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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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통찰로 아버지의 한 생을 우뚝 그려낸 신경숙의 신작 장편소설

가족의 나이 듦을 비로소 바라보게 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좋아하는 소설가들이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도 꼽으라면 나는 공지영 과 신경숙을 꼽을 것이다. 권여선, 정유정, 김혜진, 구병모 등등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신경숙과 공지영은 특별하다. 작가 자신의 삶과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라서 허구와 삶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닌지 공지영 작가가 작년에 낸 신작 '먼 바다' 의 작가 후기엔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소설은 당연히 허구이다' 라고 적어야 할 정도다.

두 작가 모두 나름의 논란이 좀 있었던 작가들이다.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문체가 워낙 특별하다 보니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팬심이 그닥 흔들리진 않았더랬다. 공지영의 작품에선 '투지'가 느껴진다면 신경숙의 작품에선 '물기'가 느껴지곤 했다. 불끈불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품도 좋고 눈물인듯 빗물인듯 마음 한켠을 촉촉하게 적시는 작품도 좋고 그랬다. 이번 작품에서도 읽는 내내 때론 눈가가 때론 마음이 젖어들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작가에겐 이런 아버지가 계셨구나... '엄마를 부탁해' 속 엄마도 '아버지에게 갔었어' 의 아버지도 참 따듯하시던데... 작가에겐 참 좋으신 부모님이 계셨구나 싶어서...

여동생이 얼른 언니가 그런 것에 신경 쓸 마음이 아니잖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 것에, 라는 여동생이 남긴 말의 여운이 책상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게 했다. 그렇게 무력감 속에 두어시간을 앉아만 있다가 나는 J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고 노트북의 전원을 뽑아 가방에 담고 가족 대화방에 나의 J시행을 알렸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내가 아버지에게 가 있겠다, 고 했다. (p. 11~12)

육남매의 네째이고 작가인 화자는 어린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부모를 비롯한 가족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채 몇년을 혼자 자신의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다. 남매들의 가족단톡방에서 부모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이 오갈때도 무심하게 흘려보내곤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서울 병원에 입원하시고 시골에 아버지 혼자 남아 계시는 상황이 영 마음에 걸려서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그렇게 내려간 고향집 마당에서 본 아버지는 혼자 우두커니 선채로... 울고 계셨다.

언젠가 신문에 '나의 아버지'라는 에세이를 청탁받아 쓴 적이 있었는데 큰오빠는 그것도 패널로 만들어 책장 앞에 세워 두었다. 큰오빠는 마냥 기쁜 얼굴로, 네가 쓴 글을 아버지에게 읽어드렸다,고 했다. 나는 내 가족이 나의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부끄럽다,는 것이 가장 근접한 마음일 것이다. 함께한 어떤 시간을 내 식대로 문장으로 복원해서 내놓은 일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짐작해보면 아찔하고 난감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두렵다. 사라져도 무방할 어떤 시간들이 내가 쓴 문장으로 인해 언어로 채집되어 존재하게 되는 것이. (p. 47)

소설가는 허구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쓰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런 작품 속에서도 작가 본인의 진심이 드러나는 문장들이 있을때면 무척 반갑곤 하다. 그런 진심은 작가 특유의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신경숙의 솔직함은 내성적이고 부끄럽지만 잔잔한 울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진심어리게 작품에 스며들게 하는 작가들이 참 존경스럽다.

아버지가 돌아누운 벽 위쪽엔 나와 큰오빠를 시작으로 내 형제들이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는 아마도 큰오빠의 사진을 시작으로 해서 막내의 사진까지 일별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 등 뒤에서 학사모를 쓴 큰오빠의 사진을 올려다봤다. 내 사진이 걸려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는 비어 있다. (p. 61)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요청을 거부했다. (p. 62) 아버지는 동생들에게 사진을 받아 벽에 걸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 자리를 비워놓았다. (p.64) 큰오빠가 일갈을 했다. 그것이 아버지 인생 아니냐, 너는 글을 쓴다는 사람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 아버지 마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무슨 글을 쓴다고…… 아버지 인생? 우리들 학사모 쓰고 찍은 사진이? (p. 65)

나이든 어르신이 사시는 집에 가면 사진이 많이 걸려 있곤 하다. 내가 어릴때 갔던 시골집에도 온갖 사진들이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흙벽에 누렇게 뜬 벽지가 그 집의 역사를 알려준다기보다 그 많은 사진들이 그집에서 살아온 누군가의 삶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자꾸만 늘어간다. 어르신들이 나이드실수록 자식들이 사진은 자꾸 늘어만 간다. 그것이 당신들의 인생이신 걸까...

