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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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

문학의 장르를 크게 시, 소설, 극, 산문 으로 나눌 수 있다면 이 중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한 분야는 '시' 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는 좋아하진 않지만 읽어서 이해안 될 것이 없는 글이고, 영화나 드라마 또는 연극으로 보는 극을 대본 책으로 보는 재미도 조금은 느껴본 적 있고,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지칠때면 소설을 찾아 읽는 나로서는 나름 문학을 즐기면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는 정말이지 한번도 제대로 이해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시란 이해가 아닌 영역일텐데 이해하려고 들어서 더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인 열명의 에세이 열 편을 담은 이 작은 책은 시처럼 읽히는 이 얇은 책은 읽는 내내 머릿속을 부옇게 만들곤 했다. 일상을 담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시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는 듯 했다.

지금의 나는-기억은 좀 군데군데 없지만-좋아하는 일을 자주 하고자 노력하는 잔잔하게 망가진 인간이다. (p. 19)

책 제목에 '건강'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첫번째 글 [굴러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 김복희] 에서 시인은 이미 건강하지 않은 '망가진 인간'이고

나는 삶이 기쁘지 않아. 엄마에게 고맙지 않아. 마음 뿌리를 다 뽑을 작정으로 털어놓고 나면 슬픈 만큼 흡족했다. 그는 묻지 않고 눈앞의 나를 다 본다. 나는 그에게 받아들여진다. 언제나 그냥 받아들여진다. (p. 40)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몸도 마음도 망가지려할때 [몸 맘 마음 - 유계영] 속 엄마처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가족이 있어 시인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끝이 있다는 느낌, 막다른 벽에 부딪힐 거라는 느낌은 좋다. 그 또한 나의 생활이고 나의 건강이다. 끝이 있다는 감각은 건강하다. 테두리에 대한 감각도 건강하다. 테두리 혹은 사방의 벽을 감각하며 가방을 걸어서 여행을 가지 않기. (p. 59)

일상을 여행처럼 표현한 [여행 가방 - 김유림] 에선 막막한 여행보다 일상의 감각에서 건강함을 찾다가도

그래. 그날 내가 A씨의 전화만 받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 A씨는 내게 그랬다. "그래도 고유한 건강함에 대해 쓰면 독자들도 흥미로워할 거예요" 당시 나는 수긍했다. 그러나 쓰려고 보니, 그 전화를 받고 수긍한 내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한 지점을 찾으려고 12월 내내 분투했지만 도무지 나는 건강하지 않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략) 니체이자 내가 말했듯이 나는 비극을 긍정하기로 했다. 건강하지 않음을 밝힘으로써, 그것이 건강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해 쓴다. (p. 66)

이 책의 시작을 알게 해준 전화 한통을 통해 [고독한 소호 방 - 이소호] 의 '쓰는' 행위는 시인의 건강하지 않음을 오히려 상기시킨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이 알 수 없는 사랑이 나를 생활하게 한다는 것. 이 사랑이 나의 살과 기립근을 이뤄 날 일으키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을 때에도 아주 혼자는 아니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아주 먼 길을 걷는 데에도 끄떡없게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랑이, 나의 생활과 건강을. (p. 101)

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되씹는 글이 [사랑의 정체 - 손유미] 시인의 사랑이 가족의 결속력을 확인시켜준다기 보다는 시인의 나른함에 늘어지다가도

완벽함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 그저 스스로 세운, 자신만의 기준일 뿐이다. 열정은 원동력이 되어 움직이게 하지만, 인간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노동과 학업 또한 우선순위를 매긴다. 지혜롭게, 슬기롭게, 짜릿하게, 자신있게.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건강' 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p. 119)

5잡러라는 바쁜 시인의 생활을 통해 [미안하지만 아직 안 죽어 - 강혜빈] 같은 번아웃된 시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겨우 내 방과 화해하고, 그 안에서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잘못된 곳에 와 있다고 느끼지 않고, 이제 막 여기가 나라는 사람의 거푸집임을 인정하는 중이었다. (p. 139)

누구보다 외로울 것 같은 시인의 삶이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 박세미] 처럼 평화로워 보이다가도

나는 반복적이고 건강한 삶만이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삶에는 어쩔 수 없이 구멍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이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철저하게 감추었거나 메우려 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일 테다. 그것을 없애려 하는 것이야말로 병적인 태도는 아닐까. 오히려 삶의 상처와 결여가 있는 삶이 더 건강한 것은 아닐까. 삶이 주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그로 인해 병이 있는 사람, 느린 사람, 그보다 더 느린 사람, 그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자들이다. (p. 157)

[나의 안/건강한 삶 - 성다영] 에선 건강한 삶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기도 하지만

그 사랑의 색깔이 나를 물들인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p. 174)

[사랑의 색채, 단 하나의 색깔 - 주민현] 시인에게 건강은 결국 '사랑' 으로 회귀된다.

