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 - 지속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선언
이병한 지음 / 가디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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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이 더 이상 지구를 망치지 않기 위해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자연과 기술의 대결합

균사체로 대체고기와 대체가죽을 생산하는 마이셀프로젝트,

해조류로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들어 내는 마린이노베이션,

태양과 금융이라는 천상과 가상 자원을 결합한 루트에너지,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로 농업을 살리는 심바이오틱.

'[유라시아 견문] 문명사학자 이병헌 교수의 새로운 지구사를 위한 진화적 질문' 이라는 홍보문구에서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새로운 지구사도 진화적 질문도 아닌 [유라시아 견문] 이라는 책 제목이었다.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역사책을 읽다보니 유라시아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이런저런 여건상 손도 못대보고 그저 눈으로 제목만 훝어내린 책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던 책이다. 고대사학을 연구하는 문명사학자가 지구미래적 책을 썼다니,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에 우리가 살고 있기에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미래기술은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쩌다 이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이른 새벽 머리말을 쓰려고 자리에 앉아 새삼 자문해 보게 된다. 어느새 여덟번 째 책이다. 그간 한국, 북조선, 동아시아, 아시아, 유라시아에 대한 여러 책을 써 왔다. 영역은 갈수록 커졌지만, 인문사회과학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퉁 쳐서 '문명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엉뚱하다고도 할 수 있다. 더는 과거를 탐사하지 않는다. 미래를 천착한다. 미래 첨단을 달리고 있는 기업인들을 인터뷰하고 내 생각을 보탠 첫 책이다. '미래사'에 진입하고 개입한다. (p. 7)-글을 시작하며 中-

시작부터 저자 스스로 되묻고 있는 책, 어쩌다 이런 책을... ㅎㅎ 저자의 20대는 사화과학도였고 30대는 역사학자였으나 40대는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고 한다. 20대에 '좌녹평 우창비'로 녹색평론과 창작과비평을 애독하고 30대의 성과로 <유라시아 견문>시리즈를 완성한 저자는 작년 지독한 코로나블루를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40대는 동학을 계승한 개벽학자이자 미래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그 우울한 시간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고.

하나의 학문을 전공해서 한평생 써먹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음을 저자의 학문변천을 읽으면서도 느낄수 있었다. 역사를 통해 깨달은 바가 많았을 저자가 미래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같아 보이기도 했다. '무위자연의 이상향은 이미 존재하지 않'다고 '그러함에도 '오래된 미래'라거나 '생명으로 돌아가기' 등 노스탤지어형 동어반복을 읊조리고만 있는 것이다.(p. 9)' 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자연이 중요하고 환경이 중요하고 기후가 중요하다 말하면서 과거 인간이 손대지 않았던 자연과 환경과 기후를 되돌리자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다. 이미 변한것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변화적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오래된 미래'보다는 '깊은 미래'로의 대전환을 꾀하는 편이 실질적이라 하겠습니다. EARTH 4.0 '제4차 지구'라는 지구사적 단계를 직시하고,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불가피한 인류사적 물결과 합류해 가는 미래형 생태문명을 상상하고 현실로 구현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p. 14)' 라는 일면 거창해보이기도 하는 이 선언을 현실적으로 체감시켜줄 만한 4개의 기업이 이 책에 등장한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난 4명의 인터뷰집 형태를 띠고 있다.

테크놀로지 테이스트 - 미생물, 인류를 보존할 히든 카드 : 마이셀프로젝트

생태운동과 생명공학의 간극은 그동안 과학기술이 노정했던 속성과 그로 인한 모순들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과학계에 만연한 환원주의나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학문이 지나치게 세분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난제들이 숱아게 쏟아졌지요. 또 자본과 결탁한 과학기술이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 소비자지상주의, 공동체 해체 등 여러 사회문제를 초래했고요. (p. 35) 그런데 그분들은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절실하게 산업문명 이후의 새로운 문명을 갈망한다면 시스템 안으로 들어와서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제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양자 간의 간극은 사고방식과 해결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p. 36)

우리의 환경은 그저 '나 돌아갈래~' 하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너무 변했고 석기시대로 돌아가서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산업문명과 생태계의 조화라는 문제에서 왜 굳이 양자택일을 하려 하는가? 생태시스템을 존중한 산업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타당해 보였다.

- 생태주의의 고전으로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습니다. '라다크로부터 배우다'가 부제인데요, 저 또한 과거로의 회귀가, 과연 미래를 열어줄 것인지 반신반의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중략) '오래된 미래' 보다는 '깊은 미래'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까닭입니다. (중략) 마이셀프로젝트가 확보한 테크놀로지야말로 딥테크가 아닌가 싶습니다. (p. 39)

- 마이셀의 기술적 본질 또한 버섯농업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기술로 버섯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산업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데 활용할 것인가? 질문에 따라서 기술의 가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p. 40) 식탁은 인간과 자연을 잇는 생태적 연결고리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본이 만나는 기술적 연결망이기도 합니다. (p. 41)

