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드라마적 스피디한 전개는 작가의 필력을 증명한다"

스페인으로 '진짜 가족'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플라멩코 정복기

뭔가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시 되돌아보기 마련, 책도 그렇다. 영화는 무슨 영화제에서 상받았다는 영화치고 재미난게 잘 없던데 소설은 상받은 작품들이 대부분 고개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모른 척 지나쳤던 책들이라도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시 찾아 읽어보곤 한다. 이 책은 11회 혼불문학상 수장작이라고 한다.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처럼 이 책은 드라마적 전개가 쑥쑥 읽히는 가독성 좋은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67세의 굴착기 기사 허남훈 씨다. 그는 26년간 거의 쉬지 않고 굴착기로 땅을 다지듯 자신의 인생도 잘 다져왔기에 이제 슬슬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책장에서 먼지 털며 꺼내든 것은 26년전 자신의 굳은 다짐을 써내려갔던 노트 한권이었다. 그 노트 첫장엔 '청년일지' 라고 써놓았더랬다.

마흔셋에 아내를 만나 마흔넷에 선아를 얻은 후 일지의 작성은 뜸해졌지만, 거기에 젊은 시절의 각오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남훈 씨는 잊은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어떻게 썼는지는 기억이 희미해도, 남은 생애 꼭 이루고픈 목표들을 적어뒀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p. 19)

노트를 사기 직전 마흔둘의 남훈씨는 알콜중독자로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퇴원하자마자 문구점으로 가 제일 비싼 노트를 샀다. 그 노트에 차곡차곡 써내려간 자신의 다짐들을 의지삼아 지난 세월 굳건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가 됐을때 버킷리스트 처럼 그 노트에 써두었던 자신의 과거 목표들을 하나하나 완수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벌컥벌컥 화를 내던 성질머리를 다스리고 후줄근하던 옷차림을 멋진 신사로 거듭나게 할 정장도 폼나게 새로 맞추고 어린 시절 꿈이었던 새로운 언어 배우기에도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플라멩코!

처음으로 맞춤 양복을 재단하면서 불편할까 걱정하는 그에게 재단사가 건넨 말, '춤이라도 추실 수 있게 해드리지요. (p. 61)' 가 그의 귀에 꽂혔다.

'청년일지' 속 목표들을 하나하나 실천하기위해 애지중지 아끼던 굴착기를 넘기고 매일 하던 일을 쉬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몸짓을 익히면서도 그가 손대지 못하고 있는 노트 속의 한문장이 있었다.

1995년 12월 15일, 보연이를 데려다 내 손으로 키우자. 내가 가지 못한 대학도 꼭 보내야지. (p. 154)

26년전 그 다짐을 보며 남훈씨는 도망쳐왔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이 괴롭고 마뜩지않아 미루고미루고미루던 중이었다. 사실 지금의 아내와 늦둥이 딸은 모르지만 그에겐 전처와의 사이에서 딸이 한명 있었다. 하지만 딸 보연이가 여섯살때 이혼한 후 연락을 끊은 터라 마흔살이 다된 딸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알지 못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노트 속 마지막 한 문장은 내내 남훈씨 마음에 걸려 있었다.

'스페인으로 '진짜 가족'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플라멩코 정복기' 라는 뒤표지의 문구를 봤을때 스페인으로 가서 잃어버렸던 가족을 찾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남훈씨에겐 스페인에 살고 있는 가족이 없다. 가족은 모두 그의 근처에 한 도시에 살고 있다. 스페인으로 가족을 찾아 나섰다기 보다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플랑멩코를 추며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옴으로써 가족애를 돈독히 하는 그런 정도의 연결고리라고 볼수 있다. 스페인은.

허남훈 씨라는 한 아버지의 인생사 굴곡을 따라 펼쳐지는 가족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기에 술술 읽히고 만남과 헤어짐 혹은 상처와 보살핌 이라는 드라마적 요소와 적절히 어우러져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해피엔딩으로 자알 마무리된다.

크게 무리없이 읽히는 편안한 소설책에서 거슬렸던 부분이라면 작품 끝에 해제처럼 붙어있는 '혼불문학상 심사평' 이었다. '심사위원 대부분의 의견은 안타깝게도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의 수준이 다소 떨어지고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불문학상>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더 젊은 문학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그에 합당한 작품을 찾기 위해 장고에 들어갔다. (p. 269)' 다시말해 상을 줄만한 뛰어난 작품이 없었기에 오랜시간을 들여 고르고 골라 그나마 상을 준 작품이 <플라멩코 추는 남자> 라는 소리다. 기왕 상 준거 굳이 이런 사족 붙일 거 뭐있나? 이래놓고 뒤에가선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품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p. 271)' 라고 해봤자 크게 위안이 될 것 같진 않다. 어떤 문학상에서 심사위원을 맡는 작가들도 따지고 보면 그닥 훌륭한 작품이나 베스트셀러를 쓰지 못한 작가들도 있기 마련이던데 심사위원이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었을때 내뱉는 문체가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하튼, 이 책은 따듯한 가족이야기 이다. 매정한 뉴스에 마음이 씁쓸해지고 차가운 사회에 마음이 허해질때 이 작품과 같은 가족이야기는 은은한 화롯불처럼 마음 한편을 뭉근하게 뎁혀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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