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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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혼을 찾으러 왔습니다."

'나'에게서 '나'로 돌아갈 시간, 단 일주일!

이런저런 서평단 활동을 해봤지만 대본집 형태로 가제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대본형태이지만 소설책이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대본집이라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니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페인트] [알로하, 나의 엄마들] 등 소설Y 시리즈로 나올 책이라는데,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를 잇는다는 이 영어덜트 소설의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어느 날 버스 사고 후 영혼이 빠져나오게 된 열여덟 살 한수리와 열일곱 살 은류. 일주일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영혼 사냥꾼 선령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하낟. 창창한 미래를 향한 계획이 가득한 수리는 육체로 돌아갈 생각뿐이고, 어딘지 비어 있는 듯한 류는 육체에 관심이 없다. 선령의 말에 따르면 영혼이 빠져나오고 육체에 결계까 쳐진 것은 스스로가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주일 뒤 크리스마스 전까지 수리와 류는 육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늘 시작되는 패턴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아침, 일상의 시작이었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수리, 그런데 이런 수리를 보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수리의 영혼!

"선령이야. 사냥할 선에 영혼 령, 한마디로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이들이지. 사령을 데려오는 저승사자들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p. 9)

갑작스런 버스 사고로 수리의 영혼은 육체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런 영혼에게 선령이 나타나 알려준다.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한은 단 일주일 이라고.

다행히 버스사고로 다친 곳은 없었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멀쩡했다. 아니 멀쩡해 보였다. 육체는! 수리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를 보며 다시 돌아갈 궁리를 열심히 해보지만 무엇때문인지 결계가 걷히지 않는다.

내가 유령 상태로 남아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대로 사흘 뒤면 나는 저 선령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고, 한수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장난스럽게 내뱉었던 말이 현실이 되어 진짜 영혼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p. 11)

영혼없는 대답, 영끌로 모아야 할 무엇 등 우리는 일상에서 수시로 영혼을 잃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 영혼을 정말로 잃어버리다니!

한수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고2 여고생 이었다.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학교 생활에 맛집 여행 등의 사진으로 인스타에서도 좋아요를 엄청 많이 받는, 한마디로 엄마에게 소개시켜주면 안될 친구로 통하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고 있다. 발을 동동거리고 화를 내다가 차츰차츰 되돌아보게 된다. 그 완벽함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던가?

"그냥 사는 거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오르듯이, 그렇게 말이야."

주어진 환경에 맞게, 물이 흘러가고 달이 차듯이 살아간다? 그것만큼 마음 편한 삶이 또 있을까. 아무런 근심조차 없다는 뜻이잖아. 그럼 지금껏 영혼이 있을 때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뜻인가.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인생의 무게 운운하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p. 35)

한 날 한 시에 같은 버스사고로 튕겨진 영혼이 또 하나 있다. 열일곱살 고1 남고생 은류.

하지만 은류의 영혼은 도통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 수리가 자신의 육체를 따라다니며 24시간 지켜보는 동안 류의 시선이 따라다닌 것은 자신의 육체가 아니었다.

수리는 몹시 조금해하며, 류는 아주 태연합니다. 이렇게 극과 극의 영혼이 동시에 육체를 이탈한 일은 정말 이례적입니다. 그만큼 제 피곤이 가중된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남은 사흘 안에 개성이 또렷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두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제가 직접 저승으로 인솔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인간의 십 대는 마치 타들어 가는 폭탄의 심지같습니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매 순간 아주 쫄깃해지실 겁니다. (p. 93)

찢어진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보랏빛이 감도는 기묘한 눈동자로 보고 피처럼 붉은 입술로 말하는 선령은 영혼사냥꾼이다. 오싹한 냉기를 풍기며 수리와 류의 영혼 곁에서 상황을 알려주고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조언은 일절 하지 않는다. 저승사자로 있다가 강등되어 내려온 선령이라는 자리가 영 탐탁치 않았는데 두 십대 영혼들을 지켜보자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 같다.

왜 저를 영혼 사냥꾼이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한 번이라도 호랑이에게 쫓겨 본 사슴은 압니다. 자신이 얼마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지, 가는 다리에서 얼마나 강한 함이 솟구쳐 나오는지를, 때로는 위기가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니까요. (p. 193)

선령, 한수리, 은류 이 3명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 차차 드러나는 그들의 삶과 속내가 드라마틱하게 순식간에 읽혀지는 소설이었다.

서평단 미션으로 가상 캐스팅도 해보고 나니 장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도 같다. 이 재미난 작품을 쓴 작가는 과연 누구일까?

겉표지의 해시태그 힌트로 보건데...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 아니면 [페이지터너]의 박혜련 작가가 아닐까 싶긴 한데... (다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박혜련 작가?! ^^) 10월1일에 공개된다고 하니, 산타의 선물을 기대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분으로 며칠을 기다려보련다. ㅎㅎ


ps. 10월1일 블라인드에 가려졌던 작가가 밝혀졌다!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였다!! w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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