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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 - 불확실한 상황 속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힘
채정호 지음 / 청림출판 / 2021년 1월
평점 :
불확실한 상황 속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힘
"고통과 고난 속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십여년 전 '행복한 선물 옵티미스트'라는 책을 읽었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나 느낌이 여전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책이다. 당시 심리서들을 닥치는 대로 읽던 때였는데 '옵티미스트'책은 특유의 밝음과 능동적 에너지가 읽는 이에게 전달되는 책이었다.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는 책들 글자로 나를 안아주는 책들을 그렇게 여러권 읽었건만 그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책들 중 한권이 '옵티미스티'였다. 여전히 이 책이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옵티미스트'로 인해 채정호 박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본 순간 저자에 대한 믿음으로 기대가 되었다. 저자 약력을 보니 여전히 옵티미스트 활동을 하고 계셔서 반갑기도 하고 새삼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활동들의 연장선에서 쓰여졌을 이 책은 삶에 꼭 필요한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이런 세상에서 지혜롭게 산다는 것' 이라는 제목에서 '이런 세상' 이란 아마도 살기 좋은 세상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루하고 팍팍한 세상일 테지만 그저 '이런 세상' 이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읽는이마다 조금씩 다를 세상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포용해주는 듯 하다. 저마다 다른 힘듦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실은 사람들 모두 하나의 목표로 향해 가고 있다. 잘 사는 인생.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은 지혜롭게 사는 것밖에 없다. (중략) 비루한 현실에서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지혜는 철학 책이나 윤리 교과서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순간이나, 바로 지금도 끊임없이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혜가 없다면 인간답게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혜 없이는 잘 살 수 없다. (p. 6) - 머리말 中 -
저자에 따르면 학술서도 수필집도 아닌 이 책은 일종의 퓨전 이라고 한다. 교과서처럼 교훈을 담고 있지만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히는 이 책은 지혜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지혜를 얻는 방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후 7가지 구성원리 와 이 7가지 원리를 이용한 훈련을 통해 지혜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혜란 타고난다기보다 후천적으로 배워나가는 요소가 많다면서 이 책에서 조금이라도 지혜에 대한 의미와 필요성을 깨닫도록 저자는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읽는이의 성장을 유도한다.
지혜는 지혜로운 현자나 신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초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지식 체계다. 인생을 살아가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운용하는 능력이며, 풀기 어려운 삶의 상황이나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다. 아직도 복잡한가? 그러면 지혜는 '삶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 이락 아주 짧게 정의해보자. (중략) 변화와 수용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혜다. 이처럼 지혜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사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잘 살 수 있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사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p. 27)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은 고통을 직접 다루는 방법이 아니다.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찾으며 고통에 대한 태도 자체를 바꾸는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p. 46)
이렇게 중요하고 삶에 꼭 필요한 지혜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단 이 책을 머리로만 읽지 말고 각자의 상황에 맞추거나 혹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가며 읽어볼 것을 권하고 있다. 그래야 훨씬 유용할 것이라고.
지혜에 대한 연구나 내용들은 방대하지만 저자는 일곱가지로 단순화하여 정리했다. 이 일곱가지는 이 책의 기본 뼈대와 같은 것이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쌓아가는 데 알아두면 좋을 필수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옮겨놓아 본다.
1. 알되,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 계속 업데이트하라. - 지혜의 기본은 지식이다.
2. 언제이고, 어디에 있느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 지혜는 맥락적이다.
3. 각자 다 다를 수 있고, 당신만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 지혜는 상대적이다.
4. 확실하지 않은 것을 견뎌라. - 지혜는 불확실한 것을 견디는 것이다.
5. 길게 보라. - 지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는 것이다.
6. 더 큰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라. - 지혜는 겸손함과 고요함과 마음챙김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7. 공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 지혜는 공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p. 52)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현인이었던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았다는 점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나는 아는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는 데는 의외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몇번의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엔 여기저기 척척박사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보는 누가 왜 올리느냐 도 알아야 하고 그 정보가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 정보들을 지식으로 이해하고 지혜로 수용하기까지는 나름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에 대한 7가지 원리는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가능한 지침들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네 부류가 있다고 본다.
첫째, 훌륭한 사람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남을 존중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남도 귀하게 여길 줄 안다. 타인과의 관계도 잘 이끌어가며 자신과의 관계도 잘 유지한다.
둘째, 나쁜 사람이다. '나쁜 놈'이라는 말이 '나뿐인 놈'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듯이, 오직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만 남은 발가락의 때만도 안 여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은 어떤 피해를 당하든지 알 바가 아니다.
셋째, 착한 사람이다. 남은 존중하지만 자신은 존중하지 않는다. 남을 돌보느라고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자기를 돌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보다 항상 남의 눈치가 더 중요하다. 주변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이런 착한 사람을 자꾸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세상살이에서 상처를 많이 받고 점점 더 지쳐간다.
