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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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야만의 뒤엉킴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표지 中

신비로운 소설이었다.

판타지처럼 읽히지만 판타지가 아닌 것을 알겠고 역사서처럼 읽히지만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역사에 존재했을 것이 분명한 시대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판타지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도 넘나는 초원의 이야기였다.

초원의 역사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판타지 처럼 다가오는 역사의 영역인데 다른 문명의 역사에 기록된 작은 편린들 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늘 궁금해지곤 한다. 역사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역사서들을 찾아 읽는 편인데, 서양사건 동양사건 늘 유목사에서 막히곤 한다. 문자를 갖지 않았고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나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리며 여기저기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유목민족,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설로 접하고 나니 새롭고 신기한 기분이다.

간단한 지도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선 대립적인 두 나라가 등장한다. 나하 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북방엔 초원민족의 초나라가 있고 남방엔 농경민족의 단나라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끝쪽에 나하의 시원이 있는 백산이 있고 백산 아래 작은 나라? 월 이 있다. 초나라의 말은 신월마 이고, 단나라의 말은 비혈마 이다. 대화가 거의 없이 3인칭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인간의 서사와 말의 서사가 교차되면서 색다른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앞에> 초 와 단 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본문이랄 수 있는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에서 좀더 세세하게 풀어주는데 묘하게 몰입이 된다.

초나라는 유목민들의 나라다. 떠돌아다니는 민족이었기에 포로는 죽였고 늙인이와 병든 자는 두고 떠났으며 식량이 모자라면 아이와 젊은이가 먼저 먹었다. 초는 산 자들의 나라였다. 건물을 짓지 않았고 문자를 멀리했다. 모든 지식은 구전으로 전해지고 몸으로 익히게 했다. 군대는 진지가 따로 없었고 대오는 헐거웠다. 하지만 빠르고 치고 빠지는 전술에 능했고 전투복이 따로 없었다. 동물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자연에 순응했다.

단나라는 정착민들의 나라다.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민족이었기에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성을 쌓기 시작했다. 문자를 숭상했고 많은 것을 기록하려 했다. 기록이 쌓이고 쌓일수록 의례가 늘었고 무덤은 커져갔다. 군대는 밀집대형으로 움직였고 갑옷으로 무장했으며 단체행동을 중시했다. 단의 역사는 대부분의 문명사 기록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과 비슷할 터인데 그렇게 기록된 역사들은 사실 그리 믿을만 하지 못하다.

단은 문자를 알았고 문자로 세상일을 적었고 문자를 받들었다. <단사>는 당대에 기록되었으므로 언설의 흐름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기록하는 자들 가운데 세상을 보지 않고 문자를 보는 자들, 세상과 헛것이 뒤섞여 보이는 자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 봐도 보이지 않는 자들, 대낮에 귀신과 흘레붙어서 정액을 흘리는 자들이 많았고 또 후세에 말 잘해서 영화로운 자들이 이야기를 덧붙이고 비틀기를 거듭했다. 그러므로 <단사>에서 옮길 만한 대목은 그리 많지 않다. (p. 32)

초와 단의 역사를 간략하게 풀어놓는 부분을 읽다보면 정말 있었던 나라들의 역사서를 바탕으로 쓴 것 같아서 연대를 찾아보고 나라의 기록을 찾아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나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역사가 기록하는 역사의 시간과 역사가 알려주지 않은 역사의 시간을 잘 짜맞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소설임을 잊어버리고 역사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여기까지가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내 이야기의 멍석이다. 초의 <시원기>나 단의 <단사>는 모두 제각각의 기록이다. 초와 단이 나하를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싸웠으므로 그 기록들은 서로 부딪친다. 게다가 단의 기록은 당대에 이루어졌으나 초의 일들은 후세에 문자로 옮겨졌으므로 두 건의 서물은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나는 초원과 산맥에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 (p. 43)

역사는 사실 크게 보면 유목세력과 농경세력의 각축전이었다. 이 소설은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그 다양했던 각축전을 하나로 함축해놓은 것 같았다.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는 표현이 정말 아주 절묘하게 들어맞는 소설이다.

옛날옛날에...

말과 사람은 자신들의 영역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이었다. 그러다 사람의 냄새를 거부하지 않고 신기해하는 말과 동물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은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을 타고 달릴 때 추는 이 세상이 멀리 보였고 내려다보였다. 먼 곳이 가까웠고 더 넓어진 세상이 더 좁아 보였고 지평선이 자꾸만 뒤로 물러갔다. 말이 땅을 박차고 치솟을 때 추는 사람이 땅을 밟고 살아온 수만 년의 발걸음에서 풀려나 바람 속을 달렸는데, 땅의 사슬에서 풀려나려면 말은 끝없이 땅을 박차야 했다. 발굽이 땅에서 떠서 다시 땅에 닿는 사이사이에 말은 앞으로 나아갔다.

말에 올라타서, 추는 시간을 앞질러, 시간을 이끌면서 달렸다. 초원은 다가왔고 다가온 만큼 멀어져서, 초원은 흘러갔다. (p. 57)

사람과 함께 살게 된 동물들이 다 제각각의 사연이 있게 마련이겠지만, 말을 타기 전과 후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사람은 더멀리 더빨리 갈 수 있었다. 사람은 더 넓은 땅을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다가왔던 말은 순했지만 핏속에 초원을 향한 갈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초원에서 비혈마의 무리들이 지는 해를 향해 일제히 달려간 까닭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나하 북쪽, 초의 신월마들이 초승달을 향해 달리던 까닭도 알 수 없다. 저무는 해와 떠오르는 달이 말들의 넑을 잡아당겼다는 것은,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인간들의 게으른 소리다. 그것은 말들만이 안다. (p. 72)

인간사는 인간사대로 복잡해서 인간이라고 누구나 다 이해할 수는 없기 마련이지만 말이 봤을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특히나 인간들의 전쟁은.

목왕은 나하 건너로 군대를 보내서 대륙 남쪽, 단의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대업을 준비해 나갔다. 목왕은 그 싸움에서 죽어서 무덤 없는 흙이 되어 초원의 풀을 키울 결심을 했다. (p. 83)

작전을 재가하면서 칭왕은 말했다. -나는 이제, 문자로써 이루려 하는 것을 무력으로 이루려 한다. 문과 무는 본래 하나인데, 그 방편이 다를 뿐이다. 나의 문과 나의 무는 서로 의지해서 함께 나아간다. 무는 문을 힘차게 하고 문은 무를 아름답게 한다. 그대들은 나하 북쪽 대륙에 나의 뜻을 심어라. 피어나서 무성하게 하라. (p. 95)

초의 목왕과 단의 칭왕은 달랐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볼수 없고 서로 이해할 수 없었다. 목왕은 아들 표에게 자신의 뜻을 유훈으로 남긴다. 표는 군대를 모아 출정했고 단은 벽을 튼튼이 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한채 기다렸다.

초원에서 수만 년을 살아온 부족들은 늑대나 개 떼처럼 자신의 진퇴와 대형을 맞출 수 있었다. 초의 군독들은 말을 해야만 말을 알아듣는 아둔한 자들에게만 말로 지시했다. 말을 해야만 알아듣는 자신은 말을 해도 결국 알아듣지 못한다고 초의 군독들은 한탄했다. 초의 군독들은 군병들을 다그치면서, 바람을 보고 배워라, 개들을 보고 배워라, 무장을 가볍게 해라, 가벼워야 이긴다, 싸울 때 많이 먹지 마라, 배가 고파야 정신이 맑아지고 싸움에 신명이 난다. 그것은 선조때부터 이어지는 가르침이었다.