그러나 나는 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원망하고 증오하는 사람들과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 아니야, 나는 좋아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 늘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으로 건강했고 아무 마음을 곁에 두지 않고도 혼자 생활할 수 있었다. 엄마와의 관계조차 거부하고 싶었던 내게 시는 더 완벽한 고립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p. 188)

시인은 고독을 자초하지만 결코 사랑없이 살 수 없구나 싶었다. [새끼의 마음에서 - 윤유나] 새끼의 마음을 유지하고 싶고, 반려동물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고,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떨어지고 싶어도 시인의 건강 생활 비법은 결국 '사랑'이었다.

'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는

다친 마음을 시처럼 쓴 글을 지친 몸 옆에 누운 기분으로 읽게 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건강하지 않은 생활을 보여주는 건강 에세이 였다.

그러나 또 어찌 알겠는가? 시처럼 모호하고 뿌연 글들이 누군가에겐 자신의 생활건강을 돌아보게 해줄 진한 공감이 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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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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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

인간이 환경을 생각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만큼 출간된지 60여년 밖에 안된 <침묵의 봄>은 (환경학의) 최고의 고전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 <침묵의 봄>은 여전히 읽히면서 그 어떤 환경학 책보다 큰 영향력을 지금도 발휘하고 있다. 나도 이 오래전 환경에 대한 책을 몇년전에서야 읽으면서 여전한 무지에 놀라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마냥 옳다고만 여겨지던 '환경주의가 지구를 망친다' 니 '지구를 위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거라니 이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두툼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침묵의 봄>이래로 가장 탁월한 업적'이라는 문구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난 30여 년을 환경 운동가로서 살아왔다. 그중 20여 년은 기후 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에 관해 조사하고 글을 쓰는 데 바쳤다. 내 목표는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편적 풍요를 누리게끔 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중략) 환경과 기후 문제에 관해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중 상당수는 잘못되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야 한다. 환경 문제를 과장하고, 잘못된 경고를 남발하고,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조장하는 이들은 긍정적이고 휴머니즘적이며, 이성적인 환경주의의 적이다. 그런 주장에 신물이 났기에 나는 이 책을 쓰기로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사실, 주장, 논증은 현재 이용 가능한 최고의 과학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p. 28) 마지막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책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윤리관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혹자는 그것을 주류 윤리관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세속적 형태건 종교적 형태건 휴머니즘을 옹호한다.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이 곧잘 취하는 반인간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p. 29)

저자는 환경운동가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기에 환경문제에 관한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주류를 반박한다. 아주 용감하게. 읽는 내내 저자의 직설에 감복했고 저자가 제시하는 증거들에 감탄하며 왜 그동안 이런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환경문제는 정치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식의 그런 얘기가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그 반대입장을 취한다. 산업이 발달해야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관계를 감추고 싶어하는 자들에 의해 우리의 눈에는 가리개가 덧씌져 있었음을 책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는 기후변화로 멸망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가 사실이며 인간이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호헨카머 선언'에 실명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동의한 내용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연재해 자체가 심각해져서가 아니라, 인력과 자원이 유익하지 못한 방향으로 사용되어서 자연재해로 인한 비용이 증가한다는 데도 동의한 것이다. (p. 55)

기후 변화가 수십억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문명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의 어떤 보고서에도 그와 같은 종말론적인 이야기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랄 것이다. (p. 58)

'기후 양치기'들이 있다. 환경 문제를 떠들며 관심이 쏠리는 것을 즐기는 양치기 소년 같은 이들이다. (p. 69)

상식처럼 여겨지는 기후나 환경관련 뉴스들의 이면은 따지고 들어갈수록 과학적 토대가 부족했음을 오히려 왜곡해왔음을 저자는 꼼꼼하게 지적한다. '기후 양치기'들이 주로 하는 주장들을 살펴보자.

'지구의 허파가 불타고 있다' 라고 하지만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가 아닐 뿐더러 아마존 열대우림은 위기에 처해 있지 않고 건재했다. 저자는 아마존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에 분노를 터뜨린다. '삼림 파괴와 화재 증가는 근본적으로 경제 성장을 원하는 대중의 요구에 정치인이 부응한 결과다. 자연환경에 대한 관심 부족 탓이 아니다. (p. 97)' 라며 '브라질은 인구 중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다. (p. 98)' 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서양인들의 역사를 돌아볼 것을 주장한다. '21세기 환경주의자들은 '야생'이라는 말을 긍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과거에는 야생이란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략)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숲을 없애는 일을 악이 아니라 선으로 여겼다. (중략) 숲은 야생의 땅과 죄악이 꿈틀대는 곳이었다. 농장과 목장을 만들기 위해 숲을 개간하는 것은 신의 과업을 이행하는 일이었다. (p. 101)' 그리고 이렇게 농장과 목장을 만들어 부를 쌓은 유럽은 산업의 발달로 지금의 현대문명을 이루었다. 후발주자인 저개발국가들이 뒤를 이어가는 발달의 과정을 이제 환경문제로 바꿔서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말 반개발주의, 그러니까 반자본주의에요. 농업 비즈니스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죠. 최소한 브라질 농업만큼은 증오하는 게 확실합니다. 같은 기준을 프랑스나 독일에 적용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p. 105)' 자신들이 잘먹고 잘살게 된 상태에서 여전히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생존의 문제를 환경때문에 막아서는 것, 그것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억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린피스의 환경 운동은 값싼 브라질산 농산물을 유럽 시장에서 몰아내고픈 유럽 농부들의 목적의식과 잘 맞아떨어졌다. (p. 107)' 저자가 제기하는 의문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존 화재 연기를 연막탄 삼아 보호무역주의를 휘두르려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p. 109)' 이러한 내용이 놀라운가?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언론의 관심이 플라스틱에만 쏠리는 것은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기후 변화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이 쓰레기나 기후 변화보다 훨씬 더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요인들이 해양 생물의 생명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령 남획은 '기후 변화를 제외한 영역에서 어류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는 지적하고 있다. (p. 139)