생태주의의 고전으로 <오래된 미래> 라는 책을 읽었다. 환경학의 고전이라는 <침묵의 봄> 도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서도 지금 때가 어느때인데 수십년전의 책이 소용있을까 싶었다. 생태계와 환경은 수십년전 책속의 그때와 너무나 달라졌고 무엇보다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이제는 좀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생태주의와 환경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나또한 '깊은 미래'가 좀더 실질적으로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축산업이 기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에 관심이 기울여질때는 유행처럼 비거니즘이 번지지만 고기를 대체하는 식품들의 원재료(대표적으로 콩)가 자라는 거대농장도 자연을 황폐화시키기는 매한가지다. 그런점에서 '균류'를 이용한 대체고기와 대체가죽은 신선한 발상이다. 균류는 그야말로 자연에서 시작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야말로 '균' 이다. 너무나 친환경적인 것이다. 또한 동물해방의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일단 현재의 기술적 수준에서 배양육은 모순이 너무나 많습니다. 동물세포를 실험실 안에서 배양하는 데에는 소태아의 혈청(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태어나기 전의 소태아에서 혈청을 뽑아내서 줄기세포를 증식시키는 것이죠. 소태아 혈청은 도살장에서 갓 잘라낸 소태아의 박동하는 심장에 바늘을 찔러 넣어 추출해요. 태아가 죽을 때까지 약5분 동안 심장에서 피를 뽑아내고 그다음에 혈청을 추출하는 것이죠. (중략) 즉 배양육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그만큼이나 많은 소의 태아가 필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중략) 게다가 소태아 혈청은 무척 비쌉니다. 1리터에 70~80만원을 호가해요. 최초로 배양육 패티를 쓴 햄버거 하나를 생산하는데 50리터의 혈청이 필요했다고 해요. 어처구니 없을 만큼 비싼 햄버거였던 까닭이지요. (p. 57)

<클린 미트>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진짜 고기가 아닌 배양육을 진짜 고기 대신 먹겠는가 에만 초점을 두어서 소태아혈청에 대한 이야기는 몰랐었다. 저렇게 잔인하게 추출해서 저렇게 많이 필요하다고는 언급되지 않았었다. 그저 비싼 첫 배양육 패티에 대해 지금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니까 기술이 나아지면 가격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만 희망적으로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소태아 혈청을 쓰는 것 아닌가. 그게 진짜 고기를 먹는 것보다 무어 그리 나은건지 모르겠다. 배양육의 배경에 이런 문제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이 책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플랜트 오션 프로젝트 - 해조류 부산물의 새로운 탄생 : 마린이노베이션

인공물의 무게는 21세기, 지난 2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했다. (p. 88)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매년 인공물은 300억 톤씩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20년이 흐른 2040년 무렵에는 3테라(3조)톤에 도달하게 된다. 인공물이 상징이라 할 플라스틱만 하더라도 지구상 모든 육지와 해양의 생물 무게를 합한 것보다 무거워질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이 주조한 인공 지구, '플라스틱 플래닛'이 되는 것이다. (p. 89)

'지구地球'라는 단어부터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발상이다. 지표면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은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함에도 이 행성을 '지구'라고 명명한 것이다. 2/3를 넘는 광활한 영역이 바다인고로 수구水球나 해구海球라는 명명이 실상에 더욱 가깝다. 그린그린한 녹색 지구의 면적은 15퍼센트 안팎이지만, 블루블루한 청색 해구의 면적은 70퍼센트에 달하기 때문이다. (p. 99)

비닐봉지가 처음 나왔을 때 나무를 쓰지 않아 친환경적이라 열광했다고 한다. 당구공용 소재로 플라스틱이 처음 나왔을 때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기 위한 이 인공물에 또한 동물을 보호할 수 있다며 열광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닐과 플라스틱이 지구를 덮고 있다. 인공물은 결국 인공물인 것이다. 정말 친환경적이고 동물보호적이려면 자연물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면에서 해조류 부산물로 신소재를 만든다는 것은 역시 기막히게 멋진 발상이다.

'지구'라는 명칭이 인간중심적인 말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저자의 말을 읽고나니 정말 그렇다. 지구라는 말의 탄생조차 너무나 환경에 어울리지 않았다니... 아 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휴머니즘이란.

해조류 부산물을 원소재로 삼는 기업은 아마 전 세계에서 마린이노베이션이 유일할 겁니다. (p. 104) 추출물로 하는 기업은 몇 있습니다. (중략) 단점은 비용적인 측면이죠. 추출물 자체 원재료가 비쌉니다. (p. 105) 저희는 버려진 해조류, 즉 부산물을 다시 재활용하고 재가공해서 환경에 이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부산물로 달걀판과 종이컵, 종이접시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p. 106)

당장 저 종이컵을 사서 쓰고 싶었다. 하지만 시중마트엔 아직 없나 보다 ㅠ 이 업체는 정부로부터 공식 인증도 받고 이런저런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시적인 홍보를 제외하면 딱히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고 한다.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상은 줬으나 후속지원 없이 그냥 지켜본다라... 알아서 쑥쑥 잘 클 수밖에 없다니... 다른 건 몰라도 정책적으로라도 전환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했다. 플라스틱 규제나 친환경 소재 진흥 같은 정책만 서도 이런 업체들이 한결 큰 힘을 얻을 텐데...

앞으로는 더더욱 인성이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손발로 하는 일은 차츰 기계까 대체해 가겠죠. 착한 인성의 사람들이 모여서 마음을 잇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주말에 봉사활동도 함께하고 있어요. 사명감으로 기업을 해야 합니다. (p. 127)

13년을 준비해서 이제 시작한 업체의 대표가 사명감으로 기업을 한다니, 이런 마인드 사실 흔하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환경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신생 벤처기업 운영자들이 대부분 비슷한 마인드였다는 것이다. AI시대 인간이 설자리가 없다고? 글쎄... 대세는 '인성' 이다!