초의 기병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엉덩이를 들고 바람 속으로 똥오줌을 내질렀고, 목이 마르면 말 목에서 흐르는 말 땀을 핥아 먹었다. (p. 111)

중국 진나라가 만리장성을 쌓게 하고 로마제국을 손쉽게 침략했던 유목민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다. 소설을 읽는 내내 초의 습성들은 역사가 알려주지 않는 유목민족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 해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표가 상양성을 병력으로 두들겨보니 땅에 들러붙어서 사는 종족들의 착지 근성은 완강했다. 그 종속들은 땅에서 떨어지면 곧 죽는 줄 알아서 기어이 앉은 자리에 눌어붙어 돌무더기를 쌓는데, 그 성벽을 바로 쳐들어가서 부수기는 어렵다. 군대의 진퇴를 풍도로 출렁거리게 만들어서 적들의 사이사이를 바람이나 연기처럼 흘러가게 한다는 것이 표의 생각이었다. (p. 162)

사람이 땅에 들러붙으면, 땅은 그 위에 들러붙은 자의 것이 되는데 그 위에 기둥과 지붕을 세우고 그 안에 들어앉은 자들의 어두움을 표는 상양성에서 알았다. 초원에서 창세 이래로 전개된 싸움은 세상에 금을 긋는 자들과 금을 지우려는 자들 사이의 싸움이었고, 초원 끝까지 나아가서 금을 지우면, 그 뒤쪽에서 다시 금이 그어져서 싸움은 끝이 없었다. 싸움은 초의 시원부터 대를 이어가며 표에게 물려졌다. (p. 191)

연도를 알수 없는 시대이긴 하나 초원사람들은 벽을 허물고 금을 없애기 위해 싸우고 땅에 들러붙은 사람들은 벽을 세우고 금을 긋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 땅에 들어붙는 순간 그리 된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 자주 초나라 사람의 시선으로 땅에 들어붙은 단나라 사람들을 보다보면, 초원의 습성에 대한 로망이 생겨나는 기분이다.

월나라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그날로 장례를 마쳤다. 시신이 굳기 전에 새들에게 먹여 보내려고 월나라 사람들은 장례를 서둘렀다. 월나라의 새들은 크고 검었고 울음소리가 멀리 닿았다. 다 먹은 새들은 날갯짓 없이 높이 떠서 백산 쪽으로 날아갔는데 사람들은 날이 저문 후에도 새가 날아간 쪽으로 요령을 흔들었다. (p. 175)

월의 백성들은 땅에 붙어서 살았지만, 땅에 금을 긋지는 않았다. 각자의 집 앞마당은 그 집 곡식만을 말릴 수 있었으나, 넓은 들의 소출은 나누었다. 집들은 풀과 나무로 엮어서 낮았고, 어른 허리 정도까지 땅을 파고 들어앉았다. 집집마다 방 한가운데 화덕을 마련해서 불씨를 귀하게 여겼다. (p. 248)

초나라도 단나라도 아닌 나라를 이루지 않고 부족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곳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월나라 사람들이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라를 의도하지 않았다.

월나라의 장례의식은 '티베트의 천장(조장)'을 생각나게 했다. 나무가 부족하여 화장도 못하고 물이 귀하니 수장도 못하고 땅은 돌투성이 척박하여 매장도 못하는 티베트에서는 예로부터 장례를 치룬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주었다. 삶의 방식은 자연환경에 맞춰지기 마련이고 티베트의 삶은 자연에 순응한 모습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초원에서 말을 달리며 며칠씩 말위에서 생활할 수 있는 유목민의 모습과 정착한 순간부터 땅을 차지하고 확장해간 대다수의 농경민족의 모습과 독특한 장례의식 및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유지하는 월부족을 보면서 저자가 앞서 말한 "짜맞춘 이야기'들의 재미를 쏠쏠이 찾을 수 있었다. 시대와 장소와 민족이 혼합된 그 짜맞춤이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로 소설이 될 수 있다니 새삼 신기해 하며 읽게 되었다.

물건과 물건 사이에 물건이 아닌 것이 끼어드는 더러움을 초의 선왕들은 경계했고, 돈몰한 목왕도 그 가르침을 받들었다. 금붙이로 곡식이나 땅을 사고팔게 되면 곡식도 땅도 아닌 헛것이 인간 세상에서 주인 행세를 하게 되고, 사람들이 헛것에 홀려 발바닥을 땅에 붙이지 못하고 둥둥 떠서 흘러가게 되고, 헛것이 실물이 되고 실물이 헛것이 되어서 세상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입으로 맛볼 수 없는 빈 껍데기로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선왕들은 근심했다. (p. 193)

말言이 빛나고 돌이 가지런해야 사직의 영광이 나하의 남쪽에 고루 떨칠 수 있다는 선왕들의 유훈은 상양성 싸움 후에 더욱 새로웠다. 칭은 개 떼를 풀어서 싸움을 몰아가는 초의 전술을 천하고 더럽게 여겼다. (p. 213)

전쟁은 늘 참혹하기 마련이고 인간들의 전쟁에 말들은 이유도 모른채 달려나가야 했다. 신월마 토하와 비혈마 야백의 사랑이야기가 그 어떤 로맨스보다도 짠하게 마음을 울렸다. 이미 시작된 전쟁이 진행될 수록 왕들은 서로의 사고방식을 더욱 알 수 없었다. 다르다는 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역사는 늘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다투어온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세상을 지우면 빈자리가 드러날 테지만, 지우개로 뭉갤 수는 없어서 나는 갈팡질팡하였다. (p. 271) <뒤에 中>

<앞에> 서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짜 맞추었다고 했는데, <뒤에> 서 이 책은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여 쌓인 답답함의 소산이라 말하는 저자의 생각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내며 한 인터뷰에서 "화가가 물감을 쓰듯이, 음악가가 음을 쓰듯이, 그렇게 한번 언어를 전개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라며 그렇게 써낸 신화적 판타지 세계에서 두 집단 사이의 끝 모를 적대감을 드러내며 "그 야만적 폭력, 그 양 폭력이 부딪쳐 가지고 결국 서로 무 가 되는 그런 모습들을 그리려고 했죠" 라고 답했다. 작가의 열 번째 장편소설이자 첫 판타지 소설인 이 작품을 쓰는 중간에 산소호흡기를 써야할 정도로 심각한 건강상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는 그에게 지금의 현실이 새로운 혹은 여전한 약육강식의 시대인것이 안타까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이 소설은 유목민 대 농경민의 전쟁이야기로 읽어도 좋고, 신화적 상상력을 토대로 한 역사판타지로 읽어도 좋고, 인간의 폭력과 말의 생명력을 연결시킨 無의 소설로 읽어도 좋을테지만, 내게는 그저 궁금했던 역사속 감춰진 시간들의 재현으로서 충분히 멋진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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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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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안에, 당신은 완벽한 파트너와 매칭됩니다"

유전자로 완벽히 연결된 '단 한 사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까?

스릴러 소설인데.. 분명 스릴러 소설이긴 한데 여태 읽어왔던 스릴러 하고는 달랐다. 무척 달랐다.

대부분의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 심장 쫄깃해하며 결말을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범인이 누군가?'라는 답을 찾고싶어서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니었다.

물론 이 작품에도 살인사건이 등장하긴 하지만, 중심인물들 중에 사이코패스 한명이 있어서 그 한명의 성격을 드러내주기 위한 배경일뿐 살인사건은 이 소설의 중심사건이 아니다.

