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이종필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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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

이 충격적인 단언으로 시작한 현대 한국 물리학자의 묵직한 질문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대비를 할 것인가?'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라는 말은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여야만 무언가를 알아챌 수 있다는 의미일까. 제목의 말뜻이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든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든 여하튼, 현시대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시대임은 분명하다.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문득 나는 내 교양과학 수업 영상을 다른 학생들이나 일반인도 볼 수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를 당장 실행에 옮기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내가 선택한 우회로는 우선 수업 때 이야기한 내용을 원고로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p. 9)

물리학을 전공하고 교양과학을 가르치면서 저자는 '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제의 강연을 여러번 했고 수업중에도 관련 내용을 풀어낸 적이 있다고 한다. '교양과학'은 대학에 개설된 과목이지만 사실 '교양'자 붙는 것 치고 일반 대중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영상이 흘러넘치는 시대에도 '공유'의 문제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아직은 여전히 '책'이라는 점에서 왠지 모를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느낀 아이러니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승리를 보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모든 고등교육을 20세기에 끝낸 셈이다. 그런 내가 지금 알파고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2016년의 그 봄날에 나는 아직도 풀지 못한 어려운 숙제를 하나 떠안게 되었다. (p. 20)' 그 숙제를 하는 과정중에 이 책도 나올 수 있었으니 저자는 아마도 숙제를 열심히 하는 편인것 같다. ^^

아직도 나는 답을 모르겠다. 다만 그 답을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이제 한국형 천재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이다. (p. 27) 한국형 천재가 조금이라도 유용했던 이유는 그 모든 교과서와 참고서와 사전과 계산기를 일일이 다 들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머릿속에 꽉꽉 집어넣고 누가 물어보면 언제든지 척척박사처럼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천재였다.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로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시대를 연다는 건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p. 33)

'한국형 천재'를 저자는 잘 외우고 기억하는 암기형 인간으로 지칭한다. 하지만 손안에 컴퓨터를 갖고 다니는 시대에 더이상 단순한 암기는 능력이 될 수 없기에 한국형 천재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새로운 분야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옛날의 카테고리만으로는 분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p. 42)' 고. 따라서 '전문적인 지식 자체보다 지식을 만들어내는 어떤 기제, 즉 지식 창출의 플랫폼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니까 총체성이 발휘되어야 할 지점은 모든 지식을 습득하는 수준이 아니라 플랫폼을 작동시켜 지식 창출 자체를 코디네이션 또는 큐레이션 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p. 52)' 를 강조한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져 슬프지만 아직 검색이나 종합능력만큼은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희망찬 메세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지금 뭔가 해낼 수 있다까지는 아니어도 아직은 쓸모가 있는 인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ㅎ 여하튼,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라도 과학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도 기구도 중요하지만 우리 논의의 맥락에서 다시 말하자면 과학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식 창출 플랫폼이다. (중략) 여태 우리는 과학조차 잘 외우고 있어야 할 특정한 지식으로만 여겨 왔지만 알파고 시대에는 지식 창출의 플랫폼이라는 과학의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든, 어쨌든 가장 성공적인 모델부터 살펴보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언제부터인가 과학을 '21세기의 필수 교양'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p. 55)

저자는 과학의 본질이 '지식 창출 플랫폼'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과학이 어렵게 느껴져 왔는지 묻고 '원래 어려워요' 라고 한결같이 대답해왔다고 답한다.

왜 과학은 원래 어려울까? 특히 우리에게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p. 63)

과학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멀고먼 외국에서 들어온 학문이라는 것이고 또하나는 과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닌 자연에 관한 지식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인간에 관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 낯설다. 자연을 잘 기술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언어, 또는 우주 본연의 언어를 써야 한다. (중략) 우주의 언어는 인간에게 아주 낯설다. 그래서 과학이 어렵다. (p. 69)' 하지만 이토록 어려운 과학을 이제 굳이 다 알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됐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느냐 이다.