넷째, 아픈 사람이다. 자기도 돌보지 않고 남도 돌보지 않는다. 남을 돌보지 못하므로 관계가 나빠지고 이것이 아픈 자신을 회복시키기 어려운 쪽으로 작용해서 악순환이 된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 수준으로 가기도 한다. 세상만사가 다 싫고 미우니 심한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p. 106 ~ 107)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게 와 닿았던 부분이 바로 위의 네 부류 인간에 대한 설명이었다. 저자가 정신의학자였기에 생각해낼 수 있었을 분류였고 읽으면서 심정적으로 많이 수긍이 가는 분류였다. 선한 사람vs악한 사람의 이분법적 구분보다 이 네부류의 인간형이 더 그럴듯하고 무엇보다 '인간애'가 느껴진다. 사람들을 이렇게 네 분류로 구분하면 왠지 세상이 좀더 따듯하게 여겨질 것 같다. 여하튼, 지혜로운 사람은 물론 훌륭한 사람이다. ㅎㅎ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살라' 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람이 행복하고 인생을 잘 산다는 사실은 다 안다. 그러나 긍정의 진짜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긍정이라고 하면 좋은 것, 좋게 생각하고 좋게 바라보고 잘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긍정'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함, 2. 일정한 판단에서 문제로 되어 있는 주어와 술어와의 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 즉 명제를 참이라고 승인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어디에서 '좋게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되어 있지 않다. (중략) 즉 긍정은 수용과 인정을 말한다. 세상에 어떤 문제라도 그렇다고 인정하고 승인하는 태도가 바로 지혜다. (p. 117 ~ 118)
최근 '므두셀라증후군' 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과거의 나쁜 일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기억 편향의 경향성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좋게좋게 기억하는 것 혹은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것 그러다 실제보다 더 좋았던것마냥 기억하게 되는것... 사람들이 '긍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위로는 결국 편향적 사고를 함으로써 억지로라도 부정적인 일들은 잊어버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긍정'이라는 단어의 뜻은 원래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올바른 의미를 알기 위해 나도 가끔 국어사전을 찾아보곤 하는데 저자가 '긍정'의 바른 의미를 알려주어서 감사하고 또 의미있는 뜻풀이로 다가왔다. 이런 '긍정주의' 는 저자의 옵티미스트 와도 연결된다. 그 평화로운 능동성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인간이 찾아낸 지식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통해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당신은 적어도 지혜에 대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적어도 이 책을 읽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저 지혜로워질 것은 분명하다. (p. 129)
책을 칭찬하는 문장은 늘 반갑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많이많이 책을 더더더 읽었으면 좋겠다. 책읽기는 정말 좋은건데 참 좋은건데 뭐라 말로 표현할수가 없네 ㅋ
많은 부모가 옳은 말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부모는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신이 절대 선인 것처럼 착각하고 말을 한다. 다 아는 듯, 마치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녀들은 다 안다. 그러니 말이 통하기가 어렵다. 일단 말이 안 통하면 부모들은 목소리가 커진다. 부모의 판단에 의하면 이것이 옳은 일이고 맞는 일인데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으니 속상하다. 큰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다. 조용하고 나긋하게 말하는 것은 소리가 작아도 전달이 잘되지만 큰소리는 아무리 크게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 역사 이래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큰소리의 모순이다. (p. 206 ~ 207)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능력... 큰소리의 모순... ㅍㅎㅎㅎ
맞는 말이다. 그야말로 뼈때리는 촌철살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많은 4장은 7가지 원리를 이용한 지혜훈련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는데 여러가지 실천 방법들을 하나하나 설명한 후 매 챕터뒤에 간략하게 정리도 해놓아서 실용지침서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직도' 라는 말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아직' 다 하지 못한 것이라는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p. 259)
아직도 책읽기는 어렵다고 지혜는 안 생기는 것 같다고 자책하지 말자. 아직 다다르지 못했을 뿐 이 책을 손에 들었다면 언젠가 다 읽게 될 것이고 다 읽었다면 조금은 생각에 남을 것이고 그렇게 어쩌다 가끔씩이라도 이 책의 내용들을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한움큼의 지혜라도 더 생겨나 있을 것이기에.
세상의 어려운 문제들은 지혜로만 풀 수 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문제도 당연히 있다. 이유는 지혜가 세상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세상의 풀기 어려운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p. 260) 지혜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적의 행동 형태다.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세상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p. 261) 그동안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옵티미스트클럽과 긍정학교를 통해 지혜 훈련을 조금씩 해왔다. 이제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교육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면 좋겠다. 한 명의 지혜로운 사람이 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만들 수 있고 세상에 지혜로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와 우리 자녀가 살아갈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p. 263) - 맺음말 中 -
예상보다 실천지침서적 성격이 강한 책이긴 했지만 역시나 긍정의 에너지가 전해지는 책이었다. 모두가 살기 힘든 이런 세상에서 좀 잘 살아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했던가?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차라리 저자의 조언대로 '피할 수 없다면 지혜롭게' 대처해 가는 걸로 우회하는 것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