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는 나를 알고 있다 - 나를 찾아 떠나는 색채 심리 여행
진미선 지음 / 라온북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컬러만으로 충분합니다!

나도 몰랐던 과거, 현재, 미래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돌보는

아주 쉽고 명쾌한 컬러 안내서

 

 

대중심리서 들을 자주 읽어오다보니 최근엔 다양한 분야와 접목된 심리서들을 여럿 읽게 되었다. 예전엔 그저 위안과 힐링 혹은 의학적 분석을 주 내용으로 한 책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비슷비슷한 책들을 읽고나니 이제 그런 책들은 안 읽는 편인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심리서들을 찾아 읽게 되는 이유는 언제부턴가 심리적 고민이 책, 그림, 식물, 명리학 등 다른 분야와 함께 풀어주는 책들이 나왔고 그런 새로운 시도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엔 '색' 이다. 이른바, 색채심리학.

오늘 입고 나온 옷의 색으로 주목받은 적이 있는가? 반대로, 오늘 입고 나온 옷의 색이 갑자기 불편한 적은? 너무나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버린 색이 오늘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느껴본 적이 있나? 색은 우리에게 매 순간 느낌과 정서, 감정을 주는데 우리는 그 많은 것들을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리며 살아간다. (p. 16~17) 색을 찾는 것은 그리고 색을 입는 것은 곧 자신답게 살아가는 일의 다른 이름이다. 자, 이제붜라도 자신의 색을 입고 나답게 살아가자. (p. 20)

어렸을때부터 심리테스트 같은걸 재밌어하곤 했다. 아이들의 그림으로 정서를 풀어내는 책이나 방송들을 보며 신기했던 마음은 색으로 드러나는 심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무릎을 쳤는지 모른다. 색은 정말 심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색은 본인이 무의식중에 감추어두었던 내면의 상처는 물론이고 미처 몰랐던 마음의 목소리까지 들여준다. 색채 현상에 이런 숨은 인간의 심리를 해명하고 내면을 들려주기 위한 심리학의 한 갈래가 바로 색채 심리라 할 수 있다. 색에는 고유한 파장과 에너지가 있고 이러한 색은 우리의 감정, 행동,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색을 통해 내면을 탐색하고 무의식에 억압된 사건이나 사어를 다시 경험하고 나를 알아가는 것이 색채 심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p. 24) 우리는 색채 심리를 통해 스스로를 쉽게 발견하고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은 물론 타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할 수 있다. (p. 25)

색채만으로 나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며 관계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색 속에 숨어있는 의미들은 신기하게 심리와 맞아떨어졌다. 총4장으로 구성되있는 이 책은 1장에서 색채 심리의 중요성을 간단히 안내하고 2장에서 나만의 컬러를 찾은 후 3장에서 컬러로 컨디션을 진단할 수 있는 색의 의미들을 분석한 다음 4장에서 관계에 실전적용할 경우 어떤 모습들인지 사례들과 함께 풀어주고 있다.

2장의 첫 페이지는 '마인드 컬러 자가진단표' 문항들인데 50문항에 각각 점수를 매기고 나면 10가지 기본 색 중에서 자신의 성격유형을 대표하는 색을 확인할 수 있다. 색에 따른 성격유형 그리고 그 성격유형에 따른 순기능과 역기능의 에너지들을 옮겨보자면,

레드 - 행동하는 열정가 (순: 열정적, 진취적, 현실감각, 리더십, 생명의 본질, 원천의 색상, 자발성과 변화, 에너지를 주는 색, 프로의 색 (역): 폭력성, 공격성, 폭발성, 잔인함, 분노, 금전적 집착, 보상 심리, 게으름)

오렌지 - 자유로운 표현가 (순: 표현력, 개혁적, 명랑, 활발, 활력, 에너지, 자유로움, 목표지향적, 사회적, 사교적 변화, 새로운 도전, 창의성 (역): 공격성, 외로움, 두려움, 외모 집착, 사치, 의존성, 외부 원인으로 돌리기, 낮은 자존감, 허영심)

옐로 - 지적인 도전가 (순: 지적, 사고적, 발전, 낙천적, 도전적, 창의적, 지적 세계의 추구, 학식을 발전시키는 도전의 색, 향상심, 자아 정체감 (역): 낮은 자존감, 질투, 시기심, 비판적 사고, 이기심, 지나친 분석, 외로움, 혼란, 우울감)

옐로그린 - 온화한 관찰자 (순: 관찰력, 온화함, 관계중심, 안정감, 부드러움, 상냥함, 탐구심, 존중, 외유내강 (역) : 집착적, 의심, 관찰에 대한 확신, 낮은 자존감, 의존성, 겁쟁이, 게으름, 회피적 태도)

그린 - 안전한 평화주의자 (순: 인정, 평화, 회복, 성장, 도덕적 신념, 이해심과 양심의 색, 균형과 조화의 색상 (역) : 게으름, 우유부단, 태만, 무질서, 화병, 소유욕, 집착, 고집)

터키 - 창의적인 독립가 (순: 독립, 독창성, 창조의 색, 잠재력,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색, 자기 균형, 조화의 색 (역) : 감정 분리, 가정 차단, 두려움, 회피적, ㅁ응대, 고집)

블루 - 진실한 소통가 (순: 소통, 신중함, 책임감, 자기 성찰, 이성적 판단, 신뢰, 성숙 (역): 불안장애, 스트레스, 비판적 사고, 우울, 냉정함, 소통불가)

인디고 - 통찰하는 실력가 (순: 통찰력, 정직함, 지적욕구, 이해심, 분석력, 냉철한 판단력, 신중함 (역): 보수적, 아집, 자기주장이 강함, 특권의식, 고집)

퍼플 - 직관적인 몽상가 (순: 창조와 직관력의 색, 따듯함과 차가움, 충동성과 억제, 외향과 내향의 양면적인 색, 이상주의적이며 예술을 추구하는 색, 위로와 치유의 색, 영적인 색상 (역) : 오만함 , 우월감, 우유부단함, 현실도피, 공허함, 고독, 상실, 우울, 불안, 무정착, 정체성 혼란)

마젠타 - 큰 사랑의 포용가 (순: 자신감, 포용력, 수용적, 보살핌, 정신적 사랑, 존중, 성숙함, 치료사의 색 (역): 독재적, 자기중심적, 자기 우월, 물질욕, 거만함, 집착, 게으름)

이다.

자신의 '색'은 평소 좋아하는 색일수도 있지만 문항을 체크하다보면 꼭 그렇게 나오지 않을수도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선호하는 계열의 색임은 맞다. 색채 심리를 몰랐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색을 주로 사용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10가지 색의 기본 심리에 대해 파악하고 난 후 3장의 첫장에서는 지금 나의 상태를 알 수 있게 하는 테스트로 시작한다. 이 10가지 색 중 '나'를 떠올리며 가장 마음에 드는 3가지 색을 선택한다. 첫번째 색은 '나의 본질', 두번째 색은 지금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 세번째 색은 앞으로 희망하는 '나의 미래' 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3가지 색에 대한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보완색' 과 함께 할때 색으로부터 보다 실질적인 심리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장에서도 각각의 색별로 상세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첫번째 선택한 색이 블루라면 당신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또 매사 신중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관계하며 일처리를 잘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도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즐거워하며 앞에 나서는 리더보다는 조력자로서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조력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블루의 성향은 차분하고 내면의 정신적인 면을 중요시 생각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힘이 강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반응하며 적응력이 좋다. 간혹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 빠지면 감정적으로 고립되고 우울감을 느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p 152~153)

나만의 컬러와 좀 다른 색이긴 했지만 지금의 '나'를 생각하며 선택한 색은 '블루' 였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는 색이 늘 '블루'이기는 했다. '블루'가 '강한 책임감'을 대표하는 색이라고 하니 왠지 더 마음에 든다. 나는 책임감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편이다.

두번째로 선택한 색이 그린이라면 당신은 현실에서 자신이 베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썩나 관계에 지쳐서 무기력감을 느끼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을 받고 있을 수 있다. 그린은 소속감이 중요하고 그 소속의 무리 안에서 자신이 도움이 되길 원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이러한 노력이 인정되지 않거나 그린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그린은 과도하게 타인을 살피고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도우며 스스로 지쳐가는 것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신체와 감정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며 상실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p. 141)

소오오름! 그랬다. 사실 나는 최근 몇년간 이런저런 '관계'에서 힘들었다. 그런데 색의 의미가... 그랬구나... 흠... 신기한데...

세번째로 선택한 색이 옐로일 경우에는 현재 자신이 도태된다고 느끼거나 발전하는 모습이 없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적게 느끼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옐로의 에너지를 받아 나날이 향상되고 발전하는 자신의 희망적인 모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구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자신의 지적 열망을 해소하며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상태이기 쉽다. (중략) 긍정적인 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에너지를 채울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로부터 힘을 길러야 한다. (p. 130)

또다시 소오오오오름! ㅎ 그래서 내가 이렇게 책을 파고 있나 보다. 과거 십년간 읽은 책보다 최근 일이년 사이 읽은 책이 몇배로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아마도 당분간 계속 그렇게 책에 파묻혀 지내야 할 것 같다.