나는 니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거 보는 게 좋았고나. (p. 67)

아버지가 니가 학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아버지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할 뻔했다. 나는 하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쓰는 것 같아요,라고. (p. 91)

1933년생이신 아버지는 열네살에 전염병으로 양친을 잃었다. 아직 소년인 나이에 종가의 장손으로 집을 지키며 제 몫을 해야 했다. 그리고 열일곱살때 전쟁이 터졌다. 삶에서 가장 혹독했던 시절은 바로 그 6.25때였다. 전쟁은 많은 것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졌고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였다. 점점 늘어가는 자식들 입에 먹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쉬는 철 없이 온갖 일을 해야 했던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큰소리 한번 낸적 없는 온화한 성품의 사람이었다. 어린 딸을 잃은 당신의 큰딸이 홀로 고통에 빠진채 오지말라고 외면할때 멀리서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던 그런 아버지였다. 이심전심인건가... 이런 아버지 밑에서 육남매는 모두 착하게 잘 자랐다. 참 착하게... 야무지게... 잘... 자랐다...

아버지는 헌이는 걱정할 것 없다, 헌이는 약속을 지킨다, 헌이가 그렇게 말했으면 맞는 말이다,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 긍정적인 말들의 영향은 적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말대로 걱정을 끼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벅찬데도 약속한 일은 지키려고 했다. 아버지가 그리 말했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알면서는 타인에게 틀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p. 137)

당신의 삶이 고됐는데도 자식들에게 험한 소리 한번 하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에 대해 그동안 아는 것이 너무 없었음을 고향집에 내려와 아버지와 단 둘이 지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너무나 야위고 쪼그라들어 계셨다. 수시로 눈물을 흘리셨고 밤이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지시곤 했다. 아버지의 몸은 잠들고 싶으나 뇌가 잠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무심코 열어본 창고방에 가득 쌓여있는 홈쇼핑택배 박스들, 뜯지도 않은채 그대로 있는 그 박스들을 보며 마음한켠이 아려오긴 했으나 그보다 더 진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그 박스들 옆 상자에 담겨 있던 편지들이었다.

바람불고 눈 내리는 겨울밤, 마을 사랑방에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귀가가 늦는 아버지 밥상에만 구운김을 내놓았다. (중략) 뭐 하느라 한밤에 다니느냐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윗목에 차려놓은 밥상의 상보를 걷어 아랫목에 묻어놓은 밥그릇을 상 위에 올리고 기름을 발라 사각으로 자른 구운 김을 접시에 담아 아버지 밥그릇 옆에 놓았다. 고소한 김 냄새가 겨울밤 방 안에 퍼지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아버지 밥상 옆으로 하나둘 다가가서 빙 둘러앉았다. (중략) 아버지는 김 한장에 밥을 얹고 여며서 쪼로록 앉은 우리들 입에 차례로 넣어주었다. (p. 193)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겨울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김에 싸준 밥을 받아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p. 194)

다복하고 따스하고 행복함이 느껴지는 이 푸근한 장면엔 사실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음을, 아버지의 인생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참으로 절절했던 장면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읽고는 그때 행복했냐?고 물었다.

예, 아버지.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p. 194)

하지만 무섭기만 했다면 어찌 살아냈겠는가... 무서웠지만... 무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랬을까. 아버지도 엄마처럼 우리의 먹성이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힘이 되기도 했을까. (중략) 아버지가 고백처럼 젊은 날에 우리들의 먹성이 무서웠다고 한 말은 내겐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아버지의 소년 시절을, 아버지의 청년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염병으로 이틀 사이로 부모를 잃은 마음을, 전쟁을 겪을 때의 마음을, 얼굴 한번 보고 엄마와 결혼하던 때의 마음을, 큰오빠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를, 짐작이 되지 않았다. (p. 195)

어디 먹는 것 뿐이었겠는가, 자신의 삶이 고되다는 것을 알면알수록 자식들에게 그런 삶이 대물림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커졌고 그렇게 또다시 뼈골빠지게 자식들 가르치는 것이 온 생애의 목표가 되었을 것을...

자식들이 하나둘 학교에 가고 다시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마침내는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지.

두렵고 무섭지 않은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을는지.

(중략) 무섭고 두려운게 많은 아버지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과 대적해왔다는 것도. 아버지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말할 것이 없제, 였다. (p. 196)

나이든 아버지와 지내며 아버지의 인생을 처음으로 되짚어보게 되고 그렇게 '아버지의 내면에 도사린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엄마보다 아버지를 다정히 여기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한 말은 늘 한가지였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업다. 하늘 아래 니가 건강하면 그뿐이다. (p. 229)

아버지의 지난 삶을 알게 되면서 다른 가족들에게도 물어보게 된다. 아버지에 대해 얘기를 해보라고 하니 각자 풀어놓는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하나 모두다 처연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에게도 청춘은 있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듯이...

왜 안 떠나셨어요?

못 떠났제.

왜요?

나는 집에 왔어야 했으니까. (p. 264)

옛날엔 그랬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사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던 그런때가 있었다고. 그 옛날이 사실 얼마 오래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정말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옛날일수도 있지만 지금과는 다른 결의 시간임은 분명하다. 나보다 가족을 먼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먼저인 그런 시간...