'DNA 매치'는 생물학과 화학물질, 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맨디는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하지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이 서비스를 신뢰했다.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p. 11)

"결혼은 구식 제도가 될 거야. 내말 잘 기억해둬. 모두가 운명의 짝과 함께하메 되면, 누구도 다른 사람한테 무언갈 증명하기 위해 결혼할 필요가 없어질 거야" (p. 24)

사랑은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운명의 끌림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 사람이 내 운명이다 싶었던 만남도 이별로 끝나기 일쑤고 이번엔 사랑이야 싶었던 감정도 인생을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감정의 끌림과 유전자적 호르몬의 끌림은 무엇이 먼저 일까?

어느 과학자가 DNA 의 매칭으로 세상에 나의 짝은 단 한명 뿐이며 그 한 명을 유전자 정보로 찾아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느 시대 이 DNA 매칭으로 내 반려자를 찾는 시간과 에너지를 단축시키고 더구나 확실하기까지 한 미래형 사랑이 일반화된다면?

과연 편리하고 좋기만 할까??

서로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면서도 정확히 똑같은 속도로 뛰는 걸 느낀 그 순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며 둘이 합쳐져 하나의 완전한 존재를 이룰 것 같았다. (p. 328)

맨디와 리처드, 크리스토퍼와 에이미, 제이드와 케빈(혹은 마크), 닉과 샐리(혹은 알렉스), 엘리와 팀(혹은 매튜)

이렇게 5커플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조금씩 전개시켜 나가면서 매칭된 커플의 서로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사랑' 의 접근법과 확신에 대해 무척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하면 할수록 예상보다 너무 묵직한 질문을 자꾸 던져주면서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맨디는 유산의 아픔과 남편이 매칭된 여자에게 떠나버린 이별의 고통속에 자신도 누군가와 매칭되었을지 의뢰해보기로 한다.

크리스토퍼는 스스로가 사이코패스인걸 알고 있고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색다른 여자를 만나보기로 한다.

제이드는 찌질하고 미래가 없어보이는 자신의 젊은날을 이대로 소진해버리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험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닉은 샐리와 결혼하고 싶고 서로에게 완벽한 한쌍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검사를 해보라는 샐리의 요청을 수락한다.

엘리는 회사를 키우느라 연애를 할 여력도 없었고 회사를 키우고 나니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날 수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칭을 해본다.

DNA 매칭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하고 난 후, 진짜 자신의 짝을 찾아가겠다며 헤어진 커플이 부지기수였고, 나이와 성별 혹은 그외의 조건들이 얼토당토 않은 상대와 맺어진 난감한 경우들이 발생했으며, (상대방이 아직 DNA 정보를 등록하지 않은 경우나 죽었거나 등등의 그외 경우로 인해)매칭서비스로 짝을 찾지 못해서 진정한 짝이 아닌걸 알면서도 사랑할 존재를 찾아야 하는 2등시민들은 열패감에 시달려야 했지만 'DNA 매칭 서비스' 는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신뢰도를 높여가는 중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DNA정보를 검색해서 자신의 짝을 찾자마자 불꽃같은 사랑을 확신하는 시대에 '사랑'이란 무엇일까?

"전 세계에 검사를 받고 자신들이 매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가 수백만 쌍이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랑했기에 서로의 곁에 남았죠. 난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 종교적 증오를 박멸 직전까지 몰아 넣었어요. 매치는 성적 지향이나 피부 색깔, 어떤 신을 섬기겠다는 결심 등을 인식하지 않으니까요. 매치는 온갖 신앙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가능하리라고 생각도 못 했던 방식으로 단합시켰어요. 이 세상을 덜 적대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은 뭘 했나요?"

"하지만 당신은 '그들' 과 '우리' 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만큼 많은 사람을 분열시켰어요. 사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관계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된 나머지 사람들을 나눠놓은 거죠. 당신이 한 짓과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한 짓이 얼마나 비슷한지 모르겠어요?" (p. 423)

맨디가 리처드를 만나러 찾아갔을 때 그 첫 장소는 그의 추도식을 하는 교회였다. 하지만 맨디는 리처드의 아이를 임신한다.

사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인 크리스토퍼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에이미는 경찰이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사랑에 당황하게 된다.

런던에 사는 제이드가 호주에 사는 케빈과 매칭되었을때 만날 수 없는 먼거리를 제이드가 날아가서 도착을 알렸을 때 케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샐리를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닉이 샐리의 반강요에 밀려 매칭을 의뢰후 받은 결과는 그의 성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렸다.

사설경호원을 옆에 대동해야만 외출할 수 있던 엘리가 혼자 한적한 식당에서 팀과 평범한 데이트를 한날 엘리는 사랑에 빠졌다.

DNA매칭으로 맺어진 행복한 커플도 있겠지만 그러한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했을때 벌어질 수 있는 온갖 혼란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과연 언제인지 무엇때문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읽을수록 무거워지는 마음을 부여잡고도 궁금해서 궁금해서 다음 페이지를 읽어야만 했던 이 소설에서 피식 웃음이 났던 부분은 의외로 사이코패스 크리스토퍼 관련한 에피소드에서였다.

"소설 취향까지 섬뜩하네" 에이미가 말을 이었다. "<한니발 라이징>, <아메리칸 사이코>, <케빈에 대하여>, 도널트 트럼프 자서전..." (p. 137)

크리스토퍼가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봤을 때는 20대 초반이었따.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크리스토퍼가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그저 다른 형태의 정상이었을 뿐이다. (p. 164)

최근 영미권 책을 읽을 때 트럼프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소설이나 사회서를 읽어보긴 했었는데, 사이코패스 가 읽는 섬뜩한 취향의 책중에 그 자서전이 포함되어 있다는, 심지어 다른 책들 처럼 < > 표시도 안해주는 무심한 언급과 사이코패스가 세상에 자기자신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서 자신을 정상으로 인정한다는 그 비약이 트럼프를 이런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서 심각하게 읽던 도중 혼자 막 웃었다. 지금 트럼프처럼 수도없이 욕먹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여하튼 이 소설이 알려주는 '과학이 만들어준 미래형 사랑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력' 은 디스토피아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토피아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애매한 딜레마들을 잔뜩 풀어놓는다.

매칭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않는 사람, 매칭된 사람을 찾아 지금의 사랑을 버리는 사람과 유지하는 사람, 매칭되었기에 서로에 대한 확실한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과 매칭서비스 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 매칭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한순간 불꽃 튀는 사람과 미적지근한 사람 그 외에도 '사랑'을 '운명의 상대'를 찾는 방법이 감정이냐 과학이냐에 따라 시간과경험이냐 유전자와 호르몬이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책도 마음도 묵직했다.

소설을 읽을때 문장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읽으면서 밑줄을 그어가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여러번 다시 읽어보게 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문장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다. 밑줄그은 문장은 한줄도 없었다. 하지만 커다른 물음표를 남겨주는 소설이었다. AI 가 어디까지 인간과 비슷해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대에,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을 감정과 창의성등에서 찾고 있는 시대에, '사랑' 은 얼마나 인간다운 감정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매치가 제대로 되었거나 제대로 되지 않았을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야 할 거예요. 가끔은 울타리 너머의 풀밭이 더 푸르지 않을 때가 있으니, 우린 우리가 속한 곳에 머물러야 해요. 그리고 가끔은 도박을 하면서 최선의 결과가 있기를 바라야죠"

"대표님이 원하는 평결을 받지 못하시면요? 그땐 어쩌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당신이 잘 알죠. 버튼을 누르고, 세상이 다시 실수를 저지르게 하세요" (p.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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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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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국민 화가의 일상 속 작은 행복

'휘게, 라곰, 피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미술을 잘 모르고 화가도 몇명 몰라서 미술을 쉽게 말해주는 책을 좋아한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라는 책을 읽고 저자인 이소영의 글에 반했다. 작가가 보여주는 그림들도 좋았다. 그림을 일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고매한 무엇이 아닌 일상과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무엇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았다.