에너지 로컬 파이낸스 - 미래 에너지를 위한 시그널 : 루트에너지

지구를 비롯한 여타 행성은 태양이 형성된 뒤 남겨진 찌꺼기를 뭉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 안에는 지구만 한 행성이 100만 개나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지구와 1억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음에도 그 존재감이 또렷하다. 태양의 핵융합이 산출하는 빛과 열이 46억년 지구 진화사를 추동해 왔던 에너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p. 143)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은 그 소중함을 그 특별함을 모르기 마련이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건 다 태양덕분이다. 그 태양이 지구가 백만개나 들어갈 만큼 커다란 줄은 몰랐다. 그렇게나 컸나... 그정도는 커야 빛이 이정도가 오는 것이었나... wow

'잘 살아 보세'에서 '잘 살려 보세'로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고 한다. 잘 살려야 하는 것은 지구환경만이 아니었다. 태양 정확하게는 태양의 빛도 잘 살려 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날 제가 속해 있던 덴마크 공대의 연구실로 연락이 왔어요. 제 연구실이 어떻게 하면 풍력발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가장 손실을 줄이면서 사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곳이엇거든요. 밀양 송전탑 같은 것을 굳이 짓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인 대안이 있는지를 자문해 온 것이죠. 한국에서 첨예하게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을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p. 158)

국내에서 에너지를 제대로 연구하는 곳이 없어 덴마크로 유학을 갔는데 밀양 송전탑 문제를 보며 국내 사회문제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을 보면, 친환경 벤처의 마인드는 사회적 기업에 버금가는 것 같다. 물론 외국의 사례와 국내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양쪽을 다 경험했기에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금융과 지역주민의 결합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사업화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민간 차원에서 저희가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의 힘은 국민에게서 주민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2030년이 오기 전에 100만 명의 국민이, 1000만 명의 주민이 신재생에너지 혹은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도 하고 금전적인 소득도 올릴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이유입니다. (p. 167)

신재생에너지 산업도 걸음마 수준인것 같은데 벌써부터 금융과 연결지은 사업까지 생각해내다니 또한번 놀란다. 이 책에 나오는 기업들은 정말 하나같이 모두 놀랍다. 태양광 산업관련해서도 정책이 말썽이다. 일관성있고 장기적인 플랜이 있어야 스타트업들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데... 이분야 한국 스타트업들은 유럽에 비해 참 힘들다고 한다.

'에너지 시민성'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부와 대자본이 주도하는 흐름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내 돈을 내는 자발성과 직접성으로 시민이 주도하는 에너지 대전환을 견인해 낼 것인가. (p. 186) 그러기 위해서라도 좋은 정보를 계속 제공해야 하고, 좋은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어져야 할 거예요. (중략) 제 아들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었을 미래를 내다보면서 사업을 유지하기 때문에 지긋하게 꾸준하게 지극한 정성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일구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후회가 없도록, 아낌없는, 남김 없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p. 187)

참여에너지 라는 것에 대해 에너지 시민성 이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 생각해보았다. 세상이 새로워지고 있는 만큼 참 새로운 개념도 많아지고 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여하튼,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후회없이 하는 일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된 미래지향 아닐까.

K-애그리테크 프런티어 - AGRI-TECH FOR YOU : 심바이오틱

마이셀프로젝트는 땅에서 피어나는 곰팡이, 균사체에서 지구의 미래를 구한다. 마린이노베이션은 지구의 7할, 바다의 해조류에서 청정한 환경의 대안을 찾는다. 루트에너지는 태양이 떠 있고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로부터 지속가능한 인류의 내일을 열어 가고자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솟아난 것이 산이다. 한국은 국토의 7할이 산이라고 한다. 그 산에서 산삼을 키우는 여성 CEO가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산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봇이 한다. (p. 195) 로봇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한국의 농촌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노령화가 한국처럼 급속도로 진행되는 나라가 없다. 인구소멸이 농촌의 자연소멸을 이끌고 있다. 농촌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인공농민'이 필요했다. (p. 205)

산업화시대에 로봇하면 공장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공장에 기계가 들어찰수록 사람들이 내쫓긴다고 한다. 그래서 로봇의 일자리 대체문제가 심각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로봇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농촌이었다. 노령화 시대에 육체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산업현장인 농촌에 로봇이 설 자리를 왜 그동안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기존처럼 3차 산업에 최적화된 공장용 로봇이 아니라, 농림수산업 즉 1차 산업의 자연 현장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심바이오틱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p. 212) 작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충원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로봇이 농촌을 지속시키고 농업을 유지하면서 농민을 보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p. 214)

무엇보다도 이 업체의 장점은 모든 것을 '직접' 해본다는 것이다. 강원도에 직접 땅을 사서 농사를 지어보면서 로봇을 실험시키고 관련된 모든 기술을 직접 연구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신혼부부 단 둘이서.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사회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싶어요. 우리가 확보한 기술을 통해 농촌과 농업과 농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통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다면 더없이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p. 219)

멋진 포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클린미트 못지 않게 충격적 현실을 알게 된 것이 '스마트팜'이었다. 친환경 농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스마트팜 아니던가. 그런데.