저자는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 '어떤 이들은 쓰레기 문제보다 더 속상한 일이 훨씬 많다. (p. 145)' 고 말한다. 역시 가난이 문제다. '가난한 나라는 우선순위기 다르다. (p. 149)'

'호모사피엔스는 여섯 번째 멸종의 원인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p. 153)' 라는 말은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멸종동물 보다 '환경난민' 이 아닐까? 동물과 사람 중 누가 더 중요하냐고 따지자는 게 아니다. 상생의 방법이 있는데 굳이 왜 자꾸 한쪽만 선택하냐는 것이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내쫒고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는가?

에너지 생산을 집중화, 고도화하는 것은 지구 행성의 더 많은 부분을 야생 동물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세워진 모든 수력 발전 댐과 모든 화석 연료 발전소 그리고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합쳐도 얼어붙은 땅을 제외한 전체 면적의 0.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에너지 생산을 위한 토지 사용 면적은 식량 생산을 위한 토지 사용 면적의 고작 200분의 1에 불과하다. (p. 216) 그린피스나 멸종저항의 주장은 틀렸다. 가난한 나라에 에너지 밀도 높은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숲을 위협하지 않는다. 공장이 떠나 버릴 때 숲은 진짜 위기에 빠진다. (p. 220)

환경문제를 세계적으로 보는 단체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보호하고자 하는 곳은 자국이 아니다.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의 자연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난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자신들이 고래멸종을 막았다며 가난한 사람들과 무관한 환경운동의 성과들을 내세울지도 모른다. 저자는 명쾌하게 말한다. '고래를 구한 것은 국제조약이 아니라 식물성 기름이었다. 국제포경위원회가 1982년 포경 행위를 금지했을 때 이미 포경 산업은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 (p. 240)' 라고 '석유가 고래를 춤추게 한다' 고.

탄수화물 섭취를 옹호하고 지방에 반대하는 십자군 운동은 환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에도 유익하지 못했다. 돼지를 더 살찌우는 대신 덜 살찌우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기르도록 분위기를 몰아갔기 때문이다. 가축을 기르는 이들은 곡물 먹이를 더 많이 먹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더 많은 땅이 필요해진다는 말과 같았다. 사람들이 저지방 식단을 택해 비효율적으로 가축을 기르면 결국 필요한 땅은 더 넓어진다. 고기에 대해 사람들이 걱정하는 내용 중 상당수는 틀렸다. (p. 291)

저자는 채식주의자였지만 지금은 고기를 먹는 것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환경주의자라면 사람들이 고기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축을 길러 제공하는 일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p. 293)' 고 말한다. 가축의 농장식 사육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소리다. 하지만 가축과 야생동물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사람이 해야할 일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은 분명해 보였다. 가축사육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놀라웠지만 더 큰 충격은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찬성근거들에서 왔다. 너무도... 옳았다. 저자는 원자력 에너지가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며 반핵운동뒤에 숨어있던 것들을 드러낸다. 결국 자본가들의 이권다툼이었다.

태양광 또는 풍력 시설이 대대적으로 들어선다면 그 불안정성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가스 발전소가 세워져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가스 발전소는 상대적으로 쉽게 켜고 끌 수 있어 날씨 변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366) 독일만큼 신재생 에너지에 전폭적인 투자를 한 나라도 없다. 지난 20년간 독일은 이른바 '에너지 전환'에 총력을 기울렸다. (p. 371) 그러나 2019년 세계 최대 컨설팅 그룹 매킨지는 독일의 에너지 전환이 경제와 에너지 수급에 심대한 위협을 가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 변화 대응, 공급 안정, 경제적 효율 이라는 에너지 산업의 세 꼭짓점 모두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p. 372)

'도시는 응축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늘날 인류는 건물, 공장, 도시에 공급하는 전력보다 에너지 밀도가 1000배 높은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에너지 밀도가 낮은 신재생 에너지의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 보호에만 해로운 일이 아니다. 인류 문명을 지키고 유지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p. 383)' 라며 저자는 신재생 에너지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저자의 말마따다 신재생 에너지가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고 있었다. 신재생에너지 또는 친환경 에너지 라는 것은 일종의 유토피아 같은 거였다. 그리고 유토피아는 늘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계적으로 신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에 집착하고 있는가? 역시 또 결국 자본가들의 이익 문제였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그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환경주의자들과 환경운동 단체들의 민낯이었다.