4장 '색으로 만나고 관계 맺는 사람들'에서는 가장 사례중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저런 경우에 대해 그 관계들을 색으로 풀어내는데 앞 내용들에서 이미 색의 심리에 조금은 놀라운 마음으로 읽은 터라 마지막 장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나 각 색깔별로 순기능과 역기능을 적절히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겠구나 싶은 깨우침을 하게 되기도 했다. 친절하게도 마지막 장에서는 '색으로 만나는 관계 패턴'들을 간략히 정리해놓아서 책한권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하나의 색이라 할지라도 숨어있는 의미는 다양했다. 순기능이라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역기능이라고 마냥 나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다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때가 가장 최선이었다. 평소 무채색 계열의 옷만 입고 그닥 색에 대한 개념도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이런저런 색의 심리를 파악하고나니 앞으로는 적절히 색을 활용하며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색에 대해서도 내 무의식을 더듬어 가며 좀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봐야 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 유용한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엔 SF잡지를 읽었었는데, 이번엔 새로나온 문예잡지를 보게 됐다. 문예잡지 하면 '창작과비평' 계간지 정도만 알았는데 요즘엔 새로운 문예잡지들도 등장하는 것을 보니 반갑고 일단 오래 갔으면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에픽은 어떤 잡지인가? 내가 읽은 건 2호라서 잡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기에 1호를 검색해보았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1호에 대한 소개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러티브 매거진 《에픽》은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는 신개념 서사 중심 문학잡지이다. '에픽(epic)'이라는 단어는, 명사로는 '서사시, 서사 문학', 형용사로는 '웅대한, 영웅적인, 대규모의, 뛰어난, 커다란, 광범위한' 같은 뜻을 지녔다. 이 'epic'의 모음 'i'에 'i' 하나를 덧붙였다. 이야기란, 서사란, 하나의 내[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픽(epiic)》은 바로 이 두 겹의 세계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모았다. 제목 그대로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 벌어지는 화학 작용을 다루는 이너 내러티브 'i+i'를 시작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서사인 픽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져 온 크리에이티브 논픽션(creative nonfiction)을 두루 다루고자 한다. 이 논픽션에는 르포르타주(reportage), 메모어(memoir), 구술록(oral history) 같은 여러 세부 장르가 포함된다.

책 리뷰 역시 한 권이 아닌 서로 연결된 두 권을 다루는 1+1 방식으로 소개되며, 가상의 누군가를 만나는 버추얼 에세이 'if i'도 마련된다. 픽션 파트에서는 기존의 문단 중심 단편소설뿐 아니라 장르문학을 편견 없이 함께 다루고, 책 말미에는 그래픽노블을 통해 각 권의 제호에서 비롯된 또다른 상상력을 살펴본다.

이러한 에픽만의 특징은 1호에 이어 2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절반은 논픽션 절반은 픽션인데 둘다 서사중심의 글들이고 다루는 소재도 두 가지 혹은 두 방향이 함께 서술된다. 사람인 人 이라는 한자가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을 옆에서 본것을 상형화한것이라 하지만 두 사람이 기대어 있는 모습으로 풀이되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데 이 잡지의 특징이 그런 人 을 생각나게 했다. 필진들도 눈에 익은 이름이 많아서 호기심이 up 되기도 했다.

『 앞장과 뒷장 사이의 우주 』 - 문지혁

"코덱스 형식은 닫혀 있으면 공기로부터 저절로 차단돼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디바이스인 셈이죠. 저는 이걸 책이 스스로 선택한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 끝에 이런 구조만 살아남았으니까요. 좋은 종이를 쓰고 튼튼하게 묶어놓으면 천년 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아요. 언제든 다시 풀고 묶어서 수명을 늘려줄 수도 있고요" (p. 35)

공방의 이름 '렉또베르쏘'는 라틴어로 앞장이라는 뜻의 렉토와 뒷장이라는 뜻의 베르쏘를 합친 말이다. 렉또였던 백순덕 선생이 세상과 공방을 떠난 뒤 조효은 대표는 한동안 혼자서 공방을 운영했다. (p. 38, 40)

예술제본 백순덕씨에 대한 기사를 언젠가 어디선가 본것 같다. 책을 그렇게 정성들여 손으로 직접 제본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프랑스 유학까지 가서 배워왔다니 더욱 생소했지만 잠시 봤던 그 책표지들이 참 아름다워보였다. 백순덕씨 타계후 유일한 제자였던 조효은씨가 공방 '렉또베르쏘'를 이어받았다. 소설가 문지혁이 그녀를 인터뷰했다. 렉또를 바라보며 책을 꿰매던 조효은씨에게 프랑스로 유학가서 를리외르 자격증을 따온 베르쏘가 생겼다. 참 다행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수업의 본질이 내용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중략) 수업의 본질은 수업 이전과 수업 이후에 있다는 것을, 나는 1년을 헤매고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오늘 읽어야 할 책과 배워야 할 기술에 관한 몇 시간짜리 강의가 아니라, 옷을 입고 책과 노트와 필기구를 챙겨 버스와 지하철에 타는 것이 수업이다. 교실까지 걸어가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딴생각을 하는 것이 수업이다.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시간, 잘 정돈된 슬라이드가 펼쳐지는 시간이 아니라 컴퓨터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낑낑대는 시간, 활발한 토론이 오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시간이 수업이다. (중략) 어쩌면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중략) 책만이 줄 수 있는 것은 책 자체, 책이라는 크기와 무게를 지닌 물리적 형식뿐이다. 내용이 아니라 물성이 책의 본질이다. 눈이 아니라 손이다. 페이지마다 빼곡히 적혀 있는 글자가 아니라, 앞장에서 뒷장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한순간 경험하는 어둠과 공백과 멈춤만이 진짜 책이다. (p. 41, 42)

멋진 표현이다. 지난 1년간 학교수업에 대해 열변을 토하게 한 것은 비대면수업으로 인한 학력격차 문제도 컸지만 그보다도 문지혁 작가가 말한 저런 수업이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수업은 수업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도... 책또한 의미만이 다가 아니고 글자만이 다가 아니다.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느낌과 여백은 또다른 책이다. 단숨에 읽히는 책도 띄엄띄엄 읽히는 책도 그 앞장과 뒷장 사이의 그 모든 시간들은 결국 다 책이다. 책속의 내용이 무엇이건간에 어떤 책을 예술적으로 제본한다는 것은 또다른 아름다움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 두 사람의 내력 만나기 』 - 최현숙

어떤 글에서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씨에 대해 언급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구술생애사 작가라니, 대단한 삶을 대신하여 써주는 자서전 작가도 아니고 누군가의 삶을 자신의 글로 담아내는 에세이 작가도 아니고 구술생애사 작가라니 생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그저 누군가는 기록해야 할 삶을 사는 이들을 기억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글을 보고나서야 작가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왜 어떻게 남기고자 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나는 그녀가 말해준 것을 가지고 그녀를 가늠해간다. 더 잘 만나기 위해서는 그녀와 나 사이에 더 많은 시간과 말과 경험이 섞여야 하고, 그녀의 느낌을 그녀의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내도록 내 단어와 문장이 바뀌어야 한다. 궁금한 사람은 그녀가 아닌 나니까. 별수 없이 내가 고생해야 한다. (p. 55)

작가는 한 여성 노숙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는 누군가의 요청으로 그 사람의 생애를 듣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선택한 사람을 어렵게어렵게 인터뷰해가며 그 사람의 삶을 최대한 그사람답게 글로 표현하려 애쓴다. 왜냐면 그들도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니까.

21세기의 소위 민주 정권들은 홈리스/신자유주의 바깥의 존재/노동하지 않(못하)는 비체들을 '싹 쓸어다 가두거나 죽이'지는 못한다. (중략) 내내 그 비용을 아까워하면서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비용임을 수긍하고 별수 없이 지불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그들의 삶을 '불쌍' 과 '비참'을 들먹이며 동정하지만 결국은 혐오이자 배제다. 여기에는 자기불안도 들어있다. 신자유주의 각자도생 사회에서 여차하면 자신들의 삶 역시 그렇게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홈리스는 그들에게는 되지 말아야 할 구체적 사례이자 증거이다. 불가피한 존재이자 사례로서의 홈리스들에 대해 '그 사회' 속 사람들이 원하는 바는,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을 해주는 것이 국가라고 생각한다. (p. 69~70)

일면 과격한 면도 있게 읽히는 글이지만 다 읽고나면 그 기저에 세상에서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또한 처음 읽는 여성노숙자의 삶도 이해는 안가지만 인정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과한 표현들에 대해서는 생각의 여지를 좀더 남겨두기로 한다. 책임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므로...

『 나는 왜 밀덕이 되었나? 』 - 정명섭

나는 덕질을 삶의 유희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하나의 축제라면 즐기고 또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p. 79) 내가 이렇게 밀덕에 빠져든 것은 군대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이겨낼 만한 매력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전쟁에 매혹된 것이다. (p. 84)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해롭고 나쁜 전쟁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고백하자면, 너무 싫기 때문에 들여다보는 것이다. (p. 85) 인간의 역사는 깊고, 그 와중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단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은 전쟁의 목적과 본질, 그리고 그 피해자들뿐이다. 역사는 굉장히 냉정하고 차갑게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전쟁을 연구하고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뭔가를 피하려면 거기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p. 86)

덕후중에서도 드물다는 밀리터리덕후인 작가 정명섭이 알여주는 밀덕의 세계는 생각보다 심오하다. 덕후라고 하면 자신이 꽂힌 뭔가를 열정적으로 모으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리고 다행히 요즘은 덕질로 성공하는 사례들도 종종 있는데 이 작가가 그러했다. 여하튼, 덕후들은 자신이 꽂힌 그 분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그 열정이 정명섭 작가처럼 역사와 이어질때 나는 좀더 반가울것 같다. ㅎㅎ

『 응급실의 노동자들 』 - 남궁인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을 읽은 이후로 내내 그 소설의 여운이 내게 남아있는 듯 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시선으로 바라본 응급실의 24시와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피프티피플이라는 소설을 생각나게 했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응급실의 24시간이 유지될 수 있었다. 응급실 이야기는 그 어떤 소설보다 더 픽션처럼 읽히는 에피소드들이었다.

『 다시, 다시 - 만약에 꽈리고추와 계란을 다시 사지 않았더라면 』 - 김대주

방송작가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김대주 작가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1박2일, 응답하라1994, 꽃보다청춘, 윤식당, 스페인하숙, 여름방학등의 작가로 참여했다는 이력을 읽고나니 아~! 예능방송에서 출연자가 작가이름을 친근하게 불렀던 것 같다. ㅎ 여하튼 대부분 히트작이었던 프로그램 이름들을 보면서 어떤 글일지 궁금증이 일었다.