제목과 표지와 표지에 써있는 이런저런 문구들을 보고 행복을 전해주는 책이구나 싶었다. 칼 라르손 이라는 한명의 그림을 모아놓은 이렇게 화가 한명의 그림에 대한 책도 처음이었지만 그 화가가 일생을 자신의 가족과 집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해졌다는 것도 신기했다. 누군가를 혹은 어딘가를 그렇게 밖을 그리는 그림들이 아닌 내 가족을 내 집을 계속 그렸고 그런 작품들이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궁금해졌다.

칼 라르손 1853~1919 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는 북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공예 운동가이며, 부인 카린 베르구 와 함께 8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스웨덴 팔룬에 있는 집 '릴라 히트나스'를 손수 가꾸는 행복한 삶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스웨덴의 가구 브랜드 이케아는 공공연하게 칼 라르손과 그의 아내 카린이 꾸민 집의 인테리어 스타일이 자신들의 정신적 뿌리라고 언급합니다. 칼 라르손의 작품과 생애는 스칸디나비안 포크 아트에 기반을 둔 스웨덴의 디자인과 가구 문화를 발전시켰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스칸디나비아식 스타일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그의 작품과 삶을 해매며 그와 가족이 살던 집을 여행하고 온 저의 여정입니다.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위의 내용으로 시작한 이 책은 위 글 뒤에 여러 페이지에 걸쳐 칼 라르손의 그림들이 나온다. 그가 일상을 보낸 장소들과 그 장소들 속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그린 그림... 뭔가 특별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것 같은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나면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왜 칼 라르손을 궁금해했는지 이유를 밝힌다.

나는 집필하는 3년간 매일 밤마다 서재에 앉아 칼 라르손의 그림들을 봤다. 하지만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대부분 행복을 박제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꾸민 정지된 화면 속에서 한참을 해맸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행복보다 불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타인의 행복은 멀리서 응원을 보내는 것에 그쳤지만, 유독 타인의 불행은 내 불행처럼 끌어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행복한 그림' 보다 '삶의 어두운 모습을 표현한 그림'에 더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행복한 장면만 그리는 작가인 칼 라르손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시간은 동굴 속에 떨어진 반지를 찾는 과정 같았다. 결국 이 책은 나 스스로를 바르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칼이 일부러 행복한 장면만 찾아 그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칼 라르손의 그림을 인정하고 좋아하는 것일까?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깨달았다. 사람들이 칼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는 '대신 행복해주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칼의 그림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혼자 힘겨워한 후 다시 그의 작품을 보며 깨달았다. 특별한 행복의 비밀 따위는 없었다. 그는 그냥 별일 없는 하루를 잘 기록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별일 없는 하루하루가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다시 힘을 내어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칼 라르손의 삶과 작품에 대해 썼다. 행복의 비밀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별일도 별일 없는 듯 기록한 화가의 삶 속에 있는 행복을 감상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와 함께 희극의 긴 탄생과정을 파헤쳐보고 싶은 분은 합류하기를 바란다. (프롤로그 p34~37 中)

기꺼이 합류하고 싶어졌다. 저자가 앞에 있었다면 저요저요 하고 손들뻔 했다.

나도 행복해 보이는 그림을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선망하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이나 그저 풍경 그림이 보기 좋을 때가 많았다. 인물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복잡해지곤 하는 마음을 뭐라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칼 라르손의 행복한 그림들 보다도 저자가 품었던 질문을 나또한 공감할 수 있었기에 보고 싶어졌다. 칼 라르손의 그림이. 더욱 읽고 싶어졌다. 저자의 글이.

그리고 책을 다 보고 나서 느낄 수 있었다. 일상과 행복의 관계에 대하여...

한국의 많은 사람이 사랑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개인전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작가. 이케아의 정신적 모토라고 하나 아무리 이케아 홈페이지를 뒤져도 흔적이 많지 않은 작가. 수체화로 그려진 수많은 그림이 하나같이 너무 따뜻해서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 작가, 칼 라르손은 누구일까. (p. 45)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함께 힘들게 성장한 칼 라르손.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 덕에 미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던 칼 라르손. 미술을 통해 직업을 얻고 기반을 잡기 시작했을 때 병을 얻은 몸으로 돌아온 아버지를 부양했던 칼 라르손. 책 에서 그의 자화상이 종종 나오는데 60p 에서의 자화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된 정장을 갖춰 입고 당당하게 선 자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40대의 자신을 담은 그 그림에서 '더 이상의 가난과 우울함이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괜히 뿌듯해진다' 라는 저자의 말이 깊이 공감갔다. 고난을 겪고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감동을 주기 마련아닌가... 칼 라르손이 특별하다면 그의 성공은 그가 원하는 가족과 가정을 이루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그의 이런 성공은 그의 부인 카린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칼 라르손이 청혼했던 장소에 드레스를 입고 서있는 카린을 그린 그림은... 아름다웠다! 신부가 아름답긴 했지만 꼭 신부때문에라기 보다도 뭐랄까 그 분위기가... 그림의 제목을 왜 '다리'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소중했던 시간을 그림에 (마치 사진처럼) 담기 시작했던 것은 카린에서 시작되었다.

화가대 화가로서 유학시절 프랑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웠다. 누군가는 가정을 전담해야 했고 그 시절로서는 당연하게도 (어쩌면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인 카린이 가정을 맡았다. 8명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카린이 아플때를 그리며 칼 라르손의 마음은 어땠을까...

연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을 그린 그림들이 있곤 한데, 카린과 아이를 그린 일상의 그림과 똑같은 인물을 살짝 변형해서 봄의 공주로 표현한 그림을 나란히 볼 수 있는 페이지가 인상깊었다. 다홍색 이라는 색명이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긴한데, 여하튼 봄의 공주에서의 망토 색깔을 나는 다홍색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 다홍색이 칼 라르손의 그림에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원래 붉은 색은 생명력을 상징하곤 하지 않나? 칼 라르손의 다홍색이 그에게 행복의 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 라르손은 아이들이 책을 읽는 장면을 많이 그렸다. 이는 부모였던 칼과 카린 모두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판단할 때 책을 읽을 여유가 있었나, 없었나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과정에 책이라는 멋진 물건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꽤 괜찮아진다. (p. 121)

자녀들의 책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여러점 있었지만, 나는 책을 펼쳐놓고 딴 생각을 하거나 숙제를 해야 하는데 졸고 있는 모습을 (그 순간을 목격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거울속 아버지까지) 그린 그림이 보기 좋았다. 자녀들의 꾸러기 다운 모습을 그린 그림도 많았는데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혼자 식탁에서 늦은 식사를 하는 아이의 그림이 정말 어찌나 일상스럽던지 저절로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칼 라르손의 그림이 행복을 담고 있긴 한가 보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그 누구보다 정교하고, 정확하며, 아름답게 그려나갔다.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일상만으로도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이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보다 있었던 일들을 제대로 둘러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느낀다. (p. 143)

칼 라르손은 전원생활을 꿈꿨고 실현했다. 자연에 위치한 그의 집과 환경은 지금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전한 로망이다.

