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주고 받는 날이 아닌, 서양 명절인 '진짜'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기원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에서 결혼을 하려면 황제의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황제의 허락 없이 남녀는 이어 주다 순교한 성직자 성 발렌티누스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중략)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순교한 성직지가 과연 누구냐는 것. 밸런타인 또는 발렌티누스라는 이름의 순교자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p. 306)
엄밀하게 따지면 부활절은 춘분이 지난 뒤 첫 번째 보름달이 뜬 다음의 일요일로 정해져 있다. 이런 것만 봐도 부활절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크리스마스가 실제 예수가 태어난 날이 아닌 것처럼. 부활절이 이렇게 복잡한 날짜로 정해진 것은 종교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p. 310) 어째서 춘분이 기준이 되었을까? 부활절의 배경도 크리스마스와 비슷하다. 이교도의 명절을 기독교의 교리와 융화시키면서 날짜가 정해진 것이다. 부활절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 '이스터'는 고대 앵글로 색슨족의 여신인 '이스터'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여신은 봄과 다산을 상징했다. 그래서 이스터 여신에게 드리는 축제는 봄, 특히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에 열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이방의 축제가 교묘하게 결합된 기념일인 것이다. (p. 311)
흔히 연등을 '연꽃 모양의 등'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불을 밝힌다는 뜻의 연(燃)이 연꽃을 나타내는 한자 蓮과 음이 같이 생긴 오해다. (p. 313) 연등회는 통일 신라 시대부터 국가적인 행사였다. (p. 314) 그런데 1월과 2월에 열리는 연등회 행사를 굳이 4월에 다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중략) 4월 초파일 연등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3세기 무신 정권 시기 권력을 잡은 최우가 자신의 집에서 개최하면서부터다. 스스로 '국왕 위의 실력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기존의 연등회와 별개의 행사를 벌인 것이다. (p. 315)
핼러윈은 원래 기독교의 만성절(모든 성인의 날)전야를 의미했다. 만성절은 축일이 없는 모든 성인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중세 기독교에서는 9세기경부터 만성절을 11월1일로 정해 기려왔다. (p. 321) 그런데 왜 이날 유독 유령 복장을 하고 축제를 벌이는 걸까?(중략) 켈트 족은 일년이 열 달인 달력을 사용했는데,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새해를 준비하는 날인 10월31일을 기념해 축제를 벌였다. 고대 켈트족은 이날 지하 세계의 문이 열리며 악령과 마녀들이 현세로 올라온다고 믿었는데, 그들을 속이기 위해 사람들도 악령과 비슷한 모습으로 분장했다. 이런 전통이 기독교에 흡수되면서 만성절 전야에 벌이는 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이교가 융합하여 만들어낸 축제다. (p. 322)
고대 로마에서는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했는데, 미트라의 생일이 12월25일이다. 게다가 당시 12월 25일은 밤이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즉 동지이기도 해서 이즈음 로마에서는 농경신 사투르누스에 대한 제사가 열렸다. 여러 의미로 축하하는 날이었던 셈이다. 이때를 즈음하여 축제가 계속되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가 빠른 시일 안에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토착 종교의 축제일을 받아들여 통합하는 것이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비밀이다. 결국 크리스마스는 초기 로마 교회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발명품'인 셈이다. (p. 333) 1949년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탄신일'이라는 이름으로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p.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