진실은 훨씬 복잡하고 추잡하다. (p. 422)

녹색 경기 부양책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들은 억만장자들이었다. (p. 436)

늘 그랬듯이 '힘 있는 자들이 가장 좋은 해결책에 반대'했다. '부유한 나라의 환경주의자들이 콩고 같은 나라의 가난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책임은 있다.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 사람들이 산업화와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p. 449)' 라는 저자의 말에 쉽게 공감이 안 갈수도 있다. 서양사람들이 아프리카나 빈민국들에 이런저런 기부를 엄청나게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뉴스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일부러 헛돈을 쓰고 있는 셈이었다. 정작 필요한 것은 안 해주고 필요없는 것만 퍼붇고는 생색만 엄청 낸다고나 할까. 맬서스의 인구이론도 틀렸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기근은 식량 생산이 아니라 체제의 문제인 것이다. (p. 477)' 기근은 인구의 폭발적 증가 때문이 아니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대부분 멜서스주의자들이었다.

세계 인구 증가율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맬서스주의자들은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구 과잉과 자원 고갈 대신 기후 변화를 빌미로 종말론 공포 몰이를 벌여 나간 것이다. (p. 481) 얼마나 많은 NGO들이 개발도상국의 관개 시설 확충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물밑에서 압력을 넣었습니까. 농업 현대화 프로젝트가 시작되려 할 때마다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고 환경 을 파괴한다'라며 반대했던 게 누구인가요. (p. 484) 하지만 경제 성장이야말로 환경 보호다. (p. 489) 나는 되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상대로 에너지 실험을 하는 현실에 대한 말씀이신 거죠?" (p. 493)

극빈국에 대한 자본국들의 에너지 실험도 문제였지만 환경종말론의 종교화도 문제였다. '종말론적 환경주의에는 바로 그런 종교적 성격이 짙게 깔려 있다. (p. 513)' '오늘날 환경주의는 일종의 세속 종교다 (p. 520)' 종말론은 묘한 매력이 있다. 2000년이 될때 종교가 있건 없건 세상의 종말에 대해 한번쯤은 심장이 떨려본적 있지 않은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사람들이 왜 환경종말론에 빠져드는지 설명한다. 만약 이렇게 종말론에 대한 회의감으로 책이 마무리되었다면 정말 우울한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직설적 용기만큼 따듯한 희망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할 일은 많다. 문제는 그 방향이다. 현재의 긍정적인 흐름을 더욱 키워 나가야 한다. 저에너지 농경 사회로 돌아가자는 퇴행적 움직임으로 지금까지 이룩한 발전을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p. 538)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주의를 넘어서 휴머니즘을 다시 포용해야 한다. 인간의 특수성을 긍정하고 인류 문명과 인류 자체를 증오하는 맬서스주의와 환경종말론에 맞서야 한다. (p. 540) 우리는 환경종말론자들의 주장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대하고, 인류가 도달한 풍요의 과실을 여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의식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 541)

이 책은 환경주의에 대한 책이지만 환경주의자들을 무조건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의 숨겨진 비리들을 파헤쳤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환경주의자들이 모두 다 그렇다고 호도하는 것도 아니다. 팩트를 체크하고 팩트만 믿자는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제대로 알고 향해 가자는 말이다. '환경 휴머니즘의 핵심 가치를 밝힐 때가 됐다. 부유한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개발을 부정하지 말고 반드시 도와야 한다. 특히 부유한 나라들은 지금 당장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에 채운 개발과 에너지생산의 제약이라는 족쇄를 풀어야 한다. (p. 541)' 라는 저자의 주장에 귀기울여주는 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량 멸종을 메멘토 모리로 받아들이고 환경진보가 '불멸 프로젝트'가 되도록 이 책이 알려주는 진실이 널리 회자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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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 넷플릭스부터 구글 지도까지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발견
스테판 바위스만 지음, 강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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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기, 영화 추천, 일기예보, 여론조사, 전염병 통제...

우리의 일상과 함께 숨 쉬는 수학의 쓸모에 관하여

넷플릭스부터 구글지도까지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발견

수학이 만만해질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의 희망사항이자 꿈일 것이다. 이 어려운 로망을 실현해보고자 오늘도 도전해본다. 수학을 쉽게 느끼게 해줄만한 책을 찾아 읽어보는 것으로.

이 책을 통해 수학의 다양한 분야와 그 뒤에 숨은 목적을 살펴보고, 수학이 얼마나 필요하고 쉬운 학문인지를 입증하고 싶다. 실제로 몇몇 수학 분야는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복잡한 공식을 일일이 이해하지 못해도 그 뒤에 숨은 원리를 꿰뚫어볼 수 있다. 그래프이론도 마찬가지다. 그래프이론은 구글에서 검색 결과를 정렬할 때도 활용되지만, 암세포가 특정 치료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거나 도심의 교통 흐름을 분석할 때도 동원된다. 통계나 미적분 등 이 책에서 소개하는 현대 수학의 여러 분야 또한 탁월한 쓸모를 자랑한다. 얼핏 듣기에는 복잡하지만 그 뒤에 숨은 아이디어가 황당할 만큼 단순한 경우도 많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이 고역이었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활용도가 높다. (p. 11)