요즘 농촌에서 지어지고 있는 스마트팜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요. 대규모 설비 위주로 공급되고 있고요. 초기 비용 투자는 너무 큰데 생산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농장이 아니라 공장을 짓는 것이죠. 사실상 고비용 그린하우스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안에 설치된 컴퓨터를 정상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풀가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엄청 더운 환경이라는 근본적인 딜레마도 있죠. 환경적 영향이나 생태적 비용을 따지면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스마트팜이 적지 않습니다. (p. 223)

비닐하우스에 컴퓨터 들여놓는다고 스마트해진 것이 아니었다. 최첨단 공장식 농장을 만들면 사용되는 에너지는 몇배가 필요했다. 스마트팜은 빛 좋은 개살구 같기도 하다. 좀더 스마트하고 친환경적인 팜에는 로봇일꾼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2의 기계시대, 인류의 미래는 신생물학적 문명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기술과 척을 지는 생태문명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생물과 활물이 융합되어 가는 미지의 미증유의 '생명문명'이다. (p. 234) 생물화 활물 사이에 인간이 자리하는 것이다. 초록색 자연환경과 푸른색 인공 생명을 연결하는 커넥터로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활물과 더불어 생물을 돌보는 일이 인간의 역할이고 책무가 될 것이다. (p. 235) 나는 이 지구사의 새 지평을 EARTH 4.0이라고 표현한다. 지구의 탄생이 1.0 이요, 생명의 탄생과 진화가 2.0 이요, 생각의 탄생과 인간의 진화가 3.0 이었다면, 4.0 단계에서는 인공 생명과 인공 생각이 인공적인 지구의 진화를 추동해 가게 되는 것이다. (p. 237) 공교롭게도 지구를 살리는 어스테크, 비즈니스 액티비스트들과의 인터뷰는 여주에서 시작해 원주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묻힌 곳에서 출발하여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잠든 곳에서 마감한 것이다. 그 동학의 후예들, 한국의 생명 사상가들은 일찍이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인내천 만을 읊은 것이 아니었다. 사사천 물물천, 만물과 만사 모두가 전부가 하늘이라 이르신 것이다. (중략) 바로 그분들의 말씀이 시대정신이 되고 지구의 정신개벽이 상호진화하는 생생활활한 미래가 열리고 있음을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끝없이 들뜬 마음으로 두 손 모아 정성껏 맞이하고 싶다. (p. 241)

동학의 맥을 이은 개벽사상가라고 자신을 표현하더니 글의 곳곳에서 동학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또한 4개의 기업들 못지 않게 신기했다. 유라시아를 연구한 역사학자가 미래를 바라보는데 세운 사상이 동학이라니. 그런데 그것이 묘하게 꽤 잘 들어맞는 것 같기도 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여하튼, 동학까지는 아니더라도 개벽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또한 이 책에서 4개의 스타트업 대표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껏 알지 못했던 미래가 열리고 있는 것 같아 한없이 기쁜 마음이 되고 끝없이 들뜬 마음이 되었다. 지금껏 읽은 그 어떤 미래관련 책들보다 이 책한권이 주는 희망이 훨씬 깊이있었다. 서두에서 언급한바 있듯이 '오래된 미래' 로 돌아가는 것도 '침묵의 봄'을 되뇌는 것도 우리의 미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지구 4.0 그 버전에 힘차게 내딛고 있는 어스테크 기업들을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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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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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

이 충격적인 단언으로 시작한 현대 한국 물리학자의 묵직한 질문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대비를 할 것인가?'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라는 말은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여야만 무언가를 알아챌 수 있다는 의미일까. 제목의 말뜻이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든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든 여하튼, 현시대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문득 나는 내 교양과학 수업 영상을 다른 학생들이나 일반인도 볼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내가 선택한 우회로는 우선 수업 때 이야기한 내용을 원고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p. 9)

물리학을 전공하고 교양과학을 가르치면서 저자는 '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제의 강연을 여러번 했고 수업중에도 관련 내용을 풀어낸 적이 있다고 한다. '교양과학'은 대학에 개설된 과목이지만 사실 '교양'자 붙는 것 치고 일반 대중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영상이 흘러넘치는 시대에도 '공유'의 문제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아직은 여전히 '책'이라는 점에서 왠지 모를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느낀 아이러니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승리를 보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고등교육을 20세기에 끝낸 셈이다. 그런 내가 지금 알파고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2016년의 그 봄날에 나는 아직도 풀지 못한 어려운 숙제를 하나 떠안게 되었다. (p. 20)' 그 숙제를 하는 과정중에 이 책도 나올 수 있었으니 저자는 아마도 숙제를 열심히 하는 편인것 같다. ^^

아직도 나는 답을 모르겠다. 다만 그 답을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이제 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이다. (p. 27) 한국형 천재가 조금이라도 유용했던 이유는 그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와 사전과 계산기를 일일이 다 들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머릿속에 꽉꽉 집어넣고 누가 물어보면 언제든지 척척박사처럼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천재였다.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로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연다는 건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p. 33)