방송작가라고 하면 대본을 쓰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예능프로그램의 작가는, 적어도 내가 주로 하고 있는 리얼버라이어티 작가는 말하는 거 반 몸 쓰는 거 반이다. 대본이란 걸 써본 게……, 아마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마지막인 것 같다. [1박2일]때는 매일 전국으로 답사를 다니고 게임 시뮬레이션을 하는 게 일이었고, [삼시세끼]때는 밭에 작물을 심고 키우는 게 일이었고, [윤식당] 때는 시장조사하고 메뉴 개발하는 게 일이었다. 물론 밤새 촬영 준비를 하고 며칠 밤낮 촬영장 생활을 지켜보며 고민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몸 쓰는 건 회의실에 앉아서 기획할 때에 비하면 꿀 빠는 일이다. 낮부터 모여서 새벽까지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다 보면 머리가 멈추는 순간을 자주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디어는 바닥나고 침묵은 길어지니 속만 타들어간다. (p. 129 ~ 130)

예능프로그램 방송작가 답게 자신의 하루를 담은 에세이도 재기발랄했다. 늙은 애견과 반찬과 맛있는 김밥집이 코로나로 문을 닫는 것들이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게 짠하지만 짠하지만은 않게 작가의 아이디어 고민과 어우러지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는 글이었다.

『 짜이고 익는 말들 』 - 김화진

나에게 신념이 견고한지 말랑한지, 직선인지 곡선인지 가늠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확인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대체로 골라 읽은 책들을 통해 내가 어떤 것을 믿으며 사는지 알 수 있었다. 내용을 따라가는 사이 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네, 하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지닌 어떤 믿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책들이 있다. 최근에는 백온유의 소설 [유원]과 브래디 미카코의 논픽션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였다. (p. 140)

자주 보고 읽은 것들로 우리의 언어가 구성된다면 나의 언어는 어떨까. 어떤 걸로 짜이고 어떻게 익어갈까. (p. 144)

두 권의 책을 중심에 놓고 풀어낸 이 글에서 [유원]은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고 [나는 옐로에서 화이트에 약간 블루] 라는 읽고 싶은 책을 만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나를 확인해간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공감대가 참 좋았다. 작가는 이 두권의 책을 보고 읽은 것들에서 익어간 언어들을 썼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읽은 책들이 내 안에서 어떤 언어들을 만들었을지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 어떤 물질들의 장소와 환대에 관한 이야기 』 - 이지용

누군가의 글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할때면 왠지 믿음이 가는 기쁨이 생겨나곤 한다. SF작가 다운 선택으로 보여지는 책 두 권 김현경 작가의 [사람, 장소, 환대] 와 천선란 작가의 [어떤 물질의 사랑] 도 내 관심도서에 리스트업 해두기로 했다.

『 슬픔을 다시 썼을 때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들 』 - 임지훈

나는 이야기가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살아 있는 이들 사이의 연결만이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이와의 연결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 수전 손태그의 말처럼 이미지는 충격을 주지만 이해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야기 뿐이기 때문이다. (p. 156)

어쩌면 이 책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일부는 이런 것이 아닐까. 당신은 정말로 당신 자신인가. 당신은 단지 이데올리기의 육화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예컨대,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 행한 발화들은 주체적인 것이었을까. 나는 단지 저 대타자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나 스스로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어떤 거대한 삶의 실패를 이겨내고 등장한 목소리로 가장하는 것은, 그런 부피 없음을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경험한 고통은 단지 가장된 고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이 고통은 무엇일까. 그 고통으로부터 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p. 162)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가 늘 반쪽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러한 타인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여성에 의해 타인이 되어보는 체험, 이 비극 속에서 자신이 얼마쯤은 늘 타인의 위치에 있었다는 자각 말이다. (p. 164)

 

시노다 세츠코의 [장녀들] 과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이라는 두 권의 책을 연결해 풀어내는 저자의 고통이 마음을 울렸다. 솔직한 글은 늘 마음에 닿는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2부가 논픽션이라면 3부는 픽션이다. 5편의 단편과 1편의 만화가 실려있는데, 음... 단편에 약한 나로서는 1부와 2부의 글들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내게 닿지 않는 단편소설의 특성을 나는 개인적으로 '글이 너무 작가적이다'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 5편의 작품들은 아쉽게도 너무 작가적인 글들이었다;;;

『 말하지 않는 책 』 - 김솔

책은 죽은 자들과 이야기하는 데 사용됐다. 악기는 현재 살아있는 자들을 이해하는 도구였다. 천체관측 도구를 통해 그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불평을 들을 수 있었다. (p. 173) 책은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책에게 말을 걸 때만 비로소 책은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이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고 위대한 책들만 질문에 반응을 하는데, 그 방법은 찰나의 영감과 영원한 침묵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기기 때문이다. 책만큼이나 위대한 영혼을 소유한 자들만 책의 침묵을 듣고 이전 세대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위대한 책을 읽는 순간, 책과 독자와 화자와 등장인물과 저자의 운명이 모두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독서를 통해 독자뿐만 아니라 책의 운명도 바뀐다는 것이다. (p. 174)

세살때 라틴어 책을 술술 읽을만큼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수많은 책을 읽고 배운 마르타 수녀는 어느날 스스로 문맹이 되어버렸다. 문맹이 됨으로써 더 온전하게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맹인 그녀가 불온한 책을 썼다는 소문이 돌고 종교회의에 소집된다. 마르타 수녀의 비밀을 알아챈 펠리페 수사는 그녀를 지켜주기 위해 그녀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문맹에 이르는 논리적 방법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신은 영원히 편재하고 모든 인간은 유한하다. 문자를 발명해낸 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며, 문자의 쓸모는 기억이 아니라 망각에 있다. 문자로 옮겨 적는 순간 그 기억은 인간에게서 완전히 사라진다. 더욱이 문자로 변환된 대상은 실재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문장의 시제는 과거이고 현재의 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이와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마르타 수녀는 3년 만에 라틴어 [성경]을 마야의 문자로 번역했다. 마야어로 완성된 [성서]는 고작 두 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을 반년 동안 반복해서 읽고 나자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모든 문자의 의미와 작동 원리를 완전히 망각할 수 있었다. (p. 179, 181)

유한한 인간에 대한 책들에는 망각과 오독의 운명이 이미 반영돼 있다. 자신이 쓴 책은 모든 인간에게 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펠리페 수사에게 용기를 주었다. (p. 183)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한 소설이고 내가 관심있어 하는 중세종교시대의 이야기라서 집중하여 읽었지만 책과 종교가 뒤섞이고 마르타 수녀와 펠리페 수사가 독서를 통해 책과 독자, 화자, 등장인물 그리고 책 까지 모두 운명이 바뀌어버리는 바람에 애초에 마르타 수녀가 있긴 했던 것인지 펠리페 수사는 무엇을 기록한 것인지 나는 알아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남겼다. "천국에 이르는 열쇠 중에는 말하지 않는 책도 포함된다" (p. 202

『 이인제의 나라 』 - 김홍

김홍 작가의 [스모킹 오레오]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기에 반가운 이름이었다. 그런데 단편 제목이 '이인제의 나라' 음? 내가 생각한 그 이인제? 그 이인제가 맞았다;;; 마치 소설을 준비하는 에세이처럼 쓰인 이 소설은 분명 소설이고 '이인제의 소설'은 소재일뿐 결국 소설이 아니다.

2014년 이 소설을 처음 썼을 때 내게는 '이인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인제'는 그 무엇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이인제'라는 법조인 출신의 중견 정치인에 대한 폄하나 무해를 담고 있는 평가라기보다 한국 정치에서 '이인제'라는 현상 혹은 '이인제'가 점유하고 있는 위상에 대한 숙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인제'는 한국 정치의 텅 빈 기표 그 자체이자, 한국 정치의 텅 비어 있음에 대한 물리적인 구현으로서 세상은 절대로 '이인제의 나라'가 될 수 없고, 한편으로 세상이 '이인제의 나라'가 된다고 해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은 기분이 드는 한편, 세상은 어쩌면 이미 '이인제의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패배주의적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것이 바로 소설 '이인제의 나라'였다. (p. 206 ~ 207)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수 없는 소설속의 소설 '이인제의 나라'는 사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내용을 몰라도 상관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인제의 나라'라는 소설속 소설을 쓰기로 한 이유는 아니 '이인제의 나라' 라는 소설이 나오는 소설인 '이인제으 나라'를 쓰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를 알기전에 소설속 작가는 '이인제의 나라'에서 눈을 뜨고 소설은 끝난다.

『 프롬 제네바 』 - 송시우

"기업과 인권 포럼이요? 그게 뭐예요?"

"일단 기업과 인권, The Business and Human Rights의 개념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까, 에……인권을 보호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것이 인권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었다면 말이죠 날로 커지는 초국적기업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제 기업에도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뭐 그런 가치 체계인 거죠. 기업이 이윤만 추구해서는 안 되고 기업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에요" (p. 233)

인권증진위원회에서 일하는 부지훈과 한윤서는 제네바에서 열리는 '기업과 인권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을 왔다가 그 포럼에서 한국 최초의 스피커로 나선 오성전자 이국재 이사의 발표를 보게 된다.

"결국 지 자랑이에요, 지 자랑, 회사 자랑. 여기에 기업 관계자 나오면 자기 회사 자랑밖에 안 하죠. 윤리를 방패 삼은 회사 홍보랄까. 어쩌면 그게 기업과 인권의 본질이긴 하지만요" (p. 242)

복도에도 거대한 네트워크의 장이 펼쳐졌다. 잠깐의 이동 시간을 틈타 회의 참석자들은 서로에게 명함을 건네고 자기 소개를 했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서 활기 있게 와글거렸다. 국제회의의 진정한 네트워킹은 쉬는 시간 복도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p. 245)

그런데 이국재 이사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기업과 인권 포럼에서 인권을 무시한 기업인의 죽음이 발생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5편의 작품 중 가장 내 상식수준에서 이해하기 적당한 소설인데다 스릴러적 분위기가 있다보니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이었다.