 

 

다복한 가정, 야생화 가득한 정원, 몇 걸음 가면 있는 자작나무 숲, 호수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했던 피크닉, 야외에서의 식사

그리고 그림을 보다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는 그의 아이들

여러 북유럽 국가들을 다녀온 후 내가 느낀 공통점은 그들은 그 무엇보다 가정 환경과 자신이 속한 공간의 인테리어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겨울이 길고 날씨가 추워 집에 오래 있어야 하는 환경적 특성이 조명과 가구, 인테리어의 발전으로 나타났고 내적으로는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집안에서 보내는 문화인 '휘게(덴마크 사람들의 아늑하고 소소하고 여유로운 시간)' 나 '피카(스웨덴 사람들의 커피 마시는 시간)' 로 나타난 것이다. (p. 196)

칼과 카린은 그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에 작은 용광로라는 뜻을 지닌 '릴라 히트나스' 라는 이름을 붙인다. (p. 201)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우리에게 평범한 날과 특별한 날이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의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 전체가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내는 일은 아주 소소한 것일지라도 거대하게 다가온다. (p. 270)

북유럽은 햇빛이 귀하다. 그들에게 여름은 잠깐 스쳐가는 시간이므로 햇빛은 보석 같은 존재다. (p. 281)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을 가진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만큼 칼 라르손의 그림은 대부분 여름을 담고 있었다. 신록이 우거진 계절, 야외에서 신나게 활동하는 아이들, 꽃들이 만발한 집... 집안에서 휘게와 피카의 시간을 길게 가지는 동안 매년 오는 여름이지만 겨울에 생각하는 여름은 특별한 만큼 그가 여름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며 보석같은 그들의 시간을 스스로 추억했을까?

유럽의 수공예 운동을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가 이끌었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수공예 운동의 중심에는 칼과 카린이 있었다.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만든 가구는 많은 북유럽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실용적이고 밝은 인텔어 스타일은 오날날에도 북유럽 인테리어 디자인을 대표한다. (p. 227)

서양에서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두고 '초록 엄지'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탁월한 가드너였다. (p. 277)

칼은 그림을 그리는 사이사이 목공 작업도 좋아해서 가구를 만들곤 했다. 아이들이 늘어가면서 집은 계속 확장공사를 했고 그렇게 확장한 공간을 카린과 함께 꾸며나갔다. 카린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보다도 직조 공예가로서의 능력이 출중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으로 나오는 상품들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롭게 불어온 수공예의 바람은 카린의 인테리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의 인테리어 감각은 칼의 그림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다.

게다가 카린은 식물을 키우는데도 탁월했다. 그녀의 정원과 집안 창가 그리고 식탁에는 늘 감각적으로 배치된 꽃들이 있었다.

릴라 히트나스의 풍경을 담은 수채화 화집은 1899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알버트 보니에 출판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책이 되었다. 칼과 카린이 핸드메이드로 만든 가구와 인테리어는 책을 통해 스웨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릴라 히트나스는 순식간에 유명해진다. 이 책에는 24점의 수채화 작품이 실렸는데 모두 릴라 히트나스의 여러 방을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p. 309)

사진과 똑같은 그림을 보면 경이롭고는 하지만 그림은 역시 사진과 달리 똑같지 않음으로써 풍기는 분위기가 멋을 더해줄 때가 많은 것 같다. 칼의 그림을 통해 카린의 인테리어가 책에 담겼을 때 그 책은 스웨덴 사람들의 로망을 담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카린은 가족과 가정을 위해 그림을 포기했고 가족과 가정을 위해 테피스트리 작업과 디자인을 시작했다. 직접 옷을 만들어 입혔고 직접 디자인한 직조물과 자수로 집안을 꾸몄다. 미술을 전공했던 덕에 독창적인 디자인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탄생했다.

칼에게 작업실이 있었다면 카린에게는 재봉실이 있었다. 카린은 이 공간에서 릴라 히트나스를 꾸밀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p. 326)

카린이 수공예로 생활용품을 디자인하고 창작하는 일은 칼 라르손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였따. 둘은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성을 펼쳤고, 카린은 어머니, 예술가, 뮤즈일 뿐만 아니라 트렌드세터, 생활계의 거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신의 예술성을 집안 곳곳에 표출했다. (p. 329)

공간이 주는 힘은 크다. 칼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듯이 카린에게는 인테리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다. 거실 한모퉁이 부엌 한켠에서 수를 놓고 테피스트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공간에서 그녀스타일데로 작업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러한 자신만의 공간이 있었기에 카린의 인테리어적 감각이 성장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둘은 8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부부애가 좋았지만 침실이 따로 있었다. 문이 없는 옆방이긴 해도 이 부부의 독립된 침실은 그들의 독립된 자아를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함께 할 것은 함께 하고 따로 할 것은 따로 할 수 있는 문화를 공유했던 그 공간 그 집은 여러 면에서 다시한번 많은 이들이 꿈꾸는 공간이 실현된 곳이었다.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천국'이라는 제목을 붙인 화가가 또 있었을까? 저 멀리 자신의 보금자리인 릴라 히트나스를 배경에 두고 평화로운 숲에서 자신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있는 자화상을 그린 그에게 그 순간이 아마도 천국 이었나 보다. 천국을 살면서 경험하다니... 부러울 수 밖에 없다. ㅎ

 

 

"마음속에 파티를 매일 여는 자는 삶 전체가 파티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인 297 페이지의 그림엔 카린과 7명의 자녀가(한명은 아기때 죽었다 ㅠ) 한꺼번에 나온 유일한 그림이었다. 그들의 삶이 매일매일 파티처럼 보여서인지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인 칼을 제외한 모두가 나와서인지 인상적이었는데, 좀더 보다 보니 생각났다. 아차차 이 그림은 앞에 나왔던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 페이지에서는 양 쪽 사이에 끼어 가려진 그림부분이 앞 그림에서는 한 페이지에 오롯이 담긴 덕에 나와있었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한 남자. 아마도 칼 라르손은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가족들이 매일 즐거운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던 것일까, 그가 꿈꾸었고 유지하고자 했던 행복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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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 서가명강 시리즈 11
남성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

 

'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이른바 서가명강 시리즈 11권인 이 책은 책으로도 (유투브나 팟캐스트를 통해) 강연으로도 들을 수 있는책이라고 한다. 책 뒷날개를 보니 그동안의 시리즈들에도 관심이 간다. 심도깊은 내용을 대중들이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라고 한다. 지구환경 중에서도 해양학을 전공한 저자는 해양관측 중심의 자연과학 연구와 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는 학자답게 인류 공존의 지혜를 바다에서 찾고 있는 해양과학자 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그 해결점이 바다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 지구의 위기에도 희망은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결국 희망은 '바다'에 있다. (들어가는 글 中)

저자는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리고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용어정리를 깔끔하게 해준다. 학문의 분류에서 '지구과학' 에 대하여 그리고 재해, 재난, 재앙 과 방재 & 방제 의 구분 그리고 기후변화와 기상현상의 변화를 구분짓는 등의 설명을 항상 앞에서 먼저 명확이 알려줘서 좋았다.

원래 자연현상은 인류를 해하려는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다. 자연재해는 지구 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따라 발생하고 있는 자연현상을 인간이 잘 이해하지 못해 생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결과 발생한다. 따라서 자연재해는 세계 인구의 증가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에 취약한 곳에 예전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재해도 더 빈번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9)

인간의 행동에는 대부분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목적을 갖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연현상은 자연이 이렇게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흐름이고 순환이다. 지구는 안에서부터 뜨겁게 활성화되어 있는, 어쩌면 살아있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활동성을 갖고 있다. 그러한 지구를 자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재해는 재난이 되고 재난은 재앙이 되어 인류를 덮칠 것이다.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힘의 근원에는 크게 지질 순환, 구조 순환, 암석 순환, 수문 순환, 생지화학 순환 다섯 가지가 있다. (p. 23)

지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순환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러한 순환을 통해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질순환은 대륙지각과 해양지각의 움직임, 구조순환은 지구 내부의 맨틀의 대류에 의한 움직힘, 암석순환은 화성암-퇴적암-변성암의 순환, 수문 순환은 물의 순환(구름, 수증기, 비, 강이나 바다 그리고 다시 구름), 생지화학순환은 탄소, 질소, 인 등의 화학원소들이 대기권, 암석권, 수권, 생물권을 통해 순환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해해는 자연현상과 구분해야 한다. 모든 자연현상이 재해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오히려 자연현상의 순환을 인간이 방해해서 흐름이 깨어진 나머지 재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재해의 피해가 사회적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관점으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포괄한 융복합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p. 39)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인명을 비롯한 사회기반시설이 피해를 입고 그것을 복구하는데 있어 정치경제적 방법이 필요하다. 자연재해를 해결하는데 이렇게 다방면의 협력이 필요하듯 자연재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에도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서로 연결된 접근이 필요하다. 미래는 정말 융합의 시대인가 보다.