많은 사람들이 수학은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학은 학창시절 내내 엄청나게 중요한 과목이기에 섣불리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럴때마다 '수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수학 공부의 목적'을 깨닫는다면 그나마 수학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며 이런저런 책들에서 열심히 응원을 보내주곤 한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다만, 열여덟살에 석사학위를 받고 스물한살의 나이에 수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유럽에서 가장 촉망받는 수학철학자라는 저자의 에너지 넘치는 응원이 수학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엔 출발하는 마음가짐이 일반인들하고는 다를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래도 수학은 이 책처럼 전문가가 설명해주는 책이 좋다. 저자는 수학철학자라서 그런지 수학의 특정분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의 다양한 범위를 두루 살펴봐주고 있는데 이 책의 큰 장점이라 하겠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매 순간 수학과 마주친다. 물론 글자 그대로의 수학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상 늘 수학에 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나조차 연산 한번 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더 많다. 이렇게 우리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수학은 항상 '음지에서' 묵묵히 대 활약을 펼치고 있다. (p. 31)

수학은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다. 돈계산을 하고 추천영화의 %를 확인하고 최적의 길찾기를 하는 등등이 다 수학적인 일상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숫자가 나오면 다 수학적이라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이러한 일상과 도통 연결되지 않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계산을 할때 근의공식을 쓰진 않고 %가 들어있는 자료를 볼때 경우의수를 다 따지는 것은 아니며 길안내를 해주는 지도앱이 어떻게 수학을 활용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자는 숫자없이 살아가는 지구상의 몇 안되는 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대체 왜 수학을 배워야 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수학 없이도 생존은 가능하고 충분히 행복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술과 기하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할까? 왜 고대의 메소포타미아인과 이집트인, 그리스인, 중국인들은 그토록 수학에 골몰했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수학이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한 무언가를 채워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이었을까? (p. 91~92)

저자는 '수의 기원'부터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로 시작하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역사서들을 꽤 읽는다고 읽었었는데도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되고 행정문서들의 일상에서는 상형문자와는 다른 '신관문자'로 기록했다거나, 숫자기록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거나, 이집트에서는 화폐없이 빵과 맥주로 교환이 이루어지다가 기원전 390년경 그리스 용병을 받아들이면서 은화동전이라는 화폐를 사용하게 됐다거나, 중국에서의 숫자사용은 다른 문명권에 비교해 늦은편인 기원전 1000년께 시작됐지만 혁신적인 숫자 체계와 다양한 연산기술을 개발했다거나, 그리스인들의 추상적 수학과 중국인들의 현실적 수학 탐구 목적이 수학자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도 달랐다거나 하는 등의 역사 이야기들은 수학을 떠나 읽어도 무척 흥미로운 내용들이었다. 여하튼 저자는 고대의 수학을 살펴보면서 다시한번 질문을 던진다. '인류는 왜 수학에 관심을 두었을까? (p. 130)'

수학의 유용성에 관해서는 첫 장부터 강조해왔다. 우리는 수학을 활용하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고, 복잡해 보이던 문제가 갑자기 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줄곧 확인했다. 수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정 규모를 넘어선 국가나 도시들은 여러 행정 문제를 처리해야 했고, 그 일은 타고난 수학적 능력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에 따라 인류는 수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학을 모르는 부족들이 아무 이유 없이 소수 부족인 게 아니다. (p. 131)

더 나은 삶,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수학의 활용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도 그 노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예전보다 더 광범위하게 예전보다 더 치밀하게.

미분과 적분은 우리 주변 곳곳에 숨어 있다. 자동차, 커피머신, 자동 온도조절기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기들은 미적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p. 163) 미적분은 분명 우리 주변 여러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고 필요한 학문이다. 다만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적분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건축사가 되고 싶다면 미적분을 피할 길은 거의 없다. 자연과학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 당장은 아니라도 언제가는 미적분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 차량의 안전도나 자동차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p. 165)

고등학교수학 중에서도 거의 최고난이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미적분이 이렇게 필수라니 암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도 반문한다. '흠, 그런데 미적분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충분히 많잖아? (p. 165)' 하고. 더구나 갈수록 컴퓨터가 대신 처리해주는 일이 많은데 굳이 사람이 알아야 하겠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무언가가 대신 해주는 일을 얼만큼 믿을 수 있을까? 최소한 그 기저에 깔린 원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미적분의 원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개념과 원리 이해에 대한 중요성은 일상에서 '통계와 확률' 을 이용한 왜곡된 사례들을 통해 그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엔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그래프이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짜 뉴스나 개인정보 보호, 인공지능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우려는 이제 사회적 담론이 되었다. 그 모든 주제는 그래프이론의 능력 범위 또는 한계와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프이론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사회적으로 공론화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갖고 싶다면, 자타 공인 전문가들이 내놓는 해법 중 어떤 것이 실천 가능하고 어떤 것이 불가능한지 조금이라도 판단하고 싶다면 그래프이론이 당신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p. 250) 약간의 수학 실력만으로도 내 데이터를 누가 어떤 용도로 활용하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수학,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수학 분야 들에 관한 지식을 우리 뇌에 조금만 장착하면 세상을 훨씬 투명하게 조명할 수 있다. (p. 272)