『 이 세상 사람 』 - 이주란

그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가도 불안하고 또 이사를 가도 불안한, 제게 집이라는 건 늘 불안한 곳이었습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보낸 우편물을 받았을 때도 도저히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그 사람과 제가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난다는 것. 아니, 그럼에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는 것, 저만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습니다. (p. 277 )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나 지금껏 두려웠고 이제는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통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두려운 이 마음을 아실런지요. 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며칠이 걸렸습니다. (p. 281)

저는 습관이 삶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습관을 만든 것은 거의 내던져졌다고 해야 타당할, 제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해요. (p. 286)

지금도 별일 없이 하루가 가면 기분이 좀 이상한 게 그 때문일까요. 저라는 사람의심리의 원형이 그렇게 형성된 걸까요. 아무 일 없는 하루가 다행이다 싶기보다는 오늘이 무사히 갔으니 내일은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거지요. 하루, 아무 일이 없는 할. 이를테면 평범한 하루.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는 수많은 하루일 뿐인데, 그 사람은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 까요. (p. 291)

살면서 겪은 대부분의 고난을 지나왔고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인간을 이해했고 살면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기도 했으나 그 사람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p. 297)

내내 화자의 독백으로 서술되는 이 이야기에선 구체적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순간의 화자의 심리에 대해 서술되고 그 심리가 풍기는 분위기가 느껴질 뿐이다. 스릴러 영화에서 어떤 결정적 장면이 등장하기 전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만 나오는 바로 그때의 그 순간을 묘사한 작품 같았다. 영화가 그 장면에서 끝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자막이 올라간다고 상상해 보자. 자막으로 결말은 알았지만 결정적 장면은 보지 못했다. 관객의 기분은 어떨까? 그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결정적 사건을 모르기에 화자가 말하는 두려움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 기담 (奇談 』 - 황정은

어쩌다보니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꽤 여럿 읽었던 터라 작가의 분위기가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기담'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기이함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는 '이사'다. 집을 옮기는 그 이사 말이다.

선인과 강희는 세입자로 오래 살았다.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집을 샀다. 2년이나 3년 주기로 자기들이 사는 집을 남에게 보여주고, 남이 사는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일단, 모르는 사람의 살림으로 끓어넘치는 낯선 집에 발을 들이는 일이었다. 남의 영문 모를 질서와 무질서, 남의 무신경, 남의 피로와 곤궁과 곤경을 목격하는 일이자 세입자를 향한 집주인의 적대감이나 집주인을 향한 세입자의 환멸을 목격하는 일이기도 했다. (p. 306)

월세와 전세로 여기저기 이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무척 공감가는 내용일 것이다. 남의 집을 보는 것도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여주는 것도 정말 참 곤란한 일이다... 그러니 요즘은 영끌이라도 해서 집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재산적 의미가 더 강하긴 하겠지만 집이 주는 안락함은 그에 못지 않은 중요한 이유다.

내 이웃들은 이걸, 이 걱정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이건 별로 걱정은 아닌 걸까. 강희의 말대로 여기 사는 사람들에겐 걱정이 너무 많아서, 이 정도 걱정은 당장 걱정이 아닌 걸까. 그렇지 않다면 왜 몇 번이고 이걸 …… 다시 겪고 있을 까. 잠잠해졌다가도 뒤집히곤 하는 물결처럼 선인은 이웃을 향한 의구심과 분노와 환멸이 서서히 자라는 것을 느꼈다. (p. 319)

도시 중심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집들이에 와서 왜 이런 외곽 가파른 산동네 오래된 빌라를 샀느냐고 물었다. 아파트를 살아본 적 없어서 생각도 못했던 이 질문에 선인과 강희는 대답하지 않는다. 빌라가 낡아갈수록 생겨나는 불편함들에 대해 이웃들은 그저 내버려둘뿐 아무도 무엇에도 손대려 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 낯설진 않지만 역시나 황정은의 작품은 마음이 참.. 착잡해진다...

『 멋진 신세계 』 - 의외의 사실

'의외의 사실'이 필명인건가? 모르겠다;;; 그래픽노블인 이 작품은 짧은 만화로 만화가의 글과 그림에 대한 고충을 담은 것 같긴 한데...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잡지는 그 디자인이 멋지긴 한데 커다란 책 크기에 비해 글자가 너무 작아서 좀 아쉬웠다. 문예잡지라고 하면 대부분 그 안에 실린 소설들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이 책을 포함한 최근 읽은 문예잡지 2권은 모두 소설보다 논픽션 글들이 훨씬 좋았다. 단편은 언젠가 묶여나올 책으로도 읽을수 있겠지만 소설이 아닌 심도깊은 글들은 문예잡지이기에 읽을 수 있는 글들이기에 잡지로서의 매력을 한층 높여주고 있었다. 3호를 읽게 된다면 아마도 그런 논픽션글들에 대한 기대치로 선택하게 될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세상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 - 불확실한 상황 속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힘
채정호 지음 / 청림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확실한 상황 속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힘

"고통과 고난 속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십여년 전 '행복한 선물 옵티미스트'라는 책을 읽었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나 느낌이 여전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책이다. 당시 심리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던 때였는데 '옵티미스트'책은 특유의 밝음과 능동적 에너지가 읽는 이에게 전달되는 책이었다.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책들 글자로 나를 안아주는 책들을 그렇게 여러권 읽었건만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책들 중 한권이 '옵티미스티'였다. 여전히 이 책이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옵티미스트'로 인해 채정호 박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본 순간 저자에 대한 믿음으로 기대가 되었다. 저자 약력을 보니 여전히 옵티미스트 활동을 하고 계셔서 반갑기도 하고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활동들의 연장선에서 쓰여졌을 이 책은 삶에 꼭 필요한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이런 세상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 이라는 제목에서 '이런 세상' 이란 아마도 살기 좋은 세상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루하고 팍팍한 세상일 테지만 그저 '이런 세상' 이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읽는이마다 조금씩 다를 세상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포용해주는 듯 하다. 저마다 다른 힘듦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실은 사람들 모두 하나의 목표로 향해 가고 있다. 잘 사는 인생.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은 지혜롭게 사는 것밖에 없다. (중략) 비루한 현실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지혜는 철학 책이나 윤리 교과서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순간이나, 바로 지금도 끊임없이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혜가 없다면 인간답게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혜 없이는 잘 살 수 없다. (p. 6) - 머리말 中 -

저자에 따르면 학술서도 수필집도 아닌 이 책은 일종의 퓨전 이라고 한다. 교과서처럼 교훈을 담고 있지만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히는 이 책은 지혜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지혜를 얻는 방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후 7가지 구성원리 와 이 7가지 원리를 이용한 훈련을 통해 지혜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혜란 타고난다기보다 후천적으로 배워나가는 요소가 많다면서 이 책에서 조금이라도 지혜에 대한 의미와 필요성을 깨닫도록 저자는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읽는이의 성장을 유도한다.

지혜는 지혜로운 현자나 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초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지식 체계다. 인생을 살아가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운용하는 능력이며, 풀기 어려운 삶의 상황이나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다. 아직도 복잡한가? 그러면 지혜는 '삶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 이락 아주 짧게 정의해보자. (중략) 변화와 수용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혜다. 이처럼 지혜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사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잘 살 수 있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사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p. 27)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은 고통을 직접 다루는 방법이 아니다.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찾으며 고통에 대한 태도 자체를 바꾸는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p. 46)

이렇게 중요하고 삶에 꼭 필요한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단 이 책을 머리로만 읽지 말고 각자의 상황에 맞추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가며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래야 훨씬 유용할 것이라고.

지혜에 대한 연구나 내용들은 방대하지만 저자는 일곱가지로 단순화하여 정리했다. 이 일곱가지는 이 책의 기본 뼈대와 같은 것이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쌓아가는 데 알아두면 좋을 필수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옮겨놓아 본다.

1. 알되,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 계속 업데이트하라. - 지혜의 기본은 지식이다.

2. 언제이고, 어디에 있느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 지혜는 맥락적이다.

3. 각자 다 다를 수 있고, 당신만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 지혜는 상대적이다.

4. 확실하지 않은 것을 견뎌라. - 지혜는 불확실한 것을 견디는 것이다.

5. 길게 보라. - 지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6. 더 큰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라. - 지혜는 겸손함과 고요함과 마음챙김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7. 공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 지혜는 공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p. 52)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현인이었던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았다는 점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나는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는 데는 의외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몇번의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엔 여기저기 척척박사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보는 누가 왜 올리느냐 도 알아야 하고 그 정보가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 정보들을 지식으로 이해하고 지혜로 수용하기까지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에 대한 7가지 원리는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가능한 지침들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네 부류가 있다고 본다.

첫째, 훌륭한 사람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남도 귀하게 여길 줄 안다. 타인과의 관계도 잘 이끌어가며 자신과의 관계도 잘 유지한다.

둘째, 나쁜 사람이다. '나쁜 놈'이라는 말이 '나뿐인 놈'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듯이, 오직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만 남은 발가락의 때만도 안 여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은 어떤 피해를 당하든지 알 바가 아니다.

셋째, 착한 사람이다. 남은 존중하지만 자신은 존중하지 않는다. 남을 돌보느라고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자기를 돌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보다 항상 남의 눈치가 더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이런 착한 사람을 자꾸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세상살이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점점 더 지쳐간다.

