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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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보존에는 과학이 숨어 있다!

창작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보존과학

 

미술을 잘 모르지만 그림 보는 걸 좋아한다. 때로는 한줄의 문장보다 한장의 그림이 훨씬 많은 것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명화들에 대해서는 특히나 더 유심히 보게 된다. 역사를 좋아하다보니 그림속에서 찾아내는 역사가 재밌을때가 많다. 그런데... 그 옛날의 그림이 어떻게 지금도 이렇게 멀쩡해 보일 수 있을까? 다 보존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보여지는 모든 멋진것들 뒤에는 숨어있는 노고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가끔 뉴스에서 예술작품들의 보존관련 소식을 볼때마다 그 속이야기가 궁금하곤 했다. 그림을 어떻게 깨끗이 닦아낼 수 있는걸까? 조각을 어떻게 티안나게 붙일 수 있는걸까? 작품의 진위는 어떻게 판별하는 것일까? 등의 평범한 질문들에 대해 저자는 과학적 답변을 명료하게 해주고 있다. 나아가 예술품에 있어 보존의 의미와 보존가의 마음가짐에 대해서까지 질문을 던져보는 진지함을 배울 수 있기도 했다.

과학고와 카이스트에서 과학을 공부한 저자의 이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들이 많았고, 정통 이과생이 어떻게 미술품 복원의 매력에 빠져들었는지 그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이 책을 읽어가며 얻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보존과학의 위치가 그러하듯 이 책의 분야도 예술과 과학 그 사이 어디에선가 읽히고 있었다.

보존에는 크게 세가지로 그 활동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예방보존, 치료보조, 복원 이다.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던 것은 복원 이었는데, 보존이 곧 복원인것처럼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나의 무지를 보존 이라는 커다란 프레임으로 확장시켜준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저자의 진정성이었다. 저자는 조심스럽고도 애정어린 마음으로 보존과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그 허와실을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이야기해준다.

작품의 복원에 앞서 세 가지 측면에서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 복원해야 하는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가가 바로 그 질문이다. (p. 20) 미래에 더 좋은 재료와 기술이 개발되면 다시 처리할 수 있도록 지금의 처리가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한 일은 사진과 문서로 꼭 기록을 남겨서 작품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늘 기록해야 한다. 보존가들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최신 기술과 과학적 연구 결과에 늘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또한 부단한 자기계발의 노력은 물론이고 다른 영역과의 소통에도 게을러서는 안 된다. 보존가들이 더 이상 음지에서 숨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양지로 나와야 하는 이유이다. (p. 21)

이미 알고 있는 예술품들에 대한 뒷이야기가 나올때면 더 흥미진진하게 읽히곤 했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 이라는 그림이 최소 25회 정도나 복원됐었다는 것,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밝아진 색이 불러일으킨 논란, 제2차세계대전당시 폭격이 퍼부어졌던 런던의 예술품들이 어떻게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는지 등에서 이야기 자체로도 재미있었지만 과학이 어떻게 예술과 접목되는지 보존과학의 흐름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보존과 복원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가장 안타까웠던 사례는 1935년 구본웅이 소설가 이상을 그렸던 '친구의 초상' 이라는 그림이었다. 복원전후의 그림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서 되돌릴 수 없는 복원이 얼마나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이 되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최신기법으로 최선을 다해 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실패한 복원이었다.

흥미로운 사례들로 시작한 이 책은 갈수록 복원과 보존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문들에 주목한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이 갈라지고 있는 것과 고흐의 '침실' 그림의 변색된 색에서 현재 보존과학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로스코의 '하버드 벽화' 와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보며 복원과 보존을 위해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할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환경파괴의 주요인중 하나인 플라스틱을 예술작품 소재로 활용했을때나 뭉크 가 자신의 작품을 천장도 없는 장소에 방치하다시피 보관하려했던 식의 작가들이 추구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보존가의 고민을 공감하게 되기도 하면서 예술품의 보존이라는 것이 정말 쉬운일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나마 고전작품들에 대해서는 복원과 보존이라는 것이 고민이 아니라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문제는 현대미술로 올수록 복잡해져 보였다. 예를들어, 마우리치오 카텔란 이라는 작가가 벽에 바나나 한개를 테이프로 붙여 놓고 '코미디언'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에 무려 12만달러가 넘는 가격이 매겨졌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 와서 그 바나나를 먹어버리고는 행위예술이라고 인터뷰했고 미술관측은 바나나를 새로 사다가 테이프로 붙였다. 이런 작품에서 보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나나? 의미? 아니 보존을 하긴 해야하는 것일까? 어떤 작품을 보존해야 하는 것인가?

1장이 '그림이 들려주는 복원 이야기' 라서 흥미진진하면서도 다양한 고민점들을 던져주었다면 2장 '미술관으로 간 과학자' 와 3장 '미술관의 비밀' 에서는 여전히 고민은 되지만 다양한 해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공유되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 미술관은 단지 아름다운 작품을 잘 보관하고 보여 주는 장소일 뿐 작품의 진정한 주인은 바로 우리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는 미술관이 물리적인 작품의 보존뿐 아니라 함께 생산되는 모든 지식의 저장고가 되었다. 개방형 수장고의 유행은 단순히 닫혀 있던 수장고의 문을 열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을 넘어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잘 지키면서도 잘 활용하는 두 가지 숙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p. 273)

보존과학도 예술품보존가도 생소하고 낯선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한번 들으면 바로 호기심이 생기는 궁금한 분야이기도 했다. 시간은 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고, 그런 세월의 흔적은 때론 주름살이 되기도 하고 때론 추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작품이 되기도 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적응하기 바쁜 우리에게 예술품의 가치와 보존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이 책은 뛰기만 사람을 차분히 쉬어가게 해주는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생각꺼리들을 남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겁다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마라톤 주자에게 페이스메이커가 있고 마라톤이라는게 꼭 1등을 못하더라도 완주의 의미가 있듯이 저자가 남긴 질문에 내가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다기보다는 저자의 고민을 나도 한번 생각해보고 멀게만 느껴지는 예술품을 좀더 가깝게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독자들이 많아질때 보존과학이라는 마라톤을 뛰고 있는 저자에게 물마시는 타임이 주는 에너지충전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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