저자는 수학의 역사부터 과학적 성과를 이룩한 수학 및 다양한 수학의 분야들을 두루 설명한다. 그리고 '숫자는 어떤 의미에서 유용할까? 숫자는 우리가 속한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숫자가 유용한 까닭은 우리가 주변 세계의 구조에 집중하게끔 만들고, 여간해서는 눈길이 닿지 않는 미세한부분까지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p. 255)' 라며 정리한다. 결과적으로 수학의 필요성은 '유용한 학문' 이기 때문이다. 수학 몰라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더 잘 살고 싶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수학의 유용성을 활용할 줄 알며 살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책한권 읽었다고 갑자기 수학이 만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하게 조금씩조금씩이라도 세상이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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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 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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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 테라피

저마다 건드리면 툭 터지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

내 안의 상처와 가족, 그리고 치유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을 기억한다. 작가와 책 제목 모두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심리서들을 한창 읽어대던 시절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저자였다. 어느새 10주년 리커버판이 나왔다고 하니 이런 격세지감도 오랜만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리커버판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위로받았다.

가족 심리학을 상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좀 더 대중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부부나 가족 문제가 점차 증가하는 상황이지만 모든 사람이 가족상담을 쉽고 편안하게 받을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상담을 대신할 수 있는 가족 심리학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p. 7)

이 책은 가족 심리학 책이다. 저자는 이 분야 전문가이다. 독일에서 유학해서 그런지 내용 중간중간 프로이트적 무의식에 대한 언급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이트를 존경하고 그의 학문에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학문을 계승하고 있는 학자들을 만나면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든다. 언제부턴가 심리학책이 흔해진 시대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족 심리학' 책은 여전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구분이 크게 필요친 않다. 그래도 차례에 따른 흐름을 정리해보자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배우자를 살펴보며 상처를 주고받게 된 가족을 확인하면서 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한 마음들을 배워보는 순서랄까. 이 책은 다른 가족관계보다도 부부관계에 좀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가족의 기본 토대는 부부라서 그런가.

부부가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거나, 도저히 부부관계가 힘들어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상대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특히 자신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더욱 개연성이 높다. 전이감정을 일으키기 쉬운 사람들, 즉 '높은 전이감정 경향성'을 지닌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크다. 상처 받은 어린 시절의 내면아이가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p. 19) 가족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였는가는 평생 동안 간직될 감정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어린 시절 경험한 외로움이 평생 지속되는 이유이다. (p. 23)

심리서를 좀 읽어봤던 이들이라면 '내면아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엔 어린시절 또다른 내가 있다, 내면아이.

그 아이가 함께 자라서 떠날 수도 있고 자라지 못하고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그림자처럼 숨어있을 수도 있다. 부부가 됐건 부모자식이 됐건 모든 가족관계는 결국 내 마음 속 내면아이의 감정채널과 연관된다. 가족문제는 결국 내마음 문제인 것이다.

부부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뿌리를 둔 가족 전통과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각 배우자는 이전 세대의 가족 문화와 전통을 새로 시작하는 결혼생활로 가져온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불행의 씨앗이든. (p. 67) 어린 시절 부모가 가정에 무관심하여 늘 외롭게 자라온 이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을 무관심하게 대하고 그로 인하여 외로움을 느끼게 만들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자랄 때 가족들로부터 비난받고 무시당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린 시절의 가족과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p. 89)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는 회귀본능이 있다고 한다. 코끼리로 죽을 자리는 알아서 찾아가 죽기 때문에 상아무덤이 있다고도 한다. 사람에겐 좋건싫건 익숙했던 가족의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럴때 필요한 것이 패러다임의 변화다. 직시하고 인정하고 독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행의 패턴을 똑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그 출발점이다. 직면의 대상은 어린 시절의 상처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상처 받은 내면의 아이를 고찰하며 자기 공감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p. 102) 과거의 불행을 해결하려 무의식중에 헛되이 애를 쓰면서 현재의 삶까지 불행에 빠지고 마는 쳇바퀴를 벗어나는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p. 104)

상담 치료도 한번으로 끝날 수 없듯이 스스로에 대한 직시도 한번으로 해결될 수 없다. 지속적인 노력, 그 사이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내면아이... 내 마음속의 내면아이도 중요하지만 사실 부부나 가족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살펴야 하는 아이는 현실속의 아이다.