넷째, 아픈 사람이다. 자기도 돌보지 않고 남도 돌보지 않는다. 남을 돌보지 못하므로 관계가 나빠지고 이것이 아픈 자신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쪽으로 작용해서 악순환이 된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 수준으로 가기도 한다. 세상만사가 다 싫고 미우니 심한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p. 106 ~ 107)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게 와 닿았던 부분이 바로 위의 네 부류 인간에 대한 설명이었다. 저자가 정신의학자였기에 생각해낼 수 있었을 분류였고 읽으면서 심정적으로 많이 수긍이 가는 분류였다. 선한 사람vs악한 사람의 이분법적 구분보다 이 네부류의 인간형이 더 그럴듯하고 무엇보다 '인간애'가 느껴진다. 사람들을 이렇게 네 분류로 구분하면 왠지 세상이 좀더 따듯하게 여겨질 것 같다. 여하튼, 지혜로운 사람은 물론 훌륭한 사람이다. ㅎㅎ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살라' 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행복하고 인생을 잘 산다는 사실은 다 안다. 그러나 긍정의 진짜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긍정이라고 하면 좋은 것, 좋게 생각하고 좋게 바라보고 잘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긍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 2. 일정한 판단에서 문제로 되어 있는 주어와 술어와의 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 즉 명제를 참이라고 승인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어디에서 '좋게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되어 있지 않다. (중략) 즉 긍정은 수용과 인정을 말한다. 세상에 어떤 문제라도 그렇다고 인정하고 승인하는 태도가 바로 지혜다. (p. 117 ~ 118)

최근 '므두셀라증후군' 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과거의 나쁜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기억 편향의 경향성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좋게좋게 기억하는 것 혹은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것 그러다 실제보다 더 좋았던것마냥 기억하게 되는것... 사람들이 '긍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위로는 결국 편향적 사고를 함으로써 억지로라도 부정적인 일들은 잊어버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긍정'이라는 단어의 뜻은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올바른 의미를 알기 위해 나도 가끔 국어사전을 찾아보곤 하는데 저자가 '긍정'의 바른 의미를 알려주어서 감사하고 또 의미있는 뜻풀이로 다가왔다. 이런 '긍정주의' 는 저자의 옵티미스트 와도 연결된다. 그 평화로운 능동성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인간이 찾아낸 지식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통해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당신은 적어도 지혜에 대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적어도 이 책을 읽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저 지혜로워질 것은 분명하다. (p. 129)

책을 칭찬하는 문장은 늘 반갑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많이많이 책을 더더더 읽었으면 좋겠다. 책읽기는 정말 좋은건데 참 좋은건데 뭐라 말로 표현할수가 없네 ㅋ

많은 부모가 옳은 말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부모는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신이 절대 선인 것처럼 착각하고 말을 한다. 다 아는 듯, 마치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녀들은 다 안다. 그러니 말이 통하기가 어렵다. 일단 말이 안 통하면 부모들은 목소리가 커진다. 부모의 판단에 의하면 이것이 옳은 일이고 맞는 일인데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으니 속상하다. 큰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다. 조용하고 나긋하게 말하는 것은 소리가 작아도 전달이 잘되지만 큰소리는 아무리 크게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역사 이래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큰소리의 모순이다. (p. 206 ~ 207)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능력... 큰소리의 모순... ㅍㅎㅎㅎ

맞는 말이다. 그야말로 뼈때리는 촌철살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4장은 7가지 원리를 이용한 지혜훈련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데 여러가지 실천 방법들을 하나하나 설명한 후 매 챕터뒤에 간략하게 정리도 해놓아서 실용지침서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직도' 라는 말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아직' 다 하지 못한 것이라는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p. 259)

아직도 책읽기는 어렵다고 지혜는 안 생기는 것 같다고 자책하지 말자. 아직 다다르지 못했을 뿐 이 책을 손에 들었다면 언젠가 다 읽게 될 것이고 다 읽었다면 조금은 생각에 남을 것이고 그렇게 어쩌다 가끔씩이라도 이 책의 내용들을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한움큼의 지혜라도 더 생겨나 있을 것이기에.

세상의 어려운 문제들은 지혜로만 풀 수 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문제도 당연히 있다. 이유는 지혜가 세상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p. 260) 지혜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적의 행동 형태다.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세상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p. 261) 그동안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옵티미스트클럽과 긍정학교를 통해 지혜 훈련을 조금씩 해왔다. 이제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교육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면 좋겠다. 한 명의 지혜로운 사람이 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만들 수 있고 세상에 지혜로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와 우리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p. 263)  - 맺음말 中 -

예상보다 실천지침서적 성격이 강한 책이긴 했지만 역시나 긍정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책이었다. 모두가 살기 힘든 이런 세상에서 좀 잘 살아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했던가?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차라리 저자의 조언대로 '피할 수 없다면 지혜롭게' 대처해 가는 걸로 우회하는 것이 어떨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라미터O
이준영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가 방사능으로 뒤덮이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작은 생존시설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방사능이 남긴 후유증으로 인해 인류는 종의 최후를 맞이할 운명에 처한다. 그 즈음 시설 밖에서 자의식을 가진 기계종 하나가 발견되고, 자신을 '이브'라고 밝힌 기계종은 생존자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오는데, 인류와 기계문명에 대한 저자의 깊이있는 통찰과 신화적 상상력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SF 서사극

 

파라미터 가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면,

1. 두 개 이상의 변수 사이의 함수 관계를 간접적으로 표시할 때 사용하는 변수.

2.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료가 처리되도록 하기 위하여 명령어를 입력할 때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수치 정보.

라고 나온다. 간단히 매개변수 라고 생각하면 된다. O 는 무엇일까 했는데, 읽고나니 공란 이라는 것을 알았다. 파라미터 라는 함수 뒤에 00 이라는 어떤 매개 지시어가 들어갈 자리라는 의미다.

이 공란이 이 O 가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소녀의 출생은 소녀의 책임이 아니다. 그녀는 그냥 '태어남을 당했다' 태어나 보니 그 시기가 하필 종족의 마지막이었고, 그 장소가 하필 종족의 무덤이었을 뿐이다. 소녀는 인류의 마지막 세대였다. 선조들의 원죄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난 저주받은 세대. 매정한 어른들은 소녀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을 작은 방에 가축처럼 몰아넣고, 기계 시종들에게 목동 역할을 맡겼다. (p. 9~10)

소설의 시대와 장소를 안내하려는 듯 '프롤로그'에서는 임의의 한 소녀를 통해 인류의 마지막 시기 마지막 세대 를 묘사한다. 방사능이 강한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최후의 인류 수십명이 지내는 시설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다. 인류가 종족 번식의 기능을 잃은 셈이라 이 시설은 곧 마지막 인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너도 고생 그만하고 쾌감기를 써보지 그러냐"

"전 그렇게 삶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요"

"허비한다는 말은 본래 목적에 맞지 않게 헛되이 쓴다는 뜻이지. 그럼, 삶의 본래 목적이 대체 뭐냐?"

"삶의 본래 목적이요?"

"그래. 어떤 인생을 살아야 삶을 '허비하지' 않는 건데? 헛된 꿈을 좇는 것? 행복을 추구하는 것? 아니면 저기 저 게이브처럼 신의 뜻에 따르는 것?"

" …… "

"우리 삶에 본래 목적이라는 게 정해져 있긴 한 거냐? 조슈. 넌 어떤 삶이 허비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은 낸시는 삶을 허비한 거냐?" (p. 29)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시설의 유일한 엔지니어 조슈는 자신이 맡은 책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왜 그렇게 자신이 열심히 하는건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시설을 탈출하여 결국 죽음으로 돌아온 소녀 낸시를 구조하다가 낸시가 들고 있던 전파신호기를 손에 넣게 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누군가는 헛된 꿈이라도 꾸고 누군가는 신의 뜻이라며 고집스런 외길을 가고 누군가는 행복을 추구하려 노력한다. 그런 사람들 누구도 자신의 삶을 허비한다는 생각은 안하지 않을까... 하지만 삶의 목적을 고민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슈말고는.

"글쎄, 사람마다 저마다의 목적이 있었겠지. 아주 먼 옛날 동물처럼 살던 조상들에게는 생존 내지는 번식이었을 테고. 문명이 생긴 후에는 누군가는 왕의 명령이나 신의 목소리에 목숨을 걸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밥벌이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걸세. 삶의 의미 같은 것도 물질적 풍요가 뒷받침되어야 고민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럼 풍요로운 시대의 선조들은 어땠을까요?"

"재산을 늘리는 일이나 깨달음을 얻는 것, 개인의 행복이나 정신적인 평온 등 각자 자기가 믿는 대로 살지 않겠는가? 아, 아마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사람들도 있었을 테지, 나처럼 말이네" (p. 31)

조슈는 살아갈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도 찾고 싶었다. 이 시설 곳곳에 남아있는 엄마의 연구흔적들을 느낄때마다 절실하게.

시설 내 다수의 사람들은 할일도 해야할 일도 없이 무력하게 쾌감기에 머리를 박거나 수면실에 박혀 지내곤 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나마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설을 관리하는 것이 엔지니어인 조슈가 하는일 해야할 일이었다. 왜그러고들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하튼 살아있으니까. 그러다 태풍으로 시설에 위험이 닥친다.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이렇게 의견 충돌이 심하다면, 쾌감기 사용 제한에 대해 합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쾌감기 말고, 다른 제안을 하실 분은 없습니까?" (p. 68)

"씨앗 탱크에는 선조들의 건강한 유전자가 보관되고 있어요. 그걸 꺼버리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멀쩡한 인간 유전자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도 남지 않을 거라고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릅니까? 멸종입니다. 멸종!" (p. 71)

엔지니어인 내 의견은 참고할 거리도 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쾌감기를 쓰고 싶은 하루살이들을 데리고 민주주의를 시도한 자체가 웃기는 일이었다. (p. 75)

씨앗 탱크에 대한 논쟁은 곧 누굴 더 희생해서 입을 줄일지에 대한 미치광이 토론으로 이어졌다. (p. 173)

시설 내 전력위기가 닥치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익만을 고수하려 하는 민낯을 드러낸다. 그리고 시설내 가장 많은 전력을 소모하는 씨앗탱크에 전력을 끊자고 한다. 하지만 이 시설은 애초에 씨앗탱크를 위해 세워진 것이었다. 그 시설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일종의 더부살이였다. 씨앗탱크는 인류가 남긴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런데 단 며칠을 더 살고자 멸종을 언급할만큼 사람들은 후안무치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시면, 제 친구를 추모하고 뒤따르겠습니다"

"뭐? 기계종이 친구를 추모한다고?"

