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분 안에, 당신은 완벽한 파트너와 매칭됩니다"

유전자로 완벽히 연결된 '단 한 사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까?

스릴러 소설인데.. 분명 스릴러 소설이긴 한데 여태 읽어왔던 스릴러 하고는 달랐다. 무척 달랐다.

대부분의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때 심장 쫄깃해하며 결말을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범인이 누군가?'라는 답을 찾고싶어서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니었다.

물론 이 작품에도 살인사건이 등장하긴 하지만, 중심인물들 중에 사이코패스 한명이 있어서 그 한명의 성격을 드러내주기 위한 배경일뿐 살인사건은 이 소설의 중심사건이 아니다.

'DNA 매치'는 생물학과 화학물질, 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맨디는 전혀 모르는 분야였다. 하지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이 서비스를 신뢰했다. 수십억 명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p. 11)

"결혼은 구식 제도가 될 거야. 내말 잘 기억해둬. 모두가 운명의 짝과 함께하메 되면, 누구도 다른 사람한테 무언갈 증명하기 위해 결혼할 필요가 없어질 거야" (p. 24)

사랑은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운명의 끌림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이 사람이 내 운명이다 싶었던 만남도 이별로 끝나기 일쑤고 이번엔 사랑이야 싶었던 감정도 인생을 함께 해주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감정의 끌림과 유전자적 호르몬의 끌림은 무엇이 먼저 일까?

어느 과학자가 DNA 의 매칭으로 세상에 나의 짝은 단 한명 뿐이며 그 한 명을 유전자 정보로 찾아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느 시대 이 DNA 매칭으로 내 반려자를 찾는 시간과 에너지를 단축시키고 더구나 확실하기까지 한 미래형 사랑이 일반화된다면?

과연 편리하고 좋기만 할까??

서로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면서도 정확히 똑같은 속도로 뛰는 걸 느낀 그 순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며 둘이 합쳐져 하나의 완전한 존재를 이룰 것 같았다. (p. 328)

맨디와 리처드, 크리스토퍼와 에이미, 제이드와 케빈(혹은 마크), 닉과 샐리(혹은 알렉스), 엘리와 팀(혹은 매튜)

이렇게 5커플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조금씩 전개시켜 나가면서 매칭된 커플의 서로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사랑' 의 접근법과 확신에 대해 무척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하면 할수록 예상보다 너무 묵직한 질문을 자꾸 던져주면서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맨디는 유산의 아픔과 남편이 매칭된 여자에게 떠나버린 이별의 고통속에 자신도 누군가와 매칭되었을지 의뢰해보기로 한다.

크리스토퍼는 스스로가 사이코패스인걸 알고 있고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색다른 여자를 만나보기로 한다.

제이드는 찌질하고 미래가 없어보이는 자신의 젊은날을 이대로 소진해버리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험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닉은 샐리와 결혼하고 싶고 서로에게 완벽한 한쌍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모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검사를 해보라는 샐리의 요청을 수락한다.

엘리는 회사를 키우느라 연애를 할 여력도 없었고 회사를 키우고 나니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날 수 없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칭을 해본다.

DNA 매칭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하고 난 후, 진짜 자신의 짝을 찾아가겠다며 헤어진 커플이 부지기수였고, 나이와 성별 혹은 그외의 조건들이 얼토당토 않은 상대와 맺어진 난감한 경우들이 발생했으며, (상대방이 아직 DNA 정보를 등록하지 않은 경우나 죽었거나 등등의 그외 경우로 인해)매칭서비스로 짝을 찾지 못해서 진정한 짝이 아닌걸 알면서도 사랑할 존재를 찾아야 하는 2등시민들은 열패감에 시달려야 했지만 'DNA 매칭 서비스' 는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신뢰도를 높여가는 중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DNA정보를 검색해서 자신의 짝을 찾자마자 불꽃같은 사랑을 확신하는 시대에 '사랑'이란 무엇일까?

"전 세계에 검사를 받고 자신들이 매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가 수백만 쌍이나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랑했기에 서로의 곁에 남았죠. 난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 종교적 증오를 박멸 직전까지 몰아 넣었어요. 매치는 성적 지향이나 피부 색깔, 어떤 신을 섬기겠다는 결심 등을 인식하지 않으니까요. 매치는 온갖 신앙과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가능하리라고 생각도 못 했던 방식으로 단합시켰어요. 이 세상을 덜 적대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당신은 뭘 했나요?"