'한국형 천재'를 저자는 잘 외우고 기억하는 암기형 인간으로 지칭한다. 하지만 손안에 컴퓨터를 갖고 다니는 시대에 더이상 단순한 암기는 능력이 될 수 없기에 한국형 천재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새로운 분야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옛날의 카테고리만으로는 분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p. 42)' 고. 따라서 '전문적인 지식 자체보다 지식을 만들어내는 어떤 기제, 즉 지식 창출의 플랫폼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니까 총체성이 발휘되어야 할 지점은 모든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이 아니라 플랫폼을 작동시켜 지식 창출 자체를 코디네이션 또는 큐레이션 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p. 52)' 를 강조한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져 슬프지만 아직 검색이나 종합능력만큼은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희망찬 메세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지금 뭔가 해낼 수 있다까지는 아니어도 아직은 쓸모가 있는 인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ㅎ 여하튼,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라도 과학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도 기구도 중요하지만 우리 논의의 맥락에서 다시 말하자면 과학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식 창출 플랫폼이다. (중략) 여태 우리는 과학조차 잘 외우고 있어야 할 특정한 지식으로만 여겨 왔지만 알파고 시대에는 지식 창출의 플랫폼이라는 과학의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 어쨌든 가장 성공적인 모델부터 살펴보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언제부터인가 과학을 '21세기의 필수 교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p. 55)

저자는 과학의 본질이 '지식 창출 플랫폼'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과학이 어렵게 느껴져 왔는지 묻고 '원래 어려워요' 라고 한결같이 대답해왔다고 답한다.

왜 과학은 원래 어려울까? 특히 우리에게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p. 63)

과학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멀고먼 외국에서 들어온 학문이라는 것이고 또하나는 과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닌 자연에 관한 지식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인간에 관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낯설다. 자연을 잘 기술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언어, 또는 우주 본연의 언어를 써야 한다. (중략) 우주의 언어는 인간에게 아주 낯설다. 그래서 과학이 어렵다. (p. 69)' 하지만 이토록 어려운 과학을 이제 굳이 다 알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 이다.

과학은 전복의 학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완전한 전복이 가능하려면 그전에 최고 수준으로 엄격한 보수주의자가 되어 기존 체계가 살아남을 일말의 가능성까지 따져 본 명세서가 나와야만 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엄격한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열렬한 혁명주의자이다. 과학자들에게 이 둘은 서로 대립되지 ㅇ낳는다. 후자가 되기 위해서조차 전자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가장 혁명적인 이유는 가장 보수적이기 때문이며, 가장 보수적인 이유는 가장 혁명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p. 124)

바로 어제 읽은 책이 과학사 관련 책이었는데 천재라 불리는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똥고집에 혀를 내두르며 답답했었다. 하지만 위 문장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보수성이 꼭 필요한 거였구나... 책에서 얻은 답답함을 책으로 풀어내는 경험, 참 좋다. 역시 책은 두루두루 많이 볼 일이다. ㅋ

"Nullius in verba"

이 말은 라틴어로,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또는 '남의 말 쉽게 믿지 말라'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중략) 이 문장은 영국의 유서 깊은 과학자 단체인 왕립학회의 모토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교양과학 수업 첫 시간에 이 말을 소개한다. (p. 150)

이 책에서 핵심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저 라틴어 문장일 것이다. 우리가 태도가 과학적이어야 할때 필요한 말이기도 하고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이기 위해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NIV로 줄여 부르면서 저자는 이 라틴어문구를 책속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짧게 말하자면 '의심하라' 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도구에만 관심을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가치부터 고민해야 한다. (중략) 결국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 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제반 환경에 대한 통찰을 얻는 첫걸음이다. 주변 환경에 대한 주체적인 통찰, 나는 이것이 문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p. 155)

저자는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근대과학이 정립된 것이 인류 문명의 변곡점을 찍은 것이었다면 지금 이시대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을 겪는 이 시점도 문명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과학이 또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주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통찰을 가지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p. 166) K-방역의 성공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겠다는 과학적인 마인드의 성공이다. (p. 168)

세월이 흐를수록 전문분야는 점점 더 좁은 영역에서 고도화되기 마련이라 괴담과 신중함을 판별하는 데 개개인의 NIV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NIV의 정신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점도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덕분에 우리는 안방에 앉아서도 전 세계의 수없이 많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p. 174)

과학의 힘은 결국 축적된 정보의 힘이다. 정보가 축적되지 않는다면 후대 사람들은 선대의 시행착오를 계속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의 축적은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협력해야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집단지성이 작동한다. 즉, 과학은 수많은 사람들의 초협력이 빚어낸 집단지성이다. (p. 177) 초연결성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혼자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p. 193)

지금까지의 한국 과학은 기술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당장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더이상 생계수준에서만 판단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저자는 K방역의 성공에서 한국과학의 희망을 보았다. 빠른 정보통신기술로 넘쳐나는 가짜 정보들 속에서 NIV의 자세로 혼자 옥석을 가려내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서로의 오류를 점검하고 고쳐주는 집단지성에서는 더나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형 천재는 끝났다라고 말한 것이다.

팬데믹에 대처하는 서구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런 통념이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p. 252) 영국과 함께 유럽에서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하다.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일반 국민들의 과학적 문해력이 평균적으로 높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적어도 이번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무너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p. 253) 강압적인 봉쇄와 통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방역에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p. 265)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기만 했던 우리가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K방역의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K방역을 깎아내린 반면 외신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성공사례를 폭포수처럼 기사로 쏟아냈다. (p. 266)

이런저런 교양과학의 이야기들 속에서도 시종일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 이고 '희망' 이었다.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 (p. 269)' 의 모습을 K방역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에 대해 외국에선 '과학에 대한 높은 이해가 대유행을 막는 데에 큰 도움이 됐을 것 (p. 266)' 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초과학이 탄탄하지 못한 국내 사정에 비추었을 때 '과학에 대한 높은 이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K방역의 성공에서 'NIV와 초협력 (p. 269)' 의 토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기서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나또한 저자가 느낀 희망에 기대고 싶어진다. 팬데믹은 있어선 안될 사건이었지만 나중에 돌이켜봤을때 한국의 또다른 성장을 가능케 한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이 바람이 가능해지려면 우리는 좀더 과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시작은 과학책을 읽는 것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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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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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라마적 스피디한 전개는 작가의 필력을 증명한다"