온실효과는 지구온난화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이지만 오늘늘 토지 이용도가 변하고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나 메탄 등의 농도가 증가한 결과 온실효과가 지구온난화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빙하를 녹이고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해양을 산성화시키는 등 지구환경 변화를 연쇄적으로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들린다. (p. 83)

그야말로 위기의 지구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하면 미세먼지를 비롯한 공기의 오염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생지화학 순환을 통해 대기 중 증가한 이산화탄소 농도가 해양 산성화로 이어져 해양생태계를 파괴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지구온난화로 증가하는 열의 상당 부분을 대부분 해양에서 흡수하므로 해류의 변화가 생기고 이러한 변화는 다시 대기의 변화를 일으켜 결국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것은 땅의 나무보다 바다의 플랑크톤 역할이 훨씬 더 큰데, 바다가 산성화되면 플랑크톤은 줄어들고 만다. 바다의 플랑크톤은 단순히 물고기들의 먹이역할만 하는게 아니었다. 지구는 육지보다 바다가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바다의 플랑크톤이 육지의 나무보다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서는 지구의 위기를 전 세계에 경고하기 위해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을 계산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사용하는 물, 공기, 토양 등 지구의 자원 사용량과 폐기물 등을 계산해 각종 환경오염량이 지구의 생산 및 자정 능력을 초과하는 시점을 말한다. 이를 계산한 결과 1970년에만 하더라도 자원을 그해에 주어진 것 내에서만 사용했으나, 그 추세가 점점 짧아져 2019년에는 한 해 중 8월이면 주어진 자원을 모두 소진하고 다음 세대가 사용할 자원까지 끌어와 사용하는 상황이다. 오늘날에는 지구 하나로 부족해 적어도 1.7개의 지구가 있어야만 인류에게 필요한 생태 자원을 모두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p. 151)

오늘날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인간이 중심에 있는 소위 '인간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발전은 지구환경 악화라는 대가 위에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편리한 생활을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대기 중의 산소를 소모하고 온실가스를 증가시켜 지구온난화를 유발했다. 그리고 이는 지구의 탄생 45억 년 동안 충전된 배터리를 400년도 안 되어 모두 소모해버리는 상황을 가져오고 있다. (p. 155)

인류는 지금 후대가 써야할 지구의 에너지를 당겨서 쓰고 있다. 지구는 하나인데 하나가 더 필요할 지경이라니... 각 나라별로 인구 대비 몇 개의 지구가 더 필요한지 계산한 결과를 저자가 알려주는데, 우리나라는 스위스, 러시아와 함께 3.3개의 지구를 필요로 하며, 미국이 4.8개, 호주가 5.4개 라고 한다. 이것을 나라별로 자원이 소진되는 날짜를 계산할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4월10일이면 그해에 주어진 모든 자원을 사용하므로 그 이후로는 후대의 자원을 당겨쓰는 것이다 보니 3.3개의 지구가 필요한 셈인 것이라고...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렇게 지구를 과소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식이라면 자원고갈은 시간문제다. 정말 각성이 필요한 때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무분별하게 자원을 소비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에게는 지구를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능력과 자격도 없다. 대안 없는 선택 앞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행동을 바꾸는 것뿐이다. 미래 세대에 빚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p. 189)

육지의 자원이 고갈되어 간다고 해양의 자원을 욕심내는 쪽으로 가서는 안된다. 바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육지만큼 직접적으로 피해가 눈에 보이지 않을뿐 넓은 바다 곳곳에 쓰레기섬이 만들어지고 수온이 올라가는등 바다도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었음을 인지하고 지구의 올바른 순환을 고려함에 있어 바다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아내려면 바다를 연구해야 한다.

유엔에서 설정한 지속 가능 개발 목표 17개의 항목 중 하나가 해양생태계일 정도로 해양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인류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더해 향후 10년은 해양과학을 통해 지구환경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규명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유엔에서 2021년부터 2030년까지를 해양과학 10년으로 선언할 만큼 지구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바다의 중요성과 재원 투입의 필요성은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해양과학 10년의 목표는 총 여섯 개다.

깨끗한 바다, 건강하고 회복력이 강한 생태계로서의 바다, 예측 가능한 바다, 안전한 바다, 지속 가능한 생산적인 바다, 투명하고 접근 가능한 바다. (p. 255)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예로 들어 데이터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다에 관한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분쟁지역도 있고 나라별 입장도 달라서 해양조사가 쉽지 않은 곳도 있다고 한다. 심층까지 조사하는 기술도 아직 미비하다. 데이터를 조사하는 방법도 축적되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직면한 지구환경 문제들을 과학으로 풀어내려면 그 시작점은 해양관측 데이터 축적임을 저자는 강조 또 강조한다. AI의 딥 러닝도 수많은 데이터들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는가. 살만한 지구를 후대에 물려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데이터라도 잘 챙겨주어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융복합 해결책을 찾는 일에 소모적인 경쟁이나 불필요한 논란 등은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외롭고 삭막한 '각자도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존'의 지혜 속에 있다. (나가는 글 中)

물은 늘 생명의 어머니 역할을 맡곤 했다. 바다는 지구의 어머니 라는 말을 어릴 때 과학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의 어머니를 너무 홀대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 지구가 인류를 품어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계속 이용만 했던 지구를 이제는 인류가 좀 돌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지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바다를 중심에 두고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 해양학자들의 어깨가 무거울 듯 한다. 그 무거움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응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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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인류사 -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경덕 옮김 / 부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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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허약한 종이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나

 

국내 번역서 중 일본책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많지만 나는 일본번역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문학은 정서에 맞지 않고 역사는 (근대사는 특히 심하지만 근대사를 포함한 세계사 또한) 왜곡이 심한데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 왜곡한 건지 판별할 정도의 전문성이 내게 있지 않으니 그냥 안 읽는다. 일본번역서를 읽지 않아도 세상에 차고 넘치는 게 좋은 책들이다.(세상엔 정말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책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와 호모사피엔스의 기원을 다룬 책이다. 동서양 구분도 없고 인류가 지금의 인종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석기시대 이전의 인류에 대한 책이다. 고고학 책은 제목이 주주는 옛날같은 느낌과 다르게 최신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과학기술의 빠른 발달로 화석의 연대가 좀더 정확하게 측정되고 유적의 연구가 좀더 세밀하게 관측되기에 고고학은 날로 리즈를 갱신하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인류의 최신 연구결과를 담은 이 책은 궁금했고 결과적으로 매우 유익했다.

우리 조상은 약했지만 아니, 약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신체적으로 불리한 종이 살아남았다.

무기가 없는 쪽이 살아남았다.

보온에 취약한 종이 살아남았다.

