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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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

문학의 장르를 크게 시, 소설, 극, 산문 으로 나눌 수 있다면 이 중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유일한 분야는 '시' 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는 좋아하진 않지만 읽어서 이해안 될 것이 없는 글이고, 영화나 드라마 또는 연극으로 보는 극을 대본 책으로 보는 재미도 조금은 느껴본 적 있고,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지칠때면 소설을 찾아 읽는 나로서는 나름 문학을 즐기면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는 정말이지 한번도 제대로 이해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시란 이해가 아닌 영역일텐데 이해하려고 들어서 더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인 열명의 에세이 열 편을 담은 이 작은 책은 시처럼 읽히는 이 얇은 책은 읽는 내내 머릿속을 부옇게 만들곤 했다. 일상을 담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시의 세계로 나를 끌어들이는 듯 했다.

지금의 나는-기억은 좀 군데군데 없지만-좋아하는 일을 자주 하고자 노력하는 잔잔하게 망가진 인간이다. (p. 19)

책 제목에 '건강'을 달고 있는 이 책의 첫번째 글 [굴러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 김복희] 에서 시인은 이미 건강하지 않은 '망가진 인간'이고

나는 삶이 기쁘지 않아. 엄마에게 고맙지 않아. 마음 뿌리를 다 뽑을 작정으로 털어놓고 나면 슬픈 만큼 흡족했다. 그는 묻지 않고 눈앞의 나를 다 본다. 나는 그에게 받아들여진다. 언제나 그냥 받아들여진다. (p. 40)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몸도 마음도 망가지려할때 [몸 맘 마음 - 유계영] 속 엄마처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가족이 있어 시인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끝이 있다는 느낌, 막다른 벽에 부딪힐 거라는 느낌은 좋다. 그 또한 나의 생활이고 나의 건강이다. 끝이 있다는 감각은 건강하다. 테두리에 대한 감각도 건강하다. 테두리 혹은 사방의 벽을 감각하며 가방을 걸어서 여행을 가지 않기. (p. 59)

일상을 여행처럼 표현한 [여행 가방 - 김유림] 에선 막막한 여행보다 일상의 감각에서 건강함을 찾다가도

그래. 그날 내가 A씨의 전화만 받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다. A씨는 내게 그랬다. "그래도 고유한 건강함에 대해 쓰면 독자들도 흥미로워할 거예요" 당시 나는 수긍했다. 그러나 쓰려고 보니, 그 전화를 받고 수긍한 내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한 지점을 찾으려고 12월 내내 분투했지만 도무지 나는 건강하지 않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중략) 니체이자 내가 말했듯이 나는 비극을 긍정하기로 했다. 건강하지 않음을 밝힘으로써, 그것이 건강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해 쓴다. (p. 66)

이 책의 시작을 알게 해준 전화 한통을 통해 [고독한 소호 방 - 이소호] 의 '쓰는' 행위는 시인의 건강하지 않음을 오히려 상기시킨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이 알 수 없는 사랑이 나를 생활하게 한다는 것. 이 사랑이 나의 살과 기립근을 이뤄 날 일으키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을 때에도 아주 혼자는 아니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아주 먼 길을 걷는 데에도 끄떡없게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랑이, 나의 생활과 건강을. (p. 101)

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되씹는 글이 [사랑의 정체 - 손유미] 시인의 사랑이 가족의 결속력을 확인시켜준다기 보다는 시인의 나른함에 늘어지다가도

완벽함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 그저 스스로 세운, 자신만의 기준일 뿐이다. 열정은 원동력이 되어 움직이게 하지만, 인간의 에너지는 유한하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노동과 학업 또한 우선순위를 매긴다. 지혜롭게, 슬기롭게, 짜릿하게, 자신있게.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건강' 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p. 119)

5잡러라는 바쁜 시인의 생활을 통해 [미안하지만 아직 안 죽어 - 강혜빈] 같은 번아웃된 시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겨우 내 방과 화해하고, 그 안에서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잘못된 곳에 와 있다고 느끼지 않고, 이제 막 여기가 나라는 사람의 거푸집임을 인정하는 중이었다. (p. 139)

누구보다 외로울 것 같은 시인의 삶이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 박세미] 처럼 평화로워 보이다가도

나는 반복적이고 건강한 삶만이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삶에는 어쩔 수 없이 구멍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이 없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철저하게 감추었거나 메우려 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일 테다. 그것을 없애려 하는 것이야말로 병적인 태도는 아닐까. 오히려 삶의 상처와 결여가 있는 삶이 더 건강한 것은 아닐까. 삶이 주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 그로 인해 병이 있는 사람, 느린 사람, 그보다 더 느린 사람, 그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자들이다. (p. 157)

[나의 안/건강한 삶 - 성다영] 에선 건강한 삶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보기도 하지만

그 사랑의 색깔이 나를 물들인다. 그림을 통해 세상을,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p. 174)

[사랑의 색채, 단 하나의 색깔 - 주민현] 시인에게 건강은 결국 '사랑' 으로 회귀된다.

그러나 나는 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원망하고 증오하는 사람들과 거의 매일 함께 있었다. 아니야, 나는 좋아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 늘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으로 건강했고 아무 마음을 곁에 두지 않고도 혼자 생활할 수 있었다. 엄마와의 관계조차 거부하고 싶었던 내게 시는 더 완벽한 고립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p. 188)

시인은 고독을 자초하지만 결코 사랑없이 살 수 없구나 싶었다. [새끼의 마음에서 - 윤유나] 새끼의 마음을 유지하고 싶고, 반려동물의 마음을 알아주고 싶고,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떨어지고 싶어도 시인의 건강 생활 비법은 결국 '사랑'이었다.

'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는

다친 마음을 시처럼 쓴 글을 지친 몸 옆에 누운 기분으로 읽게 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건강하지 않은 생활을 보여주는 건강 에세이 였다.

그러나 또 어찌 알겠는가? 시처럼 모호하고 뿌연 글들이 누군가에겐 자신의 생활건강을 돌아보게 해줄 진한 공감이 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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