스페인으로 '진짜 가족'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플라멩코 정복기

뭔가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시 되돌아보기 마련, 책도 그렇다. 영화는 무슨 영화제에서 상받았다는 영화치고 재미난게 잘 없던데 소설은 상받은 작품들이 대부분 고개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모른 척 지나쳤던 책들이라도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시 찾아 읽어보곤 한다. 이 책은 11회 혼불문학상 수장작이라고 한다.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처럼 이 책은 드라마적 전개가 쑥쑥 읽히는 가독성 좋은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67세의 굴착기 기사 허남훈 씨다. 그는 26년간 거의 쉬지 않고 굴착기로 땅을 다지듯 자신의 인생도 잘 다져왔기에 이제 슬슬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책장에서 먼지 털며 꺼내든 것은 26년전 자신의 굳은 다짐을 써내려갔던 노트 한권이었다. 그 노트 첫장엔 '청년일지' 라고 써놓았더랬다.

마흔셋에 아내를 만나 마흔넷에 선아를 얻은 후 일지의 작성은 뜸해졌지만, 거기에 젊은 시절의 각오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남훈 씨는 잊은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어떻게 썼는지는 기억이 희미해도, 남은 생애 꼭 이루고픈 목표들을 적어뒀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p. 19)

노트를 사기 직전 마흔둘의 남훈씨는 알콜중독자로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퇴원하자마자 문구점으로 가 제일 비싼 노트를 샀다. 그 노트에 차곡차곡 써내려간 자신의 다짐들을 의지삼아 지난 세월 굳건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가 됐을때 버킷리스트 처럼 그 노트에 써두었던 자신의 과거 목표들을 하나하나 완수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벌컥벌컥 화를 내던 성질머리를 다스리고 후줄근하던 옷차림을 멋진 신사로 거듭나게 할 정장도 폼나게 새로 맞추고 어린 시절 꿈이었던 새로운 언어 배우기에도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플라멩코!

처음으로 맞춤 양복을 재단하면서 불편할까 걱정하는 그에게 재단사가 건넨 말, '춤이라도 추실 수 있게 해드리지요. (p. 61)' 가 그의 귀에 꽂혔다.

'청년일지' 속 목표들을 하나하나 실천하기위해 애지중지 아끼던 굴착기를 넘기고 매일 하던 일을 쉬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몸짓을 익히면서도 그가 손대지 못하고 있는 노트 속의 한문장이 있었다.

1995년 12월 15일, 보연이를 데려다 내 손으로 키우자. 내가 가지 못한 대학도 꼭 보내야지. (p. 154)

26년전 그 다짐을 보며 남훈씨는 도망쳐왔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이 괴롭고 마뜩지않아 미루고미루고미루던 중이었다. 사실 지금의 아내와 늦둥이 딸은 모르지만 그에겐 전처와의 사이에서 딸이 한명 있었다. 하지만 딸 보연이가 여섯살때 이혼한 후 연락을 끊은 터라 마흔살이 다된 딸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노트 속 마지막 한 문장은 내내 남훈씨 마음에 걸려 있었다.

'스페인으로 '진짜 가족'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플라멩코 정복기' 라는 뒤표지의 문구를 봤을때 스페인으로 가서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남훈씨에겐 스페인에 살고 있는 가족이 없다. 가족은 모두 그의 근처에 한 도시에 살고 있다. 스페인으로 가족을 찾아 나섰다기 보다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플랑멩코를 추며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옴으로써 가족애를 돈독히 하는 그런 정도의 연결고리라고 볼수 있다. 스페인은.

허남훈 씨라는 한 아버지의 인생사 굴곡을 따라 펼쳐지는 가족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기에 술술 읽히고 만남과 헤어짐 혹은 상처와 보살핌 이라는 드라마적 요소와 적절히 어우러져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해피엔딩으로 자알 마무리된다.

크게 무리없이 읽히는 편안한 소설책에서 거슬렸던 부분이라면 작품 끝에 해제처럼 붙어있는 '혼불문학상 심사평' 이었다. '심사위원 대부분의 의견은 안타깝게도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의 수준이 다소 떨어지고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불문학상>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더 젊은 문학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그에 합당한 작품을 찾기 위해 장고에 들어갔다. (p. 269)' 다시말해 상을 줄만한 뛰어난 작품이 없었기에 오랜시간을 들여 고르고 골라 그나마 상을 준 작품이 <플라멩코 추는 남자> 라는 소리다. 기왕 상 준거 굳이 이런 사족 붙일 거 뭐있나? 이래놓고 뒤에가선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p. 271)' 라고 해봤자 크게 위안이 될 것 같진 않다. 어떤 문학상에서 심사위원을 맡는 작가들도 따지고 보면 그닥 훌륭한 작품이나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한 작가들도 있기 마련이던데 심사위원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었을때 내뱉는 문체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하튼, 이 책은 따듯한 가족이야기 이다. 매정한 뉴스에 마음이 씁쓸해지고 차가운 사회에 마음이 허해질때 이 작품과 같은 가족이야기는 은은한 화롯불처럼 마음 한편을 뭉근하게 뎁혀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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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테마로 읽는 역사 6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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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천재 과학자들의 바보 같은 실수들이 빚어낸 유쾌한 과학의 역사

사전에서 [실수] 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또는 그런 행위.