가족 내에서 어떤 갈들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은 아이다. 문제를 일으킨다고 아이만 닦달하거나 바꾸려고 애쓰기보다는 먼저 아이의 변화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시스템적 관점에서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 (p. 125) 부모에게는 누구든 한 사람만 그 역할을 맡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희생양이 된 자녀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겁이 많은 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의 고통스런 상태를 재빨리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고, 죄책감을 과도하게 갖고,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만큼 겁이 많고 조화를 갈구하는 아이인 경우가 많다. (p. 157)

저자는 '가족 희생양의 원인은 대체로 부부갈등' 이라고 말하면서 '가족 희생양은 가족 중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족 구성원 전체가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부부 갈등의 회피 수단으로 희생양이 만들어 진다는 것' 이다. '희생양 매커니즘' 은 가족안에서 더욱 은밀하게 작동한다. 예민한 기질을 타고 난 것이 죄는 아닐터인데 타고난 기질이 가족에게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마음아픈 일이다. 하지만 '가족관계에서 스스로 맡아야 할 그 이상의 역할은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저자의 조언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오히려 가족의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라는 저자의 말을 믿어보자.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사랑은 아무런 기대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서 어떤 식으로든지 '본전'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고, 자녀는 다시 부모가 되어 그것을 자신의 자녀에게 돌려주면서 돌봄과 베품이 세대를 통해 내려가는 것이 결국 인류의 삶을 면면히 이어지게 하는 기본 원리이다. (p. 171)

하지만 이 기본원리가 지켜지는 가정은 의외로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이 무색하게 자식들에게서 본전을 뽑으려는 부모들은 상당히 많다. 내리사랑의 기본원리를 숙지한 부모가 많아질때 세상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텐데 말이다. 적어도 나만이라도 나부터라도 이 기본원리를 꼭 지켜보자고 다짐해본다.

어린 시절 힘들었던 경험은 우리에게 흔적을 남깁니다. 부모와의 관계나 집안 분위기 등 어린 시절 경험은 우리 인생의 안내자 구실을 합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 인생은 이 경험에 따라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집니다. 현재의 감정과 행동은 과거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나 결핍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p. 219) 불행한 어린 시절은 우리를 사막에서 필사적으로 물을 구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사막에서 물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물을 구하지 못해 더욱더 물을 찾고자 사막 한가운데를 헤맵니다. 우리는 사막에서 물을 찾고자 헤맬 것이 아니라 사막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서 심리치료는 사막을 나가게 해주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p. 227)

사막 비유를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아하 그렇구나 싶은 깨달음이랄까.

사막에서 물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왜 굳이 사막에서 물을 구하려 하는가? 저자의 말처럼 사막을 나오면 될 것을!

넘어져 깨진 무릎에 딱지가 앉고 떨어져 흉터가 생길지언정 상처는 언젠가 아문다.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상처를 계속 스스로 벌릴 것이 아니라 딱지가 앉고 아물수 있도록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희미해진 흉터를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경험한 아픔은 사랑과 얘정의 결핍이 아닌 소통의 문제였다. 나의 상처는 우리나라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사랑은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포옹을 통해 전달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p. 262)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데, 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본인이 아니고서 그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마음은 표현해야 안다. 말은 들어야 안다. 사랑은 안아주어야 안다.

이 책은 저자의 솔직함과 담담하면서 힘있는 조언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례들에서의 공감을 통해 저절로 마음의 치유를 돕는 책이다. '긴장과 갈등을 푸는 열쇠는 나 자신에게 있다. (p. 289)' 라는 저자의 말은 너무 당연해서 화가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현명한 팁이다. 결국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을 위한 답이 밖에 있을리 없다. 나 자신에게서 어떻게 그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는 이 책이 알려주는 여러 힌트들을 통해 각자에게 맞는 열쇠를 찾게되기를...

ps. 예전에 저자의 책을 몇 권 더 읽었었다. <가족의 발견> 이라는 책이 정말 큰 힘이 됐었다. 이 책도 10주년 리커버판으로 다시 나와서 새롭게 읽어볼 수 있게 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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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 -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김대수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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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을 때

욕망의 유혹, 한계, 착각과 두려움 너머

원하는 나로 변화할 수 있는 과학적 사고법

사람의 심리를 어루만지는 책은 늘 있어왔다. 때로는 문학이기도 했고 때로는 에세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심리학책이기도 했지만 근래엔 뇌과학적 접근이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뇌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을 살고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지난 25년간 뇌를 연구한 한 과학자가 연구 결과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뇌 사용설명서다. 독자들이 한걸음 떨어져 자신의 뇌를 관찰하고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뇌 과학 지식들과 경험을 담고자 했다. (p. 13)

'뇌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을 깨닫게 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뇌과학적 지식을 통해 나의 뇌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책이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전사용설명서를 꼼꼼이 읽지 않듯이 뇌사용설명서도 꼼꼼이 기억하게 될 것 같진 않다. 그만큼 내가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책의 제목을 유혹적으로 지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어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철학자에게 각각 '공간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라고 질문한다면 아마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국어학자 :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는 장소이다.

물리학자 : 어느 한 위치가 3개의 좌표 축에 의해 기술되는 것을 말한다.

천문학자 : 우주에서 물질 외에 모든 빈 부분이다.

수학자 : 내가 말해줘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다. 유클리드 공간, 힐베르트 공간, 확률공간, 위상공간 이다.

철학자 : 공간은 관계인가, 실체인가? (p. 126)

저자는 뇌의 공간인식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유머러스하게 위와 같은 표현을 했을 뿐 뇌과학자로서의 답은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답을 궁금해하기 전에 나는 이 대답들을 읽으며 빵 터져서 혼자 웃었더랬다. 뇌과학 책을 읽으며 이렇게 웃을 수 있다니 저자의 능력이다. ㅎㅎ 뇌과학자인 저자는 아마도 '신경신호로 이루어진 실체없는 지도' 라고 답하지 않을까.

