사례는 1935년 구본웅이 소설가 이상을 그렸던 '친구의 초상' 이라는 그림이었다. 복원전후의 그림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서 되돌릴 수 없는 복원이 얼마나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이 되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최신기법으로 최선을 다해 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실패한 복원이었다.

흥미로운 사례들로 시작한 이 책은 갈수록 복원과 보존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문들에 주목한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이 갈라지고 있는 것과 고흐의 '침실' 그림의 변색된 색에서 현재 보존과학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로스코의 '하버드 벽화' 와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보며 복원과 보존을 위해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할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환경파괴의 주요인중 하나인 플라스틱을 예술작품 소재로 활용했을때나 뭉크 가 자신의 작품을 천장도 없는 장소에 방치하다시피 보관하려했던 식의 작가들이 추구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보존가의 고민을 공감하게 되기도 하면서 예술품의 보존이라는 것이 정말 쉬운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나마 고전작품들에 대해서는 복원과 보존이라는 것이 고민이 아니라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문제는 현대미술로 올수록 복잡해져 보였다. 예를들어, 마우리치오 카텔란 이라는 작가가 벽에 바나나 한개를 테이프로 붙여 놓고 '코미디언'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에 무려 12만달러가 넘는 가격이 매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 와서 그 바나나를 먹어버리고는 행위예술이라고 인터뷰했고 미술관측은 바나나를 새로 사다가 테이프로 붙였다. 이런 작품에서 보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나나? 의미? 아니 보존을 하긴 해야하는 것일까? 어떤 작품을 보존해야 하는 것인가?

1장이 '그림이 들려주는 복원 이야기' 라서 흥미진진하면서도 다양한 고민점들을 던져주었다면 2장 '미술관으로 간 과학자' 와 3장 '미술관의 비밀' 에서는 여전히 고민은 되지만 다양한 해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공유되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 미술관은 단지 아름다운 작품을 잘 보관하고 보여 주는 장소일 뿐 작품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우리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는 미술관이 물리적인 작품의 보존뿐 아니라 함께 생산되는 모든 지식의 저장고가 되었다. 개방형 수장고의 유행은 단순히 닫혀 있던 수장고의 문을 열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을 넘어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잘 지키면서도 잘 활용하는 두 가지 숙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p. 273)

보존과학도 예술품보존가도 생소하고 낯선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한번 들으면 바로 호기심이 생기는 궁금한 분야이기도 했다. 시간은 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고, 그런 세월의 흔적은 때론 주름살이 되기도 하고 때론 추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작품이 되기도 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적응하기 바쁜 우리에게 예술품의 가치와 보존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이 책은 뛰기만 사람을 차분히 쉬어가게 해주는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생각꺼리들을 남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겁다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마라톤 주자에게 페이스메이커가 있고 마라톤이라는게 꼭 1등을 못하더라도 완주의 의미가 있듯이 저자가 남긴 질문에 내가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다기보다는 저자의 고민을 나도 한번 생각해보고 멀게만 느껴지는 예술품을 좀더 가깝게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독자들이 많아질때 보존과학이라는 마라톤을 뛰고 있는 저자에게 물마시는 타임이 주는 에너지충전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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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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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지연된 열차, 국지성 호우, 품절된 메뉴, 손을 삐끗해 깨뜨려버린 커피 잔...

당신은 그저 운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만약 이런 우연이 사실 더 '큰 그림'의 일부라면?

이런 우연이 사실 누군가가 만들어 낸 사건이라면?

그리고 그 우연의 배경에,

'우연 제작자'라는 알 수 없는 존재가 있었다면?

 

우연이 모여 인연이 된다고 했던가.. 그렇게 보면 사실 우연 자체가 인연의 시작인 것이 아닐까... 그런 우연은 결국 운명인 것은 아닐까... 여기 이 소설 속에서 그런 운명같은 우연, 인연의 연결고리같은 우연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완벽한 로맨스로 멋지게 구현되었다.

연인을 맺어주는 것에서부터 누군가의 세계관을 바꾼다든가 가족을 한데 모으거나, 원수들을 화해시키고 예술 작품이나 새로운 통찰력·혁신적인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영감의 씨앗을 뿌리는 임무같은 것들을 수행하는 우연 제작자 라는 존재가 있다면?

늘상 가던 카페에서 어느날 우연히 커피를 쏟게 된 그 작은 사건이, 그 커피를 쏟게 한 카페직원이 해고당하고 그 해고당한 직원과 한 차에 타게 되고 한밤중에 바닷가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게되기까지 그 모든 동선과 시간과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사람들의 심리까지 파악한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면?