책의 앞날개 부분에 적힌 이 내용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다 상식을 뒤엎는 기분이다. 지금의 인류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다. 그리고 우리만 살아남았기에 우리가 가장 우주한 종 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을 저자는 차근차근 증명해내고 있다.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대형 유인원의 공통 조상은 약1500만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공통 조상으로부터 먼저 오랑우탄 계통이 갈라져 나왔고, 뒤어어 고릴라 계통이 갈라져 나왔다. 그 이후 침팬지 계통과 사람 계통이 갈라져 나왔는데,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7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침팬지 계통에서는 약200만~100만 년 전에 보노보 계통이 갈라져 나왔다. (p. 20)

사람이 특별한 존재인 이유 두 가지가 이 책의 주제다. 왜 사람이라는 생물의 독특한 특징이 진화했을까? 왜 인류 가운데 사람만이 살아남은 것일까? 이 두 개의 의문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제부터 그 의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p. 23)

진화론을 생각했을때 '뭐 원숭이가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말은 굉장히 잘못 되었다. 원숭이는 일단 고인류에서 조차 우리와 상관없는 먼 계통이다. '뭐 침팬지가 우리 조상이라고?' 하는 말도 잘못 되었다. 침팬지는 우리 조상이 아니다. 침팬지와 인류의 공통 조상에게서 갈라져 각각 나온 것이지 침팬지가 조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인원의 조상은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쳤다. 진화라는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다양했는지 몰랐다.

인류와 침팬지는 약700만 년 전에 갈라져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700만 년 동안 인류는 다양한 특징을 진화시켰고 현재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침팬지류와 갈라진 이후 인류 계통에서 가장 먼저 진화한 특징은 무엇일까? 화석 기록을 토대로 보면 최초로 진화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직립 이족 보행과 송곳니 크기의 축소가 그것이다. (p. 27)

얼마전에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라는 책을 읽었었다. 도구, 기원, 예술 3부로 나누어진 이 책은 국내 대표적 고고학박물관장의 책이라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주제에 대한 연구분석서가 아니라 그동안 다른 매체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었기에 제목이 주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진 못했었다. 인류의 도구와 예술표현의 발달을 보며 인류만의 특성을 강조하긴 했는데,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은 이유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2부 기원 에서 '직립 이족 보행' 의 강조였다고 생각된다. 뇌의 발달 보다 직립이족보행 의 시작이 인류를 다른 계통으로 발달시키는데 가장 큰 이유였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책은 일맥상통한다. 즉, 인류가 똑똑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진화는 그렇게 단순한 이유로 설명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직립 이족 보행이 초원에서만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직립 이족 보행은 나무가 있는 환경에서만 진화했다. (p. 38)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네발걸음에서 직립 이족 보행으로의 변화를 단계적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 발로 걷기와 직립해서 두 발로 걷기의 중간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어 화석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상한 게 아니라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개체 수가 적으면 진화가 빨리 일어난다. 개체 수가 적은 경우는 자연 선택보다 유전적 부동이라는 우연의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자연 선택은 생활 조건에 유리한 개체를 늘려서 진화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불리한 개체를 제외하고 생물을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즉 진화를 멈추는 경우가 훨씬 많다. 네발걸음에서 직립 이족 보행으로의 진화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면 이 시기의 인류는 생존 기간이 짧고 숫자도 적다. 따라서 화석이 남기 힘들다. 그 때문에 중간 단계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p. 45, 46)

인류의 진화를 네발에서 두발로 걷기까지의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되는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박물관이나 책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읽었었다. 인류는 그렇게 차근차근 진화하지 않았고 그렇게 한종류가 꾸준히 진화하지도 않았다. 인류는 다양한 종이 동시대를 살았고 그 각각이 서로 다른 특징과 서로 같은 특징을 갖고 있었으며 그렇게 멸종되거나 생존한 것이지 명쾌한 그림 한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학명을 라틴어로 한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언어가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학명은 몇백, 몇천 년이 지나도 계속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언어로 학명을 정하는 게 좋다. 그래서 이제 변화할 일이 없는 죽은 언어, 즉 라틴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p. 49)

동물이나 식물의 학명을 보면 다 라틴어인 것에 대해 나는 그저 서구문명이 먼저 그런 계통이름짓기를 시작해서 그런 것이겠거니.. 유럽을 관통하는 로마문화의 잔재인건가.. 학문의 주도권을 잡은 세력의 영향이겠거니..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어의 특징과 죽은 언어 라는 설명이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과거 죽은 언어들 중에서 라틴어가 선택된 것에는 분명 다른 이유도 더 있었을 것이다.

소림이나 초원처럼 위험이 많은 환경에서는 집단 생활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그리고 집단 생활을 하면서 일부일처의 형태로 짝을 이루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인류 이외에는 없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짝을 만든 것은 인류가 처음이다. 집단생활을 하면서 짝을 만드는 것과 직립해서 두 발로 걷는 것 모두 다른 영장류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인류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어쩌면 집단생활 속의 일부일처제와 직립이족보행은 서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론해보면 일부일처의 사회에서는 음식물 운반 가설은 무리 없이 성립되고 직립이족보행이 진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류의 송곳니는 작아졌다. 이 사실은 인류가 일부일처제나 그와 유사한 사회를 만들었다는 걸 알려준다.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음식물 운반 가설은 직립이족보행이 진화한 이유 가운데 가장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p. 77)

원래 유인원의 세계에서 일부일처제는 없었다. 암컷을 두고 다투는 싸움에서 위협적인 송곳니는 무기였다. 일부다처 혹은 다부다처 사회에서는 누가 내자식인지 모르므로 수컷은 자식에게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직립이족보행을 시작한 고인류는 자유로워진 두손으로 음식을 가져가서 동족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다. 음식을 나눌 정도의 사이라면 내식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믿음은 일부일처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눠 먹는 가족이 기반이 된 공동체에서 송곳니라는 무기는 필요없어졌다. 직립이족보행을 시작한 고인류는 유일하게 발정기가 없어 다산이 가능하고 일부일처로 결속력이 강해지면서 공동체의 몸집을 불리게 된다. 아무리 약한 존재라도 모여있으면 생명의 위협을 덜 수 있었다.

삼림과 비교하면 초원은 먹을 것도 적고 육식 동물에게 공격당할 위험도 컸다.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아마 건조화가 진행되면서 삼림의 크기가 감소하고 유인원 가운데 나무타기에 능숙하지 못했던, 혹은 삼림에서의 생활에 능숙하지 못했던 개체가 초원으로 쫓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굳건한 발걸음으로 초원을 걸었고 초원의 음식물을 먹었으며 결과적으로 번영했다. (p. 121)

지금까지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뛰어난 것이 이기고 살아남는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자손을 많이 남긴 쪽이 살아남는다' 뛰어난 것이 이기고 살아남은 경우는 단 하나뿐이다. 뛰어났기 때문에 자손을 많이 남길 수 있었던 경우다. (p. 127)

초기 호모속의 분류는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이들 화석에서 커다란 진화의 흐름은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뇌가 커졌기 때문에 석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뇌가 커졌다는 것이다. (p. 137)

다같이 울창한 숲에 살때 유인원들은 대개 과일이나 식물을 먹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삼림이 줄어들면서 숲에서 약체들이 쫓겨났을때 그 약체들 중 잡식성만 살아남았다. 맛있는 과일이 아니어도 초원에서 육식동물이 먹다남긴 사체의 골수를 먹고 뼈에서 고기를 발라 먹는 종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초원의 먹거리를 발견하는데는 두발로 서서 멀리까지 보는것이 유리했다. 뼈에붙은 고기를 긁어내고 뼈를 부숴 골수를 먹으려면 석기사용이 유용했다. 그런 동물성 먹거리는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량을 감당하게 해주었다.