한 인간의 본성은 뇌가 모두 깨어 있을 때 판단해야 한다. 운전 중에 공격성이 증가하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전두엽이 운전에 집중하다 보니 그만큼 시상하부의 공격성을 다스리는 일에 소홀하게 된다. (중략) 공격적인 언행을 하며 되갚아주기보다 너그러이 이해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만큼 상대방 뇌의 전두엽 기능이 부실한 것이고 그로 인해 그는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p. 201)

뇌과학자라서 그런지 프로이트적 무의식에 대해서는 크게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뚜렷한 자기 소신을 부드럽게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공격적 언행을 하는 상대방을 '뇌의 전두엽 기능이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라는 데에서 또한번 웃음이 났다. 사실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태도는 나자신을 너그럽게 만든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 그것이 뇌과학적 지혜라니! ㅎ

생존을 위한 적응의 규칙은 시공간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뇌는 정해진 규칙에 적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규칙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다. (p. 236)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뇌의 능력은 대부분 고정적인 지식을 판단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뇌의 기본 성질은 '변화하는 규칙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인류가 현재까지 진화를 거듭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주어진 정보와 정해진 답만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보다는 변화에 적응 가능한 뇌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믿으며 조금은 안심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싶다.

이 책을 집필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최소한의 지식만 전달하자는 것이다. 독자들이 다른 책이나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얼마 되지 않는 뇌 과학 지식일지라도 독자들에게 생각할 재료가 된다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이제 5부에 걸쳐 뇌가 가진 특징과 한계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전달했으니 나의 임무는 끝났다. 끝으로 내가 뇌 과학을 통해 깨달은 소소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면서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p. 255)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6부의 제목이 책제목과 동일한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 이다. 1부에서 5부까지는 뇌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다양한 연구결과들과 함께 쉽게 전달해주고 6부에서 좀더 실생활적인 팁을 알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저자의 마무리 인사말을 책의 제목으로 뽑은 건 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여하튼,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팁 몇가지를 옮겨놓아본다.

와튼스쿨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가 쓴 베스트셀러 [기브 앤드 테이크]에는 세 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인 기버,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챙기려는 사람인 테이커, 받는 만큼 주는 사람인 매처다. 이 중에서 테이커에 해당하면서 겉으로는 기버인 것처럼, 때로는 매처인것처럼 행동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p. 264)

인정. 적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단어다. (p. 273)

나는 슬프게도 지금까지 테이커에 해당하면서 겉으로는 기버인척 때론 매처인척 행동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여럿 만난 것 같다. 문제는 내가 늘 기버 였다는 점이다. 그때 이 책 내용을 알았더라면 나았을까? 하지만 지나간 시간에 대해 '만약에'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 그저 그땐 그랬지 하며 '인정'하고 넘기는 수밖에. 그리고 지금도 내 주변에 있는 테이커에 대해 특히 ~척하는 테이커에 대해 조심하자고 마음다잡아 볼 뿐...

뇌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 되고 있다. 어릴때부터 나와 뇌의 생리학적 신호를 분리해 스스로 뇌를 관찰하고 교육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스스로 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교육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들이 성공과 보람을 갖게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p. 256)

저자는 티비강연에서 봤던 김대수 교수였다. 강연을 참 재미있게 봤던지라 '카이스트 학생들을 사로잡은 최고의 명강의' 라는 홍보문구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하지만, '일과 생활의 모든 과제에 뇌 과학이 답하다' 라던가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항해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이고 명쾌한 안내서' 라는 문구는 좀 과하다 싶다. 물론 읽기 전엔 이러한 '답'과 '안내'를 기대하고 읽은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러한 과한 홍보문구가 없었다면 더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은 충분히 재미있고 잘 읽히며 유용했지만 홍보문구의 방향과는 맞지 않았다. 적절한 홍보문구가 이 책을 수식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정재승 박사의 추천사도 좀 과한 것 같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삶이 힘들거나 지쳤을 때, 내 삶에서 길을 잃거나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울 때, 누군가에게 상처받았거나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할 때, 과학으로 밝혀낸 작은 진실이 위로와 조언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모든 페이지에서 증명한다. 어설픈 장광설보다 따뜻한 과학자의 냉정한 뇌 과학이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라는 추천사를 보며 정말 혹 했었다. 하지만 정재승 박사는 글도 잘 쓰지만 추천사를 더 잘 쓴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칭찬도 너무 과하면 불편한 법이다. 기분좋을 만한 적절한 칭찬이 바람직하다. '어설픈 장광설 보다 따뜻한 과학자의 냉정한 뇌 과학이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음'을 알지만 이 책은 위안이라기 보다는 지식에 가까운 책이었다.

여하튼, 다시한번 말하지만 책은 술술 잘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강연에서 느꼈던 그대로 글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내고 있어서 가볍게 읽히니 좋았다. 뇌과학이라는 단어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저자가 풀어놓는 뇌과학은 어렵지 않았다. 과한 홍보문구와 추천사 가 아니었어도 책 자체가 주는 정보와 편안함만으로도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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