이브는 이미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자신의 '친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녀석은 시설에 있는 기계종들과는 전혀 달랐다. (p. 91)

"그 말씀조차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왜 저는 창조주님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지요?"

그러게 말이다. 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야. (p. 109)

"이 녀석은 초기 세팅값 같은 건 없어.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해. 사람처럼" (p. 111)

어찌어찌 전력난을 해소하고 엄마의 흔적을 추적하던 중 조슈는 벌판에서 처음 보는 기계종 '이브'를 만난다. 시설에 인간을 돕는 기계종들이 있었기에 낯설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이브'라고 소개한 이 기계종은 조슈를 창조주님 이라고 부르며 질문들을 퍼부었다. 모든 것에 '의미'를 이해하려 했다. 이브를 시설로 데려와 살펴보던 조슈는 이브를 활동하게 하는 것이 '파라미터O:' 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공란에 조슈가 무엇을 입력해야 할까. 누가 만든 것일까 이 희한한 기계종은. 왜 이렇게 만든 것일까.

"창조는 하나님의, 하나님만의 권능입니다. 그 피조물인 우리가 그 권능에 도전하는 건 신에 대한 모독이에요. 우리를 창조주라고 숭배하는 기계를 만들고, 거기에 이브라는 이름까지 붙이다니, 정말 불순하기 짝이 없군요! 이건 악마의 인형이에여! 당장 폐기해 버리세요!" (p. 121)

시설내 목사인 게이브목사는 이브를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낸다. 마지막 남은 인류에게 맹목적인 광신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존재인 게이브목사, 그가 하는 일마다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화가날 지경이라 욕이라고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잘됐네. 넌, 언젠가 엄마가 되고 싶어 했잖아" (p. 125)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법한 이 한 문장이 왜 그토록 내게는 오래남은 문장이었을까... 아마도 조슈의 파라미터O는 '엄마' 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자신의 엄마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브와 함께 하게 되면서 조슈에게 엄마의 의미는 변화해 간다.

이브의 날카로움은 종종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르곤 했다. (p. 139)

생명체의 출산과 다를 바 없는, 경건하기까지 한 광경에 나는 말을 잃었다. (중략) "주인님, 오셨군요. 생산이 완료되었습니다" (p. 142)

"저희 고유의 언어를 통해서, 제 자손에게 여러 지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p. 143)

이브는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 기계종이다. 게다가 자체 생산능력과 자체 고유언어도 갖고 있었다. 이브를 알면 알수록 이브는 놀라운 존재였다. 또다시 닥친 시설의 전력위험에 이브의 도움이 결정적이게 되면서 이브는 종족을 늘리게 된다. 하지만 또 미친 목사의 등장이다.

"이전과 같은 기계종들이었다면 나도 아무 말 안 했을 겁니다. 그 정도의 인공지능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 녀석들은 우릴 창조주라고 숭배하고, 이제는 한술 더 떠서 번식까지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주님의 권능에 도전하는 건 그냥 두지 않겠어요!" (p. 149)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신의 뜻이 인류멸망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며 가만히 앉아 천국에 갈 기도나 하며 지내는 것이 유일한 삶의 이유라는 사고방식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언젠가 엄마를 찾아내 시설로 당당히 데려오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래, 어쩌면 내 머릿속의 파라미터O는 정말로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엄마의 어두운 과거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이후의 좋았던 기억이, 미움을 희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를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p. 169)

게이브목사와 지호아저씨의 언쟁을 통해 조슈는 엄마의 죽음(혹은 탈출)에 얽힌 내막을 조금 알게 된다. 지호아저씨는 시설내 유일한 의사이자 엄마와 조슈를 연결해주는 매개자였지만 쾌감기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권하는 조슈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여하튼, 시설의 위기를 이브족들로 넘기게 되면서 이브족들의 활동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게 된다.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지나 싶더니 조슈에게 새로운 국면이 다가온다.

"노예라고?"

노예가 있다는 것은 곧 기계종들이 계급 사회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네, 그렇습니다. 아스족에게 바칠 제물이라 합니다."

"아스족이라고 그건 또 뭐야?" (p. 190)

지상의 모든 것들이 쓸려나간 이 행성 위에서 기계종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리는 없다. 분명히 그들을 만든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누군가의 정체와 목적이었다. 우리처럼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기엔, 이런 식으로 기계종들끼리 전쟁놀이를 시킬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기계종들이 동남쪽으로 가지 못하도록한 걸 보면 우리 시설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호적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적대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p. 202)

이브족들이 늘어나고 시설이 안정되면서 그동안은 어려웠던 시설 밖 세계를 탐험하게 된 조슈는 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브족들과 흡사한 기계종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기계종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들 각자가 이루고 있는 사회는 저마다의 특징이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상황인걸까. 새로운 기계종들의 사회를 알면알수록 점점더 점입가경이었다.

"마치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처럼, xxx 설계한 인공지능의 기저에는 스스로 여러 가치를 비교하고 우선권을 정하는 알고리즘이 있었어. 하지만 그 겨로가 녀석들은 마치 짐승처럼 자신의 욕구만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게 되었지. 보다 인간적이고 통제가 가능한 기계종을 만들기 위해서, xxx 다른 어떤 가치 보다 우선하는 '최종목표'만큼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게 수정했어. 그게 바로 파라미터O야. 그러니까, 네가 고민하는 삶의 목적과는 근본부터 다른 개념이지"

"그게 그거죠"

"내 말을 뭐로 들은 거냐? 그건 그냥 일개 변수일 뿐이야" (p. 278)

파라마티O 와 삶의 목적이 정말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브족들에게 입력하는 사명과 인간이 추구하는 사명이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소설을 읽으면 읽을 수록 질문의 무게감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SF 소설이 보여주는 미래가 반드시 디스토피아일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 디스토피아인것은 우리가 만들고 있는 미래에 대한 경고일 것이다. SF가 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혼자서 삶의 의미를 질문하고 찾아다니느라 버거웠따. 내 삶에 목적이 있다는 착각이 낳은 압박감, 최후의 인류로서, 선조들을 대표해 마지막 발자취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근거 없는 망상, 그 족쇄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세대의 절망감과 뒤섞여, 이 외진 곳까지 나를 끌고 왔다. 이제 곧 그 꿈에서 께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마무리할 시간이 마침내 다가오고 있었다. (p. 356)

뒤로 갈수록 반전을 거듭하는 이 소설은 천천히 진행되오던 전개가 막판에 휙휙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연속이었다. 앞서 진중하게 다가왔던 질문들이 긴박한 속도감에 잠시 멈칫한 사이 인간의 무지가 폭발해버렸다.

"…… 조슈 님은, 삶의 목적을 찾으셨군요" (p. 384)

내가 사람의 몸으로 듣지 못했을 뿐이다. 이브는 울수 있었다. (p. 385)

요즘 SF에서 자주 보이는 뇌스캔과 싱귤래리티 까지 활용되면서 새로운 종족에 대한 미래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인류에겐 디스토피아일수 있지만 새로운 종족에겐 유토피아일수도 있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건넨 질문은 마지막장을 덮고나서 더 진하게 되묻고 있다.

당신의 파라미터는 무엇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임신은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다, 당신이 규칙을 따르기만 한다면.

비밀 대리모 시설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본격 임신·출산·육아 스릴러

 

 

베이비팜, 제목을 본 순간 '시녀이야기'가 안 떠오를 수가 없었다. 여성이 임신을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 에서는 아기를 아예 시험관에서 종류별로 키워냈는데 '시녀 이야기' 에선 특별한 계급만 번식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시녀를 통해서. 그 시녀는 걸어다니는 자궁일뿐 인격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최고급 리조트 시설에서 지내는 대리모들의 이야기라... 비록 소설 제목이 THE FARM 이긴 하지만 과연 농장이라고 치부하고 넘길 수 있을까? 리조트 라고 볼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시대 양극화된 자본주의와 연결된 임신은 좀 다른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었다.

합숙소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 야간근무 전에 쉬고 있거나 주말 휴무 중이거나 새 직장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필리핀 사람들이고, 그중에서도 상당수는 고향에 자식을 남겨두고 온 어머니들이다. 다들 세입자 중 유일한 아기인 아말리아를 애지중지한다. 자식을 데리고 와 그들 사이에서 살 만큼 필사적인 어머니를 둔 이 유일한 아기를 말이다. (p. 21)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다 여자들이다. 그리고 어머니들이다. 누군가의 어머니. 그중에서도 미국땅에서 가정부나 유모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필리핀 출신이다. 비록 자수성가한 부모의 고난을 아는 2세대가 아니라 내내 잘 살아온 계층인데도 조국의 여성들이 이국땅에서 겪어내는 일들에 항상 귀를 열어두고 있었던 듯 하다.