2. 말이나 행동이 예의에 벗어남.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 상대의 양해를 구하는 인사로 쓰는 경우가 많다.

라는 풀이가 나온다. 실수는 의도치 않은 것일 경우가 많고 당연히 실패와도 다르다. 하나의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여 연구하고 실험하고 검증할 것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후학이 배울 수 있는 것들도 많을터, 이 책을 통해 좀더 재미있는 과학자들의 실수담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과학 거장들의 실수' 라는 중국어 원제의 제목이 한국어판 제목 '과학자의 흑역사'로 제목에 큰 변형을 하지 않은 것도 좋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느끼게 된건 애초에 원제 자체가 본문과 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달까;;;

책의 구성은 천문학자의 흑역사 / 생물학자의 흑역사 / 수학자의 흑역사 / 화학자의 흑역사 / 물리학자의 흑역사 로 과학의 각 분야로 크게 나누어 학자들을 등장시킨다. 각 학문내에서 학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야별로 구분지어 놓은 것은 적절하다 싶다. 각 부분적으로는 과학사적으로 읽히는 부분도 있지만 과학사 보다는 그냥 학자별 에피소드의 열거로 읽히는 책이다. 천재적인 학자들이 과연 어떤 실수를 했을까?? 를 궁금해하며 읽었지만 과학자들의 실수라기 보다는 편견이나 아집 혹은 고집의 모음이었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 오해한 나머지 스타인하트 라는 학자의 명예를 바닥에 떨어뜨린 후 사실을 알고서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에서 오류를 증명한 프리드만을 강하게 비판하다가 수용한 후에도 거칠게 동의했으며,

르베리에의 가설만 철썩같이 믿은 많은 천문학자들은 그의 예언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을 있지도 않은 행성 '벌컨'을 찾아 헤맸다.

에딩턴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젊은 학자 찬드라세카르의 이론이 설 자리를 없애버렸기에 블랙홀 연구는 30여년 뒤처지게 되었고,

퀴비에는 놀라울 정도로 성실했기에 비교해부학의 권위자가 되었으면서도 용기내지 못하여 진화론을 부정하고 현재에 안주했으며,

델브뤼크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추구하다가 편견에 빠져 중요한 연구방향을 무시했다.

모노는 철학 범주에 속하는 개념어와 과학적 연구의 세부사항을 구분하지 못하여 DNA연구자들을 비난했고,

노벨상을 받은 콘버그는 개인적 이익 묹로 불명예를 자초했으며,

베이트슨은 실증주의 철학 입장에서 과학연구를 하려다가 유전학 발전의 장애물이 되었다.

어떠한 위대한 과학자도 모든 과학 문제를 풀어낼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 당시에 가장 곤란한 문제 앞에 멈출 때가 온다. 그리고 나중에는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지는 이론과 생각을 내놓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론들이 미래의 과학자들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게 받쳐주는 디딤돌이 된다. 이것이 역사의 한계성이 갖는 필연이다. (p. 168)

당대 명성이 높던 가우스도 자신이 어렵게 손에 넣은 것들을 잃을지 모르는 모험은 하지 않기 위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입장을 취하지 않았고,

수학을 개조했으니 물리학도 개조할 수 있다며 뛰어든 수학자 힐베르트는 호되게 쓴맛을 보아야 했으며,

푸엥카레와 아인슈타인은 서로의 심리적 경쟁때문에 생전 서로에 대한 언급을 단 한번도 하지 않을 만큼 고집스런 태도를 보였다.

프리스틀리는 산소를 발견해놓고서도 플로지스톤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자신의 연구가치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고,

돌턴은 자신의 원자론을 수정하지 않기 위해 실험으로 입증된 법칙에 대해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햇으며,

멘델레예프는 자신의 주기율표를 지키기 위해 몇몇 원소의 원자량을 수정하여 자신의 주기율에 맞추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누가 먼저냐 라는 우선권 문제에서는 과학자들 끼리 서로의 입장만을 고수했고,

애국심 강했던 독일과학자 하버의 독가스는 사상 최악의 희생을 가능케 했으나 하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으며

오토 한은 자신의 연구가 원자폭탄을 만들어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갈릴레이가 파도바에서의 안정적인 연구생활을 버리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간 것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었고,

뉴턴은 한정된 실험 사실에서 보편적인 추론을 도출했기에 색수차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베크렐은 실험과 관찰만 중시하고 가설을 세우는 것을 무시했기에 방사선 연구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사기극이 아닐까 싶던 N선 연구에 프랑스 과학자들이 진심으로 몰입했던 것은 과학과는 관계없는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감정때문이었고

마이컬슨은 죽을때까지 상대성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 관점을 유지했으며,

패리티 보존법칙을 고수하던 물리학자들은 그 법칙에 예외가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되었을때도 곧바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저자의 표현으로는) 실수담들은 거의다 과학자들의 보수적 태도와 권위적 사고방식과 자신의 이론만 옳다는 똥고집 의 향연들이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 고집스런 태도들을 답답하게 읽으면서 천재적 과학자의 흑역사에 킥킥대보려던 나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과학 거장들의 실수'라기 보다는 '천재들의 똥고집 혹은 과학자들의 보수성'이라고 하는게 더 맞지 않았을지...