그런 일들을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우연제작자인 에릭, 가이, 에밀리는 이제 막 초급을 벗어난 우연제작자들로 동기생 사이다. 더 등급이 높은 우연제작자들이 있고 상관도 있고 아직 그들조차 알지 못하는 다른 임무들을 하는 존재들이 있다. 판타지적인 임무들이지만 겉모습은 일단 사람이다. ㅎㅎ

보통 임무전달은 아침에 눈을 뜨면 현관앞에 상세한 정보들과 함께 봉투에 담겨 놓여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이에게 전달된 봉투에는 딱 한 장의 종이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딱 한 줄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내가 그쪽 머리 좀 걷어차면 안 되는 겁니까? (p. 51)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이 문장이, 그저 암호였다고 생각되던 이 문장이 엄청난 반전을 암시하는 문장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에 깨닫는 순간 이 작품의 묘미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기막힌 반전이었을 수도 있고 엄청나게 '큰 그림' 이었울 수도 있을 저 하나의 문장이 전해주는 독특한 온기란!!!

가이는 우연제작자로 발령받기 전에 '상상 속 친구' 였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자신에게만 보이는 상상 속 친구의 역할은 결국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고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떤 의미로든 성장한 사람들은 더 이상 상상 속 친구를 생각지 않게 되고 그러면 또 누군가가 상상하는 다른 모습으로 친구가 되어주는 일을 하다가... 커샌드라를 만났다. 그리고 어떤 사건 이후 우연제작자가 되었다. 일종의 진급이라고 볼 수도 있다. 같은날 발령받은 에릭, 가이, 에밀리는 함께 우연제작자 과정을 수업받으며 돈독해진다.

"앞으로 16개월간 나는 여러분에게 우연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여러분은 우연 제작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혹은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완전히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첫째, 너희들은 비밀요원이다. 너희들의 존재는 모든 인간이 그렇듯 일상적이고 계속적이다. 이 과정을 통해 획득할 도구를 활용하면, 너희들은 이 세상의 인과관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또 그 지식을 활용해 사소하고 거의 인지할 수도 없는 사건을 만들어내, 사람들이 인생을 변화시킬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p. 91)

"세상에는 우연을 만든다는 것이 곧 운명을 결정하는 것, 사건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새로운 장소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선견지명도 없고, 오만함으로 가득한 유치한 시각이다. 우리의 역할은 경계선에 정확히 서는 것이다.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회색지대에 서서, 그곳에서 탁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큰불을 내지 않고,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능성의 창조자, 은밀한 암시를 주는자, 매력적은 눈짓을 하는 자, 선택지를 발견하는 자다. (p. 92)

"이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하다. 그중 압도적 다수는 그야말로 우연이다. 그리고 맥락이 그런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가 그 사건을 중요하게 만든다. 우리는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반 대중에게 고용된 일꾼이다. (p. 93)

우연제작자 교육과정을 읽다보면 세상의 우연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있을 법한 일이다! 판타지는 현실가능성이 구체적일때 오히려 더 판타스틱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작품이 그랬다. 신묘한 판타지!!

"인연 맺기 우연 제작자로는 저 녀석이 정통이야. 저 녀석은 완벽한 여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여자 말고는 아무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아. 저 녀석은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진짜 낭만주의자야. 지나치게 안달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맺어주고 싶어하는 제작자한테는 바로 이런 조합이 어울리지. 넌 아냐. 네 우연을 직접 제작하려고 하지 마. 문제가 아주 심각해질 수 있어" (p. 125)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진짜 낭만주의자' 가이에게 사랑하는 존재는 오직 하나 커샌드라 뿐이다. 하지만 커샌드라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가이에게 에밀리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게 된다. 에릭은 그런 에밀리의 감정을 눈치채고 조언해보지만 글쎄... 감정이란 원래 다른 사람의 조언이 먹히는 분야는 아니지 않을까? ㅎㅎ 그래서 우연이라는 극적 요소가 필요한 것일지도.

그는 자기 몫의 사랑을 맛봤고, 그 맛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하지만 가이는 이미 자기 몫의 사랑을 받았다. 이제 그 사랑은 사라지고 없었다. 인생이라는 책의 그 장은 이미 다 읽고 덮어버린 뒤였다. 실망스럽지만, 그는 이 점을 오래전에 받아들였다. 이제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차례였다. 그래서 가이에게는 인연맺기 임무가 중요했다. 어쩌면, 자신은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을 다른 사람이 누리도록 도움을 줄 때마다 가이 역시 그 행복의 작은 조각을 받는 것일지 몰랐다. 그 행복이 가이의 이름 아래 기록되는 것이다. (p. 130)

이들이 사람들의 우연 제작을 하는 동안, 우연제작들의 삶에도 우연을 제작해넣는 존재들이 있을까? 우연제작자들이 만들어내는 우연들과 우연제작자들이 엮이는 우연을 통해 큰그림을 향한 퍼즐들은 멀찍이서 하나씩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한다. 나중에 완성된 그 큰그림은 마치 스릴러처럼 예상치 못했던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중간중간에 '우연제작자 교육과정' 교재?! 가 끼어있는데, 정말 실제로 있는 교과서 처럼 읽혀져서 소설과는 또다른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H = pm² 이라는 공식을 보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저자의 본업이 이런 식으로 발현되는구나 싶어서 ㅎㅎ

판타지소설작가 중에는 은근 과학전공자들이 꽤 많은데 저자도 그런듯 하다. E = mc² 이라는 아인슈타인 공삭을 이렇게 활용하다니, 센스 good~!

