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소설이었다.
판타지처럼 읽히지만 판타지가 아닌 것을 알겠고 역사서처럼 읽히지만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역사에 존재했을 것이 분명한 시대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판타지와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도 넘나는 초원의 이야기였다.
초원의 역사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판타지 처럼 다가오는 역사의 영역인데 다른 문명의 역사에 기록된 작은 편린들 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늘 궁금해지곤 한다. 역사를 좋아하다 보니 이런저런 역사서들을 찾아 읽는 편인데, 서양사건 동양사건 늘 유목사에서 막히곤 한다. 문자를 갖지 않았고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나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리며 여기저기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유목민족,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설로 접하고 나니 새롭고 신기한 기분이다.
간단한 지도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선 대립적인 두 나라가 등장한다. 나하 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북방엔 초원민족의 초나라가 있고 남방엔 농경민족의 단나라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끝쪽에 나하의 시원이 있는 백산이 있고 백산 아래 작은 나라? 월 이 있다. 초나라의 말은 신월마 이고, 단나라의 말은 비혈마 이다. 대화가 거의 없이 3인칭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인간의 서사와 말의 서사가 교차되면서 색다른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앞에> 초 와 단 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본문이랄 수 있는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에서 좀더 세세하게 풀어주는데 묘하게 몰입이 된다.
초나라는 유목민들의 나라다. 떠돌아다니는 민족이었기에 포로는 죽였고 늙인이와 병든 자는 두고 떠났으며 식량이 모자라면 아이와 젊은이가 먼저 먹었다. 초는 산 자들의 나라였다. 건물을 짓지 않았고 문자를 멀리했다. 모든 지식은 구전으로 전해지고 몸으로 익히게 했다. 군대는 진지가 따로 없었고 대오는 헐거웠다. 하지만 빠르고 치고 빠지는 전술에 능했고 전투복이 따로 없었다. 동물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자연에 순응했다.
단나라는 정착민들의 나라다.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는 민족이었기에 지켜야 할 것이 많아 성을 쌓기 시작했다. 문자를 숭상했고 많은 것을 기록하려 했다. 기록이 쌓이고 쌓일수록 의례가 늘었고 무덤은 커져갔다. 군대는 밀집대형으로 움직였고 갑옷으로 무장했으며 단체행동을 중시했다. 단의 역사는 대부분의 문명사 기록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과 비슷할 터인데 그렇게 기록된 역사들은 사실 그리 믿을만 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