'직립 이족 보행을 시작하면서 사람의 손은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손으로 석기 등을 제작했고 뇌가 커졌다'라는 말도 있으나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니다. 인류는 직립 이족 보행을 시작한 후 약 450만 년 동안 석기를 만들지 않았고 뇌도 커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생긴 걸까?

뇌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인간의 경우 뇌는 체중의 약2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몸 전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약20~25퍼센트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뇌는 연비가 나쁜 기관이다. 이정도로 연비가 나쁜 기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계속 먹어야 한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은 고기이다. 따라서 계속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뇌가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석기가 필요하다. 석기를 만들게 되면서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뇌가 커진 것이다. (p. 139)

저자는 여기서 재미있는 의문을 제기한다. 고기와 뇌의 관계를 봤을 때, 그렇다면 왜 사자의 뇌는 인류보다 크지 않을까? 사자는 고기를 엄청 먹는데! 저자가 스마트폰 앱을 예를 들어 하는 설명이 재미있다.

스마트폰에는 여러 유료 앱이 있다. 매월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료 앱은 충분히 사용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큰 뇌는 내려받은 유료 앱과 같다. 뇌가 크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즉, 배가 계속해서 고파진다. 뇌의 크기가 제각기 다른 사자의 무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불행하게도 먹이를 전혀 잡지 못한 경우 뇌가 큰 사자부터 죽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뇌를 키우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 사용하지 않을 유료 앱은 내려받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제대로 앱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내려받는 것이 좋다. 초기 호모속의 경우 석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도의 뇌를 키우는 것은 이익이 나는 일일 것이다. 호모속은 조금씩 앱을 내려받아서 그때마다 매번 앱을 잘 구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자는 그렇지 않았다. 사자는 엄니를 날카롭게 만들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뇌가 조금 커져도 먹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자는 고기를 먹기 위해 엄니를 크게 만들었고 사람은 고기를 먹기 위해 뇌를 키운 것이다. (p. 140~141)

두 발로 서서 걷다가 걸어야 할 거리가 넓어지면 두 발로 뛰어야 했을 것이다. 많이 움직인 만큼 많은 먹거리를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갔던만큼 다시 돌아오기위해서라도 뛰어야 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달린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 였을 거라고 한다. 두발로 움직이는 것이 원활해지고 소화가 쉬운 고기를 먹으면서 장의 길이도 짧아지고 장이 짧아져 허리가 가늘고 길어지면 달리는 데 유리해지고... 진화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나 소화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면 한가한 시간이 생긴다. 따라서 사자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아주 많다. 인류에게 생긴 이런 한가한 시간은 (넓은 의미에서의) 지적 활동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석기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석기에 필요한 돌을 모으는 것도 시간이 필요했다. 영어 스쿨(학교)의 어원은 라틴어 스콜레(한가함)이라고 한다. 한가로울 때 학습과 같은 지적 활동이 일어난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였을 것이다. (p. 149)

라틴어의 매력은 어원의 의미에 있는 것 같다. 고대인들의 생각은 참 멋질때가 많았다.

현대의 삶은 참 바쁘다. 바쁜 와중에 필요와 욕망에 의해 발달하는 문명이 한가함 속에 발달한 문명과 얼마나 어떻게 차이가 날까 문득 궁금해진다.

호모 에렉투스는 먼 거리를 걷거나 달렸을 것이고, 따라서 체온을 떨어뜨리는 일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땀을 흘리는 것은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인류는 땀을 흘리기 위해 체모를 없앴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력한 증거가 없어서 확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p. 151)

사람의 체모는 잘 보이지 않지만 털 하나하나가 가늘고 짧아서 그렇게 보일뿐 침팬지의 체모 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더운 아프리카 땅에서 먼 거리를 초원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체온조절이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모의 변화는 화석에서 알아낼 수가 없다.

약30만 년 전이 되면 네안데르탈인의 특징을 지닌 형태의 화석이 출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12만 5천년 전의 온난한 간빙기에 접어들자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은 급증한다. 그러나 약4만8천년 전의 한랭화로 네안데르탈인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약4만 7천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들어가면서 다시 인구가 회복되지 못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4만 년 전에 멸종했다. (p. 193)

고인류 중에서 진화를 거쳐 (호모사피엔스 한 종만 남기 이전에) 최종적으로 번성했던 두 집단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였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일찍 추운지방에 정착했기에 한랭화 기후에도 강했다. 하지만 멸종했다. 왜일까?

네안데르탈인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아니 오히려 사람보다 석기를 더 잘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새로운 석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 사람이 더 뛰어났을 것이다. (p. 218)

사람과 네안데르탈인 사이에서 상징화 행동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하면 언어도 마찬가지로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추상적인 것, 예를 들면 '평화'를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떠올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사전에는 '나' 혹은 '고기'는 있어도 '평화'는 없었을 것이다. (p. 227)

문화가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필요하다. 누군가 멋진 발명을 해도 다른 사람이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발명은 퍼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발명은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그런 부분에서 사회적 기초가 약했던 게 아닐까? (p. 237)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 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했다. 도구와 불도 사용했고 언어도 사용했다. 뇌용량도 네안데르탈인이 더 컸다. 하지만 뇌가 크면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므로 더 많이 먹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수가 늘어나면서 생존지역이 겹쳐졌을 때 먹거리는 두 집단이 공유할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의 문명발달 속도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적응속도가 더 빨랐다. 먹거리의 유무는 멸종과 생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 중 아프리카인과는 DNA의 변이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반면 중국인이나 프랑스인과는 DNA의 변이를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난 후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했음을 의미한다. 교잡이 일어난 장소는 아마 중동일 것이다. 아프리카인을 제외한 호모 사피엔스 DNA의 약2퍼센트는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온 것이다. (p. 256)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난 이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세계로 퍼져나갔다. 단기간에 다양한 환경에 적응한 것에는 문화적 힘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종으로부터 도움이 되는 유전자를 얻는 것 또한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 진출에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p. 259)

호모 사피엔스가 의식적으로 네안데르탈인과 교잡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는데 있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유용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란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동족을 공격하고 살해하는 것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직접적으로 호모사피엔스가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생물의 생존과 멸종은 자손의 규모에 달려 있다. 따라서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네안데르탈인의 아이들 수보다 우리 아이들의 수가 많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 명의 여성이 많은 아이를 낳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서든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점이다. 추워도 더워도 우리는 태연하게 살 수 있다. 의복과 같은 문화적인 궁리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구는 넓지만, 그 크기는 유한하다. 유한한 지구에서 계속 인구를 늘려가기 위해서는 여러 환경에서 견디며 살 수 있어야 했다. (p. 265)

많은 생물들이 인간에게 서식지를 빼앗겨 멸종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수가 늘면 그만큼 유한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의 양이 줄어든다. 아무리 다정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p. 266)

호모 사피엔스 한 종만 살아남았다고 해서 진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를 짧게 살다가는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해서 진화가 멈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자연은 늘 변하고 있고 인류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진화는 수만년 수백만년 수천만년 에 걸쳐 이루어져 왔고 인간의 역사는 고작 몇만년 혹은 몇천년 정도일 뿐이다. 미래에는 AI가 대신 생각해주는 동안 인간의 뇌가 작아질 수도 있고 첨단 기계들이 대신 움직여주는 동안 인간의 몸에서 사용되지 않는 부분들이 퇴화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존이다. 고인류 중에서 현생 인류만 살아남았다는 것이 지구생명체 중에서 인류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한한 지구에 살면서 인류만 생각하다가는 인류도 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절멸의 인류사> 를 읽으며 고인류의 진화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앞으로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역사는 늘 현재의 삶에 가르침을 준다고 하는데, 역사 이전의 진화또한 큰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인류의 진화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생존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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