아테는 필리핀 여성들의 하숙집 비슷한 퀸스의 합숙소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베테랑 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열심히 노동하고 돈을 벌어 필리핀으로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테는 신생아 보모이다. 최상위층의 아기들만 전문으로 돌보는 신생아 보모. 잠시 몸이 불편해졌을때 아테는 합숙소에서 갓태어난 딸 아말리아와 함께 지내는 제인에게 자신의 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그들에게 시간이 별로 없기에, 아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다급한 목소리로 제인에게 일러준다. 반드시 유니폼을 입어야 해.(중략) 설령 그애가 낮잠을 자고 있더라도 너는 바쁘게 일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게을러 보일 테니까.(중략) 섬 출신 육아도우미들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지켜보지 않고 휴대전화만 보는거 알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마. 그러라고 두배나 되는 급료를 주는 게 아니야.(중략) 영어만 사용해. 부모가 다른 방에 있더라도 타갈로그어는 쓰지 마. 그들이 불편해하니까.(중략) 아마 자기들은 '케이트와 테드'라고 부르라고 할 거야. 완전히 미구식으로 동등하게 말이지. 하지만 항상 '선생님' 과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해. 그들은 또 네게 '자기집처럼 편히 있어요'라고 할 거야. 하지만 정말로 네가 자기 집처럼 편히 있는 걸 원하는 건 아니야! 그곳은 네 집이 아니라 그들 집이고, 그들은 네 친구가 아니니까. 그들은 의뢰인이야. 그뿐이야. (중략) 만약 부인이 아기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땐 괜찮아. 단, 아기가 젖을 충분히 먹어서 배가 부르고 이미 트림도 해서 만족스러운 상태여야 해. 배고프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고, 울음을 터뜨릴 기미도 없어야 한다고. (중략) 이 공책에 (중략) 도표를 만들어 기록해둬. 의뢰인들은 도표를 좋아해. (중략) 제인, 이런 유형의 부모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 그들은 상황을 통제하는 데 익숙해. 돈 덕분이지.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가 있으면 (중략) 통제불능이야! 제인, 제발 잘 들어. 중요한 얘기니까. 아마 가장 중요한 얘기일 꺼야. 최고의 신생아 보모가 되려면 아기 부모한테 네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걸보여줘야 해. (중략) 이 공책은 그냥 공책이 아니야. 알아들었어? 아기 부모에게 이 공책은 질서를 의미해. 세상이 마구잡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제인, 이 공책 덕에 그 부모가 널 믿게 될 거야. (p. 44~49)

3장에 걸쳐 강조되는 아테가 제인에게 이르는 당부사항들이 번역자는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소설에서 한 사람이 얘기한 것 중에선 가장 긴 대사였을 이 내용들은 아테의 경력이 그냥 쌓인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 필사의 생존법 사이사이 숨어있는 부자들의 행태를 넌즈시 고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읽어나갈수록 대리모 이야기라기 보다도 자본주의의 속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몇주 동안 제인은 그 의사가 그랬듯 세상이 카터 부부의 집으로 제 발로 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p. 53) 그곳이 자급자족적인 세계라는 것을, 다시 말해 삶의 충격과 폭풍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들어진 세계라는 것을 제인은 몇주에 걸쳐 깨달았다. 그녀와 아말리아,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잘 아는 모든 사람이 사는 세상과는 몹시 동떨어진 세계였다. (중략) 제인은 은행 직원에거 '이율'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는 계산기를 꺼내더니, 그것이 그녀가 은행에 맡긴 돈이 늘어나는 비율이라고 설명해주었다. (p. 54) 돈이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제인에게 일종의 계시였다. 마치 그 전까지 꼭 닫혀 있던 문이 이제는 좁은 틈이나마 열린 것 같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 문안으로 들어가는 걸 그려볼 수 있었다. (중략) 그녀가 조심만 한다면 그 큰돈이 차츰 불어서 일종의 요새가 되어 줄 터였다. (p. 55)

제인은 필리핀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키워주던 할머니의 죽음이후 오래전 미군을 따라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간 어머니를 찾아왔다. 하지만 수시로 바뀌는 어머니 애인들의 끈적한 눈길을 피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남자친구와 도망쳤다. 그리고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이에 제인은 돈한푼 없는 미혼모 신세였다. 그때 아테가 세상 사는 법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 세상에서 절감한 것은 돈의 위력이었다. 자신과 이웃들이 온몸으로 맞서도 무릎을 꺽게 하는 세상이 부자들에게는 스스로 걸어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인은 그 첫 도전에서 실패했다. 아테가 넘겨준 신생아보모자리에서 해고당하고 말았다. 그 다음 기회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인에게는 지키고 살려야 할 딸 아말리아가 있었다.

'호스트(host)'에는 일반적인 '주인' '숙주'라는 의미 외에도, '이식받는 사람' '수용자' 라는 의학적 의미가 있다. 이 소설에서는 골든 오크스에서 배아를 이식받는 대리모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p. 71 의 주석)

메이는 골든 오크스의 총 책임자이다. 30대중반에 이만큼 올라오기까지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미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메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사태파악이 빨랐다. 그래서 지금의 '부'를 누릴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사랑하는 남자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대리모 전용 최고급 리조트인 골든 오크스는 그녀에게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 줄 사업이었다. 골든 오크스에 머무는 대리모들은 '호스트'라고 불렸다.

지금껏 메이가 몇번이나 제안한 방침인데, 왜냐하면 그녀는 호스트들이 서로를 감시할 수 있게끔 자기들끼리 짝을 지어줘야 한다고 굳게 믿는데다가, 침실당 더 많은 호스트가 머문다는 것은 그만큼 이익률이 상승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p. 77)

몇몇 의뢰인은 정말로 건강한 자궁을 가진 호스트를 선택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그런 의뢰인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의뢰인은 자신들이 선택하는 호스트가 곧 태어날 아기들을 품을 보관소인 동시에 몸속에 착상될 존재에 거는 그들의 높은 기대의 표상이라 여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예뻐 보이는, 혹은 '말솜씨가 좋거나' '친절하거나' '현명하거나' 심지어 교육가지 잘 받은 듯 보이는 호스트에게 끌리고,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한다. 처음에 메이는 이 마지막 조건에 깜짝 놀랐다. 마치 태아가 포도당, 단백질, 산소, 비타민 뿐 아니라 값비싼 교육을 통해 획득한 지식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은 SAT점수를 흡수하기라도 하는 양, 프린스턴이나 스탠퍼드나 UVA를 졸업한 여자의 자궁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기꺼이 지불하려 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 (p. 80)

'시녀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아주머니' 와 메이를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녀들을 가르치고 감시했던 '아주머니' 라는 존재와 최고급 시설 골든 오크스를 경영하는 메이는 비슷한듯 다르다. '아주머니'들은 직접적으로 시녀들위에 군림했지만 메이는 간접적으로 '호스트'들의 상황을 통제한다. '아주머니'들은 권력으로 메이는 '돈'으로 임신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을 이용한다. 시녀가 호스트가 되는 사이 사회가 그만큼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사회는 민주주의보다 자본주의에 더 휘둘린다.

레이건을 골든 오크스에 소개한 것은 대학 시절 그녀의 난자를 채취한 클리닉이었다. 그녀는 아마 그때도 자신이 이타심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돈은 난자를 기증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에 있어 부차적인 요소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메이는 왜 사람들이, 더구나 레이건이나 케이티 같은 특권층 사람들이 돈을 원하는 데 무언가 수치스러운 면이 있다고 고집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일찍이 어떤 이민자도 더 멋진 삶을 원한다는 이유로 사과한 적은 없지 않은가. (p. 90)

메이는 레이건을 '호스트'로 영입하는데 공을 들인다. 부유하게 자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백인 여성인 레이건 같은 조건의 '호스트'는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희박한 특별함때문에 자신의 가치가 돈으로 엄청난 금액으로 환산된다는 것을 레이건 본인은 몰랐겠지만.

그리고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의 난자와 정자로 배양한 태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켰을 뿐인데 대리모의 무엇이 태아에게 전해진다고 그렇게 대리모의 조건을 따지는 건지. 하지만 이러한 웃기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다.

당신이 겪는 모든 문제는 당신 잘못이다.

제인은 빌리를, 카터 부인을 떠올리며 매우 동의함을 클릭했다.

많은 일에 있어서, 나는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보다 훌륭하다.

이 문장에 제인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전혀 동의하지 않음

나는 무언가를 하라는 지시를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다.

동의함.

몇주 후, 제인은 골든 오크스 농장의 전무이사인 메이 유 로부터 '경쟁률이 매우 높은' 호스트 선정 과정의 첫 두 단계를 통과했음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았다. (p. 100)

미즈 유가 제인에게 말한다. "당연히 우리는 유모, 노인돌보미, 심지어 신생아 보모 같은 여타 대안적인 일보다 매력적인 금액으로 급여를 책정해요. 우리 의뢰인들은 자신들의 호스트가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하거든요. 하지만 이 일의 동기부여 요소가 돈이 다는 아닌 것 같아요. 자질이 있어야 하죠. 소명 의식도 있어야 하고요"

"제가 그래요" 제인은 아말리아를 생각하며, 그리고 이 일을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아말리아에게 해줄 수 있고 아말리아가 겪지 않게 해줄 수 있는 모든 일을 떠올리며 말한다. "저한테는 소명의식이 있어요" (p. 122)

제인이 골든 오크스에 들어가기 위해 받았던 테스트들 중 일부 문항을 보며 '호스트'로서의 조건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레이건 같은 특별한 호스트는 아마도 이런 테스트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인 같은 필리핀 출신 호스트가 거치는 테스트들은 그 이상의 조건을 요구하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여기서도 통한다. 제인같은 여성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제인은 '호스트' 가 되었다. 아말리아는 아테가 당분간 맡아 키워주기로 했다. 아테의 신생아보모 자리를 제인이 날린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더이상 할 수 없는 몸상태였다. 아테는 제인에게서 일정수익을 받기로 했음에도 필리핀에 있는 아들 로이를 생각하면 그냥 있을순 없었다. 제인이 골든 오크스에 들어가고 나서 아테는 다른 사업을 구상한다.