물론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완강히 거부해도 새로운 발견들이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갈 때마다 과학자들의 옹고집은 과거에 묻힐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좀더 개방적이고 소통하는 자세로 협업을 했더라면 위대한 과학의 역사에서 불필요하게 소모된 시간들은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 책속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의 일화들이 그들에게 모두 '흑역사'가 맞긴 하다. 여하튼, 이 책이 전해주는 메세지를 책속에 인용된 문장 하나로 요약한다면, '권위로 논증하는 예는 셀 수 없이 많고, 권위가 저지른 잘못도 흔하다. -칼 에드워드 세이건 (1934~1996)' (p. 60) 이 가장 적절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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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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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을 찾으러 왔습니다."

'나'에게서 '나'로 돌아갈 시간, 단 일주일!

이런저런 서평단 활동을 해봤지만 대본집 형태로 가제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대본형태이지만 소설책이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대본집이라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니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페인트] [알로하, 나의 엄마들] 등 소설Y 시리즈로 나올 책이라는데,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를 잇는다는 이 영어덜트 소설의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어느 날 버스 사고 후 영혼이 빠져나오게 된 열여덟 살 한수리와 열일곱 살 은류. 일주일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영혼 사냥꾼 선령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하낟. 창창한 미래를 향한 계획이 가득한 수리는 육체로 돌아갈 생각뿐이고, 어딘지 비어 있는 듯한 류는 육체에 관심이 없다. 선령의 말에 따르면 영혼이 빠져나오고 육체에 결계까 쳐진 것은 스스로가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주일 뒤 크리스마스 전까지 수리와 류는 육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늘 시작되는 패턴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아침, 일상의 시작이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수리, 그런데 이런 수리를 보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수리의 영혼!

"선령이야. 사냥할 선에 영혼 령, 한마디로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이들이지. 사령을 데려오는 저승사자들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p. 9)

갑작스런 버스 사고로 수리의 영혼은 육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런 영혼에게 선령이 나타나 알려준다.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한은 단 일주일 이라고.

다행히 버스사고로 다친 곳은 없었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멀쩡했다. 아니 멀쩡해 보였다. 육체는! 수리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를 보며 다시 돌아갈 궁리를 열심히 해보지만 무엇때문인지 결계가 걷히지 않는다.

내가 유령 상태로 남아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대로 사흘 뒤면 나는 저 선령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고, 한수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장난스럽게 내뱉었던 말이 현실이 되어 진짜 영혼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p. 11)

영혼없는 대답, 영끌로 모아야 할 무엇 등 우리는 일상에서 수시로 영혼을 잃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 영혼을 정말로 잃어버리다니!

한수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고2 여고생 이었다.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학교 생활에 맛집 여행 등의 사진으로 인스타에서도 좋아요를 엄청 많이 받는, 한마디로 엄마에게 소개시켜주면 안될 친구로 통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고 있다. 발을 동동거리고 화를 내다가 차츰차츰 되돌아보게 된다. 그 완벽함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던가?

"그냥 사는 거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오르듯이, 그렇게 말이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듯이 살아간다? 그것만큼 마음 편한 삶이 또 있을까. 아무런 근심조차 없다는 뜻이잖아. 그럼 지금껏 영혼이 있을 때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뜻인가.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인생의 무게 운운하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p. 35)

한 날 한 시에 같은 버스사고로 튕겨진 영혼이 또 하나 있다. 열일곱살 고1 남고생 은류.

하지만 은류의 영혼은 도통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 수리가 자신의 육체를 따라다니며 24시간 지켜보는 동안 류의 시선이 따라다닌 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었다.

수리는 몹시 조금해하며, 류는 아주 태연합니다. 이렇게 극과 극의 영혼이 동시에 육체를 이탈한 일은 정말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제 피곤이 가중된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남은 사흘 안에 개성이 또렷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두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제가 직접 저승으로 인솔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인간의 십 대는 마치 타들어 가는 폭탄의 심지같습니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매 순간 아주 쫄깃해지실 겁니다. (p. 93)

찢어진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보랏빛이 감도는 기묘한 눈동자로 보고 피처럼 붉은 입술로 말하는 선령은 영혼사냥꾼이다. 오싹한 냉기를 풍기며 수리와 류의 영혼 곁에서 상황을 알려주고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조언은 일절 하지 않는다. 저승사자로 있다가 강등되어 내려온 선령이라는 자리가 영 탐탁치 않았는데 두 십대 영혼들을 지켜보자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 같다.

왜 저를 영혼 사냥꾼이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호랑이에게 쫓겨 본 사슴은 압니다. 자신이 얼마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가는 다리에서 얼마나 강한 함이 솟구쳐 나오는지를, 때로는 위기가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니까요. (p. 193)

선령, 한수리, 은류 이 3명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 차차 드러나는 그들의 삶과 속내가 드라마틱하게 순식간에 읽혀지는 소설이었다.

서평단 미션으로 가상 캐스팅도 해보고 나니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도 같다. 이 재미난 작품을 쓴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겉표지의 해시태그 힌트로 보건데...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 아니면 [페이지터너]의 박혜련 작가가 아닐까 싶긴 한데... (다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박혜련 작가?! ^^) 10월1일에 공개된다고 하니,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분으로 며칠을 기다려보련다. ㅎㅎ


ps. 10월1일 블라인드에 가려졌던 작가가 밝혀졌다!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였다!! w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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