(H 는 일반적 행복 또는 개인적 만족감, p는 개인의 행복 잠재력, m은 보람)

너는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사람, 가느다란 연관 관계를 발견하는 사람이어야 해. 이 봉투가 너에게 할당됐다는 건, 너처럼 훈련받은 사람만이 볼 수 있을 만한 뭔가가 정해진 시간에, 여기에서 일어나리라는 뜻이야. (p. 189)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현실을 보는 데 익숙해지고 나면 그렇게 되는 게 분명했다.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면 큰 것도 작아 보였다. (p. 200)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여하튼, 가이는 본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소설의 시작에 나오는 인연맺기를 성공시킨 이후 전달받았던 다음 임무봉투에 적혀있는 문장 하나, 그 문장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우연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인연과 연결될 것임을 알아챌 수 있지만 그렇게 현실을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연제작자인 가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에밀리도.

뭔가 하나를 꼭 집어 인생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이유로 바꿔놓고, 그게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믿어버릴 수 있다니 이상한 일이라고, 에밀리는 생각했다. 그것과 반대되는 생각에 아주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건 더 이상한 일이었고. (p. 243)

에밀리는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한 계획주의 성향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지만 갑자기 전혀 생각지 않았던 행동을 순식간에 해버리고 만다. 충동이란 사실 그런거니까. 그리고 급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모두에게 혹은 두 사람에게.

"날 상상해. 내가 계속 여기 있게 해줘"

"하지만 어떻게?"

"난 우리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날 상상해"

"하지만 난 네 존재를 결정하고 싶지 않아"

"내가 여기 있게 해줘"

"행동이 아니라, 그냥 존재. 네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했어. 그냥 네가 여기 있다고 상상했어. 너 하고 싶은 건 다해" (p. 300)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게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따온 말인데 기대하는데로 이루어진다 는 의미. 사랑도 어쩌면 그런 것일 수 있을까? 무엇을 상상하느냐에 따른 결과가 오는 것일까?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다음 역이 어딘데요?"

"삶이요"

"삶이요?"

"삶이요, 진짜 삶이요. 모든 직업 중 최고지요. 정규직에, 풀타임에, 다른 것도 전부 포함이고. 자유의지, 모순적인 감정, 기억, 건망증, 성공, 실망, 그 모든 정신없는 것들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p. 317)

"사람이요?"

"네, 사람이요"

"인간, 필멸의 존재, 우연의 고객. 그 모든 말로 정의되는 진짜 사람 말인가요?" (p. 372)

모든 직업 중의 최고가 삶이라... 그런가? 정규직에 풀타임에 다른 것도 전부 포함이라... 그러고 보니 그런것 같기도 ㅎㅎ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엔 삶이 너무 버거울때가 많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지만;;;

영겁의 시간 속에 사는 존재와 필멸의 삶을 사는 인간 중에서 결국은 무한보다 유한이 좋아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끝이 없다는 것보다는 끝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이유는 아마도 각자가 처한 삶속의 함정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닥쳐요! 영혼을 잃고 세상을 당신처럼 보게 되느니, '작고 무의미한' 존재로 남는 게 낫겠습니다. 우연을 만들 방법은 선택하는 거예요. 선택하는 거라고요. 알아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우연을 만들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포함되지 않을 겁니다" (p. 341)

수동적인 가이가 첫번째로 했던 선택때문에 가이는 커샌드라를 잃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한 이 선택으로 인해 가이는 무엇을 또 잃을 것인가? 아니면 얻을 것인가?

"모든 우연 제작자가 사람인 건 아닐지 몰라도, 모든 사람은 우연 제작자이기도 하거든요" (p. 398)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거기서 김고은이 성인이 되던날 포장마차에서 공유에게 한 대사에 이런 말이 있었다.

"흐릿한 불빛, 소박한 안주, 쓴 소주, 비정한 정서. 도처에 낭만이 가득. 딱 하나만 더 있으면 완벽한데"

그리고 첫 키스 후 한 대사가, 그 꾸며질 것도 없는 짧은 한마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완벽하다"

이 한마디가 왜 그렇게 완.벽.하.게. 들렸을까 ㅎㅎ 그리고 많고 많은 명장면중에서 왜 하필 이 장면이 이 소설을 다 읽어갈즈음 떠올랐을까?

아마도 이 작품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완벽한 '낭만'을 느꼈기 때문이려나~ ^^

살면서 겪은 많고 많은 우연들이 모두 다 그냥 우연이 아니라면 그 우연들이 나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고 나의 인연들을 좌우했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된다. 하지만 내 인생의 우연을 제작했을 우연제작자들에게 딱히 화가 나지 않는 건 이 소설 속 우연제작자들이 참 따듯해서였을 것이다. 이런 우연제작자들이 내게 계획한 우연이었다면 나름 괜찮았던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의도에서만큼은;;;

판타지 소설인줄 알고 읽었던 이 소설은, 점이 선이 되고 선이 원이 되고 원이 공간이 되는 확장처럼 작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인연들이 전해주는 결국 사랑이야기였다. 그 로맨스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판타스틱했다. 한마디로 완벽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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