리사가 말을 잇는다. "첫째, 코디네이터가 항상 당신 꽁무니를 바짝 따라다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테이블에 엎드리지 말아요. 둘째, 더 중요한 얘긴데, 당신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이해해야만 해요, 여기는 공장이고 당신은 상품이에요. 당신은 의뢰인을 당신 편으로 만들어야 해요. 코디네이터들이나 미즈 유가 아니라요. 나는 지금 그 부모들, 특히 어머니를 말하는 거예요" (p. 138)

골든 오크스에서 만난 호스트들 중 리사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대부분 유색인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랬지만 험한 말버릇과 호스트로서의 이점을 최대한 누릴 줄 아는, 벌써 3번째 대리모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제인과 룸메이트인 레이건은 유일한 말벗인 리사가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 힘들었기에 리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리사를 통해 벌어지는 사건들은 제인과 레이건의 '호스트' 생활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게 된다.

"그거 대리출산이잖아! 그런 식의 대리출산은 상품화고, 인간 생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야! 신성한 모든게 외부에 위탁되어 일괄적으로 거래되고, 결국 최고가 입찰자에게 팔려 나가는 거라고!"

"참 쉽게도 말하는 구나. 넌 은행에서 일하잖아! 난 아빠한테 기대 사는 인생이 지긋지긋해. 누군가를 도와서 아이를 갖게 해주--"

"넌 어떤 낯선 부자가 널 이용하게 내버려두고 있는 거야. 삶의 근원적인 무언가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 거라고"

"입주 유모, 신생아 보모, 젖어머니, 혈액 기증자, 신장 기증자, 골수 기증자, 정자 기증자, 대리모, 난자 기증자... 너 [더 크로니클]에 실린 난자 기증자 찾던 광고 기억나?" (p. 147)

"그냥 좀... 허무하네. 난자를 파는 게 여느 상거래나 마찬가지라는 게. 어쨌든 그건 네 난자였잖아"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어" 레이건이 발끈하며 설명했다. 난자는 몸속에서 성숙해졌다가, 결국 잘라낸 발톱이나 미용실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처럼 매달 버려질 뿐이라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도 있는데, 왜 쓸모없이 낭비되게 놔둬야 하냐고. (p. 151)

레이건이 절친 메이시와 이런 대화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레이건에게 난자든 대리모든 그건 수단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는 속내를 감추고 누군가를 돕기 위한 일이었다고 의미부여를 하기 위한 수단. 누리는 것이 당연하게 살아온 레이건이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과정은 제인의 생존을 위한 삶의 축과 분명 다른 축이었다. 하지만 그 둘이 만나게 되는 지점은 결국 '돈' 이었다.

그녀가 호스트가 되기로 결정한 것은 이 일이 갤러리에서 하는 시시한 일에서, 또 아빠에게서 벗어나는 도피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이 일은 더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중략) 다시 말해, 대학 시절 이후로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진에 대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감정, 자유의 기분을 미리 맛보게 된 것이다. 돈이 아니라 자유,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무언가 참되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p. 169)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레이건에게 경영대학원을 권유하는 아빠는 재정지원자이자 꿈파괴자였다. 레이건의 혼란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지만, 그냥 배부른 소리 라고 치부하기엔 레이건 같은 존재가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레이건 또한 돈걱정을 안하기에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도 우리는 안다. 제인과 레이건 사이에서 어느 한 편에 쉽사리 설 수가 없다. 그것은 리사와 메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이 뭘 모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상위 1퍼센트에 분개하는 것은 그들에게 공감할 만한 속사정이 없을 때, 샴페인 욕조에서 헤엄치는 정체 모를 뚱보 고양이로 희화화 될 때만이다. 하지만 어떤 억만장자에게 그럴듯한 정보를 가미하면? 그러면 미국인들은 황홀해한다!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다이어트 요요 현상까지 겨은 오프라, 혹은 불운과 비극미로 점철된 케네디가, 혹은 부끄러움 많은 매력꾼 워런 버핏을 생각해보라. 인기 영화 배우, 사교계 명사, 프로 운동선수, 첨단기술 업계의 거물들을 생각해보라. 성공에 공감할 수 있을 때, 미국인들은 그 성공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을 사랑한다. (p. 206)

세상쓸데없는 일이 잘 사는 사람들 걱정하는 거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럭셔리한 삶이 그들의 고민으로 퉁쳐진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인간적이라며 그들이 누리는 부에 대해 눈감아주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하지만 일반 시청자들은 결코 단 한번도 그들의 부를 누릴 수 없을 것인데 누가 누구 걱정을 한단 말인가.

카터 부인은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서만 필리핀을 알고 있엇다. (중략) 카터부인에게 필리핀은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부패와 위험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하지만 미국도 모든 사람에게 믿음직한 곳은 아니다. 카터 부인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녀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는 부자가 아니라면 튼튼하거나 젊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늙고 병약한 사람들은 제인이 전에 일했던 곳 같은 시설에 숨겨져 있다. (p. 229)

그들만의 세상.

그것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만의 세상에 산다. 서로 다른 세상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세상은 살기 더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레이건은 제인의 세상을 살펴보며 자신의 세상에서 살고 제인은 레이건의 세상을 꿈꾸며 자신의 세상에서 산다. 그럼에도 둘의 세상은 연결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정도는 깨닫게 된다. 호스트들의 세상 골든 오크스에서.

"무언가 옳다고 믿는다고 해서, 꼭 그대로 행동할 필요는 없잖아!" (p. 438)

부자들이 실제 인간들에게 대접받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자신에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로봇은 결코 골든 오크스를 운영하지 못할 것이다. (p. 440)

사업으로만 생각했던 골든 오크스를 통해 메이의 사고방식도 변화되는 부분이 있었다. 메이의 절친 케이티는 사회공익사업을 하느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 대부분을 내려놓았다. 그런 케이티와 케이티 비슷한 사고관을 가진 레이건을 보면서 메이는 그들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눈감아버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그녀는 더더더 성공하고 싶다.

그녀의 배 속 아기는 어떤 애일까? (중략) 하지만 레이건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게 뭐라도 있기는 있는 걸까? (중략) 더 이상은 알아낼 방도가 없다. 왜냐하면 리사는 떠났고, 레이건은 제인 외에는 농장의 어느 누구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p. 460) 판단을 내리는 동안 레이건의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진다. 기대감이 둥둥 울려 퍼지는 소리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제 무엇이 옳은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p. 464) 머리가 아플 정도로 열심히 고민하면서, 아빠가 옳은 게 아닐까, 그러니까 자신이 추상적인 의미에서 인류애를 들먹일 뿐 실재하는 개인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유형의 사람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빠는 항상 그녀에게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며, 그들을 돕는 것과는 더더욱 다른 얘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노력한다. 적어도 신경을 쓰기는 한다. (p. 467)

아테, 메이, 제인, 레이건 4명의 여성이 돌아가며 화자가 되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4명 각각이 추구하는 방향이 무척 다르면서도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두 다 돈이 필요하지만 그 돈이 필요한 목적이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3명은 돈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레이건의 이상추구는 때론 답답하면서도 자꾸 마음이 끌리는 일종의 미련처럼 떨쳐내버리지도 못하고 붙잡지도 못하는 그런 어떤 것으로 내게 여운을 남기곤 했다.

"우리가 갈 차례라고!" 메이가 화가 나서 외친다. 운전사가 백미러를 통해 사과하듯 살짝 미소짓는다. 메이도 마주 웃어보인다. 이 남자는 어떻게 날이면 날마다 이걸 견디는 걸까? 끝없는 차량 행렬, 마구 밀어붙이는 운전자들, 무분별한 보행자들, 조급한 승객들, 형편없는 보수, 안 좋은 공기, 주차 위반 딱지, 청구서, 자식들, 그의 외모로 미루어 어쩌면 손주들까지도. 어떻게 폭발하지 않는 거지? (p. 497)

이 책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무척 현실적이다. 상류층이건 하류층이건 그 실제 삶이 어떨지 몇 글자만으로도 머릿속에 이미 그려지는 그런 장면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 소설은 아니다. 현실이 아닌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그 현실을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를 찾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런 구분보다 중요한건 적절한 현실감이다.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해야 할 사람이 아니에요, 제인. 늘 주고 또 주고, 퍼주기만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언제나 받아야 할 걸 못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돼요. 그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p. 559)

아테라면(중략) 그녀는 부모가 자식에게 저지르는 최악의 일은 아이를 오냐오냐 키우는 것이라고 항상 말했었다. 세상은 각박하니까. 하지만 제인은 잘 모르겠다. 세상이 자기들 소유인 양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세상도 그들의 요구에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p. 580)

의외의 반전이 있는 결말이었다. 심리 스릴러 정도라고 할만큼의 심장쫄깃함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결말에 담으려 했던 희망감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그들에게만 걸어올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아말리아에게도 걸어올 수 있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제인은 배웠다.

그들의 삶과 장래성, 그리고 나의 삶과 장래성 간의 격차는 현격하다. 그 격차를 메운다는 게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지 나는 자주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평생 수없이 들었던, 내가 '아메리칸드림'의 전형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적이 그렇듯 이 간극 역시 행운과 우연에 크게 기대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많은 면에서, [베이비 팜]은 지난 25년 동안 내가 나 자신과 나눠온 오랜 대화, 즉 인과응보와 행운, 동화와 타자성, 계급과 가족과 희생에 관한 대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 답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나 자신을 위해, 또한 바라건대 이 책의 독자들을위해,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살펴보고자 이 책을 썼다. 독자들이 어느 곳에서 이런 경계에 다가가든, [베이비 팜]이 그 경계의 '반대편'으로 가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p. 603) - 작가의 말 中 -

이 작품은 야누스적으로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그 어느 것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않고 그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은 이 소설은 그저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한 면을, 그리고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나는?

저자의 첫 소설이라는데 저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표현한 이 작품을 읽으며 저자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저절로 올라간다. 어느 한쪽으로 명확한 것보다 불분명하게 다가오는 소설들을 읽을때마다 시대의 혼잡성을 새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혼란감이 요구하는 책임감에 대해 더이상 뒤로 물러나지만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읽는 이마다 감상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지금 이 시대 읽어야 할 사회소설이자 여성소설로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