"하지만 당신은 '그들' 과 '우리' 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만큼 많은 사람을 분열시켰어요. 사랑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관계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된 나머지 사람들을 나눠놓은 거죠. 당신이 한 짓과 히틀러가 유대인들에게 한 짓이 얼마나 비슷한지 모르겠어요?" (p. 423)

맨디가 리처드를 만나러 찾아갔을 때 그 첫 장소는 그의 추도식을 하는 교회였다. 하지만 맨디는 리처드의 아이를 임신한다.

사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인 크리스토퍼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에이미는 경찰이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사랑에 당황하게 된다.

런던에 사는 제이드가 호주에 사는 케빈과 매칭되었을때 만날 수 없는 먼거리를 제이드가 날아가서 도착을 알렸을 때 케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샐리를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던 닉이 샐리의 반강요에 밀려 매칭을 의뢰후 받은 결과는 그의 성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렸다.

사설경호원을 옆에 대동해야만 외출할 수 있던 엘리가 혼자 한적한 식당에서 팀과 평범한 데이트를 한날 엘리는 사랑에 빠졌다.

DNA매칭으로 맺어진 행복한 커플도 있겠지만 그러한 서비스가 세상에 등장했을때 벌어질 수 있는 온갖 혼란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을 읽고 있다보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과연 언제인지 무엇때문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읽을수록 무거워지는 마음을 부여잡고도 궁금해서 궁금해서 다음 페이지를 읽어야만 했던 이 소설에서 피식 웃음이 났던 부분은 의외로 사이코패스 크리스토퍼 관련한 에피소드에서였다.

"소설 취향까지 섬뜩하네" 에이미가 말을 이었다. "<한니발 라이징>, <아메리칸 사이코>, <케빈에 대하여>, 도널트 트럼프 자서전..." (p. 137)

크리스토퍼가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봤을 때는 20대 초반이었따.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크리스토퍼가 정상이라는 뜻이었다. 그저 다른 형태의 정상이었을 뿐이다. (p. 164)

최근 영미권 책을 읽을 때 트럼프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소설이나 사회서를 읽어보긴 했었는데, 사이코패스 가 읽는 섬뜩한 취향의 책중에 그 자서전이 포함되어 있다는, 심지어 다른 책들 처럼 < > 표시도 안해주는 무심한 언급과 사이코패스가 세상에 자기자신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서 자신을 정상으로 인정한다는 그 비약이 트럼프를 이런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어서 심각하게 읽던 도중 혼자 막 웃었다. 지금 트럼프처럼 수도없이 욕먹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여하튼 이 소설이 알려주는 '과학이 만들어준 미래형 사랑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력' 은 디스토피아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토피아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애매한 딜레마들을 잔뜩 풀어놓는다.

매칭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않는 사람, 매칭된 사람을 찾아 지금의 사랑을 버리는 사람과 유지하는 사람, 매칭되었기에 서로에 대한 확실한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과 매칭서비스 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 매칭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한순간 불꽃 튀는 사람과 미적지근한 사람 그 외에도 '사랑'을 '운명의 상대'를 찾는 방법이 감정이냐 과학이냐에 따라 시간과경험이냐 유전자와 호르몬이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책도 마음도 묵직했다.

소설을 읽을때 문장이 남는 경우가 많았다. 읽으면서 밑줄을 그어가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여러번 다시 읽어보게 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문장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다. 밑줄그은 문장은 한줄도 없었다. 하지만 커다른 물음표를 남겨주는 소설이었다. AI 가 어디까지 인간과 비슷해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대에,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을 감정과 창의성등에서 찾고 있는 시대에, '사랑' 은 얼마나 인간다운 감정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의미있는 소설이었다.

"매치가 제대로 되었거나 제대로 되지 않았을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야 할 거예요. 가끔은 울타리 너머의 풀밭이 더 푸르지 않을 때가 있으니, 우린 우리가 속한 곳에 머물러야 해요. 그리고 가끔은 도박을 하면서 최선의 결과가 있기를 바라야죠"

"대표님이 원하는 평결을 받지 못하시면요? 그땐 어쩌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당신이 잘 알죠. 버튼을 누르고, 세상이 다시 실수를 저지르게 하세요" (p.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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