과학은 전복의 학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완전한 전복이 가능하려면 그전에 최고 수준으로 엄격한 보수주의자가 되어 기존 체계가 살아남을 일말의 가능성까지 따져 본 명세서가 나와야만 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엄격한 보수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열렬한 혁명주의자이다. 과학자들에게 이 둘은 서로 대립되지 ㅇ낳는다. 후자가 되기 위해서조차 전자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가장 혁명적인 이유는 가장 보수적이기 때문이며, 가장 보수적인 이유는 가장 혁명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p. 124)

바로 어제 읽은 책이 과학사 관련 책이었는데 천재라 불리는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똥고집에 혀를 내두르며 답답했었다. 하지만 위 문장을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보수성이 꼭 필요한 거였구나... 책에서 얻은 답답함을 책으로 풀어내는 경험, 참 좋다. 역시 책은 두루두루 많이 볼 일이다. ㅋ

"Nullius in verba"

이 말은 라틴어로, '어느 것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라' 또는 '남의 말 쉽게 믿지 말라'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중략) 이 문장은 영국의 유서 깊은 과학자 단체인 왕립학회의 모토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교양과학 수업 첫 시간에 이 말을 소개한다. (p. 150)

이 책에서 핵심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저 라틴어 문장일 것이다. 우리가 태도가 과학적이어야 할때 필요한 말이기도 하고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이기 위해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NIV로 줄여 부르면서 저자는 이 라틴어문구를 책속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짧게 말하자면 '의심하라' 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도구에만 관심을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가치부터 고민해야 한다. (중략) 결국 과학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각, 나의 철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로부터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제반 환경에 대한 통찰을 얻는 첫걸음이다. 주변 환경에 대한 주체적인 통찰, 나는 이것이 문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p. 155)

저자는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근대과학이 정립된 것이 인류 문명의 변곡점을 찍은 것이었다면 지금 이시대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을 겪는 이 시점도 문명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과학이 또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주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통찰을 가지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p. 166) K-방역의 성공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겠다는 과학적인 마인드의 성공이다. (p. 168)

세월이 흐를수록 전문분야는 점점 더 좁은 영역에서 고도화되기 마련이라 괴담과 신중함을 판별하는 데 개개인의 NIV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NIV의 정신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점도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덕분에 우리는 안방에 앉아서도 전 세계의 수없이 많은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p. 174)

과학의 힘은 결국 축적된 정보의 힘이다. 정보가 축적되지 않는다면 후대 사람들은 선대의 시행착오를 계속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의 축적은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협력해야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집단지성이 작동한다. 즉, 과학은 수많은 사람들의 초협력이 빚어낸 집단지성이다. (p. 177) 초연결성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혼자 잘하던 시대는 끝났다" (p. 193)

지금까지의 한국 과학은 기술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당장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더이상 생계수준에서만 판단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저자는 K방역의 성공에서 한국과학의 희망을 보았다. 빠른 정보통신기술로 넘쳐나는 가짜 정보들 속에서 NIV의 자세로 혼자 옥석을 가려내는 것은 어려울지 몰라도 서로의 오류를 점검하고 고쳐주는 집단지성에서는 더나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형 천재는 끝났다라고 말한 것이다.

팬데믹에 대처하는 서구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런 통념이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p. 252) 영국과 함께 유럽에서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하다.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일반 국민들의 과학적 문해력이 평균적으로 높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적어도 이번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무너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p. 253) 강압적인 봉쇄와 통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방역에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p. 265)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기만 했던 우리가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K방역의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K방역을 깎아내린 반면 외신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성공사례를 폭포수처럼 기사로 쏟아냈다. (p. 266)

이런저런 교양과학의 이야기들 속에서도 시종일관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 이고 '희망' 이었다. '자유로운 개인인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 (p. 269)' 의 모습을 K방역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에 대해 외국에선 '과학에 대한 높은 이해가 대유행을 막는 데에 큰 도움이 됐을 것 (p. 266)' 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초과학이 탄탄하지 못한 국내 사정에 비추었을 때 '과학에 대한 높은 이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K방역의 성공에서 'NIV와 초협력 (p. 269)' 의 토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기서 '새로운 희망'을 느꼈다며 이 책을 마무리한다. 나또한 저자가 느낀 희망에 기대고 싶어진다. 팬데믹은 있어선 안될 사건이었지만 나중에 돌이켜봤을때 한국의 또다른 성장을 가능케 한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이 바람이 가능해지려면 우리는 좀더 과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시작은 과학책을 읽는 것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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