자네 아버지가 내 안부를 묻기만 하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던 시간들을 나는 이해하네. 그렇게 흘러갔어도 내가 뭐라겠나. 그런데 어느해인가 자네 아버지가 대학생이라던 셋째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자. 그때는 이미 자네 아버지나 나나 나이를 한참 먹어버려서 아무것도 문제가 안 되더만. 무엇 때문에 그리 오래 만나기를 꺼렸는지 허망하기조차 했네. 자네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 왔구나, 했어. (p. 297) 아니 정확히는 숨겨달라고 했네. 혈기만 왕성해서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는 놈이 날뛰다가 잡혀가서 고문당하고 얻어맞아 허리까지 부서지고 수배 중인데 이대로 또 잡혀 들어가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며. (p. 298) 부자가 말을 안 섞었어. 자네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입을 달싹도 안 했네. 아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면 자네 아버지가 일어서버리더만. 한번은 내가 자네 아버지에게 왜 아들하고 말을 안 하느냐고 물으니 머리통이 다 큰놈이라 말을 섞어봐야 이길 수가 없다고 했어. (p. 299) 아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세상에 분노가 치밀어서 죽을 것 같다고. 그러니 알아듣고 싶지 않고 그래야 자기가 버틸 수 있다고 했어. 전쟁도 지나갔는디 이 시간도 지나가지 않겠냐고 그때까지는 아들을 지켜주는 것만 생각할란다고 했어. (p. 300)

한문은 유창하게 써도 한글 쓰는 것은 쭈뼛거리는, 학교한번 못가본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듣고' '세상에 분노'할줄 아는 멋진 아버지였다. 요즘에도 이런 아버지는 잘 없지 않을까... 함께 분노해주기 보다는 한껏 야단치고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채 반대의 말만 쏟아붓는 아버지들이 더 많지 않을까... '그런 아버지가 어느 시절부터인가 잠을 자지 못하고 몽유병 환자처럼 집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느라 피로에 절어 혼절하는 상태가 될 때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p. 374)

수면장애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 전에 아버지의 상황과 병력을 세밀히 적어야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설문지의 간단한 내용을 작성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자는 사람이나 알수 있는 내용도 있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잠 습관에 대해 묻다가 나는 아득해지곤 했다. 엄마의 기억에 의하면 아버지가 밤에 자다가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시작한 것은 삼십년이 지났고, 격한 잠꼬대를 시작한 것은 이십년은 지난 이야기이며, 자다가 일어나서 마당을 서성거리다가 헛간에 들어가는 일도 십오년전부터 있어온 묵은 것들이었다.

왜 그런 말씀을 이제야 하세요?

너나 이제 아는 일이지…… (p. 376~377)

의사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아버지의 몸은 늙고 지치고 피곤한 상태라 해가 지면 자고 싶어하지만 뇌는 깨어 있는 거라고 했다.' '오래 방치해온 수면장애로 아버지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도 했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도 동시에 겪고 있다고.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지금 알아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초기라면 우울증과 불안, 공황장애 때문에 수면장애가 온 것인지, 그 반대인지를 관찰해서 치료법을 찾았겠으나 지금은 분리해서 관찰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서로 엉겨붙어 있다고. 단기간에 치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p. 377)

아버지는 여든이 넘은 노인이었다. 첫째가 환갑이 넘어 은퇴를 했으니 곧 노인이 노인을 모시게 될 그런 나이였다. 그 긴 인생의 풍파가 밤이면 뇌속에서 깨어나 때론 일제치하로 때론 전쟁통으로 때론 최루탄 매캐한 서울한복판으로 아버지를 불러내고 있었다.

뭐한다요?

호박 속 파고 있는 거 안 보인가? 가기 전에 호박 버무리나 해 먹고 갈라고.

먹고 싶은 거 있으믄 해 먹고 가야제.

내가 언제 죽겄는가?

그것을 내가 어찌 안다요.

안지 살기 싫은디 안 데려가네.

뜻대로 되는 일인가.

넝뫼 양반은 좋겄소. 이도 다 해넣으니 튼튼한 이를 하고 갈 수 있응게.

염색해야 쓰것소. 언지 갈지도 모르는데 그리 허연 머리로 갈라요?

해야제.

늘 깨깟하게 하고 있어시오. 언지라도 갈 수 있게. (p. 400)

'산보를 나갔다가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대화가 매번 이런식이었다. 당장 내일이라도 만날 수 없는 이들이 나누는 것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하게 나누었다. 아버지가 이 치료를 마쳤을 때 신작로에서 만난 왕림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향해 인자 지대로 고기도 깨물어보다가 가소,했다. 아버지는 그리야겠네,했다. 말을 건네는 사람도 대답을 하는 사람도 덤덤했다.'(p. 402)

시골일수록 평균연령이 높아진지 오래다. 한번 빈 집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마을 주민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곳이 여러 곳이다. 언제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누군가 가면 더는 누구도 오지 않는 마을... 그런 나이의 삶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살아냇어야,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p. 416)

출판사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에 당첨되어 가제본으로 읽은 작품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장편소설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작가 특유의 좋은 문장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뒤로 갈수록 구성력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어찌보면 한국적 신파라고 진부하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좋았다. 그리고 작가가 다시 자신만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와주어 참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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